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친 나비 날아가다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10년 8월
평점 :
쪄 죽을 것 같은 공포의 날씨,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닦아도 딱아도 계속 흐르는 땀... 솔로가 되어 혼자 방구석에서 컴퓨터를 끄적이고 있는데, 친구 셋이서 군산으로 여행을 가자는 전화가 왔다. 그러나 그냥 셋이서 재미있게 갔다 오라고 하고 나는 [미친 나비 날아가다]와 만나 데이트를 하려고 책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하느니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즐겁고 행복할 것 같다.
[미친 나비 날아가다]는 홍경래와 김삿갓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홍경래와 김삿갓은 비슷한 시대적 상황에서 상반되는 삶을 살았다. 19세기 초 세도가들의 폭정과 비리가 만연한 세상에서 사회를 변혁할 꿈을 꾸며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난을 일으킨 홍경래가 현실 전면에 섰던 인물이라면 김삿갓은 그 반대의 경우다. 세도 가문인 안동 김씨의 일원이었음에도 현실 정치에는 조금도 발 담그지 않고 20세 이후의 모든 삶을 방랑으로 마무리한 이가 바로 김삿갓이다.
주인공은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진 김병연(金炳淵)이다. 순조가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했고 그로 인해 외척들이 권력을 잡던 시기였다. 영월에 살던 20살 나이의 김병연이 영월군의 동헌인 관풍헌에서 열린 백일장에 응시하여 정시(鄭蓍)를 충신으로, 김익순(金益淳)을 반역자로 비판하고 조롱하는 글을 써서 장원급제를 했다. 그러나 이 글은 김병연이 동가식 서가숙 하면서 항상 큰 삿갓을 쓴 채 방랑하는 나그네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 버렸다. 시제에 나오는 김익순은 그의 친 조부였다. 결국 김병연은 할아버지를 지탄한 죄책감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 현실의 부조리, 운명에 대한 회의 속에서 처자식을 둔 채 부평초처럼 떠도는 인생살이를 선택하고 만다. 김병연의 고뇌와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로 인해 김병연의 가족들이 평생을 두고 겪었을 외로움과 힘들었을 일상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남양 홍씨인 홍경래는 몰락 양반으로서 선친이 평안도로 이주하여 터전을 잡게 되었는데 서북인은 등용하지 말라는 당대의 정책으로 벼슬이 좌절되자 세상을 바꿀 것을 결심하고 10년의 준비를 하여 행동으로 옮긴 급진적 인물이다.
이처럼 난세에 탄생한 극단적인 두 사람과 일족의 권세를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안동 김씨 세족, 힘이 없는 임금 순조, 힘 앞에 비굴한 김익순, 홍경래의 난에 편승하는 무리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지금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변혁을 꿈꾸는 사람, 자신의 이익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시류에 편승하는 사람, 옳건 그르건 나약하게 기대는 사람, 현실을 벗어나 재야에 묻히는 사람, 비리에 눈 감는 사람, 조용히 숨죽이며 시대를 견디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인간들의 삶이 존재한다.
조정을 타파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했던 홍경래의 급진적 진보나,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속하게 되었음으로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 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긴 김삿갓 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지혜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