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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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접하게 된 김려령 작가의 문장에 놀랐다. 날카로운 재치, 생동감 넘치는 대사, 속도감있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이 짧은 책 속에 담긴 슬픔과 감동, 그리고 여운은 어떠한가. 정말 놀라운 작품과 그보다 놀라운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생활고에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갑작스레 mp3를 사달라고 하던 아이, 시험이 끝나면 언니의 책상을 리폼하려고 하던 아이의 갑작스러운 자살. 평소의 활발함과 미소에 어떤 무게를 달고 살았던 것일까.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언니인 만지는 천지의 생활을 거꾸로 되감아간다. 

 이를 악문 엄마의 입에서 삼켜도 삼켜도 끓어오르는 울음소리가 났다. 그때는 몰랐는데, 셋이서 찍은 사진이 흐뭇해서 마냥 좋아만했는데, 이제 보니 활짝 웃은 천지의 눈동자가 지나치게 슬펐다. 저 웃는 얼굴에 물방울 하나 찍으면 영락없이 우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무뚝뚝한 만지 얼굴이 훨씬 여유 있고 편안해 보였다.

 200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책에는 무거운 현실에 힘들어하는 오늘날 10대 청소년의 인간상을 그대로 표현했다. 작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아내면서도 무겁지 않게 표현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 생동감 넘치는 재치로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가족을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그 가벼움이 주제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이 보기에는 단순하고 사소하게만 보이는 버거운 일상이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상처를 숨기기 위하여 천지에게 칼날을 겨누었던 화연에게는 그 상처가 더욱 크게 벌어져서 돌아온다. 단순히 화연뿐만이 아니라, 속 편한 방랑자로만 남아있던 미라에게도, 그녀의 아픔을 이해해주지 못했던 민지와 엄마 또한 상처를 받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이 우리와 같은 상처를 가진 인간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자신이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남을 상처입힌다. 작가는 그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짧은 작품임에도 정말 재미있었다.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분명 슬픈데, 슬프지만 그럼에도 당당하게 살아나가는 천지의 가족 이야기는 따뜻하고 유쾌하다. 그리고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을 감싸안으며 용서하는 결말에는 공감은 하지 못하였지만(나 같았으면 막말로 죽여버렸다) 깊은 여운과 교훈이 남았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아들!"하고 부르는 엄마가 생각난다. 항상 밝고 유머러스한 어머니가 격하게 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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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전쟁 - NT Novel 라이트 노벨 도서관 시리즈
아리카와 히로 지음, 민용식 옮김, 아다바나 스쿠모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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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

 1. 도서관은 자료수집의 자유를 가진다.
 2. 도서관은 자료제공의 자유를 가진다.
 3.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4. 도서관은 모든 부당한 검열에 반대한다.

 도서관의 자유를 침해당했을 때 우리들은 단결해서 끝까지 자유를 지킨다.

 미디어의 검열을 강화하는 법률. '미디어양화법'이라는 갑작스럽고 강제적인 법률이 시행된지 30년. 그 검열과 검열권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서관은 체계적인 도서대를 조직하고 '도서관자유법'을 시행한다. 어릴적 서점에서 책을 지키려던 주인공 이쿠를 도와준 도서감을 동경하여 도서대방위원에 지원한 이쿠는 정예부대인 도서특수부대에 배속된다.

 갑작스럽게 제정된 '미디어양화법'에 의한 검열 때문에 작가들은 책을 제대로 출판하지 못하고, 서점 직원 역시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책을 제대로 판매하지 못한다. 모든 미디어는 검열되어 국민들은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지 못한다. 그 와중에 미디어를 통제하기 위하여 폭력적인 단체를 지원하여 '히노 도서관'을 습격한 사건은 무섭기까지 하다. 사망자만 열 두명, 히노 도서관이 소유하고 있던 책들은 불타올랐다. 도서관의 신고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건에서 아내와 다리 한쪽을 잃은 이나미네는 지방행정의 자립, 나아가 오랫동안 풍문으로 떠돌고 있던 일본 도주제의 실현까지 노린 국가와 지방의 대립을 이용하여 도서대를 조직한다.

