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켄 스토리콜렉터 1
아리카와 히로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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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전쟁' 시리즈를 통하여 내게 가장 '유쾌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아리카와 히로(有川浩)의 작품이다. 물론 도서관 전쟁은 일반 소설로서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지만, 제대로 된 그녀의 일반 소설을 읽어보고 싶기도 하였다. 표지가 만화로 되어있는 것이 특이하여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남자들의 세계'를 그려내려고 한다. 여성이기에 항상 보고있으면 부러웠던 남자들의 우정, 끼어들고 싶어도 끼어들 수 없는 그 끈끈한 세계를 재기발랄 공대생들의 눈을 통하여 그려낸다. 공대의 전설적인 동아리. 기계제어연구부. 속칭 '키켄'이 펼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유쾌하게 펼쳐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운 작품이 분명했다. 조금 과장하여 혹평하자면, 가볍지만 가벼운 게 전부인 소설이었다. 그러면서도 유쾌함과 재미는 '도서관 전쟁'보다 아쉬워 다소 건조하게 읽혔다. 화약을 터트리고 로켓을 날리는 등 확실히 좌충우돌한 이야기를 펼쳐내지만 그 거친 행위와는 다르게 재미가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했다. '키켄'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편마다 단편 형식이라 장편적인 스케일 면에서도 아쉽게 느껴진다. 후반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감동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스토리가 아쉽다.


 이러한 감상은 아마 '도서관 전쟁' 시리즈를 읽은 직후라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혹평과는 다르게 볼만한 책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쉬웠을 뿐이다.


 '도서관 전쟁' 시리즈의 표지를 그리기도 하였고 스스로도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팬이라고 말한 일러스트레이터 아다바나 스쿠모가 이번 작품의 그림 역시 담당했다는 것이 인상깊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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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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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네팔의 중서부 도시 포카라에서 오랜만에 박상민과의 재회를 나눈다. 그 뒤에는 박상민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한영교가 있었다. 박상민은 오래 전에 클라이밍을 그만두고 산악계에서 잊혀진 사람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생인 영교와 함께 둘이서 6440미터의 빙벽. 촐라체를 위험한 알파인 스타일로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왜 산을 다시 오르려는 건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그들의 캠프지기를 맡게 된다.


 '촐라체'의 이야기 구조는 굉장히 단순하다. 많은 물량과 삶을 동원하여 차례로 전진캠프를 설치하며 정상에 오르는 극지법 등반법과 다르게 로프로 서로를 묶은 안자일렌 상태로 오르는 위험한 알파인 등반법으로 촐라체를 넘어가던 두 사람의 조난기와 그것을 기록하여 소설로서 탄생시킨 화자 '나'의 이야기이다. 조난 상황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구원은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는 빤한 내용과 다르지 않다. 독창적인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감히 고백하거니와, 나는 '존재의 나팔소리'에 대해 썼고 '시간'에 대해 썻으며, 무엇보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대해, '불멸'에 대해 썼다. 천지간에 홀로 있다고 느낄 때, 세상이 사막처럼 생각될 때, 그리하여 살아 견디는 게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실존의 빙벽 아래로 투신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면 바로 소설 <촐라체>의 주인공인 '상민'과 '영교'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이 유한한 인생에서 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은, 욕망에 따른 '성취'가 아니라 이룰 수 없을지라도 가슴 속에 '촐라체' 하나 품고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 작가의 말 -


