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자오선이 워낙 강했기에 이책도 그렇겠거니어느정도는 감수하고 읽었건만 웬걸같은 작가의 다른책이 맞나 싶을정도로 다른분위기다국경을 넘어도 강하긴 하지만 핏빛자오선의 야생의 그대로까지는 아니고 순서를 적자면 핏빛자오선 - 국경을 넘어 -모두다예쁜말들 - 평원의 도시들 순으로 점점 순해지는듯..평원의 도시애 나오는 존이 여기서 나온다.친구 롤린스와 맥시코로 가던중에 어린 블레빈스와 동행하면서 사건에 휘말리고 그러면서 감옥에 갇혀 원치않는 살인까지 저지르고 마는 올곧은 소년이...코멕 매카시의 책은 동물애호가인 내가 읽기엔 아프지만서도 읽을순 있는 책이다. 오히려 나는 도리스레싱의 고양이에대하여는 읽지못한다읽다 너무 힘들어 덮었더랬으니...
쿼런틴을 읽고나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작가의 또다른 글이 읽고 싶었다.워프시리즈라고 묶여있으니 그대로 모두다 선택하기로..역시 쿼런틴과 이책이 제일 기발하고 sf 다워서 실망없어 좋았다.행복한 이유가 살기위해 사라진 소년과 남편을 살리기위해 새로운 육신이 생성되기까지 뇌를 자궁에 넣는다는 설정에 연신 감탄하며 읽었다.짧은 단편들이 담긴 이책이 더 강하게 남는다.쿼런틴은 양자역학을 토대로 쓰였기에 내가 아직 100퍼 이해 못해서일수도 ...ㅋ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간다
우리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지 못하고 언제나 그 너머를 향해 있다
플라톤은 이 고귀한 가르침을 이렇게 인용하곤 했다. "네 일을 하고 너를 알라."
미련한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고도 기뻐할 줄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절대 자신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지 못하고언제나 그 너머를 향해 있다.
"갈망하는 대상이 멀리 있을 때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대상을 열망한다. 그러나 그것을 얻고 나면 다른 것을 바라며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
잊고자 하는 열망은 기억을 선명하게 한다
"슬픔을 완화시키기 위해 불쾌한 생각에서 시선을 돌려 즐거움을 떠올려라."
"과거의 행복한 기억만 남겨두고 우리가 견뎌야 했던 모든 근심은 잊어라."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도 기억한다. 잊고자 하는 것은 잊을 수 없다."
불행도 인간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일부 즐거움에서 느낄 수 있는, 단순한 건강과 무통無痛 이상의 것을 주는 듯한 흥분과 욕구는 곧 적극적 쾌락이다.
"고통에 무감각해지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정신의 둔화와 육체의 마비다."
마음에 담아두고 새기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는기억에게 그것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쨌든 내 생각에 나는 존경심보다는 동정심에 더 쉬이 손들 것 같다.
연민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보기에 사악한 정념이다.
인간이란 놀라우리만치 헛되고 가지가지이며 물결치듯 변화하는 존재이다.
저들은 슬픔으로 지혜, 미덕, 양심을 치장한다. 어리석고도 기괴한 장식이다.
얼마나 뜨거운지 말할 수 있는 자는그다지 뜨겁지 않은 불 속에 있는 것페트라르카
음미하고 소화할 수 있는 정열은 모두 시시한 것들뿐.
작은 슬픔들은 말하고, 큰 슬픔은 침묵한다.세네카
"미래를 근심하는 영혼은 불행으로 짓눌린다."(세네카)
자기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이 자기가 누구이고,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자신과 무관한 일을 자기 일로 삼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가꾼다.
"어리석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도 만족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지혜는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며 결코 자신을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는다."(키케로)
모든 것을 휘저어 보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도 죽기 전에는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고 한 솔론의 말을 따져 보며, 순탄하게 살다 죽었는데 나중에 그 명성이 훼손되고 후손이 비참하다면 그 경우에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존재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여기 이 세상의 것과는 아무런 소통도 할 수 없다.
죽은 뒤 네가 어디 있을지 알고 싶은가?장차 태어날 영혼들이 사는 그곳이다.세네카
만사의 주인인 운명이 누구에게 제국을 맡기려는지, 그대인지, 나인지, 용기로써 가려 보자.엔니우스, 키케로의 인용
"덕스럽고 지혜로운 자라면 진정한 승리는 정직성도 명예로움도 저버리지 않고 거두는 승리뿐임을 알아야 한다."(플로루스)
나는 다른 사람의 약속을 쉽게 믿는다. 그러나 내가 기꺼이 그 사람의 진실함을 믿어서가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 용기가 없어서였다고 혹 남들이 생각할 여지가 있을 때는 마음이 쉬 내키지 않을 것이다.
행운으로 얻었건 꾀로 얻었건,승리란 언제나 가상한 것아리오스트
내 얼굴과 눈은 내 상태를 단번에 드러낸다. 모든 변화가 거기에서 시작되며 실제보다 조금 더 강하게 표현된다.
죽음에 대한 앎은삶을 이해하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 성격이 까다롭고 세상사에 불평하는 것을 두고우리는 ‘지혜’라 부른다.
삶의 끝이자 극단에 죽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죽음은 한순간의 일이지만 상당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방식대로 죽기 위해 기꺼이 내 인생의 여러 날을 할애할 수 있다.
내 몸이 내 영혼만큼 뜻대로 되었다면 나는 조금 더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생각이 우리 감각에 더 영향을 준다."
늙지 않는 것은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에 나는 정신의 노화를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라고, 할 수 있다면 고목에서 피어나는 겨우살이처럼 초록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라고 조언한다.
죽는 방법을 상상해보면, 활활 타는 화덕에 뛰어드는 것과 잔잔한 강물에 뛰어드는 것 사이에는 죽음과 삶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이렇듯 우리는 어리석게도 결과보다 과정을 더 두려워한다.
나는 내가 실제로 겪는수천 개의 격정과 정신의 동요가 더 두렵다.
만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침대보다는 말 위에서, 집 밖에서, 내 사람들과 먼 곳에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돌아오기 위함도 아니요, 끝까지 가기 위함도 아니다. 단지 움직이고 걷는 것이 좋아 움직이고 걸을 뿐이다
"지나간 삶을 향유하는 것은 두 번 사는 것과 같다.
하나가 우리를 괴롭히면 다른 하나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젊을 때는 즐거움을 좇아도 된다고 하면서 노년에 이를 금하는 것은 부당하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동요하고 삶을 생각하면 죽음이 동요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죽음의 시간과 죽음으로 가는 길을 알고자 헛되이 힘쓴다. 급작스럽고 확실한 불행보다 불행을 기다리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정신은 육체에 아주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만 나를 버리고 끊임없이 육체의 고난을 뒤쫓기에 혹시 배신자는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삶의 안락과 즐거움에 죽음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죽음은 크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란다.
철학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자부한다. "죽음을 연구하는 데 삶 전체를 바쳤다."라고.
나는 빨리 늙기보다는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기쁨의 순간까지도 움켜쥔다.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고 그 일생의 마지막을 변형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육체가 시들어가면 정신도 어떠한 일에도 일어서지 못하고 함께 시들어간다."
유년에는 앞을 바라보고 노년에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야누스의 두 얼굴이 아닌가? 세월은 원하는 대로 나를 이끌고 가지만 나는 뒷걸음질 쳐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