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진단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다고 해도 ‘환자를 대하기에 적당한 말투와 태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솔직히 화가 났습니다. 희망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비관적으로 단정 지어버리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좌절감에 휩싸였습니다
처음 겪는 섬망이라 무척 두려웠지만 나도 열심히만 하면 드라마 극본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뇌 구조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죠. 초현실주의, 혹은 비트닉1 아티스트들이 오토마티즘(automatism, 자동기술법)을 시도하며 목표했던 것도 이런 무의식적인 창작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뇌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것을 이토록 방대하게 축적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시간이 기울어 나를 만지고, 맑은, 금속성 울림을 퍼뜨린다. 나의 감각이 떨린다. 나는 느낀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그리하여 나는 조형적인 하루를 손에 넣는다.
‘뮤직’이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 뮤즈에서 유래했습니다.
A를 부정하고 거기에 반하는 B와 대치해 결과적으로 C에 도달한다는 헤겔의 변증법
산과 산의 언저리에 언제까지나 머무는 저 구름은 여동생의 달라진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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