 경찰이 상황에 따라 원칙을 뒤흔든 결과가 20년 전에 있었던 '히노의 악몽'이다.
 원칙은 상황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은 당시 사건을 알고 있는 경찰관계자에게 도서관이 던지는,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한 비판이며 야유였다. 경찰은 당시 도서관에 대해 사법의 원칙을 굽혔던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은 자위의 길을 나아갔다.

 책이 출판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지금에 와서 읽으니 단순히 이 도서관 전쟁의 세계관이 소설 속의 이야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강제적인 법률. 그로 인간 과한 미디어의 검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 '미디어의 검열'에 대한 비판을 아리카와 히로(有川浩) 작가는 책 속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이루어낸다.

"'과격한 책이나 영화를 즐기던 미성년자가 범죄를 일으켰다고 해서 모든 어린이가 마찬가지로 범죄를 저지른다고는 생각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책 속에서는 소년 살인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소년 살인자의 방에는 호러 소설이 꽂혀있었다. 국가는 미디어를 이용하여 이 점을 부각시키고 국민들은 동요한다. <어린이의 건전한 성장을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단체는 학교 도서관의 규제를 추진하는 단체이다. 이 단체가 칸토 도서관과 회의를 벌이며 미성년자 살인자를 들먹이며 아이들의 자유로운 독서를 제한하는 독서 규제를 추진하고자 한다. 그러자 직접 학교에 다니고 있는 소년들이 등장하여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모임 회장의 주장에 반박한다.

 '미디어양화법'을 앞세운 탄탄한 세계관으로 비유한 미디어 검열에 대한 비판이 녹여져 있으면서도 이 도서관 전쟁(図書館戦争)이라는 작품은 라이트노벨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재미조차 놓치지 않는다. 이쿠라는 유쾌하면서도 활달한 주인공을 통하여 가볍고 재미있는 일상생활을 그려내고, 화려한 전투 장면과 액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사이에 들어있는 상관과 동료들과의 인간관계와 갈등, 로맨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성장은 대단히 재미있다.

 하지만 이런 탄탄한 세계관임에도 구멍이 없지는 않다. 법치주의 국가의 사법제도라는 바탕 속에 양화대와 도서관만 전쟁을 일으킨다는 설정 때문인지 이곳 저곳 허술함이 보인다. 총알이 오가며 사망자가 나오는 교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양화대원의 붙잡히면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넘겨주고 그 부상자를 양화특무기관이 회수한다던지... 적을 붙잡았는데 그냥 치료하고 데려가라니, 도저히 전쟁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허술함이 다소 아쉽기도 했다.

 "호러로 살인범이 늘어난다면 13일의 금요일에는 도쿄 구석 구석에 제이슨이 돌아다니는 사태가 벌어질걸."

 매력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하여 유쾌함을 안겨주었다. 단순히 재미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미디어 검열 상태와 맞물려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놀라운 책이다. 이게 라이트노벨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감탄했다. 정말 감탄했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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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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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정 작가의 베스트셀러. '7년의 밤'은 사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다. 당시에 재미있게 읽지 못하여 다소 아쉬움을 느끼며 책을 덮었는데, 계속해서 들려오는 호평과 존경하는 독서가 분들의 호평에 다시 책을 펼쳐 글자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이라는 생각만 남았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은교'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박범신 작가는 정유정 작가를 두고 "여성 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는다.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다."라고 말한다. 실로 그렇다. 그녀의 글은 도저히 여류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고, 힘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스토리텔링 재능이 장난이 아니다. 그녀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생생함은 상상 이상이다. 그 속에 담긴 사회비판 또한 훌륭하다. 왠만하면 국내 소설을 접하지 않는 나로서도 그녀의 글에 빨려들어간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 '7년의 밤'이라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지 못했는가? 그녀는 범죄 소설로 보이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어쩔 수 없는 삶의 잘못된 선택에 직면했을 때의 인간 군상과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결말을 내기 위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과하게 구체적이고 설명적이라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하고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방향과는 다른 의외의 결말이나 반전을 기대했으나 그런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자는 여전히 살인자고, 주인공은 구원을 얻지만 여전히 살인자의 아들이다. 속도감 있고, 스릴있는 강렬한 작품이지만, 마지막까지 읽고나면 어째서 과거 회상 장면을 이렇게 세세하게 묘사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 때문에 재미있었던 초반부와 다르게 과거 회상 장면부터 지루함을 느꼈다.

