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 다츠지 - 조선을 위해 일생을 바친
오오이시 스스무 외 지음, 임희경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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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쉰들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이용해 큰돈을 번 독일의 사업가였다. 그는 독일이 침공한 폴란드로 가서 폴란드계 유대인이 운영하던 그릇 공장을 인수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임금이 낮은 유대인을 공장의 일꾼으로 썼다. 그러던 중 그는 유대인 학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쉰들러는 자신이 가진 재산을 활용해서 유대인들을 구해 내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재산을 털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유대인들을 공장에서 일을 시키겠다는 이유로 한 명씩 사들였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그가 유대인들을 데리고 간 공장은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다고 한다. 유대인을 일꾼으로 쓰겠다는 것은 그들을 구할 명분일 뿐이었던 것이다.

당시 폴란드에 살고 있던 유대인은 약 6,000여 명에 이르렀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나치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999년에 발견된 명단에 있는 사람이 1,200명이었으니 결국 쉰들러는 살아남은 폴란드계 유대인의 절반가량을 구해 낸 것이었다.

<후세 다츠지>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제국주의 밑에서 억압받고 있을 때, “옳고 약한 자를 위해 나를 강하게 만들어라. 나는 양심을 믿는다.”라는 말과 함께 수많은 독립투사를 위해 기꺼이 변호를 맡고, 그들의 생명을 구한 변호사였다.

조선 독립운동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한 후세 변호사는 한국과 대만 등 피압박민족의 인권문제에 앞장서 온 양심적 지식인이지만, 그동안 국내학계에서는 그의 좌파성향 때문에 집중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일본 변호사 100인’에 꼽힐만큼 활발한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10월 일본인 최초로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후세 다츠지>는 2007년 가을, 일본과 조선. 한국의 교류사를 연구하는 고려박물관에서 ‘후세 다츠지전’을 개최하고 그때의 강연록을 간행한 책이다. 강연록1의 ‘후세의 생애와 조선’에서는 후세의 손자인 오오이시 스스무가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세의 인품과 그의 에피소드들로 그의 활동상을 보여준다. 강연록2의 ‘후세와 재일 조선인인 나’에서는 작가인 고사명이 어린 시절 탕자와 같던 자신의 삶이 후세로 인해 구원된 이야기와 2차 대전의 전과 후를 조명하면서 일본 근현대사의 어둠을 경고한다. 두사람의 강연 외에 ‘후세 다츠지와 재일 조선인 - 해방 후를 중심으로’ 에 이형낭의 논고, ‘후세 다츠지의 한국 인식’에 대한 이규수의 논고를 실었다.

후세는 자신의 좌우명인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를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실천한 사람이다. 후세는 1953년, 만 7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장례식 때 재일 조선인이 낭독한 조사에는 후세는 “우리 조선인에게 있어 정말로 아버지와 형 같은 존재이고, 구조선(救助船)과 같은 귀중한 존재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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