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 따뜻한 언어와의 만남
김도인 지음 / 좋은땅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복잡한 삶에 여유를 주는 따뜻한 글. 아침에 행복을 열고 저녁에 후회를 닫다.

 

인내와 포기

인내는 연결하는 힘이 있습니다. 포기는 단절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인내하면 봄과 가을이 연결됩니다. 씨앗과 열매를 연결합니다. 출발과 도착을 연결합니다. 하지만 포기하면 연결했던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갑니다.

포기는 달콤합니다. 하지만 인내는 씁니다. 당장 힘든 것을 생각하면 달콤한 포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밝은 미래를 바라보면 쓰디쓴 인내를 선택해야 합니다.

인내하면 일자리의 정년이 보장됩니다. 포기하면 정년 보장은 물론, 그 이후 인생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삶은 언제나 쓴 법입니다. 쓴 것이 삶에서의 답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할 상황이 올지라도 인내해야 합니다. 한순간의 쓴 잔을 마시면 오래도록 달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틴과 어드벤처

사람들은 어드벤처와 같은 삶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살아가고 있는 삶을 보면 루틴입니다. 모험은 어쩌다 한 번 뿐이지만 루틴은 매일이기 때문입니다.

배일 반복되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삶은 어드벤처의 의함이 아니라 루팅에 의해 결정됩니다. 어드벤처는 어쩌다 한 번이지만, 루틴은 매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틴의 삶을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 잎 클로버의 뜻은 행복입니다. 네 잎 클로버의 뜻은 행운입니다. 네 잎 클로버는 돌연변이입니다. 세 잎 클로버는 정상입니다. 그러므로 행운이 아니라 매일의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네 잎 클로버는 모험이라면 세 잎 클로버는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운을 좇지 말고 행복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고수들이 고수가 된 것은 일상을 통해 이뤄 냈기 때문입니다.

 

바꿈과 바뀜

그러므로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스로 바꿀 수 없으면 반드시 타의에 의해 강제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 내가 바꾸지 않으면 남에 의해 바뀝니다. 그러므로 알아서 바꾸도록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위치입니다. 위치를 바꿔 봐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위치 이동만 이루어질 뿐입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축구경기에서 감독이 선수를 바꾸는 것은 자리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술을 달리 하겠다는 것입니다.

 

ENDAND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마무리만이 아닙니다. 연결해 줄 수 있는 and입니다. 어떤 것이든 아름다운 시작과 멋있는 결말은 과정인 And가 모여야 되기 때문입니다. And가 모아진 것 없이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End는 없습니다.

한해를 만드는 것은 And입니다. 하루를 만드는 것도 And입니다. 글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것도 And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결과를 원한다면 언제나 And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인생은 밑도 끝도 없는 End가 아니라 밑도 끝이 있는 And의 더하기이기 때문입니다.

 

음식과 미련

음식과 미련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미련이나 음식, 만기지 않는 것이 삶입니다. 음식과 미련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음식은 과감하게 쓰레기 통으로 갈 수 있지만 미련은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련을 버릴 수 없을지라도 살기 위해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음식과 미련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지금의 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당신을 결정하고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충실하면 꺼림칙한 것이 남지 않고 벅찬 감격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내가 소유한 것을 보자고 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다 바렸다고 말하면 됩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지금 안에서 살아가며 지금 안에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삶은 지금르 멋지게 살게 하는 미련 버리기이기 때문입니다.

 

재판과 개판

공정함이 앞서면 재판입니다. 공정함이 무너지면 개판입니다. 개판이 되면 심판받지 않을 사람만 심판받습니다. 하지만 재판이 되면 심판받아야 할 사람만 받습니다. 법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합니다. 재판장은 법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오해할 것도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이해해 줄 것도 오해하려고합니다.

 

자부심과 자존심

사람마다 자존심이 있고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 둘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자존심은 자신을 지켜준다면 자부심은 자신을 세워줍니다. 때론 자존심이 인생의 걸림돌이 될 때도 있지만, 자부심은 언제나 인생에 덧셈만 되어줍니다. 그래서 자존심은 내려놓고 사는 것이 현명합니다.

남자는 자존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존심 내려놓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남편들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각서를 쓰면 일종의 통과의례로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입니다.

만약 위대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자존심을 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려 놓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자부심입니다. 이는 자부심만 있으면 자존심을 구겨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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