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치통감은 중국사를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다. 송나라 때 사마광이 그간 내려오던 역사책을 갈무리하고 정리하여 편년체로 총편집한 책이다. 이전에는 사마천의 사기 기전체를 본 받아서 인물별로 정리돼있던 역사를 매년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연도 별로 정리한 책이라 중복이 적고 그 해에 중요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기 쉽다. 주나라부터 후주까지 1362년에 이르는 역사를 담고 있다. 긴 역사를 일관되게 정리한 책으로,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사반공배(事半功倍),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조망하는 데 가장 좋은 자료로 인식돼왔다.
방대한 분량의 자치통감을 처음으로 권중달 교수님이 번역하여 출간하셨다. 십 수년이 걸린 고된 작업에 가산을 털어 직접 출판을 내셨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분량이나 배경지식 부족 등으로 읽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치통감 행간읽기라는 시리즈를 내셨다. 주제별로 자치통감이 다루는 역사의 범위 내에서 거시적 통찰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떠먹여 주는 셈이다.
중국사에 관심이 있고 중국어나 한자에 대해서도 일자무식은 아니라고 스스로 여겨왔다. 하지만 사건이나 인물을 아는 것은 통찰은 얻는 재료에 불과할 뿐, 만약 큰 그림을 잊는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점점 그런 생각이 드는 중에 마찬가지로 권중달 교수님이 번역하신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책에서 중국이라는 거대하고 장구한 역사를 들여다 보면서 나무가 아니라 숲을 조망할 때 인간의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역자인 권중달 교수님도 본인의 저서에서 이러한 입장을 견지해나가시는 것 같았다.
따라서 인간을 들여다보기 위해 역사를 거시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었다. 그럼 어디에서 출발을 해야하나? 아직도 눈 앞의 글자가 뭘 의미하는지 반신반의하는 지적 옹알이가 어디서 시작할지 조차 모르고 헤매고 있었다. 마침 돌아보니 역자 권중달 교수님이 자치통감을 완역하고 지적 애기들을 위한 이유식을 쓰고 계시는 걸 발견했다. 옳다구나 싶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자 했다. 마침 주나라부터 시작하여 후주까지이니 앞에서부터 읽을 수 있어 뒤에 고사를 이해못하는 일도 없겠고 자치통감 자체가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보니 흐름을 파악하고 거시사 관점을 연습하는 데 좋을 듯 싶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자치통감 행간읽기 시리즈를 5권 읽었다. 저자가 친절히 어떻게 행간을 걸어야 하는지 손붙잡고 안내를 해주셔서 상당히 편했다. 처한 환경과 체제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소름이 돋았고, 따라서 체제를 움직이는 권력이 가진 힘을 다시 보게 됐으며, 실권을 가진 인물이 역사의 방향을 어떻게 돌리는가를 보며 감탄과 한숨을 번갈아 쉬었다.
이 책들은 이유식이다. 떠먹여주는 책들이다. 감사함을 느끼며 떠나보내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계속 이런 책들이 나와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