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몽테뉴의 수상록 메이트북스 클래식 1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정영훈 엮음, 안해린 옮김 / 메이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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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겁먹지 않는다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꺼이 기다린다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산다

늙음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알 수 없다
정신의 노화를 피할 수 있는 한 피한다
내 삶의 안락과 즐거움에 죽음이 자리 잡기를
빨리 늙기보다는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죽음이 결론일지언정 삶의 목표는 아니다

불행도 인간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현재를 외면하고 미지의 미래를 좇지 않는다
잊고자 하는 열망은 기억을 선명하게 한다
불행도 인간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내 운명이 위대해지기를 바란 적은 없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진짜 나답게 되는 법을 안다
모든 애정을 내 영혼과 나 자신에게 쏟는다
나라는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안다
남아 있는 인생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산다

나는 내가 내 안에만 있다고 여긴다
상대방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을 믿는다
나의 견해 외에는 무엇도 신뢰한 적이 없다

나 자신을 늘 경계하고 성찰한다
나를 지켜보는 내 두 눈을 가장 경계한다
수시로 의심하고 나 자신을 경계한다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항상 되묻는다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내게도 들이댄다
나의 양심은 나를 더욱 강하게 통제한다
내가 바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더 잘 알아야 한다
남의 의견과 학식을 무심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철인들의 가르침이 아닌 정신을 흡수해야 한다

내 삶의 여정에서 찾은 최고의 필수품은 책이다
논쟁에서는 솔직한 의도를 견지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1580년 3월 1일 몽테뉴

"죽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삶을 마쳤습니다." 혹은 "생을 살았으나 이제 지나갔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서로를 위로했다.

1533년 2월 마지막 날 태어난 나는 현재 39살이 된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나 먼 죽음의 일을 생각하느라 현재를 방해받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결국 젊은이나 늙은이 모두 같은 조건에서 삶을 마치게 되니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뭇사람들의 귀감이 되기에 이성과 신앙심이 충분했지만 33살에 생을 마감했다.

위대하다 칭송받는 알렉산드로스 역시 같은 나이에 죽었다

"인간이 제아무리 신중을 기한다고 한들 매 시각 그들을 위협하는 위험에 충분히 대비할 수는 없다."

"마침내 진실한 말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가면이 벗겨지고 사람이 남는다.

다른 이의 삶을 평가할 때 나는 그가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본다. 내 삶의 평가 기준 또한 내가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는지가 될 것이다.

"매일이 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그 시간이 더 바랄 것 없이 유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죽음이 뭔지를 알면 모든 굴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을 박탈당하는 것이 해악이 아님을 깨닫고 나면 삶에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태어난 첫날부터 그대는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사는 것이다.

"다른 날 할 수 있는 일은 오늘도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사람은 모두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 한다.

오래 살건 잠시 살건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우리가 태어날 때 다른 모든 것들이 생겨나듯이, 우리가 죽을 때 다른 모든 것들도 소멸된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낳는다.

우리네 길고 짧음도 영원이나 자연, 어떤 동물들의 시간에 대보면 가소롭긴 마찬가지다.

무無보다 더 적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염려다. 그대가 죽었든 살았든,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살았다면 그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죽었다면 그대가 부재하기 때문에.

자기의 시간을 다하지 않고 죽는 이는 없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의 시간도, 당신이 남기고 간 후의 시간도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

"앞서 흘러간 영겁의 시간이 너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보아라."

언제 생을 마감하든, 그게 당신 몫의 전부다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삶에 전념하라.

"죽음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를 따라갈 것이다."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디카이아르코스Dikaiarchos가 그런 책을 쓰기는 했으나 목적도 달랐고 그리 유용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삶에서 멀어지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삶과 죽음의 교환을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카이사르Caesar는 어떤 것을 가까이에서 볼 때보다 멀리서 볼 때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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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 워프 시리즈 2
알렉산더 케이 지음, 박중서 옮김 / 허블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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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땅에 살았던,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은 이전에도 분명 일어났던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단지 공상인지, 아니면 예언인지는 오로지 우리가 앞으로 하기에 달렸을 것이다.

