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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 일본 동북부 대지진, 그 생생한 현장기록
류승일 지음 / 전나무숲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이다. 종말론의 공포는 인류의 기원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삶을 끈질기게 따라 다닌다.
세계 각지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공중을 날던 수백 마리의 새들이 우수수 땅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중국에서는 땅 속 지렁이가 수도 없이 길바닥으로 기어 올라왔다. 화산이 폭발하고 홍수, 쓰나미, 이상 한파 및 혹서 가뭄, 기근이 지구촌 곳곳에서 기승을 부린다. 해가 여러 개로 보이는 환일(幻日)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운석이 밤을 대낮처럼 밝히며 떨어지기도 한다.
2011년 3월 11일 규모 8.9의 강진에 이어 초대형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해안을 덮쳤다. 일순간 선박과 차량을 쓸어버리고 원전 파괴, 방사능물질 유출의 대규모 피해로 이어졌다. 인적은커녕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으스스한 해안 도시, 폐허더미만 보이는 마을, 뼈대만 남은 병원 건물, 대형 어망을 뒤집어쓴 기차 역사, 두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대형 컨테이너 선박, 호수가 돼버린 운동장, 끊어진 도로, 엿가락처럼 휜 철로... 이런 곳에서 다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책은 일본 동북부 참사 이후 최초로 출간되는 본격 재난 다큐멘터리 서적이다. 이 책에는 참사 소식을 들은 류승일 사진기자가 본능적으로 후쿠시마로 날아가 초토화된 피해 현장을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일본 동북부 전 지역을 취재한 작가의 노력은 물론이고 언론에서 세세하게 잡아내지 못한 그 참혹한 현장을 그대로 글과 사진으로 담아냈다.
또한 무엇 때문에 자연은 인간이 일궈놓은 아름다운 터전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기고, 열심히 살아도 자연의 분노 앞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좌절과 절망만 전하지 않고 있다. 자기가 살던 집을 찾기 위해 폐허더미 사이로 난 길을 헤매는 사람들, 평생 운영하던 과자점 건물 바닥을 뒤져서 쓰나미가 오기 전에 만들어둔 과자를 발견하고는 기뻐하던 할아버지, 친구가 살던 집터를 뒤져서 추억이 간직된 물건을 찾던 이십대 여성들, 쓸 만한 집기들을 챙기다가 속상한 마음에 “촬영할 거면 돈을 내라”고 화를 내던 아저씨 등의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비록 지금은 좌절해 있지만 이제 곧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인간의 강한 의지를 발견해내기 때문에 이 책은 더 의미가 깊다.
이 책은 이웃나라 일본의 참상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거대한 자연재해의 경고를 대신 전해줌으로써 안전 불감증에 빠진 대한민국에 ‘우리는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한국도 지진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아이티 지진 때와는 달리 물리적, 정서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지진 여파는 한국 사람들의 불안감을 극도로 끌어 올리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보고 글을 읽는 내내 ‘그렇다면 바로 이 순간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개봉된 영화 [해운대]의 끔찍한 장면들도 새삼 현실처럼 다가온다. 뒤이어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고 잘 보존해야 자연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