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지금 외치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빨강색 연필로 토끼를 그린 톨스토이의 그림을 보고 어른들이 놀렸다. "얘야, 세상에 빨간 토끼가 어디 있니?" 그러자 톨스토이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에는 없지만 그림 속에는 있어요." 세상에는 없지만 그림 속에는 존재하는 것

이어령은 "고정관념은 상상력의 적"이라고 경고한다.

학교는 배움을 주는 기본 공간이지만 학교의 가르침이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사람은 원래 백지 상태의 ‘생것’인데 학교가 이 순연한 존재를 틀에 가두고 상상력의 날개를 꺾어버린다는 것이다.

"기러기들처럼 날고 싶습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날았으면 싶습니다. 소리 내어 서로 격려하고 대열을 이끌어가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날고 싶습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은빛 날개를 펴고 눈부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이 절망의 벼랑 끝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갈 날개 하나씩을 달아주소서.

아직도 우리 교육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생각이나 능력을 밖으로 캐내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어떤 이념들을 머리와 가슴속에 주입시키는 경우가 많다. 교육이 아니라 세뇌 작용이다.

벽을 넘는 방법, 360도 열린 초원에서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어두운 지하 갱으로 들어가 남들이 지금껏 보지 못한 빛의 원석을 캐내는 연장

에티오피아의 흙은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형제다. 우리는 그대들을 환대했으며 귀한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흙을 단 한 알갱이도 줄 수 없다.

양들은 제각기 높낮이가 서로 다른 방울 소리들을 냈다. 그것이 한데 어우러져 공기가 되고, 바람이 되고, 물방울이 되고, 수정 구슬이 되어 굴렀다. 풀 냄새처럼 향기로운 음악이었다.

그래서 존 던은 말했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모래 한 알과 작은 흙덩어리가 바다에 휩쓸려 가면 그만큼 대지는 가벼워지고 작아진다"고….

사람들은 그것이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를 궁금해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죽은 자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고개를 숙여 슬픔을 표시했다.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내 대륙 안의 모래가, 흙이 바다로 휩쓸려 떨어져 간다는 의미다. 그의 고통은 나와 무관하지 않고, 그의 생명은 나와 똑같은 샘물에서 흘러온 것이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왜 미국의 젊은 청년 로버트 조던은 그와 관계도 없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죽어야만 했는가.
그 제목이 소설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아니, 종처럼 울리게 한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흔들어주지 않고는, 누가 밖에서 공이로 때려주지 않고는 내 안에 고여 있는 생각의 소리를 울릴 수 없다.

같은 통나무인데도 자르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전연 다른 무늬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무늬도 그와 같이 변한다. 슬픔이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가난이 풍요로 바뀌기도 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내 삶의 통나무를 잘라보고 찍어보고 깎아보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나라로 들어가는 통과사증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적은 영양분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 용도가 폐기된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쓰레기나 다름없이 보관되어 있다. 그중에는 아주 오래전에 잊힌 물건들이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누워 있기도 한다.

버려야 한다. 우리도 아이처럼 매일 자란다. 그러니 조금 전까지 통했던 상식과 지식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변한다.

우리를 괴롭히던 고정관념들, 집념이나 원한도 모두 버려야 한다.

샘물은 퍼 써야만 새 물이 고인다. 고여 있는 지식도 퍼내야 새로운 생각이 새 살처럼 돋는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려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 속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착오가 1930년대에 밝혀져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뽀빠이 신화가 오늘날까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점이다. 시금치를 과도하게 먹으면 근육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신장에 결석증이 생긴다는 의학적 진실 앞에서도 뽀빠이 신화는 꺾이지 않고 세계를 제압하고 있다.

소수점 한 자리를 잘못 친 데서, 글자 한 자를 바꿔 읽는 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허구의 세계가 창조된다.

