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휴먼 스테인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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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면 당신이 항상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뜻이다

그것은 낙인인데, 심지어 사실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평온하다

당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면 당신이 항상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뜻이다. 갑자기 당신의 전 생애가 인종차별주의로 얼룩지는 것이다.

나는 그를 이처럼 평온하게 만들 수 있고, 그는 나를 이처럼 평온하게 해줄 수 있다

그녀의 수업에는 추종자들이 있는데, 인문학자족은 그녀의 추종자들을 일종의 유행 현상으로 보고 경멸한다.

때때로 그녀는 자신이 밀란 쿤데라를 배신하고 있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면 조용히 심안으로 쿤데라를 떠올리며 그에게 말을 걸고 용서를 구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돈이 넉넉하지 않고 근거 있는 추측을 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을 받지 못하는 현실, 즉 시장에 대해 정통하지 못하다는 현실을 그가 잘 모른다고. 그녀는 그에게 해석해준다

지적이고 자신감 넘치고 박식하고 세상 물정에 밝은 남자와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기쁘기 때문이다.

"너무 구시대적이잖아. 완전 시몬 드 보부아르 패러디야"라고 말했다는 걸 전해듣기도 했다.

그 여자는, 보부아르가 사르트르 때문에 신념을 저버렸다고, 대단히 지적인 여성이었지만 결국 사르트르의 노예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그녀를 멸시하고 있고,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아는 것처럼 보이며, 언제나 그녀의 동기와 목적에 의혹의 시선을 던지기 때문이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집과 모국에서도 벗어나 완전히 혼자다. 타향살이. 자유롭기는 하나 대개는 몹시 쓸쓸한 타향살이. 야심만만하다고? 공교롭게도 그녀가 철저히 독립적인 저 페미니스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도 야망이 큰 건 사실이다.

"뭐, 그 여자를 추종하는 학생들이 생겨난 건 당연히 그 여자의 상호텍스트적 매력 때문이지. 그 여자와 현상학의 관계 말이야. 그 여자대단한 현상학자거든

결국 인식의 문제다. 그들이 빈정대는 투로 ‘같잖은 프랑스적 아우라’라고 부르는 것을 남자 종신교수들에게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 델핀에 대한 그들의 시선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결사대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유혹을, 그들에게 자신도 프랑스적 아우라를싫어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난 가문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통념을 벗어나 스스로를 세워나갈 거야. 너무도 당연시되는, 한계까지 치닫는 열정적인 주관주의, 절정에 이른 개인주의에 맞서 싸울 거야.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델핀을 싫어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델핀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델핀은그들이 못 견디게 싫다. 어쩌다 그녀는 이렇게중간에 끼어버렸을까?

야망. 모험. 매혹. 미국으로 건너가는 것에의 매혹. 우월 의식. 떠남이라는 행위에서 오는 우월 의식. 언젠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위해, 야망을 이루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위해 떠나왔는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떠나왔는데. 무슨 말을 듣고 싶었느냐고? "그애가 해냈어. 그애가 해냈다고. 그런 일을 해냈으니 앞으로 걘 뭐든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런 모든 가문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생겼으며, 숨막힐 듯 답답한 똑같은 가치들과 숨막힐 듯 답답한 똑같은 종교적 규칙을 공유하는 순혈의 오래된 지방귀족들을 몹시 증오했다

그의 눈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뜨면, 이번에는 그녀가 저지른 일과 거기 쏟아질 조롱들이 눈에 비친다. 눈을 뜨면 자신의 치욕이, 눈을 감으면 그가 산산조각 나는 모습이 아른거려서, 밤새 그녀는 고통이라는 진자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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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휴먼 스테인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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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하는 인간들 본전 챙겨주자고 상대한테 맞아주라고? 열다섯번째 줄에 앉은 누군지도 모를 재수 없는 새끼 기분까지 헤아리라고? 내가 139파운드에 5피트 8인치 반이고, 상대는 145파운드에 5피트 10인치나 되는데 밀리는 척하느라 머리에 네 번, 다섯 번, 열 번, 공매를 맞아주라고? 그런 쇼는 너나 해라, 자식아.

뉴욕대에서 고전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이고, 안경사에 식당차 웨이터에 아마추어 언어학자 겸 문법학자 겸 규율가 겸 셰익스피어 학도였던 고故 클레런스 실크의 아들인 그가 대답했다.

머리를 좌우로 홱홱 틀며 주변을 살피는 폼은 또 어떻고. 아, 정말 끝내주는 녀석들. 최고다. 까옥거리는 소리. 시끄러운 까옥 소리. 들어봐. 한번 들어보라구. 아, 난 저 소리를 사랑한다.

하기야 나는 까마귀 둥지 옆에 사는 것뿐이지 둥지 안에 사는 건 아니니까. 나도 둥지 안에 살 수 있으면. 까마귀로 살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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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휴먼 스테인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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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그를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거의 명령조였다. 그가 그 터무니없는 사건에 대해 쓴다면, 전혀 보태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쓰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내 편이 되어달라고 찾아갔을 때 그 친구가 한 말이네. 그것도 내 면전에서.저는 저 사람들 편에 서야만 합니다. 저 사람들이라니!

