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금 아빠 꿈을 꾸다가 깼다. 어제 잠을 잘못 잔 탓에 어깨에 담이라도 결렸는지, 등까지 너무 아파 아침부터 불을 때고 누워 있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 아침에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이 오늘 배달된다는 문자를 받아서일까. 꿈에 아빠가 어딜 다녀오시면서 내 짐을 잔뜩 챙겨오신 거다. 전부 책이며, 책 사면 주는 사은품이었다. 그러다 아빠가 작년에 돌아가셨지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꿈속에서 아빠를 부르며 울다가 깼다.  

솔직히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눈물이 났지만 슬프지 않았다. 슬프다, 안 슬프다. 이런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돌아가실 것 같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남편과 함께 짐을 꾸리고 있는데,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그렇게 허겁지겁 고향으로 내려가 장례를 치르고 올라와 또 한 동안 몸살로 앓아 누워야 했다. 그리고부터 지금까지 너무 바빴다. 문득문득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와 마지막 통화도 생각났다. 마치 가슴 한켠에 자그마한 조약돌이 생겨나 아주아주 조금씩 자라는 것 같다. 그래서 커다랗게 자라고자라서 어느 순간 심장을 콱 눌러버리는 것 같다. 지금도 슬프지 않다. 그냥 멍하고 먹먹하고 그렇다. 꿈에서 아빠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빠가 가져다주신 책을 살피느라 아빠를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또 불효를 저질렀구나 싶어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2. 아빠를 부르다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는데, 택배아저씨가 왔다. 알라딘에서 책이 온 줄 알았는데, 아니다. 아는 분이 보내주신 홍차였다. 홍차 상자가 너무 예뻐서 뜯지도 않고 그냥 두었다. 나는 주로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국민커피라는 믹쑤로다가. 커피맛이 아니라 설탕맛으로 먹는 그 믹쑤. 요즘은 입맛이 조금 변해서 원두도 많이 마시지만, 대세는 믹쑤. 대학원시절 러시아에서 반년을 지냈다. 남들 학부때 가는 연수를 나는 그때 간 거다. 추위를 워낙 싫어하는 터라 나는 당연히 추위가 그래도 심하지 않을 거라 생각된 봄부터 여름까지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해 이상기온으로 눈이 허리까지밖에 차지 않았으니까...음하하하하  그래도 눈보라가 불지는 않았다. 모스크바라면 일년 내내 눈이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여름이 있다고 하면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그 춥다는 시베리아 툰드라에도 봄여름이면 꽃이 피는데, 모스크바는 어떻겠는가? 그곳 여름은 몹시 덥다. 38도까지 올라간다. 더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처럼 습하지 않아 견딜만하다. 사하라사막도 습하지 않아 견딜만 하다지 않는가. 게다가 오래된 외국 건물들은 벽이 두껍고 천장이 높아 밖은 찌는 듯이 더워도 일단 들어가면 서늘한 것이 참 기분 좋다.  

이야기가 또 딴 곳으로 새고 있네... 아무튼 난 모스크바에 갈 때도 믹쑤를 잔뜩 사들고 갔다. 러시아사람들도 커피를 아주 좋아한다. 우리나라 믹쑤도 참 좋아한다. 하지만 러시아하면 '차이', 홍차의 나라다. 틈만 나면 홍차를 끓여서 설탕 좋아하는 나조차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달콤한 주전부리와 함께 마신다. 나도 러시아사람들이 타주는 홍차를 많이 얻어 마셨는데, 정말 맛이 일품이다. 희한하게도 한국에서도 살 수 있는 (여기서는 세금탓인지 백화점에서 대따 비싸게 팔더라만 거기서는 무지 싼 홍차들이다.) 티백인데도, 심지어 맛없는 홍차의 대명사 립튼(아닌가?)으로 끓여도 이상하게 맛이 있다. 그 맛에 반해서 나도 레몬도 사고 각설탕도 사고 큰 맘 먹고 비싼 홍차도 백화점에서 사서 타 봤지만, 이상하게 내가 끓이면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와서는 내가 직접 산 홍차 티백이나 잎차를 끝까지 다 먹어 본 적이 없다. 뭘까? 물이 달라서일까? 나는 평생동안 믹쑤를 타먹지만 아직도 물을 잘 못 맞추는데...  

인터넷에 보면 비싼 홍차, 좋은 홍차도 많더라. 티팟만 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많고. 하지만 한눈에 '너는 싸구려'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주전자에, 홍차를 얼마나 마셨는지 붉게 물이 들고 금도 살짝 간 잔에, 차를 우릴 때 주전자에 씌우는 그 모자 같은 거 없이 그냥 행주로 덮어두기만 해도 얼마나 많있게 홍차가 우려나오는지. 역시 중요한 건 연장이 아니라 솜씨와 마음씨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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