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핏빛 자오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8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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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널브러져 누런 뼈와 누더기 털만 남긴 수천 마리 양들 사이로 걸어간 두 사람은 뼈다귀가 곁에 있든 말든 태연히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그래요, 우화가 아니랬잖아요. 명백한 사실이고, 판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요.

중국 땅에서 온 배가 작은 항구에 사슬로 묶여 있고, 고양이처럼 말하는 자그마한 누런빛의 사람들이 칼로 화물을 열어젖혀 차와 비단과 향신료를 들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 경계선 속에 갇힌 두 사람은 늘 원의 중심점에 자리했다

이 위조자는 조각칼과 끌로 판사의 환심을 구하며 차가운 화산암재 짐승에게 그럴싸하게 먹힐 얼굴을 새겨 넣었다.

공기에서 비 내음이 풍겼지만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수레는 시커먼 배처럼 어둠을 가르며 삐걱대고, 씻씻대는 소의 내음이 물씬 풍겼다.

태양의 집에서 스스로 끔찍하게 부화하여 동쪽 가장자리에 우르르 모이는 것들을 그들은 매일 보았다.

마시게. 쭉 들이켜. 오늘밤 그대의 영혼이 그대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잖나.

소년은 전직 신부와 물에 툭툭 떨어져 꽃처럼 피었다가 엷어져 가는 핏방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천 상류로 이동했다.

벌겋게 달궈진 해가 푸시시 물에 잠기며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소년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선 말이 까매졌다

토빈이 살짝 고개를 들더니 소년을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어서 가. 너라도 살아야지.

별이 익사하고 고래가 시커먼 망망대해로 거대한 영혼을 나르는 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사막은 어디 할 것 없이 물에 가까워질수록 동물 사체가 점점 늘어난다.

소년은 나이답지 않은 힘겨운 삶을 살아 낸 이처럼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

사방에서 굶주린 늑대가 구슬피 울거나 짖어 대고, 북쪽에서 소리 없는 번개가 세상의 시커먼 가장자리에 부서진 수금을 내려놓았다.

얼굴에 아무 표정이 없는데도 거대한 고통에 둘러싸인 생물체처럼 보였다.

소년은 무릎을 꿇어 땅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려 규토질 모래가 바람결에 수런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들은 메마른 호수의 희미한 가장자리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부서진 조개껍데기가 모래밭에 사금파리처럼 널려 있었다.

신이 깃들지 않은 섬뜩한 메마른 방향에서 불어오며 소식 한 자 전하지 않는 바람 탓에 두 사람은 황량한 사막에서 부들부들 떨었다.

두 사람은 산을 적시며 흘러가는 차가운 개울물로 목을 축이고 상처를 씻었다

소년이 찾아간 곳은 세상 소식이 단절되고 시간조차 모호한 외딴 곳이었기에 사람들은 이미 폐위된 지배자의 즉위를 위해 건배하는가 하면 살해되어 무덤에 갇힌 왕의 대관식을 축하했다

지형의 변화라고는 전무한 사막은 가도 가도 늘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았다

전직 신부가 양의 정강이뼈를 기다란 가죽으로 묶어 만든 십자가를 높이 쳐들고는 뼈다귀 사이에서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에서 미쳐 버린 수맥 전문가처럼 십자가를 든 채 이미 사라져 버린 낯선 언어로 소리쳐 대는 것이었다.

혈연과 족보를 살펴 그의 역사를 알려는 자라면 누구나 끝도 시작도 없는 공허의 기슭에 결국 멍하니 음울하게 서 있게 될 터였다

브라운은 소총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몸을 살짝 틀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뒤쪽에 남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두 사람도 역시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가 한 점 점으로 줄어들자 그들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소년은 총칼과 밧줄로 죽음을 맞은 이들을 보았고, 자신을 2달러에 판 여인이 그 2달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모닥불 너머는 차가웠고, 어둠은 투명했으며, 별은 떨어졌다.

감방에서 소년은 그 누구도 평생 보기 힘든 기묘한 절박함으로 말을 늘어놓았고, 교도관들은 유혈 낭자한 전투 탓에 정신이 나갔나 보다고 수군댔다

고통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듯 꿈적도 않고 누운 소년의 잿빛 얼굴은 잔뜩 구겨졌고, 더부룩한 머리는 헝클어지고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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