키가 크고 언뜻 허약해 보이는 이 노인은 다름 아닌 브라이악 로아, 즉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여기서는 ‘시각화’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필수란다." 스

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말을 걸고자 한다면, 네가 나를 매우 열심히 생각해서 내 모습이 눈에 선해져야만 되는 거야."

이 두려움은 계속해서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땅에 가해지는 긴장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 내가 어젯밤에 본 것으로 미루어 보자면, 이제는 임계점에 도달한 것 같더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경우에는 도와야 하는 법이야.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크나큰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니."

코난은 그런 어리석고 잔인한 인간들을 스승님이 도우려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결국 헛수고만 한 셈이 아닌가.

폭력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성 앞에서 비이성이, 또는 진실 앞에서 권력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반응 아니겠니?"

스승님은 다름 아닌 브라이악 로아, 즉 신체제에서 소유하고 싶어 하는 재산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인적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새벽이 물러가고 회색빛의 아침이 찾아왔다. 이제 바다 쪽에서 들어오는 밀물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지않아 절벽 아래쪽의 좁은 바닷가도 물에 덮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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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로드 마크
로저 젤라즈니 지음, 박은진 옮김 / 달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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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우울증을 앓다가 그 뒤엔 의족에 대한 과도한 거부반응. 그다음엔 편집증. 끝내는 조증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레드는 블랙 데케이드의 목표물이 돼 있어요. 내가 레드의 암살자들을 그런 식으로 미리 보는 거죠."

"막대한 부를 누리는 사람이요. 이번 일로 여기저기에서 돈을 엄청 걸 거예요. 배당률이 얼마나 될까? 어느 한쪽이든 돈을 걸어볼 만하겠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개방적인 거죠. 난 누구 때문이든 내 태도를 결정하는 데 꼬박 사흘이나 걸리는 여자가 아니에요. 난 줄곧 레드 편이에요. 웨이터! 담배 한 갑 갖다줘요. 좋은 걸로."

"게임위원회는 25C의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에요. 늙어빠진 사디스트들이 모여 살아생전에 게임을 합법화해 둔 거죠. 로드에서 늘상 일어나는 피의 복수를 지켜보기 위해서요

마음의 평안과 냉소가 뒤섞인 기쁨, 그리고 딱히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이 생겨나. 낮과 밤이 별다른 구분 없이 흘러가는 것 같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쁨이 느껴지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여기서 이해하기는 힘들어.

"그러면 우리는 추상적인 개념 위를 달리고 있는 거예요? 아니면 꿈 위를?"

"모두 요약된 정신은
우리가 그것을 천천히 불어
몇 개의 연기 고리로 만들지만 그것이
또 다른 고리 속으로 사라져 갈 때

한 대의 여송연인지 무엇인지를 증명한다
그것은 박식한 듯이 타고 있다
재가 그 빛나는 입맞춤의 불에서
조금이라도 분리된다면

나 같은 피로 태어난 사람들은 로드로 나와야 점점 젊어지면서 비로소 성숙해져. 나이를 먹으면서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그 반대지. 우린 보통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괴팍하고 뒤틀린 늙은이로 태어나기 때문에 성숙한 자신의 젊음을 이런 식으로 발견하는 거야

다른 존재가 재개하기 전에 지금의 존재가, 음, 끝나야겠지."

죽음에 대한 동경을 정당화하는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것 중 가장 기괴하네요. 내 데카당트 프로그램은 완벽하거든요. 덧붙이고 싶은 말 없어요? 어떤 방법으로 할지 정했나요?"

내가 근거로 삼을 거라곤 이제껏 서로 운송업자로서, 그리고 가끔 시간 참견쟁이로서 이상한 관계를 맺어오면서 당신에 관해 모아온 지식이 다예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당신이 안다고 믿고 싶어요. 아울러 당신이 실수를 저지르는 건 아닌지 두려운 내 마음도 알아주길 바라요."