 그러나 빤한 서사 구조와는 다르게 이야기 속에 가득 차있는 '메시지'는 훌륭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삶의 무게와 운명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신음하는 인물들이다. 박상민은 사업에 실패하고 동업자의 농간으로 사기죄에 걸려 석 달간 감옥에 다녀와 아내와 이혼한 상태이고 동생인 하영교는 죽은 아버지의 빚을 받아가려던 남자의 옆구리를 칼로 찌른 뒤에 도망치는 신세이다. 비단 '촐라체'를 올라가려는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나' 역시 업의 무게에 힘겨워한다. 낯선 여인에게 당신의 아이라면서 아이를 건네받고 꿈과 같았던 글쓰기를 포기한 후 아들을 위해 살아왔건만, 아들은 갑자기 "......그리워서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중이 되겠다며 집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맨몸으로 거대한 빙벽을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의 나머지 말을 듣지 않고 나는 무전기를 끈다. 두 피치 전에 무전기를 통해 그가 고백한 것은 '그놈....... 중 되겠다고'였고, 이제 내가 고백한 건 '이혼'이다. 각각 달리 출발해 왔는데 산행의 백그라운드가 되는 생의 그늘이 너무 닮았다는 게 신기하다. 그것만 닮은 게 아니라 고백을 듣고 나서 딴청으로 대꾸하는 습관도 닮아 있다. 말이 때론 소음이라는 걸 그와 내가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촐라체'를 넘는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로프 하나에 의지한 채 맨몸으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추락과 환각의 공포에 맞서 싸우는 이 모습은 자신들의 삶에 닥친 위기를 돌파해내야 하는 그들의 현 상황을 암시한다. '촐라체'라는 높은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크레바스는 그들의 삶에 박혀있는 위기와 동일하다. 그렇기에 지금 삶에 위기다 닥친 그들은 맨몸으로 미친 듯이 산을 넘어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산을 넘는 그들뿐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며 글을 써내려가는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지켜보며 초조해하고, 랜턴 빛을 밤새 밝히고, 조난당한 그들을 찾으러 다니고, 산을 넘고 있는 그들과 기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널 살릴 거야. 나는 혼잣소리로 화답했다. 아냐. 네가 아냐. 나락으로 추락한 나를 더 이상 버려두지 않겠어. 너희와 함께 나의 남은 인생도 살리고 싶어. 너희를 살리고, 내 가슴속 이 폐허를 히말라야에 반드시 부려놓고 갈 거야.


 험한 빙벽을 맨몸으로 넘으며 죽음을 넘나들다가 조난당하고, 그런 그들을 살리기 위해 찾는 모습과 그들이 어두운 삶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올라가는 산행의 모습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한줄기 '희망'임에 분명하다.


 단순한 서사 구조지만, 나는 이 작품이 오히려 박범신 작가와 첫만남을 가지게 해준 '은교'보다 재미있었다. 빤하다면 빤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곳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형제애, 그리고 글쓰기라는 '꿈'을 쫓아나가고 결국에는 작가의 탄생을 보여주는 '나'의 모습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두운 삶이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 단순한 이야기를 묘사하는 박범신 작가의 문장은 여전히 빛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상민'과 '영교' 두 사람의 모습이 실제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이 촐라체 등반에서 겪은 조난과 생환의 경험을 모티브로 삼아 그려졌기에 더욱 감동이 컸는지도 모른다. 빙벽에서 추락한 최강식을 포기하지 않고 끌어올려 손가락 발가락을 잃고도 결국에는 목숨을 구해 살아돌아온 그들의 모습을 뇌리에 그리면 숙연해진다.


 얼마 전에 읽었던(감상은 아직 적지 못했지만) 요코야마 히데오의 <클라이머즈 하이> 또한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등산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촐라체>와 <클라이머즈 하이>는 장르부터 다르지만, '산'을 통하여 '삶'을 그려냈다는 점에는 일맥상통하다. 무엇이 산악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산을 오르게 만드는 것일까. 나로서는 그들의 내심을 옅보는 것이 어렵고, 또한 그렇기에 더욱 숭고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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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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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고구려'는 역사소설이다. 우리 한반도 땅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고구려를 비롯한 역사 속 국가와 인물들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펼쳐내기 때문이다. 친숙한 역사에서 일어나는 이 거대한 서사를 보고있으면, 소설의 재미를 넘은 무언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느낌에 감탄도 나온다. 그동안 몰랐었던 고구려의 깊은 이야기와 역사를 읽고 있으면 이 땅의 역사를 내가 몰랐다는 것에 부끄러움까지 일어난다. 과연 이 소설이 완결되었을 때에는 우리들이 '삼국지' 대신에 '고구려'를 먼저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이 '고구려'는 역사소설로서는 대단하다.


 그러나 소설의 읽는 재미를 먼저 우선시하는 장르소설 독자인 나로서는 이 작품이 과연 '재미있는 작품인가?'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섯불리 훌륭한 작품이라 대답하기 어렵다. 특히 역사적인 사실만으로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세세한 부분에서 구성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을불이 너무 간단히 왕위를 찬탈한다던지, 주아영이 딱 좋을 때에 현도태수의 필체를 위조한다던지. 실제 역사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간단한 방법으로 거사가 뒤바뀌는 것일수도 있으나.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허술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저 그랬다'.