풀은 무엇인가를 붙이는 접착력이 생명이다. 붙지 않는 풀은 이미 풀이 아니다. 그러나 약품을 잘못 혼합하여 붙었다가도 떨어지는 불량 풀이 만들어졌을 때 3M 같은 메모지용 풀이 발명된 것이다.

Salvador Dali나 뒤샹Marcel Duchamp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처럼 혹은 신문지의 글자들을 모아 시를 쓴 미래파 시인들처럼 우연을 잡아라. 그리고 허구의 F를 향해 낚싯줄을 던져라.

인간은 벽을 만들었다. 허허벌판에선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벽 속에서는, 감옥이나 동굴에서처럼 살아갈 수 없다. 벽에 의지하고 벽에 반발하는 앰비버런스ambivalence(모순)에서 회화가 생겨난다.

어원적으로도 그림이라는 말, 긁는다는 말, 그리고 글이라는 말,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말, 그것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림은 긁는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다.
그림은 글에서 나온 말이다.
벽을 긁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은 벽을 넘는다.

쥐가 1988년 미국에서는 정반대로 암을 비롯해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하버드 마우스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1544년 미국 대륙에 처음 침입한 지 440년 만에 생물 특허 제1호를 얻은 하버드 마우스야말로 BT시대가 열리고 지재권의 문이 활짝 열렸음을 상징한다.

특허품이 된 쥐는 한 마리에 100달러씩 팔린다. 그러니 우글거리는 쥐, 쥐덫을 놓아 잡기가 바쁜 쥐를 지식재산 마우스로 만들어놓으면 한 마리당 100달러씩 벌어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외짝 신발을 우리는 안다. 달마의 신발이다. 면벽面壁 참선하던 달마,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부덕과 오만함을 간하다 죽음을 당한 달마, 그리고 관 속에서 다시 살아나 신발 한 짝만 남기고 서쪽으로 떠나간 달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100% 페이백]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 엘리 / 2023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속도를 냈지. 난 원래 속도를 즐겨. 과속하지 않을 거면, 속도의 현기증을 즐기지 않을 거면 자동차를 뭐 하러 가지고 있지? 엘리만을 찾아다니는 동안에는 그런 과속 취향이 더욱 정당해 보였어

화려함과 비참함의 모든 과잉이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가능한 모든 공간을 빈자리 하나 없이 채웠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나의 가짜 가벼움을 아이다는 곧바로 알아차렸을 터다.

평소에 두려움을 신중한 지혜로 꾸밀 때, 사실은 뒤로 물러서면서 앞으로 나서는 척할 때 가장 유용한 프랑스어 시제라고 생각해온 조건법을 사용했다.

미래형으로 주어진 마지막 문장이 아이다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모든 혁명은 몸으로 시작하고, 아이다의 몸은 들고일어나는 도시, 불타고 있는, 재를 남기지 않고 타버릴 도시이고, 나는 그 도시에서 투쟁한다

사회적 고통이라는 문제 앞에서 글쓰기의 문제가 어떤 무게를 지니겠는가?

절대적인 존엄성의 갈망 앞에서 절대적인 책을 찾는 일이, 정치 앞에서 문학이, 파티마 앞에서 엘리만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이다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휴가를 보내려고, 가족을 만나려고 왔다고 했다.

작품 전체가 ‘우리’를, 조국을, 기원의 문화를, 기다리는 ‘가족’을, 자신의 소속을 배신하고 나아가 죽이는 이야기이다.

소리 없이 고요하게 태풍이 분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지나가듯이, 영원한 부동성의 환상 속에서 지나간다.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어도 더 이상 진정으로 서 있는 것은 없다

시간을 벗어난 일 초가 아니라 시간아래의 일 초였지.

그가 날개를 영혼에 꽉 붙이고 있는 건, 날개를 펴게 되면 물건들을 다 떨어뜨리고 균형을 깨뜨릴까봐 그랬던 거야

우린 여기 있고 할 말이 없다,

난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을 꿈꿔. 인간의 껍질은 너무 무거우니까…

폭풍 전야의 고요는 없다. 진짜 폭풍은 늘 자기 자신보다 앞서간다. 폭풍은 자기 존재를 알리는 스스로의 밀사이다.