거리와 방향을 확실히 알았다면 지하 무빙워크에서 이 지점까지 어렵지 않게 도착했을 것이라고 후작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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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핏빛 자오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8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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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널브러져 누런 뼈와 누더기 털만 남긴 수천 마리 양들 사이로 걸어간 두 사람은 뼈다귀가 곁에 있든 말든 태연히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그래요, 우화가 아니랬잖아요. 명백한 사실이고, 판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요.

중국 땅에서 온 배가 작은 항구에 사슬로 묶여 있고, 고양이처럼 말하는 자그마한 누런빛의 사람들이 칼로 화물을 열어젖혀 차와 비단과 향신료를 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 경계선 속에 갇힌 두 사람은 늘 원의 중심점에 자리했다

이 위조자는 조각칼과 끌로 판사의 환심을 구하며 차가운 화산암재 짐승에게 그럴싸하게 먹힐 얼굴을 새겨 넣었다.

공기에서 비 내음이 풍겼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수레는 시커먼 배처럼 어둠을 가르며 삐걱대고, 씻씻대는 소의 내음이 물씬 풍겼다.

태양의 집에서 스스로 끔찍하게 부화하여 동쪽 가장자리에 우르르 모이는 것들을 그들은 매일 보았다.

마시게. 쭉 들이켜. 오늘밤 그대의 영혼이 그대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잖나.

소년은 전직 신부와 물에 툭툭 떨어져 꽃처럼 피었다가 엷어져 가는 핏방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천 상류로 이동했다.

벌겋게 달궈진 해가 푸시시 물에 잠기며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소년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선 말이 까매졌다

토빈이 살짝 고개를 들더니 소년을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어서 가. 너라도 살아야지.

별이 익사하고 고래가 시커먼 망망대해로 거대한 영혼을 나르는 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사막은 어디 할 것 없이 물에 가까워질수록 동물 사체가 점점 늘어난다.

소년은 나이답지 않은 힘겨운 삶을 살아 낸 이처럼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

사방에서 굶주린 늑대가 구슬피 울거나 짖어 대고, 북쪽에서 소리 없는 번개가 세상의 시커먼 가장자리에 부서진 수금을 내려놓았다.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는데도 거대한 고통에 둘러싸인 생물체처럼 보였다.

소년은 무릎을 꿇어 땅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려 규토질 모래가 바람결에 수런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들은 메마른 호수의 희미한 가장자리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부서진 조개껍데기가 모래밭에 사금파리처럼 널려 있었다.

신이 깃들지 않은 섬뜩한 메마른 방향에서 불어오며 소식 한 자 전하지 않는 바람 탓에 두 사람은 황량한 사막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두 사람은 산을 적시며 흘러가는 차가운 개울물로 목을 축이고 상처를 씻었다

소년이 찾아간 곳은 세상 소식이 단절되고 시간조차 모호한 외딴 곳이었기에 사람들은 이미 폐위된 지배자의 즉위를 위해 건배하는가 하면 살해되어 무덤에 갇힌 왕의 대관식을 축하했다

지형의 변화라고는 전무한 사막은 가도 가도 늘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았다

전직 신부가 양의 정강이뼈를 기다란 가죽으로 묶어 만든 십자가를 높이 쳐들고는 뼈다귀 사이에서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에서 미쳐 버린 수맥 전문가처럼 십자가를 든 채 이미 사라져 버린 낯선 언어로 소리쳐 대는 것이었다.

혈연과 족보를 살펴 그의 역사를 알려는 자라면 누구나 끝도 시작도 없는 공허의 기슭에 결국 멍하니 음울하게 서 있게 될 터였다

브라운은 소총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몸을 살짝 틀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뒤쪽에 남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두 사람도 역시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가 한 점 점으로 줄어들자 그들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소년은 총칼과 밧줄로 죽음을 맞은 이들을 보았고, 자신을 2달러에 판 여인이 그 2달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모닥불 너머는 차가웠고, 어둠은 투명했으며, 별은 떨어졌다.

