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백치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16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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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어린 그의 얼굴 표정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열 시간이라도 계속 한자리에 서서 기꺼이 즐겨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사흘 전까지 어떻게 자기가 죽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는지 놀랄 따름이라고 대답하며, 이날 저녁처럼 기분이 좋았던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귀찮게 구는 것 같아 무척 죄송하고 분별없이 생각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군요. 친절하신 공작, 나는 당신의 우정을 구하러 왔습니다. 당신은 매우 보기 드문 분입니다.

위로 땀이 흘렀다. 번쩍거리는 두 눈에는 무언가 헤아릴 수 없는 지속적인 동요 이외에도 분명치 않은 초조감이 어려 있었다

레베제프는 평상시 저녁때의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었고 앞서의 〈학문적인〉 장황한 논쟁 때문에 속이 뒤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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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백치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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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빠블리쉬체프의 아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이 허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결심을 번복하지 않고 빠블리쉬체프를 기리는 마음으로 1만 루블을 드리겠습니다.

자기가 스위스에서 치료받았던 것과 똑같은 병이 그에게도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여 부르도프스끼를 〈모욕〉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장학 사업 대신 1만 루블을 그에게 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은 마치 적선을 하겠다고 나선 것처럼 무례하고 경솔했다.

공작은 부르도프스끼를 도와주고 싶어해요. 순수한 마음에서 그에게 따뜻한 우정과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공작, 나는 당신이 가브릴라를 통해 부르도프스끼의 어머니에게 돈을 몰래 보내 준 것을 알아요.

내가 당신의 동료들에게서 들은 말과 방금 당신이 유감없이 들려준 유창한 말을 간추려 본다면, 이 모든 것은 어떤 권리를 찬양하는 것으로 좁혀지는군요.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제외하고, 무엇보다 먼저 그 권리 자체를 연구해 보지도 않고서 말이오.

여러분은 아까 나에게 무신론자라고 얘기했지요? 그런데 자연이란 것은…… 여러분은 왜 또 웃는 겁니까? 지독하게 잔인한 분들이군요!」 그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섭섭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우리 나라의 자유주의자는, 내가 무수히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남들이 상이한 신념을 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와 신념이 틀린 사람들에게 욕을 한다든가 그보다 더 못된 짓으로 대응을 한다니까요.」

나는 그만큼의 세월 동안 병상에 누워, 그만큼의 세월 동안 이 창밖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그만큼 생각해 왔어요. 죽은 자에게는 나이가 없는 법이에요.

힘의 권리는 호랑이와 악어의 권리, 심지어는 다닐로프와 고르스끼의 권리와 멀지 않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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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백치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5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근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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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여자가 너에게 동의를 할 수 있으며, 자기의 사진까지 선사할 수 있는 거냐? 설마 네가 그런…… 그런…… 여자를…….」

「어머니, 이 문제에 푹 빠지셨군요. 또다시 참지 못하시다니.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되어 폭발되곤 하지요. 어머닌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몇 분 후 그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자신이 나온 뒤 대화가 더욱 소란스러워지고 노골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인종을 제때 고치지 못할 만큼 게으르면 사람이 문을 두드릴 때 현관에 앉아 있기라도 할 것이지. 아니 거기다 코트까지 떨어뜨리다니, 팔푼이 같으니라고!」

니나 알렉산드로브나는 〈모든 것에 동의한다〉고 한 자신의 말을 완전히 망각한 채 바르바라 편을 들고 있었다.

