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의 사회문화사 - 정부 권력과 담배 회사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17세기 중반 제주도에 상륙한 네덜란드 상인 헨드릭 하멜이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기착하여 14년 동안 조선에서 살다가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를 썼는데, 그 한 대목에 담배에 관한 것이 나온다.

“현재 그들 사이에는 담배가 매우 성행해 어린아이들이 4, 5세 때 이미 배우기 시작하며, 남녀 간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p.16)

담배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이 조선 시대 광해군 때인 1616년이니, 한반도에서 담배 연기가 피오르기 시작한 지 채 400년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옛날이야기의 첫 머리에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일 정도로 담배는 우리 역사에 친숙한 물품이다. 조선의 르네상스기로 불리는 18세기 말인 정조 때에는 전체 인구 1839만 명 중 360만 명 이상이 담배를 피웠다. 흡연률이 20퍼센트로, 신윤복 등이 그린 풍속화에도 담배를 문 기생이 자주 등장할 정도였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담배와 흡연의 문화 변천사를 살피고 있다. 저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커피와 축구, 어머니, 전화, 자동차, 룸살롱 성형 등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써온 ‘한국 사회문화사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각종 문헌과 미디어가 담고 있는 담배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들을 찾아내 통사적으로 엮으면서 국가 권력이 세수(稅收)를 위해 흡연을 조장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담배의 원래 생산지였던 서양에서의 흡연 문화도 함께 소개함으로써 정치 권력과 담배 회사의 은밀한 유착 관계가 세계에 보편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담배 열풍은 일제강점기와 건국을 거치면서도 사그라지지 않아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골초 국가’의 이미지를 이어갔다. 19세기 말 영국의 화보 주간지에는 “양담배에 욕심을 내는 거문도 촌장”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영국 군인이 거문고 촌장에게 담배를 건넸더니 “촌장은 우선 한 개비를 얼른 집어 뒤로 감춘 뒤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남은 한 개비마저 입에 물어버렸다”는 일화가 나오기도 한다.

1890년대 중반 궁중을 드나든 선교사 언더우드 여사는 “상당수의 궁녀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전한다. 다시 한 번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정작 궁녀들이 비흡연자인 자신을 보고 놀라워했다”고 기록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담배의 해악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게 되면서 금연 열풍이 불었다.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타계 직전에 복지부 홍보대사로서 자신의 폐암이 흡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금연 캠페인을 벌인 것은 자신의 진심을 담은 것이지만, 담배와 정부의 세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별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 책의 맺는말은 담배는 마약이다. 흡연자의 의지를 강조하는 금연 운동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정부가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담배 없는 세상’도 요원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금연하라고 겁주는 책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넛지’ 방식인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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