무관심. 오만. 냉담. 개인적 고민. 뭔지 누가 알겠소?’ 그자들이 물었지. ‘그러면 그런 요인들에 비추어 이 학생에게 어떤 긍정적 충고를 해주셨나요?’ ‘충고 같은 걸 할 수 없었소. 한 번도 그 학생을 본 적이 없으니까.

아직도 충분히 생기 넘치는 인간의 내면을 계속 갉아먹는 굴욕적인 불명예

그건 뭐랄까, 샌클러멘티에 웅크리고 있는 닉슨을 찾아갔을 때, 목수가 되는 것으로 자신의 패배에 대한 속죄를 시작하기 전에 조지아에 있던 지미 카터를 찾아갔을 때 볼 법한 상황이었다

그러고는 그 이상하고 평온한 만족감 속에서 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타고난 섬세함의 상당 부분을 쾌락을 손에 넣어 소중히 다루는 데 써버렸던 멋진 지난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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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미국의 목가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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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 오천만 명이 거대한 칠면조 한 마리를 먹는다. 거대한 칠면조 한 마리가 모두를 먹이는 것이다. 이상한 음식과 이상한 방식과 종교적 배타성은 유예되고, 유대인의 삼천 년 묵은 노스탤지어도 유예되고,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기독교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히는 것도 유예된다.

모든 불만과 원한이 유예된다.

평소에 늘 다른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미국의 모든 사람이 그렇다. 이것이 최고의 미국의 목가이며, 딱 스물네 시간만 지속된다.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메리가 애프터눈티를 마시던 곳. 그애가 강간을 당하기 전에. 메리는, 그의 여섯 살 난 딸은 수석 웨이터와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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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미국의 목가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8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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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아이에게 준 모든 것, 삶이 아이에게 제시한 모든 것, 삶이 아이에게 요구한 모든 것, 아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아이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그것을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는 전에는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지침,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강제로 아이의 입을 비틀어 열었다.

"말해!" 스위드는 다그쳤다. 마침내 아이의 진짜 냄새가 그에게 이르렀다. 썩어가는 산 것과 썩어가는 죽은 것의 악취를 제외한 가장 고약한 인간 냄새.

아이가 폭탄으로 날려버린 네 사람?그것은 너무 기괴하고, 너무 어마어마해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세 아이의 어머니이고, 다른 사람은 막 결혼했고, 또 한 사람은 이제 퇴직할 참이었고……아이는 그들이 누구이고 뭘 하는 사람들인지 알았을까…… 그들이 누구인지 관심이나 가졌을까

그가 그렇게 보호벽을 세워놨는데 아이가 강간을 당하다니. 그렇게 보호를 했는데 아이가 강간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니. 나한테 다 이야기해! 그놈들을 죽여버리겠어!

그는 세상 최악의 도시에 남은 마지막 공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하지만 폭동 기간에 앉아 있을 때보다도 심각했다.

스프링필드 애비뉴가 불에 탔고, 사우스오렌지 애비뉴가 불에 탔고, 버건 스트리트가 공격을 당했고, 사이렌이 울려퍼졌고, 무기가 발사되었고, 지붕 위의 저격수들이 가로등을 쏘아 깨뜨렸고, 약탈하는 군중이 미친듯이 거리를 돌아다녔고, 아이들이 라디오와 램프와 텔레비전을 들고 다녔고, 남자들이 옷을 한아름 안고 다녔고, 여자들이 술 상자와 맥주 상자가 잔뜩 쌓인 유모차를 밀고 다녔고, 사람들이 도로 한가운데에서 새 가구를 밀고 다녔고, 소파와 아기 침대와 식탁을 훔쳤고, 세탁기와 건조기와 오븐을 훔쳤다.

그들의 힘은 엄청나고, 팀워크는 흠잡을 데가 없다. 유리창을 박살내는 일은 전율을 일으킨다. 물건값을 안 내는 것에 도취된다.

아버지가 세우고, 아버지가 그에게 맡긴 사업이 그들의 손에 모두 타 잿더미가 되기 전에……

하지만 그는 계속 남는다. 떠나려 하지 않는다. 뉴어크 메이드는 뒤에 남는다. 그러나 그것도 아이가 강간을 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는 공장을 파괴자들에게 내팽개치지 않는다. 그뒤에도 노동자들을 버리지 않는다. 그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그래도 그의 딸은 강간을 당한다.

소리도 있었다?쿵 하는 소리, 아이의 비명, 아주 비좁은 공간에서 후다닥 달아나는 소리. 절정에 오른 한 남자의 무시무시한 울부짖음. 남자의 끙끙거림. 아이의 훌쩍거림. 엄청난 강간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뭔가를 해보려고 점점 더 미쳐간다.

스위드가 그 화가에 관해 묻거나 묻지 않은 것,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 알거나 알지 못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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