그는 나스따시야가 자기 가족에게 조소와 독설을 퍼붓는 데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지, 직접 집으로 찾아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의구심과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허영심이 많은 가브릴라는, 최근 두 달 동안 약간이라도 자신을 고상하고 귀한 존재처럼 보이게 할 구실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자기를 두고 〈참을성 없는 거렁뱅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훗날 그 말에 대한 대가를 치러 주겠다고 온갖 맹세를 다 했지만, 만사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된다는 공상을 이따금 홀로 해보곤 했다

무얼 위해서, 무얼 얻으려고 내가 그에게 충격을 주었던가? 차라리 내가 그 부인을 사랑했다면 몰라도, 나는 그저 가벼운 장난으로 뾰뜨르를 곯려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서 꽃다발을 가로채지만 않았던들 그 사람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 있을지 누가 압니까

소(小) 뒤마의 『춘희』가 대유행을 해서 상류 사회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내 의견이지만 그 소설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을 겁니다. 이 소설을 적어도 한번쯤 읽어 본 지방의 부인들은 그야말로 열광적이다시피 했습니다. 매력적인 소설 내용, 주인공 설정의 독창성, 미묘한 부분까지 묘사된 황홀한 세계, 소설 곳곳에 깔린 이 모든 매혹적 요소들(예를 들어 하얗고 핑크빛 나는 동백꽃 다발을 번갈아 사용하는 배경)[49]은 한마디로 환상적인 디테일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공작은 일생에서 최초로 내 마음을 맡길 만한, 진정으로 믿을 만한 분이에요. 그분은 첫눈에 나를 믿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예요.」

대담한 데다 온갖 것을 다 겪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다리야 알렉세예브나와 말이 없으면서도 아름다운 낯선 부인이었다.

마치 파티장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친지들 집에서 그림, 화병, 조각이나 병풍을 잠깐 빌려다 놓는 것처럼 그림을 걸어 두듯 이 여자를 앉혀 두곤 했던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날뛰는 페르디쉬첸꼬가 있었다. 가브릴라는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나,

오직 예빤친 장군 한 사람만이, 방금 자신의 선물을 체면이고 뭐고 상관치 않고 우스꽝스럽게 되돌려 받음으로써 수치를 감수해야 했던 그만이, 예기치 않은 기괴한 사건, 로고진의 출현 같은 일로 기분이 상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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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지음, 백수린 옮김 / 레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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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든 여자를 둥그렇게 둘러싸는 남자들이 있다. 여자에게돌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남자들.

그들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할 정도로 그들과 닮기를 열망하는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는 결속력 단단하고 자부심 넘치는, 남녀로 이루어진 그 패거리를 부러워한다

성벽에 가두어진 폐쇄된 공간 너머 존재하던1958년 여름의 다른 세계들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지금 느끼는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여름의 동지들을 떠나서1년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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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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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풍문은 ─
바다의 물결.

기병의 유격은 결코 금지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장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는 동안 내내 앞으로 있을 심문에 관해 생각하면서 대답할 말을 궁리해 보다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작정했다. 법정에서는 그것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해명 방법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순수한, 그러나 갈가리 찢어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의 달콤함을 생전 처음 맛보았고 모든 고통당하는 이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버지의 푸념에 놀란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서는 감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소문이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사람들의 의견이란 것도 확실한 게 아니다 운운하시며 아버지의 원기를 돌려 드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길이 없었다.

뾰뜨르 안드레예비치 그리뇨프의 수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의 가문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1774년 말 특사로 석방되었으며 뿌가쵸프의 처형식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그곳의 어느 귀족 댁 곁채에는 예까쩨리나 2세의 친필 서한이 유리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다. 그 편지는 뾰뜨르 안드레예비치의 부친에게 보내진 것으로, 거기에는 아들의 결백을 인정하고 미로노프 대위의 딸이 겸비한 지혜와 심성을 칭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뿌쉬낀에게 역사는 반드시 거창한 어떤 흐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개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사랑과 질투와 화해, 그리고 무수하게 스쳐 지나가는 다른 개인들과의 만남, 우연의 일치들로 가득 차 있으며 역사를 조망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소한 일들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대위의 딸』에서 뿌쉬낀이 말하고자 하는 역사란 그리뇨프 일가와 미로노프 일가의 목가적이고 평범한 삶, 그리뇨프와 마리야의 순박한 사랑, 그리뇨프와 뿌가쵸프의 우연한 만남, 작은 선의와 그것에 대한 보답 같은 것으로 짜이는 피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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