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 흐림

날짜 : 2014년 9월 29일

탕자의 비유에서 외면적으로 볼 때 맏아들은 매우 효자이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전혀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는 왜 그렇게 착한 맏아들이면서도 아버지의 부요함을 누리지 못했을까? 첫째로, 그는 율법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와 아버지의 관계를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보지 않고 아버지가 명을 내리고 자기는 지키는 율법적 관계로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이 죽을 뻔했다가 돌아왔는데도 그가 죄를 지었음을 내세워 환영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주의, 위선,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것을 미워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둘째로, 맏아들은 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사람이었다. 부요한 아버지와 살면서도 그는 염소 한 마리도 아버지에게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는 명령만 내리시는 존재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인생에는 즐거움이 없었다. 기대를 저버린 인생은 절망뿐이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내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서로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사랑은 식어지고 잘잘못만 따지는 율법적인 관계가 되고 만다. 또 청소년들이 장래에 대한 기대를 잃어버린다면 불량 청소년들이 된다. 그리고 교회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잃어버리면 쇠퇴하고 마는 것이다. 기대는 하나님께서 기대를 풀어놓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가질 때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기대가 없는 신앙이 열매 없는 나무와 같다면 기대가 있는 신앙은 열매가 주렁주렁한 강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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