 이 작품을 크게 재미있게 읽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유정 작가님의 신작인 '28'을 구매한 것은 독자를 몰입시키는 그녀의 필력 때문이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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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한줌 2013-07-06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몰입도가 저만 않되었던게 아니였네요 이거 왜 최고의 책이라고 선정되었는지, 아쉽네요
 
웜 바디스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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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월. 좀비의 로맨스를 다룬 아이작 마리온(Isaac Marion) 작가의 웜 바디스(Warm Bodies)가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격한 독서욕에 시달리며 구매하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읽은 황금가지 출판사의 브랜드. 블랙 로맨스 클럽의 색깔 때문에 망설여졌다. 걔중에는 스타터스(Starters)같은 걸작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틴에이저 로맨스 특유의 유치함을 간직한 작품이 많아 남성이여서 그런지 뼛속까지 오그라드는 느낌을 참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상은 아직 적지 못했지만 올해 들어서 뼈아픈 상처를 안겨주었던 좀비물이라니(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계대전Z 등. 유명 좀비물에서 제대로 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위시리스트에 넣어 놓은 것은 한참 전이었음에도 몇 달 동안이나 이 책을 사야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독서욕이 이성과 판단을 누르고 이 책을 주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심해서 구매했는데, 이 흡입력과 재미란! 만약 구매하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후회했으리라(물론 지르지 않았다면 책의 내용 조차 몰랐겠지만). 


 웜 바디스(Warm Bodies)는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만들어나가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렇기에 좀비이자 주인공의 이름은 'R'이고 히로인은 '줄리'다. 로맨스라고는 하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다. 세상은 거의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국가는 모두 멸망하였으며, 거리에는 좀비들이 넘쳐 흐르며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그런 세상에서 다른 좀비들과는 약간 다른, 독특한 좀비인 주인공 'R'의 사고는 대단히 유쾌하고 철학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이름을 잊었다는 것이 슬프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비극이다. 나는 내 이름이 그립고 다른 사람들이 잊은 이름에 대해서도 애도한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싶은데, 정작 그들이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R은 자신이 기억이 없고, 이름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하루에 한번 이상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살아있을 때에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좀비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하여. 그 역시 다른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이유 모를 욕구에 굴복하여 인간을 습격하고, 인간의 뇌를 먹는다. 인간의 뇌는 좀비에게 30초 정도의 짧은 기억과 삶을 전해주고 좀비는 그것을 통하여 잠깐이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좀비는 '살기 위해' 인간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인간의 뇌를 먹는다. 그것이 묘하게 슬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또한 독특한 것은, R이 그런 자신의 일상, 그리고 좀비의 일상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홀의 끝에서 어슴푸레한 햇빛 속으로 아이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본다. 깊은 내면, 어둡고 거미줄 친 방에서 무엇인가가 경련하는 것을 느낀다.


 이 철학적인 좀비를 보고있자면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지면서도 굉장히 유쾌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도시를 습격하여 10대 소년 소녀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페리'라는 10대 소년의 뇌를 먹고 평소와는 다르게 강렬한, 마치 직접 체험하는 듯한 페리의 기억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연인이자 사랑이던 '줄리'라는 소녀의 몸에 좀비의 피를 칠해 동료들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 그곳에서 구출해낸다.


 나는 내 입을 가리킨다. 내 배를 움켜쥔다. 그녀의 입을 가리킨다. 그녀의 배를 건드린다. 그리고 나는 창문 밖을, 무자비한 별들이 떠 있는 구름 한 점 없는 검은 하늘을 가리킨다. 이것은 살인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약한 변명이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그 건조한 쓰라림을 덜어 보려고 애쓴다.


