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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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자옥한 하늘 아래에 펼쳐진 습하고 숲이 울창한, 무시무시한 적도의 늪지대였다.

섬들과 습지와 진창으로 흘러든 강의 지류로 이루어진 원시 세계의 황량한 풍경이었다.

우유처럼 희고 접시만 한 크기의 꽃들이 떠다니는 사이로, 날갯죽지를 쳐들고 볼품없는 부리를 지닌 낯선 종류의 새들이 얕은 곳에 꼼짝 않고 서서 옆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대나무 숲의 마디진 줄기들 사이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눈빛을 번득이는 게 보였다. 그는 놀라움과 불가사의한 갈망으로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그러한 광경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같았다. 즐거움의 산물인 이런 변덕스러운 기분은 어떤 내적인 내용보다 더 중요한 장점이라서 독서의 맛을 향유하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리스풍의 십자가와 밝은 색깔의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장식된 건물의 정면에는 균형 있게 배열된 비명이 금박 입힌 글씨로 쓰여 있었다.

새로운 것과 먼 곳에 대한 동경, 자유, 구원, 망각에 대한 이러한 욕구는 곧 작품에서 벗어나고픈, 경직되고 차가우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일상생활의 작업장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이었다.

그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다룬 자신의 소설을 다름 아닌 이러한 명령어가 신격화된 작품으로 보았고, 그에게는 이러한 명령어가 고통을 안고 행동하는 미덕의 진수로 여겨졌다.

나이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다른 사람들은 벌써 시간을 흥청망청 쓰고 열광적인 생각에 빠져 위대한 계획의 실행을 유유자적하게 미루고 있을 때, 그는 가슴과 등에 찬물을 끼얹으며 아침 일찍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에게는 극도의 규율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러한 규율이라는 유산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정신적 애착과 신체적 능력 사이의 이러한 다툼은 초로의 작가에게 느닷없이 너무나 힘들고도 중요하게 여겨졌고, 육체적 패배는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막아야 할 만큼 굴욕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말할 수 없이 우울한 감정을 품고 영영 이별을 고한 장소들을, 운명의 아이러니에 의해 방향을 돌리고 되돌아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또 보게 될 줄이야! 작고 날렵한 모터보트는 뱃머리에서 거품을 일으키고, 곤돌라와 증기선 사이를 익살스럽고도 날쌔게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목적지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피가 끓어오르는 감격을 느꼈고, 기쁨과 영혼의 고통을 느꼈으며, 타치오 때문에 자신이 이곳을 떠나는 게 그토록 힘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맙게도 불운한 일이 생겨 이곳에 붙잡혀 있게 된 손님은 짐을 도로 찾는다 해도 떠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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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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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치 금지된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소리 없이 몰래 이 통로를 이용했다. 그는 행복에 넘쳐 쿵쾅거리는 너절한 음악에 저항할 수 없이 이끌려 조심스럽게 더듬으며 어둠 속을 통과해 갔다.

조급하고도 간절한 심정으로 그는 자신이 찾고 있던 두 사람에게 시선을 보냈다…….

리본이 달린 작은 모자를 정수리에 쓰고 가슴 아래로 팔짱을 낀 어머니들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젊은이들이 요란하게 뛰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스 한젠이 서 있었다.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몸을 앞으로 약간 숙인 채, 조심스럽게 커다란 케이크를 먹으면서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받으려고 손바닥을 오목하게 오므려 턱 밑에 갖다 대고 있었다.

토니오 크뢰거는 이들을, 전에 자신이 짝사랑하며 괴로워했던 두 사람, 한스와 잉에보르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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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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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탄식을, 그녀의 목소리에서 거의 감지되지 않는 한숨 소리를 다시 발견하고 싶은 욕망이 다시 엄습하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다. 늘상 배회하는 자이며, 지칠 줄 모르는 먹꾼이었던 나는 그곳에서 몸을 드러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가는 여인에게 반응하며 슬퍼하거나 웃곤 했다

이제 나는 왜 내 안에서 마법이 일어났는지 알겠다. 흐려진 내 기억력이 그곳에서, 모든 이들의 몰입 속에서 카스바의 넷즈마 극장에서의 야간 공연의 반영을 찾아낸 거였다……!

