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성적으로 살기로 했다
서이랑 지음 / 푸른영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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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부러웠다. 의미 없이 던진 말에 며칠을 고민하기도 하고,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실수한 것 없는지 기준도 없는 검수를 하며 나 자신을 피곤하게 했다. 내적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지만 외부 활동을 하면서도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라 꼭 완벽하게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는 성격을 구분 짓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면 내성적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나는 내성적으로 살기로 했다>에서 저자의 고백을 읽으며 찾아보기로 했다.



물구나무를 서느라 온갖 신경과 에너지가 집중되어
내가 걷고 있는 풍경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다면,
나는 차라리 물구나무서기를 못하고 싶다.
p87



저자는 본인을 지독한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외향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불행하게 살았다고 한다. 시부모님께 싹싹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 동질감을 자아냈다. 나처럼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은 것에 예민해하는 저자라서인지 과거의 저자에게 힘내시라고 응원하고 싶었다.



누가 어떤 칭찬을 듣는지 보고 들으면서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칭찬이 문제다. 그놈의 칭찬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바라고 같은 것을 부러워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간다. 우리가 이토록 재미 없어진 이유가 그 마약 같은 칭찬 때문인 것이다. / p24



모든 '처음'에 설렘을 느끼기보다 두려움을 느끼는 탓에 무엇이든 지레 겁부터 먹고 망설이는 나를 덜 다그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들킬까 봐, 남들은 다 큰 어려움 없이 해나가는 듯한 일상조차 나에게는 신경이 곤두서고 힘겨운 과제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척하며 매일매일 무리하던 일들도 그만두었다. 내가 지독하게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뒤집기 위한 발버둥을 그만두고 어쩔 수 없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내성적으로 살기로 했다. /p.82



잘못된 건 '눈치를 보는 나'가 아니라고.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 건 내가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눈치 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눈치를 보면서도 눈치 보지 않은 척하다 보니 도대체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p212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척하며 무리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저자는 결국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하긴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서 살기란 여간 피곤할 일이 아니다. 그러다 무심코 드러난 진짜 나의 성격을 사람들이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니 나의 이런 성격마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소수라도 있다면 그걸로 인생은 괜찮은 게 아닐까 싶다.



행복이 무엇인지 따위는 알 필요가 없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어느 쪽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따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매일 크림 스파게티만 먹으면서 느끼하다고 불평하는 것만큼 웃긴 일은 없을 테니까./p169


책을 읽다가 남편에게 나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물어봤다. 대답은 "당신은 당신이라 장점이고, 당신은 당신이라 단점이야"였다. 듣고 나서는 한 대 때릴까? 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온전하게 나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착각일 수도 있다. ^^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내고 그 모습마저도 좋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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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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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팬덤이 형성된 작가지만 소설을 즐겨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최근 [분신]으로 그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 93년도에 발표한 [분신]은 클론이라는 그 시대에 생소한 주제였을 텐데 지금 읽어도 대단히 흥미 있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만 하려 했으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보이는 순간 본능적으로 [11문자 살인사건]에 손이 나갔고 결국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어제야 마침 한 권의 책을 완독해서 이 책을 집었는데 너무나 집중하며 읽어내려갔고 하루가 가기 전에 완독했다. 먼저 끝낸 책은 서평을 미루고 <11문자 살인사건>을 쓰게 될 줄이야 ㅋㅋ 정말 믿고 보는 게이고라는 말은 틀림없었다.


▶"나" _ 여성 추리소설가
▶가와즈 마사유키 _ "나'의 애인. 프리랜서 작가
▶하기오 후유코 _'나'의 담당 편집자이자 친구
▶니자토 미유키 _여성 카메라맨
▶야마모리 다쿠야 _ '야마모리 스포츠플라자'의 사장
▶야마모리 마사에 _ 다쿠야의 부인
▶야마모리 유리 _ 다쿠야의 시각장애가 있는 딸
▶무리야마 노리코 _ 다쿠야의 비서
▶하루무라 시즈코 _ '야마모리 스포츠플라자'의 직원
▶가네이 사부로 _ '야마모리 스포츠플라자'의 직원, 시즈코의 애인
▶후루사와 야스코 _ 직장인
▶다케모토 유키히로 _ 르포작가. 요트 여행 사고에서의 유일한 희생자
▶다케모토 마사히코 _ 직장인, 유카히로의 동생


