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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음모 - 위험천만한 한국경제 이야기
조준현 지음 / 카르페디엠 / 2011년 5월
평점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승자에 의해 패자는 철저히 부정되고 패악시 된다. 루소는 ‘역사란 많은 거짓말 중에서 진실과 가장 비슷한 거짓말을 골라내는 기술이다’라고 말했다. 보통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역사도 알고 보면 가장무도회 같은 것이 많다.승자의 논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살아 꿈틀거리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빼앗아가고 있다. 승자들의 논리는 교묘하고 그럴듯하여 그 논리가 옳다고 믿지만, 정작 그 논리는 승자들의 권력과 부를 재생산하는 데 요긴하게 쓰일 뿐이다.
이 책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승자’에 비유한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더 좋은 학교를 다니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더 똑똑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득권자들이 그 똑똑함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써 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말하는 그들이 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인지 그럴 듯한 근거와 자료와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기득권의 논리에 봉사하고 있으면서 얼마 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며 세계적 경제학자라고 평가를 받았던 장하준조차도 ‘승자의 음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된 논리를 8가지로 정리하여 조목조목 지적하고 반박하고 있다. 그 8가지란 (1) “한국경제는 수출로 먹고살아야 한다.” (2) “박정희 시대 개발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3) “대기업 재벌이 없으면 성장은 불가능하다.” (4) “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5) “토건 사업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다.” (6) “부동산이 아니면 부자가 될 수 없다.” (7)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성적순이다.” (8) “북한 체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8가지 가운데 당신이 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승자의 음모에 속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책의 내용 반 정도는 월간 <인물과 사상>을 비롯해 몇 군데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던 글들이다. 그 글들 중 요즘 이슈에서 떠난 것은 버렸고, 다시 새겨 볼만한 글은 고쳐 쓰고 새로 추가하여 이 책을 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경제학에 ‘트리클 다운’이라는 말이 있다. 기득권자들이 많이 애용하는 말로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뜻이다. 정부가 투자를 늘려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넘쳐흐르는 물’은 계속 넘쳐흐르는데 바닥을 적시는 것 같지는 않다. 사회 모든 부분에서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동네 구멍가게, 부동산 부자와 전세 난민, 강남 8학군과 산골 오지 마을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그 간극을 메우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렇듯 당신이 옳다고,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경제에 대한 지식과 논리 대부분은 승자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한국인인 당신이 진정으로 선진적인 삶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승자들이 만들어놓은 경제 논리와 결별하여야 한다. 한국경제는 내수의 비중을 늘리고, 대기업 재벌의 운명을 개인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되고,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함께 나누어야 하며,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투자하고, 행복과 불행을 학교 성적이 결정해서는 안 되고, 북한과의 평화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 이유를 이 책이 설명해 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자신이 정치가들과 기업가들을 너무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층은 다양하므로 좌로나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면에서 글을 쓴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