 그는 줄리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 기억의 강렬함을 잊지 못해 '페리'의 뇌를 수시로 꺼내 한 입씩 베어먹는다. 그 기억 속에서 R은 감정과 삶을 배우며 점점 다른 좀비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페리의 기억 속에서 그는 '탄생'과 '죽음'을 보기도 하고, 페리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점점 감정을 얻어가며 줄리와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본다. 아내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손을 가슴에 얹어 본다. "죽었어." 아내 쪽으로 손을 들어 가리킨다. "죽었어."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보다가 초점을 잃어 멍해진다. "상처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 느껴져."


 그런데 웜 바디스는 단순히 사랑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R과 줄리, 로미오와 줄리엣 이 두 사람은 좀비들의 거주지에서 벗어나 인간들이 모여있는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디스토피아 소설로서의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좀비가 우글거리고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디스토피아를 개혁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좀비와 인간의 사랑을 증명하는 존재 그 자체인 R과 줄리는 대적하는 좀비와 인간들의 사이에 서서 싸워나간다. 그리고 그 목적을 알고있는 좀비의 우두머리. '보니'들은 그들을 죽이려고 한다.


 "아니야, 너희들 때문만은 아니야. 내 말은, 그래, 너희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었다는 거야. 정말 예전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전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붕괴 현상은? 세계적인 대홍수는? 전쟁과 폭동과 끊임없이 터지는 폭탄들도? 이 세상은 너희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어. 너희들은 그저 마지막 심판이었을 뿐이야."


 좀비에게 희생당한 피해자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줄리의 입을 통하여 작가는 좀비가 사람을 살육하는 이 디스토피아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좀비들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세상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을 고치고자 행동한다.  '좀비'라는 소재를 통하여 과격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려내고 그곳에 전쟁과 정치적 책략이 판치는 현대 사회를 투영하여 비판하는 부분이 감탄스럽다.


 독특한 소재를 통하여 로맨스 소설로서도, 디스토피아 소설로서도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하지만 철학적인 좀비 주인공을 통하여 높은 흡입력과 재미를 그려낸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그렇듯이 유치함이 느껴지면서도 허술한 이야기 전개에 아쉬움을 느끼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블랙 로맨스 클럽에서 출판된 리사 프라이스 작가의 스타터스(Starters)도 그러하듯, 탄탄한 구성을 통하여 세계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걸음이 따라가는 대로, 우연히 세계가 바뀌는 과정을 허술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결말 역시 무언가 부족하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나타나는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미숙하고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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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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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인 요코야마 히데오(橫山秀夫)는 2003년 사라진 이틀(半落ち)이라는 작품으로 일본 최고의 대중문학 상인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지만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낙선했음에도 각종 미스터리 문학상 1위를 거머쥐며 대중적으로 호평을 받자 평론가들은 독자까지 비판, 이에 요코야마 히데오 작가는 나오키상과의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런 작가가 10년동안 집필하여 201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와 일본 서점 대상 2위를 따낸 작품이니 궁금할 수밖에...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예상보다 두배는 무거운 무게, 700페이지에 달하는 페이지 수에 눈알이 핑글핑글 돌았다. 과연, 내용은 모르더라도 볼륨만큼은 정말 '10년'이었다. 펼쳐보기도 전부터 부담이 되어 현기증이 났다. 그래도 안 읽어볼 수는 없는 일이라 무겁게 표지를 넘겼다. 그런데 이 부담은 딱 50페이지 정도까지만 계속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책에 빠져들어 벗어날 수 없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정말 수준이 높다.'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와 언동을 신경쓰며 조심스럽게 진행되어 나가는 속 깊은 이야기가 정말 수준이 높다. 서로의 심리를 읽고, 언론과 대립하고 조화하며 과거의 미해결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홍보담당관이자 '진짜 형사'의 이야기이자 가출한 딸을 그리며 붕괴되어가는 가정과 그 속에서 아내를 신경쓰는 남편이자 아버지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그런 '속 깊음'이 빛난다. 이 소설은 단순히 볼륨만 '10년'이 아니라 그 재미와 깊이마저도 '10년'에 어울린다.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7일 만에 막을 내린 쇼와 64년은 새로 찾아온 헤이세이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신기루 같은 해였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범인은 그 쇼와 마지막 해에 일곱 살 소녀를 유괴, 살해한 뒤 헤이세이의 새로운 세상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64는 맹세와 다짐의 기호였다. 이 사건은 헤이세이 원년의 사건이 아니다. 반드시 범인을 쇼와 64년으로 데려와 무릎을 꿇리겠다.


