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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사쿠라바 카즈키(桜庭一樹) - 토막 난 시체의 밤(ばらばら死体の夜)
◇ 평점 ★★☆☆☆
- 어둡고 차가운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듯 한 공포를 묘사하며 그 속에 사회성을 담아내 거품경제 붕괴 이후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과,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욕망 그리고 비극을 그려낸 사회파 소설. 사쿠라바 카즈키 특유의 선정적이면서 강렬한 문체가 드러나지만 진의를 알기 어려운, 잡문에 가까운 글 솜씨와 구원 없는 결말은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주지 못했다.
*이 감상에는 토막 난 시체의 밤(ばらばら死体の夜)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마흔이 넘은 번역가 요시노 사토루는 고학생 시절에 하숙했었던 진보초의 고서점에 들렀다가 이층에서 수수께끼의 미인. 시로이 사바쿠를 만나게 됩니다. 빼어난 미모와 가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묘한 분위기를 보이는 그녀에게 매료되어 욕망을 털어놓으며 관계를 가지게 되지만 사바쿠는 사토루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돈을 줘."라고...
토막 난 시체의 밤(ばらばら死体の夜)은 사쿠라바 카즈키(桜庭一樹)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인간 내면의 공포를 묘사하며 일그러진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공포'는 섬뜩하다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 어둡고 끝이 없는 골목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는 듯 한 차가운 공포를 묘사합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멍은 마을 이곳저곳에 움푹움푹 , 뚫려 있다.
이 책은 명백한 사회파 소설입니다. 부자인 아내와 결혼하여 명품 옷을 입으며 대학 강사와 번역가라는 번듯한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아내 몰래 300만엔의 빚에 허덕이고 있는 채무자인 요시노 사토루와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소비자를 현혹하는 대출 광고에 넘어가 다중 채무자로 전락하여 300만엔의 빚을 이고 살며 방세가 싼 고서점에서 하숙하고 있는 사바쿠. 작가는 이 두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려냅니다.
"......누군가가 이득을 보고 있어."
집주인이 유쾌하게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이런 불경기에,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어딘가에서 솜씨 좋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어. 그것이 세상이라는 거야, 요시노 군."
마흔이 넘은 요시노 사토루는 부자집에 장가를 가 번듯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둔 채무를 해결하지 못하고 허덕입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장인과 아내의 세계에서 동떨어진 듯한 괴리감을 느끼고, 아내와 함께 잠드는 침실을 '우주선 같다'며 괴이하게 묘사하고, 간접 조명에 이상할 정도로 빛나는, 치아 교정을 받은 아내의 인공적인 치열 등을 통하여 '부귀영화'같은 것을 이상할 정도로 삐뚫어지게 묘사하며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가난한 오두막집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던 요시노 사토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대출 광고에 넘어가 그 돈으로 성형을 하고, 명품으로 치장하다 결국에는 포기한 듯이 살고있는 시로이 사바쿠를 만나게 되고, 그 몸에 자신의 욕망과 어두운 그늘을 털어놓으며 관계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사토루를 돈 많은 남자로 알고있는 사바쿠는 그에게 자신의 채무를 갚기 위한 돈을 달라고 합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같은 300만엔의 빚을 지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는 운명과 같은, 신의 부름과 같은 무엇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죽인 후, 시체를 토막 내어 처리합니다. 그 후 자신이 몰두하던 번역을 마친 그는 책의 인세로 드디어 빚을 모두 갚아버립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오두막집에 혐오감을 느끼고, '우주선'이라고 묘사한 침실에서 안심하고 포근하게 잠들며, 장인과 처남, 아내의 대화를 긍정하게 되고, 학창시절 동창인 사토코가 항상 두려워하던 어두운 그늘이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돈 꽃이 시들었나.
땀방울을 흘리고, 열심히 일하면,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아름다운 돈 꽃이 핀다, 그것은 고작 여유롭던 쇼와 시절의 철학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필경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리 간단히 좋은 일을 찾을 수 없고, 그러기는커녕, 세상의 불경기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면 온힘을 다해 최선을 다한 사람까지 함께 시류에 흘러가버려, 모든 것들이 끝장난다......
이렇듯 작가는 어두운 그늘과 욕망을 가지고 있던 사토루를 묘사하며 빚에 허덕이는 어두운 사회를 그리고, 그가 자신과 같은 처지이자 '가난, 실패, 어두움' 등을 대표하는 사바쿠를 죽여 토막냄으로서 그것들과 이별하고 빚을 갚은 후 다른 사람이 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사쿠라바 카즈키는 작품 전체에서 대출과 그것으로 인한 빚, 거품경제 붕괴 이후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의 일본 사회상을 그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보여주는 비극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진의는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 부분이 엉망진창으로 어긋나서, 모든 것이 토막 난 인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진의를 깨닫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글 전체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어찌보면 잡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돈되지 못한 글 솜씨를 보입니다. 그것에 더해 아무리 거품 경제 붕괴 시절의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구원조차 없는 결말은 허망했습니다.
이 책이 끌렸던 이유 중 하나는 '내 남자(私の男)'에 가까운 분위기와 문체를 보여준다는 책의 소개였는데 직접 읽어본 봐로는 전혀 달랐습니다. 내 남자와 비슷한 구석은 선정적이고 강렬한 성관계 묘사 뿐, '내 남자'에서 보여줬던 뜨거운 피가 약동하는 듯한 문장과 흡입력,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묘사를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던 작품이지만, 빈말로라도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었던 책이었습니다. 특히 '내 남자(私の男)'를 생각하고 읽는다면 말리고 싶네요.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