도입부부터 주요인물 소개를 친절하게 작성된 소설을 최근에 처음 보는 것 같다. 인물 파악을 하기 위한 노력을 책을 째려보며 노트에 끄적일 필요가 없어서인지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어."
나의 애인 가와즈가 버번 잔 속의 얼음을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그의 살해 소식을 알렸다. 둔기로 뒷머리를 내리친 뒤 항구에 버려졌다고 한다. 주인공은 친구이자 편집장인 후유코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사실 가와즈는 후유코가 소개해준 남자였다. 이틀 뒤,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여동생과 같이 일했다던 어깨가 다 무진 여성 카메라맨 니자토 미유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틀 뒤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가와즈의 동생이 주인공에게 전화해 책과 자료들이 필요하면 보내드리겠다고 연락이 와서 택배로 받기로 했다. 마침 주인공도 그 집 열쇠를 돌려줘야 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가와즈의 스케줄표를 보게 되었고 죽은 당일 야모모리 사장을 만난 것을 알게 된다.


추리소설 작가인 주인공은 이번 사건은 보통으로 보이지 않았고 더구나 좋아하던 사람이라 진실을 파헤치고 싶었다. 물론 차후 소설의 소재로도 사용할 의향도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보트 사고로 살아남은 사람이 차례대로 제거되고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일한 사망자였던 다케모토의 관계자의 복수일까.
며칠 뒤 니자토는 가와즈처럼 후두부에 가격을 당한 시체로 그녀의 아파트에서 발견된다. 그날은 주인공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 뒤로도 요트의 생존자인 극단의 배우 사카가미 유타카도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된다. 역시 주인공과 만나기로 하루 전에 일어난 사고다. 범인은 항상 주인공보다 앞서간다.

범인은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것일까를 보며 쉼 없이 추적하며 읽어내려갔고 다 읽은 후에는 작가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생각했다. 가치를 선택하는 것.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일방적인 가치관이 그들이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게 했고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도 범인을 알아낸 그들이 했던 행위도 추악했다. 누군가의 가치를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나와 신념이 다르다고 하여 그 사람은 죽어마땅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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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가 뭐라고 - 여러분, 떡볶이는 사랑이고 평화이고 행복입니다
김민정 지음 / 뜻밖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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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란 과연 무엇인가?
떡볶이는 추억이다. 떡볶이는 과거다. 오늘의 즐거움이다.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다. 소울푸드다. 사랑이다.
괜한 그리움이기로 하고 구체적인 절절함이기도 하다. p6


격하게 공감한다. 음식에는 냄새와 맛, 온도와 촉감만 있는 게 아니다. 음식과 함께한 시간, 공기, 감정 모든 것이 포함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는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한국인이라면 단연 소울푸드다. 

떡볶이의 가격 변천사는 잘 모르지만 남편이 어렸을 적에 100원 떡볶이가 있었다고 한다. 떡볶이 4개에 100원, 아이가 간식을 먹기에 충분한 가격에 양이었을 것 같다. 지금은 1인분에 보통 3000원~3500원이다. 매운 음식은 잘 먹지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게 된다.

일본어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김민정의 <떡볶이가 뭐라고>은 제목부터 침샘이 자극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침샘은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그 자리서 다 읽고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떡볶이가 필요한 날이 있다.
떡볶이를 먹고 또 하루를 버팅 용기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도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이고,
떡볶이는 어느 계절에든 동기 부여에 가장 적절한 음식이다. p19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상실감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느냐가 그 후를 좌우한다.
상실한 채로 두느냐 무언가로 채우느냐는
오로지 개개인이 선택할 몫이다.
다만 내일을 살기 위해, 상실감의 만 분의 일만큼이라도
무언가로 채우두는 편이 조금 나을 수 있다.
떡볶이와 음악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도
끌어안고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누군가가 다가와
짐을 나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p.93


도쿄에 살고 있는 저자의 떡볶이와 함께한 추억과 떡볶이 예찬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은 멥쌀이 아닌 찹쌀로 떡을 만들어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찹쌀로 고춧가루로 볶은 떡볶이의 부족한 맛을 채우기 위해 다시다의 힘을 필요로 했고, 어느 날은 많이 짜게 만들어지는 날도 있었단다. 이런 과정을 인생으로 연결하여 떡볶이 철학의 글도 볼 수 있었다. 옛날 떡볶이집은 디제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추천받아 틀어주기도 했다는데 저자는 나보다 조금 연배가 높은 것 같다. ^^ 뉴트로가 대세인 요즘 디제잉 부스가 있는 분식집 사업을 한다면 어쩌면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추억을 살 수 있다는 것. 너무나 감동이다~ ㅋㅋ


