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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 그 해 여름
김성문 지음 / 서울문학출판부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요즈음은 책 읽기가 너무나 좋은 계절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으니 책 한권 집어 들고 나 혼자만의 공간인 집 앞 공원 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 재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오늘은 김성문 작가의 <어느 봄 그해 여름>이라는 장편 소설을 읽었다. 사실 나는 소설보다는 에세이집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설레게 했고, 그래서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이 소설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건조한 일상에 찌들어 사는 중년여성을 위한 이야기다. 특히 남편과 아이들한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여성이라면 이 소설을 통해서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중년의 여성들이 당면하는 보편적인 질문들이 소설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물론 아름다운 로맨스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여성성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며 또 한편으론 운명에 반응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 수연은 3년 전에 남편을 여의고 아들내외도 분가시킨 후, 부모가 물려준 옛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는 대학을 다닐 때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졸업여행을 가서 남편을 만나 목사의 아내가 되었는데 남편도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공원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토요일마다 모교에서 성악과 학생들을 위해 피아노반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의 생활은 지극히 단조롭고 따분한 일상이었다.
온갖 꽃들이 싱그럽게 피어있는 어느 봄날 수연은 남편의 무덤이 있는 백운묘지에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의 영혼을 뒤흔드는 윤석주라는 남자를 만난다. 석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석주의 음성에 매혹당하고 그를 신화 속 예언자의 이미지로 각인시킨다. 묘지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는 타이어에 이상을 감지하고 갓길에 차를 멈춘다. 그리고 우연을 가장하여 석주가 갤로퍼를 몰고 그녀의 뒤를 따라 온다. 최초의 변화는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데 따가운 햇볕과 바람 빠진 타이어, 인적이 드문 도로변, 절제된 몇 마디의 대화, 땀방울 그리고 양산...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고요했던 그녀의 내면에 충동이 일어난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오십대의 두 남녀가 신경전을 벌이는 풍경은 한편의 영화처럼 생생하다.
평생 성직자의 아내로 살아온 수연은 교회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이지만 실제 교회를 지배하는 것은 딱딱한 교리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이다. 수연은 모험을 시도하고 다시 꿈꾸기를 원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신을 되찾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어 한다. 그 이후로 발생하는 사건들은 나약한 존재들이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신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서사시이기도 하다.
사랑은 언제나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아내는 나를 남편으로 택한 것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며 행복해 할 것이가를 고민했다. 또한 한 인간으로, 한 아내의 남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흔히들 소설 속의 사랑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소설 속의 사랑이 아닌 현실에서 아내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