감방에서 소년은 그 누구도 평생 보기 힘든 기묘한 절박함으로 말을 늘어놓았고, 교도관들은 유혈 낭자한 전투 탓에 정신이 나갔나 보다고 수군댔다

고통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듯 꿈적도 않고 누운 소년의 잿빛 얼굴은 잔뜩 구겨졌고, 더부룩한 머리는 헝클어지고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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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핏빛 자오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8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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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어둠에 묻힌 모든 세상과 얼룩진 모든 위대한 제단을 가리키듯 손짓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술을 붓고는 다시 주전자 물을 더했다. 노인은 아껴 가며 술을 마셨다.

동트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이 사위를 감쌀 때가 되면 소리가 다가올 광경을 생생히 드러낸다

야영장이 일렁인다. 차츰차츰 고여 드는 빛 속에 앉아 있는 것은 마을 아이들이다. 잠에서 깨어난 군인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둠과 침묵 속에서 기다렸는지 알 수 없다.

인디언 할멈의 시체는 사라지고 없고, 흙바닥은 비질로 깨끗해졌다

아침나절 부대는 약탈당한 인디언 마을을 통과했다. 거뭇해진 살코기가 덤불 위에 널려 있거나 기묘한 검은 빨랫감처럼 장대에 매달려 있었다.

태양이 제물을 불태우듯 가라앉는 서녘 땅에는 자그마한 사막 박쥐가 줄지어 날아다녔고, 세상의 흙먼지가 요동치는 북쪽 지평선에는 아득히 멀리 진을 친 적군이 피워 올린 연기처럼 모래가 휘날렸다.

화들짝 놀란 눈을 한 머리가 왼쪽으로 데구르르 굴러 전직 신부의 발치에서 멈추었다

모닥불이 김을 내뿜으며 거뭇해지더니 회색 연기 다발이 뭉게뭉게 치솟았다.

군인 하나가 일어나 낡은 들보의 썩은 끄트머리를 뜯어 내 모닥불에 던졌다

축 처진 들보를 따라 연기가 번지더니 가느다란 흙탕물 줄기가 흙을 얹은 지붕에서 낙하했다

문간에서 새어 나온 모닥불빛이 구경거리를 기다리며 길가에 늘어선 행인처럼 우뚝 선 말들을 따라 얕은 바다 위로 창백한 띠를 드리웠다.

판사가 벌거벗은 채 담 위에 올라가 있다고 누군가 알린 것이다

옛 서사시를 낭독하며 담 위를 성큼성큼 걷는 거대하고도 새하얀 몸을 번개가 드러냈다.

아이는 자그마한 흙집에 벌거벗은 채 엎드려 있었다. 흙바닥에는 수많은 오래된 뼈가 나뒹굴었다

무단 거주자들은 초라한 무기를 편히 쉬어 자세로 든 채 명예로운 누더기 호위병인 양 죽은 꼬마 곁에 서 있었다.

시내 상류로 올라 여전히 빗물에 젖은 나지막한 향나무 숲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노래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크기와 빛깔이 제각각인 늑대 대여섯 마리가 일렬로 뒤를 따르며 각자 자기 순서를 잘 지키고 있는지 서로 어깨 너머로 경계했다.

불로 장난을 치는 존재가 과거에 그랬듯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데다 지난 여행의 어떤 불변적 존재가 책략을 부려 인간들을 거짓 방향으로 이끄는 것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란 으레 다른 이가 이미 걸어간 길을 끝도 없이 가야 하는 운명이기에.

네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닐지도 모르지. 그거야 상관없어. 하지만 판사는 못 하는 게 없단다. 손대는 일마다 다 기가 막히게 해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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