어떤 음식은 실제로 누군가를 위로한다.
입과 위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영혼을 위로한다.
영양가보다 끈질긴 중독성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떡볶이는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들 중 최고봉에 속한다. p.154


저자는 기름떡볶이에 맥주가 생각났다고 한다. 나는 졸여 만든 떡볶이가 맥주가 좋다. 떡볶이 친구인 튀김이 더해지면 최고의 안주이다. 업무에 시달린 날 유독 사람에게 시달린 날은 떡볶이가 생각이 났다. 맥주 한 잔에 달큰한 떡볶이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브런치나 점심에 먹으면 궁합이 좋은 커피와 떡볶이. 이 아이들에게서 얻은 든든함은 하루를 살게 할 수 있으니 떡볶이는 결코 가벼운 음식이라고 볼 수 없다. 오랜만에 맛있고 기분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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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
강신용 지음 / 내몸사랑연구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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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매년 관심 키워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작년에 예기치 않은 고지혈증을 진단받으면서 더욱 관심을 갖고 건강 프로그램 시청 및 인터넷 검색, 관련 서적들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더욱 충격받은 건 작년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건강이 좋아졌을 거란 생각에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랄까. 그럼 내 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버지가 위장이 약한 게 유전이 되었을 것 같고, 10년을 넘도록 주말을 제외한 평일은 거의 한 끼, 그것도 저녁에 폭식하던 나의 나쁜 생활 습관도 분명 영향이 있을 거라 본다. 


이 책은 오랜 임상과 해외 논문 자료를 통해서 '장누수'의 심각성과 전신질환과의 관계성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심도 있게 풀어 냈다. _책날개에서 발췌 


<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 속에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내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장누수가 불면증, 만성 알레르기, 이명 등도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또 비만도 장누수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장누수로 발생되는 질환이 나와 연결되는 것 같아 집중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장의 감정은 곧 뇌의 감정이다" p.173 


장누수가 생겼다는 것은 곧 장에 염증이 생겼다는 뜻과 같다고 한다. 다양한 원인으로 장누수가 발생되면 뇌의 경계인 혈뇌장벽이 손상되어 뇌에도 염증이 일어나게 되는데 염증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뇌질환이 발생될 수 있다고 한다. 그 두번째 단계가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가 포함이 된다. 장염이 정신질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내 몸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경우를 책에서 보니 더욱 건강관리를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잘 먹고, 잘 배출하고, 잘 자는 것. 참 쉬운 것 같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세 가지 모두 잘하기란 어렵다. 오전 근무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점심시간 1시간을 식사와 휴식으로 바쁘게 활용해야 한다. 혹은 점심시간마저도 업무 연장으로 쪼개 써야 할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마음 편하게 영양 좋고 착한 음식을 섭취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잘 먹지 못하니 결국은 배출에도 문제가 된다. 소화가 잘되지 않은 음식물은 장으로 넘어와 가스와 복통을 일으키고, 독소들이 장벽을 자극하여 장누수로 발전이 된다는 것이다. 장누수로 빠져나간 독소들은 여기저기 세포를 공격하게 되고 각종 질환으로 이어진다. 


<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 에서는 장누수 무엇이며, 장누수로 인한 각종 질환, 치료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과 병원에서의 치료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유산균이 건강함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을 70%를 장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장에 문제가 된다는 것은 감염과 질환에 쉽게 노출되는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과 시간을 함께 하면서 설탕을 스테비아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도 몇 가지 영양제가 있지만 장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를 추가로 주문했다. 또한 역류성 식도염으로 위산분비 억제제를 장기 복용 시 소화불량이라는 질환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즉 각종 약들도 우리의 장들을 괴롭힌다는 것도 책에서 알게 되었다. 증상 완화가 아닌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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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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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봉꾼 집안.
구역질 나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나는 하루가 멀다고 계집질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 없이 내 앞에서 여자를 안았다. 내 눈에는 두 사람이 나와 핏줄로 연결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추악하고 무서운 짐승으로 보였다. 이윽고 내 안에 시원하리만치 압도적이고 고요한 절망감이 싹텄다. /p.219