 동시에 역사소설에 대한 경계심도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역사'소설이라지만, 이것은 '소설'이다. 역사를 소재로 하지만, 소설의 기본은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하느냐'에 달렸다. 이 작품이라고 허구가 없을 수는 없다. 역사에 나와있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남아있지 않은 기록도 있을 것이다. 허구 없이 이 장대한 서사를 어찌 부드럽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글을 수용함에 있어서 이 소설을 역사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과 충분한 비판이 곁들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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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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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삶'을 느끼게 만드는 좋은 소설을 읽게 되면 책을 읽던 도중 여운과도 같은, 이상한 공백에 휩싸여서 잠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활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그 빈 공간이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와 주변에서 소리가 사라지고 바깥을 향해있던 눈이 내면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곳(우주나 바다, 혹은 사막)에 알몸으로 던져진 듯 기묘한 여운을 느끼며 '삶' 혹은 '인생' 에 대해 생각하다 정신을 차리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정신을 차리고 난 후의 '나'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보통 담백하게 쓰여진 힐링소설이나 작가 자신의 삶을 담아낸 자전적 소설에서 얻게 되기 마련인데, 설마 읽으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유쾌한 청춘소설에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2010년 서점대상 3위를 수상하기도 한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청춘소설. 요노스케 이야기(横道世之介)는 웃음이 터질 정도로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결코 유쾌함과 가벼움만으로 끝나지는 않는 '삶'을 보여준 작품이다.


 아들에게 새로운 생활은 희망이지만, 어머니에게 새로운 생활은 걸레였던 모양이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불은 도착했니?"라는 말부터 물었다.

 어머니가 걸레라면, 아버지는 '새로운 생활 = 이불'인 모양이다.


 대학생이 된 열여덟 살 요코미치 요노스케는 고향인 규슈에서 벗어나 도쿄로 상경한다. 생소함을 느끼며 계약한 맨션에 찾아간 그는 이웃인 고구레 교코를 만나게 된다. "왠지 대단하네요. 저 같은 놈은 기껏해야 자기 소개할 때 할 말이 요노스케의 유래 정도인데"라는 그에게 교코는 말한다. "무슨 소리야. 앞으로 온갖 것들이 늘어날 텐데." 그 때부터 대학에 입학하고, 친구를 사귀고, 동아리에 들어가고, 여자친구를 사귀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는 요노스케의 청춘이 시작된다.


 읽고 있으면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유쾌하지만, 결코 이 소설은 과장된 코미디나 판타지 인생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요노스케의 청춘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요노스케 이야기>라는 제목 그대로 어디에나 있을 법한 대학생 인생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상적인 생활이나 계획성 있는 미래 성계가 아니고, 오히려 쓸데없고 허망한 시간을 더욱 많이 그려낸다. 실제로 대학생인 나 스스로도 그 청춘에 공감하는 일이 많았고, 그러한 일반적인 이야기임에도 유쾌함을 안겨준다. '청춘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 또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교코에게 작별을 고하고 요노스케는 자전거를 세워둔 1층으로 내려갔다. 자전거를 구르며 달려가는데 왜 그런지 맨션에 처음 도착했던 날이 떠올랐다.

 인도 유학을 다녀왔다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교코 앞에서 자기는 요노스케라는 이름의 내력밖에 할 얘기가 없다며 몹시 부끄러워했다.

 "무슨 소리야. 앞으로 온갖 것들이 늘어날 텐데."

 교코는 분명 그런 말로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교코가 "그때보다 빈틈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변에 뭔가가 늘어났을 거라고 요노스케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렴풋하게는 알 것 같았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자기 곁에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요노스케는 책에서 다루는 1년 동안 도쿄로의 상경 이후 많은 만남과 많은 일을 겪으며 자신도 모르게 점점 성장해나간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던 어떠한 계기로 인한 내면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부분이 충분히 가슴 속까지 다가온다. 요노스케는 이웃집 사진작가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보도사진 작가가 되고, 부잣집 철부지 아가씨가 난민과의 조우를 통하여 국제연합의 직원으로 일하게 되기도 하고, 대학 동기가 책꽂이 고립을 계기로 연인이 되어 일ㄴ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작품은 '우연한 계기'가 우리 인생을 깊숙이 지배한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서 생 앞에 숙연해지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런 부분 때문인지 모두 읽고 나면 청춘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숙연함이 느껴진다. 재미있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되겠지'라는 낙천적인 태평함도 함께 다가온다는 것이다.


 "......요노스케, 나 말이지, 열심히 살 거야.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갈 거야. 너밖에 없었어. 이사 도와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고맙다. 어쨋든 유이랑 함께 열심히 살아볼게."

 난데없이 눈물을 보이는 구라모치 앞에서 요노스케는 품에 안은 상자를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릴 뿐이었다.


