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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안중근
박삼중.고수산나 지음, 이남구 그림 / 소담주니어 / 2024년 12월
평점 :
2개월 전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영웅 안중근>을 아내가 유동하 역을 맡아 출연했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법정에서 “누가 죄인인가”라고 소리치는 안중근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안중근은 도처에 도사리는 죽음에 두려워하고, 거사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한 채 두려워하며, 설령 거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꿈꾸던 독립과 동양평화가 실현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특히 동지의 죽음을 보고는 “조국이 무엇입니까?”라고 소리치며 울부짖는 장면은 안중근의 고뇌를 여실히 드러낸다. 안중근은 “떨리는 제 두 손을 천주여, 부디 꼭 잡아주소서.”라고 노래하면서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 살려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과 동지들이 품었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이 책은 평생을 사형수 교화에 바친 노승 박삼중 스님이 일본의 한 절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비를 본 뒤 충격을 받고 안중근 의사를 알리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조사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여섯 번이나 뤼순을 다녀오면서 뤼순 감옥 수감 동안 안중근을 지킨 일본인 간수 지바 도시치, 일본인 교화승 쓰다 가이준, 하얼빈 의거 동지 우덕순, 이토와 함께 안중근의 총을 맞은 다나카 세이지로 만철 이사, 안중근의 어머니 조성녀 마리아,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우지히토, 뤼순 감옥까지 달려가 안중근에게 종부성사를 준 프랑스 신부 빌헬름 등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거사를 치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부터 거사 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안중근을 둘러싼 이들이 기억하는, 살신성인의 독립운동가이자 동양의 평화를 꿈꾼 사상가 영웅 안중근에 대해서 전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는 총성과 함께 한 장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그와 함께, 우리 나라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세계만방에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우리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안중근 의사는 곧바로 러시아 공안에 체포되어 일본 정부로 인도되었고 일본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결국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안중근이 <동양평화론>을 저술할 당시 나이는 33세였다. 그는 집에서 한학을 배웠지만 근대 교육은 받지 못했고 책을 읽는 것보다 승마와 사격을 즐겼다. 안중근이 어려서부터 마음 깊이 새긴 소양은 기개·호방·의협심·용맹과 같은 무인의 가치였다. 그런데도 그는 동양의 사상과 천주교의 교리, 자신의 성찰을 반추하면서 주체적으로 동양평화론을 정립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뤼순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다가 죽는다면 그것 또한 큰 영광”이고, “안중근을 위해 살다가 죽는 것이 마지막 과제이자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 역 옆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만들어 안중근 의사와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전시하고 있으며, 일본의 다이린지라는 절에는 안 의사의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이 적힌 유묵비를 세워 대를 이어 추모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우리나라가 독립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그가 열망했던 고국의 독립은 이루어졌지만 고국에 묻히고자 했던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과 관련 있는 다양한 사진 자료를 수록하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