마사유키는 료헤이가 기어 다닐 때부터 돌봐주는 아이로 지금은 중학생이다. 마사유키는 2002년도 겨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료헤이의 부모는 하늘나라로 갔고 그 뒤로 할아버지도 돌아가셔서 할머니인 시마모토 후미에가 유일한 보호자인 아이다. 그 사

고의 속죄를 마사유키가 13년째 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해자인 줄 알았으나 가해자는 아니었다. 마사유키는 짜증 나게 미련했다.


"당신과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지. 아까 말했다시피 당신은 성실해. 참을성이 많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지. 부조리한 상황을 몇 년씩이나 버텨왔어."
"당신을 칭찬하는 게 아니니 착각하진 말게. 짜증이 치민다고 말했잖은가.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지. 당신은 어리석어 보여. 아니, 실제로 어리석지. 13년 전 당신이 뭔가 잘못했나? 아무 잘못도 안 했어.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고." / p.142


삼대 정원사이면서, 난봉꾼 집안에서 마사유키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어린 시절을 무관심과 냉대로 자랐다. 아무도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사유키가 철이 들었을 무렵 소가조원에는 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여자들이 있었고, 쉬는 날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둘 다 여자와 놀고 마사유키는 혼자였다. 한 번도 유원지와 동물원에 데려가 준 적이 없다. 결핍이 결핍인지도 마사유키는 몰랐다. 이런 환경은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먹지를 못하게 되었다. 물이나 커피 우롱차 외에는 그 무엇도 누군가 앞에서 목구멍에서 넘기질 못한다. 그러다 시공주의 쌍둥이들과 처음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두 살 위인 남매로, 첫째 이쿠야와 인생의 최초의 친구로 마이코는 첫사랑이 되었다.


마이코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다. 나는 수많은 가시를 느꼈다. 온몸 구석구석 가시가 박혔다. 두꺼운 가시, 가는 가시, 독 가시, 얕고도 깊게 나를 찔러댔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모를 만큼 상처 입었는데. 본인한테 자각이 아예 없어서야."/ p.250


"자네가 여태껏 최악이었다 해도 그건 자네 탓이 아닐세. 아무것도 모르는 자네한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제부터는 아닐세. 자네는 이미 알고 있어. 그러니 만약 앞으로 자네가 최악이라면 그건 전부 자네 탓이네. 누구의 탓도 아니지."


"삼대 청년. 그걸 처음에 가르쳐준 사람에게 감사하게나. 말하기 어려운 걸 말해줬으니 말이야. 보통은 최악인 사람에게 당신은 최악입니다. 하고 굳이 말해주지 않거든. 조용히 인연을 끊을 뿐이지. 그걸 말해준 까닭은 진심으로 자네를 걱정하기 때문이야. 그것만은 알아두길 바라네."/p.256


이쿠야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서른두 살 먹도록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 빙빙 돌기만 하고 있다. 아무 데도 못 간다.
바보처럼, 개처럼 13년을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내가 해온 모든 일이 헛수고였을까? /p. 404


시공주이면서 쌍둥이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한 난봉꾼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은 죽음으로 치닫게 되었고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료헤이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마사유키는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3년째 후미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고 료헤이를 돌봐준다. 미련스럽게도.. 가슴이 아프다.
2013년 7월 7일은 그에게 중요한 날이다. 어쩌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수도 있는 정말 중요한 날이다. 어쩌면 이 날을 위해 13년을 견뎌왔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가 따뜻한 밥을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


- 료헤이와 마사유키
료헤이 또한 마사유키가 할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바닥이 수그리는 것을 어릴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지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의문을 품게 되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삼촌이었던 마사유키에게 배신과 연민을 모두 갖게 되었다. 마사유키가 단지 속죄만으로 료헤이를 돌봤다고는 볼 수 없었다. 자신이 못 가졌던 관심과 하고 싶었던 것들을 료헤이에게 모두 해줬다. 그러면서 자신도 즐거워했고 무엇보다 료헤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마사유키의 결핍을 채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료헤이와 첫사랑인 마이코였다. 사람이 준 상처는 사람이 낫게 해준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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