-
-
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평점 :
나의 고향은 두멧골 옥관이라는 곳이다. 멀리 앞쪽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뒷산에는 신라 눌지왕 때 세운 <대둔사> 절이 있는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이곳은 구미시에서 70리 떨어진 곳이며, 상주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어렸을 때에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지게에 지고 날랐고, 소를 몰고 산에 올라가 풀을 뜯어 먹였다.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가도 그저 동네 뒷산에 있는 ‘절’에 가서 법당을 둘러보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약수물을 떠 마시기도 하고, 보물찾기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어릴 때는 산에서 살았다고 하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즈음은 생활이 바쁘다 보니 산에 자주 올라가지는 못하고 가끔 가까이 있는 광교산에 올라가서 약수 물을 퍼마시고 소리를 힘껏 질러보고 내려온다. 요즈음 산에서 암도 고친다는 TV 방송을 본 후 건강을 위해서 산에 다니겠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산에 오르는 것이 녹녹하지가 않다. 산을 오르다보면 내가 먼저 출발하는데도 한참 가다가보면 어느새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이 나보다 앞서서 오르게 된다.
이 책은 ‘건축계 최고의 글잡이’로 손꼽히는 중견 건축가 이일훈이 우리네 일상의 삶을 웅숭깊게 되짚어보는 사색과 성찰의 글들을 한 권의 에세이집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우선 오늘날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현대병’의 치유를 권하고 안내하는 친절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뒷산’은 그냥 뒷산이 아니다.
저자는 ‘동네 뒷산은 잔병을 치유하기 좋은 병원’이라고 하면서 단순한 재미를 복잡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잔병을 산에서 치유받는다고 말한다. 뒷산은 아직도 캐지 못한 것이 더 많은 보물창고다. 앞산은 보는 산이지만 뒷산은 동네를 품는 산이다. 저자는 ‘어떠한 앞산도 어딘가의 뒷산이고, 어떠한 뒷산도 어딘가의 앞산이다.’라고 말한다. 나의 부모님은 지금도 고향에 사시면서 연세 84세인데도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셔서 아침식사를 하신다. 산을 오르시고 부터는 젊은이들보다도 더욱 건강이 좋으시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뒷산은 맛있어’는 뒷산과 동네가 만나는 풍경을 통하여 뒷산에 새겨진 우리의 모습과 뒷산으로 연장된 동리의 풍정을 이야기 한다. 2장 ‘맛있으면 약수터’는 뒷산에 있는 한 약수터와 그 주변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아무리 근사한 장소라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고 어떤 장소라도 ‘사람’이 관계되면 의미가 생김을 일깨워준다. 3장 ‘약수터는 짜릿해’는 말없는 뒷산과 말 많은 사람들이 만나는 장면을 통해서 사람이 산보다 훨씬 수선스럽고 변덕스러움을 알게 해준다.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세간의 시름과 고통을 잊기 위해 산에 오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산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 땀, 한 땀,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며 발을 내딛는 동안 산은 조용히 우리들에게 말을 건넨다. 바쁜 세상살이에 혹시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바로 지금 옆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산은 우리를 품는 동안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을 치유해주고, 산행 중 처음 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에서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동반자라는 점도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