나는 공기가 되고 싶어. 영원히, 가볍고 상쾌한 바람이 되어 사물들과 인간들 위로 아름답게 떠다니고 싶어.

원하지 않아도 날개가 밤의 치명적인 장기를 건드리고 어쩌면 밤의 배를 가르게 될 수도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100% 페이백]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 엘리 / 2023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겉으로는 인간 존재의 운동이 미지의 것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그렇다 해도 우리의 깊은 관심은 과거야.

미래를 향해 가면서도, 우리가 지금 되어가는 중인 그 모습을 향해 가면서도 우리가 신경 쓰는 건 과거이고 우리가 과거에 어땠는가 하는 비밀이라고

내가 무엇을 하게 될까? 그리고내가 무엇을 했는가? 이렇게 같은 성질의 두 가지 질문이 있을 때 더 중요한 건 두 번째 질문이라는 거지. 두 번째 질문에는 바로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이 닫혀 있잖아

내가 무엇을 했는가, 그 질문 속에는영원히 이루어진 일의 조종弔鐘이 울리고 있지. 그건 올바르게 살다가 어느 한순간 분노에 휩싸여 범죄를 저지른 뒤 겨우 정신을 차린 사람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던지는 질문 같은 거야

내가 무엇을 했는가. 이렇게 묻는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아. 그의 고뇌, 그의 공포는 이미 저질러놓은 일의되돌릴 수 없음을,고칠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데서 오지. 인간이 과거로 인해 불안해지는 제일 큰 이유는 과거가 영속적이라는, 되돌릴 수 없다는 비극적 의식을 주기 때문이야

후회도 회한도 과거의 돌이킬 수 없음을 바꾸지 못해. 오히려 그 반대지. 후회와 회한은 과거의 영원성을 확인할 뿐이야

우리는 과거에 그랬다는 것만을 후회하는 게 아니야. 영원히 그렇다는 것을 후회하는 거야.

저 형체들은 현재를 위해 움직이지 않아. 네가 있는 현재, 네가 메시지의 의미를, 그나마 너에게 전하는 것도 아닌 그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바라보고 있는 현재를 위한 게 아니라고. 저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저들의 과거일 뿐이야

사람들은 과거가 현재로 돌아와 계속 머문다고 굳게 믿지만, 그 반대 역시 사실일 수 있어. 아니, 더 진실일 수 있지

우리가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을 쉬게 두지 못하고 그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우리 이야기의 진정한 유령은 우리야. 우리가 바로 우리 유령들의 유령이라고

자신들의 삶이 언젠가, 죽고 나서 한참 뒤에 다른 삶들의 강박관념이 되리라는 걸 알았을까

네가 어디에 있고 지금 어떤 상태이든 돌아와, 약속했잖니, 내가 망고나무 앞 묘지의 내 자리로 들어가기 전에, 어서 돌아와……

진심이든 꾸며냈든 아무튼 비통해진 얼굴들, 진짜든 가짜든 흐르던 눈물들, 정말로 슬퍼서든 그런 척하는 거든 슬퍼하던 의붓어머니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100% 페이백]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 엘리 / 2023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만약 이 이야기의 실을 다시 찾아낼 수 있다면, 내 안에 있는, 그가 살고 있는 그 이상한 나라를 난 안 가본 곳까지 더 멀리 가볼 거야.

이 책이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그건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아니야. 디에간 파이. 적어도 오늘은 아니야. 아직 아니야.

거미 여인은 시간 속에서 멀어지면서도 여전히 더 강렬하게 내 앞에 있었고, 더 가까이 있었다

그 중력(보이지 않지만 만져지는 저항할 수 없는 혼돈의 중력, 농축된 과거의 중력, 사람들이 의미를, 아마도 진리를 끌어내려고 애쓰는 중력) 아래서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내관內觀의 장면임을 깨달았다.

