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겁먹지 않는다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꺼이 기다린다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산다
늙음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알 수 없다 정신의 노화를 피할 수 있는 한 피한다 내 삶의 안락과 즐거움에 죽음이 자리 잡기를 빨리 늙기보다는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죽음이 결론일지언정 삶의 목표는 아니다
현재를 외면하고 미지의 미래를 좇지 않는다 잊고자 하는 열망은 기억을 선명하게 한다 불행도 인간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내 운명이 위대해지기를 바란 적은 없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진짜 나답게 되는 법을 안다 모든 애정을 내 영혼과 나 자신에게 쏟는다 나라는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안다 남아 있는 인생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해 산다
나는 내가 내 안에만 있다고 여긴다 상대방의 판단이 아니라 내 판단을 믿는다 나의 견해 외에는 무엇도 신뢰한 적이 없다
나 자신을 늘 경계하고 성찰한다 나를 지켜보는 내 두 눈을 가장 경계한다 수시로 의심하고 나 자신을 경계한다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항상 되묻는다
타인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내게도 들이댄다 나의 양심은 나를 더욱 강하게 통제한다 내가 바보일 뿐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더 잘 알아야 한다 남의 의견과 학식을 무심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철인들의 가르침이 아닌 정신을 흡수해야 한다
내 삶의 여정에서 찾은 최고의 필수품은 책이다 논쟁에서는 솔직한 의도를 견지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죽었습니다."라는 말 대신 "삶을 마쳤습니다." 혹은 "생을 살았으나 이제 지나갔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서로를 위로했다.
1533년 2월 마지막 날 태어난 나는 현재 39살이 된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나 먼 죽음의 일을 생각하느라 현재를 방해받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결국 젊은이나 늙은이 모두 같은 조건에서 삶을 마치게 되니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뭇사람들의 귀감이 되기에 이성과 신앙심이 충분했지만 33살에 생을 마감했다.
위대하다 칭송받는 알렉산드로스 역시 같은 나이에 죽었다
"인간이 제아무리 신중을 기한다고 한들 매 시각 그들을 위협하는 위험에 충분히 대비할 수는 없다."
"마침내 진실한 말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가면이 벗겨지고 사람이 남는다.
다른 이의 삶을 평가할 때 나는 그가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본다. 내 삶의 평가 기준 또한 내가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는지가 될 것이다.
"매일이 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그 시간이 더 바랄 것 없이 유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죽음이 뭔지를 알면 모든 굴복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을 박탈당하는 것이 해악이 아님을 깨닫고 나면 삶에 해로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태어난 첫날부터 그대는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사는 것이다.
"다른 날 할 수 있는 일은 오늘도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사람은 모두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떠날 수 있도록 신을 신고 채비해야 한다.
오래 살건 잠시 살건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우리가 태어날 때 다른 모든 것들이 생겨나듯이, 우리가 죽을 때 다른 모든 것들도 소멸된다.
우리네 길고 짧음도 영원이나 자연, 어떤 동물들의 시간에 대보면 가소롭긴 마찬가지다.
무無보다 더 적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염려다. 그대가 죽었든 살았든, 죽음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살았다면 그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죽었다면 그대가 부재하기 때문에.
자기의 시간을 다하지 않고 죽는 이는 없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의 시간도, 당신이 남기고 간 후의 시간도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
"앞서 흘러간 영겁의 시간이 너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을 보아라."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죽음에서는 모든 것이 그대를 따라갈 것이다."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디카이아르코스Dikaiarchos가 그런 책을 쓰기는 했으나 목적도 달랐고 그리 유용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삶에서 멀어지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삶과 죽음의 교환을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카이사르Caesar는 어떤 것을 가까이에서 볼 때보다 멀리서 볼 때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