 오랜 세월동안 형사부에서 실적을 올리며 형사로서 살아오던 '뼛속까지 형사'인 주인공 미카미는 어느 날 인사 이동을 당하여 형사부를 벗어나 경무부의 홍보담당관이 되어버린다. 홍보부는 언론과 직접적으로 마주보는 곳이기 때문에 밖으로는 언론의 의심을 받고, 안으로는 '한 가족'들의 의심을 받는다. 그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미카미는 항상 형사로서만 살아온 것이 아니라 중간에 홍보실에서 2년 정도 일 한 적이 있었다. 그런 '전과'는 다시 형사부로 돌아온 다음에도 그의 이름표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지금 원하던 것과는 거리가 먼 홍보담당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아카마의 말을 따르면 홍보실은 2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이제야 조금씩 틀이 잡혀가는 개혁을 계속하고 싶었다. 물거품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바깥공기를 직접 쐬었기 때문이리라. 형사 시절에는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찰과 사회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높은 벽이 존재한다. 홍보실은 바깥 세상과 이어진 유일한 '창'이었다. 아무리 언론이 편협하고 이기적일지라도 안에서 창문을 닫아버리면 경찰 조직은 완전히 사회성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개혁'을 이룰려고 한다. 기자들에게 솔직하게 다가서서 언론과의 대립을 최소화하고 사회로 이어진 '창'을 열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미카미의 딸이 가출해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하여 26만명의 경찰들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상사에게 '복종'을 하게 된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하여, 딸을 이해해주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며 언론을 향해 열어놓았던 '창'을 굳게 닫고 기자들은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식구였던 형사들에게도 의심을 받고, 같은 홍보실의 부하들에게도 손님 취급을 받으며 힘겨워한다.


 그렇게 언론과 대립하는 사이에 '경찰청장의 방문'이라는 D현경 전체를 뒤흔들만한 예정이 생긴다. 청장의 방문을 이루어내기 위해 홍보담당관으로서의 일을 하던 미카미는 14년전 미해결 사건으로 끝난 소녀 유괴살해사건. 쇼와 64년에 일어난 일명 '64'라는 사건과 마주하게 되고, 그것을 들쑤시고 다니는 동기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파헤쳐나가며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사실이 드러난다면 형사부는 물론 D현경 전체가 무너질만한 숨겨진 진실, 그리고 그것을 노리고 형사부와 D현경을 파헤쳐 장악하려는 청장의 의도, 형사부와 경리부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 D현경의 내부는 혼란스럽게 뒤얽힌다. 그 사이에서 과거에는 뼛속까지 형사였고, 지금은 홍보담당관인 미카미는 고심한다. 자신의 행동 하나로 형사부가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과거 미해결 사건인 '64'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64(ロクヨン)라는 소설은 범인을 잡아내는 형사가 등장하는 형사 소설이 아니다. 형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범죄 수사나 사회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다른 형사 소설과 달리 그는 형사 개인의 이야기보다 '경찰'이라는 조직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구성원들의 고뇌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범죄 소설 속에 조직의 폐부와 갈등을 녹여내며 그 복잡하고도 어려운 갈등과 사건 속에서 점점 성장해나가 결국 '바깥'과 진심으로 마주하게 되는 '진짜 형사'. 미카미의 성장 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경찰 소설의 고리타분함을 지금까지 뼈아프게 느껴왔던 개인으로서는 범인 검거와 사회문제 고발과 같은 것이 아니라 조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관계와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룬 속 깊은 이야기를 펼쳐내는 이 '64'라는 소설에 일종의 문화적 충격까지 느꼈다. '이렇게 탄탄한 소설이 있을 수 있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미카미는 무슨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가? 형사부가 숨겨 온 진실과 그동안 믿어왔던 형사부장에게 분노하는 것보다 먼저 '내가 형사부로 다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생각한다. '징악'보다도 먼저 자신의 이익을 탐한다. 2년 정도 홍보담당관 자리에서 버티다가 다시 형사부로 복귀하려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 개인의 이기심을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내는지 놀랍다. 숨겨온 진실에 대한 증오와 사회 정의 실현이 '소설에서 조차' 떠오르지 않은 것은 굉장히 아쉽지만, 그렇기에 이후에 보여지는 미카미의 성장이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왜 신경을 쓰느냐고?