나는 아름답다고 혹은 끔찍하다고, 혹은 아름다우면서 끔찍하다고 형언할 수 있을 그 광경의 유일한 증인이었다.

엘리만은 만날 수 없어. 그가 나타날 뿐이지. 나타나서 뚫고 가버려. 얼음이 되게 하고 살갗을 태워버려. 생생한 환상. 나는 엘리만의 숨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솟아오른 숨결이 내 목덜미에 와 닿는 걸 느꼈어.

우리의 만남은 좀 엉뚱했지. 신기한 지름길로 왔달까. 어쨌든 이리로, 그래, 이 책으로 왔어. 아마 우연일 테지. 운명일 수도 있고. 하지만 우연과 운명이 꼭 반대되는 건 아니야.

보이지 않는 잉크로 이미 적혀 있는 운명.

삶과 그 예측 불가능한 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모두 같은 장소로, 모두의 운명으로 향하는 길들. 아름다울 수도 있고 끔찍할 수도 있는, 꽃이 흩뿌려진 혹은 해골로 덮인 길. 대부분 혼자 가게 되는, 우리의 영혼을 시험해볼 수 있는 어두운 밤의 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줄곧 자네와 함께 있었는데 자네가 나를 잊었던 것이야. 내게는 자네를 부를 힘이 없고, 자네는 나를 떨쳐 버리려고 했다. 달빛이 아름답구나. 눈을 인 소나무도, 이 땅의 삶도. 하지만, 제발 날 잊지 말아 다오!」

자네가 나를 떠난 날, 나는 온 산들을 휘달리며 내 몸을 피로로 가득 채웠다. 그래도 밤에는 자네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내 감정을 다스리느라고 시를 쓰기도 했지만 내 고통을 걷어내기엔 너무 초라했다

나는 그의 몸이 어둠 속으로 녹아 들어가며 흐느낌이 되고 한숨이 되고 야유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죽음은 친숙하고 다정한 얼굴로 내 삶 속에 들어왔다. 마치 우리를 데리러 와서는, 우리가 일을 끝낼 때까지 구석에서 무던하게 기다려 주는 친구 같았다.

기억을 다그쳐, 조르바가 내 마음속에 흩뿌린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그러모으고 싶었다. 그것들을 살려 놓고 싶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편지를 뜯어 읽으면서도 나는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경악하지도 않았으니까.

갑자기 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려 나는 종이를 집어 들고 테라스의 뜨겁게 달아오른 판석 위에 엎드려 조르바의 말과 행적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나는 첫날처럼 테라스에 앉아 늦은 오후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무릎 위에는 탈고한 원고가 놓여 있었다.

나는 곧잘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조르바는 위대한 인간이다!〉 때로 그는 그 경지를 훌쩍 넘어 더 멀리 나가 버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미쳤다!〉

이승에서 육신의 예속을 자유로 탈바꿈시킬 시간이, 영혼을 갈고닦아 견고하게 만들 시간이 없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죽음이라는 궁극의 순간에 그의 영혼이 공포에 사로잡혀 소멸해 버린 것은 아닐까? 혹시 그의 내부에 불멸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 불멸을 획득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내 내부의 신성한 야만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조리에 닿지 않는 고상한 행위를 포기한 것이었다.

뜯지 않은 채로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데 읽어서 무엇 하랴? 아,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영혼을 신뢰하지 않는다. 영원한 구멍가게 주인인 이성이 영혼을 비웃고 있다.

그동안 세월은 급변하여, 지리적 경계선들이 춤을 추었고, 나라들의 영토는 아코디언처럼 확장과 수축을 반복했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카잔차키스의 문학은 존재와의 거대한 싸움터, 한두 마디로는 싸잡아서 정의할 수 없는 광활한 대륙을 떠올리게 한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