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탐험가는 가능한 한 자기 자신과 유사한 존재가 되도록 로라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겠지.
왜 영원히 관측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영원히 확산하고 있지 않은 거야?"
"그렇다면… 확산한 나는 지금 네가 해준 얘기를 내가 기억하는 것을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들의 기억을 잃은 것일까?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 시간들의 기억을.
무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를테면 확산한 인류가, 그렇게까지 공을 들여 자기 자신을 출현시킴으로써 마침내 〈버블〉 너머의 무한한 공간에 손을 뻗치는 데까지 갔으면서도, 움찔하며 뒤로물러선 이유를 내가 아는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야. 그 버전은 결코현실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포콰이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고, 내게도 없어
확산한 인류는 그렇게 먼 과거에까지 손을 뻗쳤던 것일까? 그때도 이미 나의 고유 상태들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일까?
엘리베이터는 내 마음을 알고 있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노인은 흐느끼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그의 고뇌를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또 그것이 그에게 위안이 되어주리라는 확신도 없다.
‘진정한 〈앙상블〉’이란 신경 배선에 의한 정신착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의 마음 일부가 더 이상 모순을 견디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확산한 어떤 광인이 만들어 낸 세계 종말의 환상일까? 인간이 지금까지 꿈꿔온 모든 종류의 광기 어린 종말론들이, 최후의 시간을 앞두고 한꺼번에 해방된 것일까?
모든 것은 결국 평범한 일상으로 귀속되는 법이다.
혼자라면 충격에 넋을 잃은, 결백하고 무지한 생존자인 척 하는 일이 훨씬 더 쉽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상실되지는 않습니다. 우주의 다양성을 회복하는 행위를 어떻게상실로 볼 수 있겠습니까?"
〈버블 메이커〉들은 우리 인류의 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개연성이 낮은 덕에 수축을 회피할 수 있었던 버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과 다시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들 자신에게 부여하는 일입니다."
눈을 들어 천공을 올려다보자, 하늘 전체가 새하얗게 불타올랐다.
결국 집합체는 스스로를 출현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던 거고, 당신은 그 일부였을 뿐이에요.
그리고 내가 강화 상태에 돌입했을 때, 오직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한 사람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다른 나의 버전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죽어갔던 것일까?
습관이 혐오감을 극복했다. 나는캐런을 불러내려고 해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숙명론적 체념과 터무니없는 희망 사이에서, 세계의 기기괴괴한 본질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싶다는 무모한 욕망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리가 없다는 완강한 불신감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단말기 화면이 깜박거리다가 꺼졌다. 손으로 한 대 치니 다시 살아났지만, 텍스트가 흔들리더니 개개의 글자들로 분해되었고,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화물이나 우주 먼지처럼 천천히 떨어져 나오더니, 급기야는 화면 표면에서 빠져나와 방 안을 떠다니기 시작한다. 손을 뻗어 받아보니 글자들은 내 손바닥 위에서 눈처럼 녹는다.
그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런 행복의 종말을죽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부를 생각입니까?"
광고 홀로그램들이 분해하고, 융해하고, 변이하고 있다. 어떤 것들은 모양이 흐트러지며 선명한 빛의 띠로 변했고, 천천히 밤공기 속으로 흘러나간다.
이토록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어떻게 살아남은 것을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잘못한 것은 〈앙상블〉, 그리고 로라가 아닌가? 초연한 방문자이자,수동적인 관찰자인 로라. 로라 본인이야말로, 수동적인 관찰자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도대체 저 여자의 어떤 버전이 저런 자살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그러나 이 ‘조각상’은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주저 없이 어딘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 뒤를 따르려고 했지만, 그녀는 곧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일단 이 행성 전체가 확산하면, 모든 사람들이 서로와 상호연결될 겁니다. 확산한 전 인류는 재수축할지 재수축하지 않을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 가능성이 더 높을까? 이것은 이런 기적을 실제로 포함하는 고유 상태일까, 아니면 목격자들 전원이 단지 환각을 경험하고 있을 뿐인 고유 상태일까?
캐런이 살아 있는 세상. 모드가 만들어 낸 환상은 필요 없게 되고, 유아론적인 연극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공유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모든 고민도, 실패도… 적어도 그것들은 진짜 현실이다.
내가 실패했을 때, 성공한 버전이. 그 이상 뭘 바란단 말인가?내가 살아남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의 실패가 개변 불가능한 현실이 되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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