 "저는 올봄까지 형사부에 있었습니다. 24년 동안 형사고 살았고, 그러한 경험에서......"

 "아, 그래서......"

 형사부를 편드는 거였군. 그런 말을 들은 줄 알았는데 환청이었던 모양이다.

 "구두 말이야, 자네 구두. 처음에 들어왔을 때 무척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어."

 구두? 지저분하다고?


 장래의 경찰청장에게 쳐들어간 미카미가 들은 '구두'에 대한 지적은 이 책에 담긴 주제 중에 한가지를 꿰뚫는다. 이 질문이 마지막 장의 '새것은 아니었지만 정성껏 닦은 검은 가죽 구두'로 이어지는 구성은 얼마나 감탄스러운가.


 호리호리한 뒷모습이 옥상 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고나서 미카미도 걸음을 내디뎠다. 구두는 비들비들했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의 무게 역시 그러하리라.


 위에서는 '형사 소설'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어쩌면 진정한 의미에서 이것이 형사 소설일지도 모른다. 형사에서 벗어났음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소명을 다하는 '진짜 형사'들의 모습이 정말 멋지게 그려진다.


 익명이기 때문이다.

 익명의 벽 너머에서는 아무리 기상천외한 이야기도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 그 어떤 전개도 용납된다.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익명이란 전능한 신이며, 무한의 선택지를 허용하는 구조는 망상 그 자체다.

 실명의 무게.

 단순히 홍보실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의심을 먹으며 수없이 증식하는 '익명'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더는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사회 고발'적인 요소조차 빼놓지 않는다. 가해자를 보호하는 '익명'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홍보담당관인 미카미에게 쏟아지는 기자들의 의심과 경찰 내부의 편협함을 통해서 강렬하게 보여준다.


 '64'라는 유괴살해사건으로 시작했던 이 소설은 마지막에 다시 한번 유괴 사건으로 수렴하면서 마무리 짓는다. 그 구성 또한 감탄스럽지만 '64'라는 미해결 사건을 쫓아가면서 예상할 틈 없이 등장하는 반전과 미카미의 자식을 잃은 오열이 깨닫게 한 마지막의 충격적인 진실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14년 동안 범인을 잡기 위하여 보는 사람마다 의심스러운 눈길로 "당신이 64의 범인인가?"라고 묻고 다니던 형사와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피해자. 안타까움에 가슴이 미어진다.


 "다시 같이 일해보지 않겠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미카미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대답했다.

 "때가 되면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


 그 복잡한 인간관계와 갈등을 헤쳐나가며 느낀 재미도 재미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내용과 주제, 그리고 탄탄한 이야기 구성이 감탄스러운 책이다. 정말 수준이 높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불완전한 마무리에는 큰 아쉬움도 느껴졌다. 의도는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완전한 징악과 행복한 결말을 바랬기에...


 '64'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졌지만, 모두 읽고나니 사건과 반전은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그 뒤의 인간군상과 깊은 여운만이 남게 되는 이 '64'라는 소설은 근래에 읽은 소설 중 최고의 깊이를 지닌 작품이라고 감히 말하고싶다. 그렇기에 더욱 무겁고, 언듯 부담스럽게 보일 수 있는 책이지만, 그럼에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모두 읽고 난 후에 느껴지는 깊은 사색과 감동은 거짓이 아니기에.


◇ 이 64는 2013년 서점 대상 2위를 수상했는데, 이전부터 그랬지만 왜인지 서점 대상 작품은 1위보다도 2위에 더욱 큰 관심이 생긴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나 자신도 명확히 대답할 수 없지만. 최근에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많은지, 몸이 너무 바쁘다. 행복한 고민ㅋㅋ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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