 이러한 '우연한 계기로 인한 성장과 구원'은 단순히 요노스케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요노스케라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또한 성장하게 된다. 그러한 장면이 극적으로 그려지거나 대단한 행위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담담하게 그려지는 것이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만하다.


 요노스케와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시절에 요노스케와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1년 동안의 대학 생활만 그려내지 않는다. 중간 중간 등장인물들의 20년 후의 모습을 그려내며 재미를 더한다. 20년 후의 사람들은 요노스케와는 이미 멀어져서 그를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를 생각나게 만드는 무언가 때문에 그들은 다시 요노스케를 생각해내고, 즐거운 듯이 웃거나 눈물을 흘린다. 그러한 모습이 슬프고, 유쾌하면서도 또한 숙연함을 가져온다.


 정말 재미있었고, 그 이상의 감동과 여운을 안겨준 훌륭한 걸작이다. 최근의 일본 소설은 대부분이 독자에게 감정과 시사점을 전달하기 위하여 과한 판타지와 허구의 이야기로 독자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박아넣는 듯한 단점이 여러 부분에서 보여진다. 그런데 요시다 슈이치 작가는 다르다. 오히려 더 과장되었어야 할 청춘소설이라는 장르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리얼리티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더욱 가슴에 다가왔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많은 것을 얻은 작품임에도 아쉬운 마무리 때문인지 뒤끝은 개운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주변 인물들과의 이야기도 모두 마무리 지어지지 않고 짧게 끝나버린 이야기(오히려 그런 현실적인 인간관계가 매력이기도 하지만)도 아쉽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요노스케에게 많이 감정이입을 했기에 안타깝게 끝나버린 결말에 울적해졌다.


 요시다 슈이치는 2009년 봄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작품. <요노스케 이야기>를 통해 사상 최초 한일 동시출간이라는 전례를 남기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이 소설에는 배경이 되는 당시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유학생 '김 군'과 같은 등장인물, 그리고 일본인을 구하려다 전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한국인의 의로운 죽음을 연상시키는 사건 등의 소재가 등장하여 우리에게도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와 더욱 재미를 끌어올린다.


 정말. 한번쯤 읽어봐도 나쁘지 않다. 아쉽게 느껴지는 마무리 때문에 '꼭 읽어라!'라고 강하게 추천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는다는 '우연한 계기'를 통하여 조금은 인생과 청춘이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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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더 & 스파이 - Seed Novel
남민철 지음, ill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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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게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던 시우에게 하얀 원피스를 입은 미녀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찾아온 미녀에게 웃음을 짓기는커녕 집 안에 들어가 꽁꽁 숨어버린다. 바로 그녀. 아그네스가 CIA 요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붕어빵 장사를 하며 평온한 생활을 누리고 있던 전 요원과 사랑하는 이를 따라 기관에서 은퇴하고 찾아온 소녀의 첩보 러브 스토리가 펼쳐진다.


 "이 책.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모두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일단 이것이었다. 이 책에는 온갖 첩보물에서 가져온 소재들이 수정 하나 없이 그대로 사용된다. 은퇴한 요원과 그를 찾아온 요원이 사건에 휘말리고, 그를 지키기 위하여 비장하게 홀로 몸을 던지지만 그대로 사로잡혀버리는 히로인. 그리고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가 적들을 섬멸하고 그녀를 구해내는 히어로. 이건 좀 심하게 노골적이다. 이전에 클리셰라고 혹평했었던 '맹약의 리바이어던'조차 작가만의 독특한 색깔과 소재로 완성되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 수정 하나 없이 노골적인, 최근 읽은 작품들 중 가장 최고의(어떤 의미로는 최악의) 클리셰라고 할만하다.


 첩보물에서 많은 내용을 따왔지만, 그러면서도 첩보물의 심각함과 진지함. 말하자면 처절함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진지한 내용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고 싶어서 기관에서 너무나 쉽게 은퇴하고 그의 곁으로 간다는 내용부터 짐작되듯이 이 작품은 첩보물이라기보다 러브코미디 라이트노벨에 가깝다. 장르 자체가 라이트노벨이기에 그것은 흠이 되지 않으나, 문제는 '가벼움'을 위한 유머와 코미디가 너무나 센스가 부족하며, 내용의 유치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인지 첩보물로서는 물론 러브코미디로서도 다소 아쉬운 애매한 작품이 되었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일러스트 또한 퀄리티가 높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아쉬운 작품이었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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