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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장마와 함께 여름이 시작됐다. 쉴 새 없이 내리는 장맛비와 불볕더위로 야외활동을 꺼리게 되는 시기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실내 활동이 잦은 이 때가 책을 접하기에 적합한 계절이 아닐까 싶다.
탁 트인 나무그늘이나 선풍기 바람 시원한 마루에서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는 쏠쏠한 재미는 여느 피서지의 즐거움 못지않다. 짙은 책 냄새에 이끌려 추억의 도서를 책장에서 꺼내보던 기억을 품은 여름날의 독서삼매경. 장마철 눅눅함을 날려 보내고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적셔줄 단비 같은 책, 공들여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덧 여름은 저만치 물러나 있을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은 1년에 몇 권이나 될까? 아니 지금껏 우린 몇권의 책을 읽었으며, 죽을 때까지 몇권을 더 읽을 수 있을까? 물론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적은 수의 책을 읽은 것과 많은 수의 책을 읽은 것을 동일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누가 뭐라해도 많은 수의 책을 읽은 것이 더욱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장르별로 다양하게 정보를 주고 있다. 만화나 소설처럼 흥미 위주로 쓰여진 책도 있지만 이들 책마저도 찬찬히 읽어보면 꽤 솔솔히 유익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하물며 만화나 소설도 이러한데 다른 책들은 얼마나 많은 정보와 지식이 숨어 있겠는가? 특히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지식에 메말라 있는 시기에 책이 주는 즐거움과 유익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클 것이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청춘의 시기에 책에 미쳐 살았던 순간을 회고하며 그녀가 책을 통해 느꼈던 지난 날의 아름다웠던 추억과 앎의 즐거움을 토해내고 있다.
조선 후기 ‘선비’ 이덕무는 책에 미친 바보였다. 햇빛이 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책상을 옮겨가면서 책을 읽었고, 진귀한 책을 얻을라치면 뛸 듯이 기뻐했다. 평생 책을 벗 삼아 일생을 보냈던 그의 삶은, 쉽게 남의 지식을 가지려 하고 얕은 지식으로 아는 체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본이 될 것이다.
이덕무는 어릴 적부터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그의 방은 동, 서, 남쪽 삼면에 창이 있어, 동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행여 지금까지 보지 못한 책을 대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고는 했기에, 집안 사람들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이덕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책을 보는 방법은 경문을 외우고, 여러 사람의 학설을 모두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하고,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사리에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서 ‘진짜 이덕무’의 모습을 원문 그대로 만나게 되는데, 원문은 그야말로 짧은 한문지식으로는 읽을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한다.
책 한권만 있으면 행복했던 조선의 서비 이덕무가 부럽기만 하다. 이 책을 읽으니 책에 한 번 미쳐보고 싶다. 그래서 이덕무의 행복을 맛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