그곳은 언제나 알베르 카뮈를 생각나게 한다. 아직 청소년인 그가, 벨쿠르로부터 그곳 도시 반대편까지, 나의 카스바 입구까지 날마다 실어다 준 전차에서 그가 내리던 모습을. 아마도 카뮈는 카스바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나는 그런 사람들 무리에서 들라크루아*와, 어느 정도는 기요메*도 그리고 또 하나의 알베르, 즉 마티스의 친구 알베르 마르케*도 배제하지 않는데, 이들 증인은 대개의 경우 화가다

왜냐하면 화가는 왕이고, 항상 그랬듯이 지중해 양편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양쪽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험가, 해적, 배신자이면서 또한 매혹된 화가였다……. 그들을 위한 불법 침입의 역사이건만, 그들 눈에는 하나의 왕국이었다.

나는 지금 이곳 코딱지만 한 이발소 안에 있다. 어린 시절에 이곳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동굴처럼 보였다.

나와 가장 가까운 동시에 그의 생활 태도로 인해 가장 기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너무 의젓한 나의 아버지와, 너무 인정 없는 형과는 같은 세계에 살지 않는 듯했다

것이다.
그 다음날 나는 장례식에 앞서 신문을 탐독한다. 신문에는 흰 종이 위에 검은 글

열두 살 때까지 나는 글로 쓰인 것은 모두 존엄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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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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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광장을 바라보는 사이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르는데, 뭐랄까, 집단 기억이라고나 할까? 소위 난공불락이라던 우리 도시가 유린되었던 날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인간이다. 꿈속에서 헤매는 나와는 다르다. 그가 부언한다.

나는 가장 좁은 길, 간선 도로, 작은 광장, 막다른 골목에서 그리고 분수, 작은 사원, 교차로의 작은 예배당에서까지 예전의 나의 왕국을 찾으려 했소

작열하는 태양 아래 모든 장소가 모습을 드러냈고, 거의 쓸쓸한 회전목마의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오! 하지만 나는 확인했소. 그곳은 거의 살아갈 수 없는 장소로, 유기되고 헐벗은 지역으로 그리고 치명적 파괴의 흔적이 남은 공간으로 변해 버렸소!

무너져 쌓인 돌 더미 구역의 건물들, 붕괴된 낡은 집들과 그 잔해들이 쓰레기 아래, 왕왕 불가피하게 쌓인 피라미드 형태의 폐기물과 짐승 똥 아래 잠들기 시작하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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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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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화는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를,격랑의 시대 이후 인근 마을에서 사라진 공포를 내가 청취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었소.

상실된 수많은 단어들과 부활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언어의 춤 같은 것을 다시 발견했다는 흥분에 싸여서 말이오.

애정에 찬 상냥한 말들, 시냇물 속의 하얀 원석 같은 말, 내가 하나하나 탈곡해 내는 당신의 말, 다시 되풀이되는 말, 뿐만 아니라 내 어린 시절의 말, 내 어머니의 말이.

당신은 이제 여기에 없고 짝을 이루었던 우리의 어법은 희미해지고 있는데, 당신이 이곳, 이 해변 앞 냉기 도는 집으로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과연 북역에서처럼 다시 달콤한 말로 당신을 감쌀 수 있을까?

20년간의 망명 생활이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자신의 뒤로 사라져 가는 어두운 흐름으로 보이게 될까? 그리고 잃어버렸던 예전의 장소들이 다시 가까워질까?

옛 알제,자지라트 엘 바흐자*,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오랫동안 난공불락이었던솔방울 모양의 그의 도시,내 전설적인 해적의 도시의 명암 속에서 그 길을, 오늘 아침 여정(旅程) 중에 추억에 잠기는 역사의 편린을 그는 다시 보러 간다.

다양한 신분은 반대편 세상에서 밤을 보내는 베르칸, 되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망명자에게 끊임없이 찾아들었다. 그 한없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일한 기항지는 북역의 호텔에서 보내는 주말 저녁이었는데, 애인의 팔에 안긴 채 떠나온 도시 알제에 대해 말할 때면, 즉각 그 후미진 장소는 잊히고 말과 애무가 남았고, 종국에는 쾌락이 대체했다.

어린아이였던 그는 이 굼뜬 사람들 무리 속에 잡다하게 뒤섞인 과일 향과 석쇠에 고기를 굽는 냄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함과 애가(哀歌), 끝없이 고뇌하는 이집트인의 사랑 노래들 속에 빠져들고 싶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이어서 망명 생활 중에도 그는 이 과거 세계의 소우주는 영원히 그 현실을 간직할 거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곳이 어디인가?

귀향 이후 그는 자신이 잠에서 덜 깬 것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뒤섞이고, 게다가 머나먼 과거, 그의 유년 시절 혹은 프랑스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과거가 흔들리고,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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