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덮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망각곡선을 철저히 따른다. 한참 지나면 아주 만족스럽게 읽은 책도 핵심만 겨우 붙잡고 있을 뿐. ‘만족했었다’라는 감정만 진하다. 나름대로 알라딘 북플bookple이나 아마존amazon goodreads에 몇 줄 감상을 남기지만, 나중에 보면 고개만 갸우뚱한다.
직장동료가 책을 읽더니 책 내용을 바탕으로 활동까지 만들어 공유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책의 통찰력을 온전히, 아니 오히려 몇 배로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 책이란 이렇게 골수까지 쪽쪽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독서력이 갖고 싶어졌다. 한 권 책을 읽어도 철저히 흡수해 최대한 많이 성장하고 싶어졌다. 독후감은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서평으로 한 발 더 나가고자 이 책을 읽게 됐다.
2 <<서평 글쓰기 특강>>은 “읽어도 남는 게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쓴 책이다. 저자들은 생각을 가장 잘 기억하는 방법으로써 서평을 추천한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 어떤 식으로든 기억하고 싶습니다.”
저자 김민영씨와 황선애씨는 숭례문학당,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등에서 서평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책은 큰 활자에 읽기 쉬운 문체로 경쾌하게 진행된다. 다양한 예시와 스토리텔링, 도표화를 통해 한눈에 읽기 쉽고 이해에 용이하다. 책을 읽는 데 1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다. 굉장히 알찬 책을 매우 부드럽게 소화한 느낌이다.
책은 생각 정리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1. 독서 습관을 바꾸는 서평, 2. 독후감에서 서평으로, 3. 비평부터 시작해볼까 (서평은 비평이다, 비평은 관점이다, 관점은 별점이다, 리뷰와 비평의 차이, 나를 지키는 비평의 습관), 4. 서평, 빠르고 쉽게 쓰는 법, 5. 글쓰기 달인의 비법, 퇴고 습관, 6. 서평을 바라보는 여섯 가지 시선 등 총 6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 아래에 작은 제목들로 다시 나뉜다.
재미있는 점은 서평 쓰는 법이나 글 잘 쓰는 스킬 얘기는 뒤로 빠진다는 것이다. 서평의 의미와 효과, 독후감과의 차이를 전면에 놓았다. 단순히 서평 양식과 규칙을 토해 놓지 않았다. 초보 독자가 한걸음씩 성장할 수 있게 서평쓰기를 소개해주었다.
3 독자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서평이 필수적인 이유는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에 있다. 독후감은 개인용이고, 서평은 타인용이다. 독후감의 주어는 열이면 열 ‘나’이고, 중요한 요소도 나에게 재미있던 것, 나에게 영감이 됐던 것 등 나에 관한 것이다. 이에 반해 서평은 철저히 타인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다. 따라서 서평의 주어는 책/작가/독자/인물로 다양하고,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구조를 파악하고, 내용을 요약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퇴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책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깊이 소화된다.
‘나’를 벗어나는 것이 공부이다.
4 서평은 곧 비평이다. 비평이란 나의 관점을 드러내는 일이다. 저자들은 “서평은 비평이고, 비평은 관점이고, 관점은 별점이다.”라는 재미있는 말로 표현한다. 독자는 서평으로 책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객관적으로 밝힌다. 본인의 관점을 남들 앞에 세우는 것, 따라서 서평은 바로 ‘나’를 세우는 것이다. 불특정 대중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것은 궁극적 행복을 가져다 준다.
저자는 여기에서 뷰티블로그의 사례를 들어 리뷰(소개글)와 비평의 차이점을 유쾌하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리뷰 뷰티 블로그는 “어머! 이거 썼더니 너~무 예!뻐! 존예!”가 내용의 전부이다. 영혼을 팔아 제품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에 비해 비평이 들어간 블로그는 “무슨무슨 화장품을 써봤다. 어디 회사의 어떤 제품이고, 가격과 주요 반응은 어떠하다. 써보았더니 발색은 이러하고, 지속력은 저러하며 가성비는 어떠하다. 어떤 제품과 비교할 때 어떠하다. 따라서 누구에게 추천할만하다.”가 주요 내용이 될 수 있다. 본인만의 비평이 된다. 영혼을 팔 수가 없다.
“비평가에게 타협은 없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책이 이념이라면, 이를 뚫고 “별로!”라고 외치며 자기로 서는 것이야말로 서평 쓰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5 마지막으로 서평이 독자에게 자극이 되는 이유는 서평 역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사이토 다카시의 <<1분 감각>>을 인용하며 출력을 전제로 입력을 해야 제대로 입력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평은 결국 소통이고, 소통을 전제로 한 독서는 훨씬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퇴고가 있고 마감이 있다는 점이다. 퇴고와 마감의 위력을 경험한 사람은 여기에서 소름이 돋을 것이다. 저자들은 초고를 알 낳기에, 퇴고를 알 품기에 비유한다. 마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문구를 남겼다.
“세상의 모든 마감은 그 존재만으로도 위대하다.”
6 성장을 갈구하는 독자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다. 쉽게 읽히면서도 내용이 알차고, 현장에서 독자들과 서평쓰기를 하고 있는 저자들의 내공이 느껴진다. 수준 높은 독서의 발화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