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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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자네와 함께 있었는데 자네가 나를 잊었던 것이야. 내게는 자네를 부를 힘이 없고, 자네는 나를 떨쳐 버리려고 했다. 달빛이 아름답구나. 눈을 인 소나무도, 이 땅의 삶도. 하지만, 제발 날 잊지 말아 다오!」

자네가 나를 떠난 날, 나는 온 산들을 휘달리며 내 몸을 피로로 가득 채웠다. 그래도 밤에는 자네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내 감정을 다스리느라고 시를 쓰기도 했지만 내 고통을 걷어내기엔 너무 초라했다

나는 그의 몸이 어둠 속으로 녹아 들어가며 흐느낌이 되고 한숨이 되고 야유가 되고 있음을 느꼈다.

죽음은 친숙하고 다정한 얼굴로 내 삶 속에 들어왔다. 마치 우리를 데리러 와서는, 우리가 일을 끝낼 때까지 구석에서 무던하게 기다려 주는 친구 같았다.

기억을 다그쳐, 조르바가 내 마음속에 흩뿌린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그러모으고 싶었다. 그것들을 살려 놓고 싶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편지를 뜯어 읽으면서도 나는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경악하지도 않았으니까.

갑자기 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려 나는 종이를 집어 들고 테라스의 뜨겁게 달아오른 판석 위에 엎드려 조르바의 말과 행적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나는 첫날처럼 테라스에 앉아 늦은 오후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무릎 위에는 탈고한 원고가 놓여 있었다.

나는 곧잘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조르바는 위대한 인간이다!〉 때로 그는 그 경지를 훌쩍 넘어 더 멀리 나가 버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미쳤다!〉

이승에서 육신의 예속을 자유로 탈바꿈시킬 시간이, 영혼을 갈고닦아 견고하게 만들 시간이 없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죽음이라는 궁극의 순간에 그의 영혼이 공포에 사로잡혀 소멸해 버린 것은 아닐까? 혹시 그의 내부에 불멸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 불멸을 획득할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내 내부의 신성한 야만의 목소리를 따르지 않았다. 나는 조리에 닿지 않는 고상한 행위를 포기한 것이었다.

뜯지 않은 채로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이미 알고 있는데 읽어서 무엇 하랴? 아, 그러나 우리는 이제 우리의 영혼을 신뢰하지 않는다. 영원한 구멍가게 주인인 이성이 영혼을 비웃고 있다.

그동안 세월은 급변하여, 지리적 경계선들이 춤을 추었고, 나라들의 영토는 아코디언처럼 확장과 수축을 반복했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카잔차키스의 문학은 존재와의 거대한 싸움터, 한두 마디로는 싸잡아서 정의할 수 없는 광활한 대륙을 떠올리게 한다.

〈내 삶을 풍부하게 해준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내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이 누구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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