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 바디스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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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월. 좀비의 로맨스를 다룬 아이작 마리온(Isaac Marion) 작가의 웜 바디스(Warm Bodies)가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격한 독서욕에 시달리며 구매하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읽은 황금가지 출판사의 브랜드. 블랙 로맨스 클럽의 색깔 때문에 망설여졌다. 걔중에는 스타터스(Starters)같은 걸작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틴에이저 로맨스 특유의 유치함을 간직한 작품이 많아 남성이여서 그런지 뼛속까지 오그라드는 느낌을 참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상은 아직 적지 못했지만 올해 들어서 뼈아픈 상처를 안겨주었던 좀비물이라니(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계대전Z 등. 유명 좀비물에서 제대로 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위시리스트에 넣어 놓은 것은 한참 전이었음에도 몇 달 동안이나 이 책을 사야할지 말지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독서욕이 이성과 판단을 누르고 이 책을 주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심해서 구매했는데, 이 흡입력과 재미란! 만약 구매하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후회했으리라(물론 지르지 않았다면 책의 내용 조차 몰랐겠지만). 


 웜 바디스(Warm Bodies)는 좀비라는 소재를 통해 만들어나가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렇기에 좀비이자 주인공의 이름은 'R'이고 히로인은 '줄리'다. 로맨스라고는 하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다. 세상은 거의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국가는 모두 멸망하였으며, 거리에는 좀비들이 넘쳐 흐르며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그런 세상에서 다른 좀비들과는 약간 다른, 독특한 좀비인 주인공 'R'의 사고는 대단히 유쾌하고 철학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이름을 잊었다는 것이 슬프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비극이다. 나는 내 이름이 그립고 다른 사람들이 잊은 이름에 대해서도 애도한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싶은데, 정작 그들이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R은 자신이 기억이 없고, 이름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하루에 한번 이상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살아있을 때에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좀비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하여. 그 역시 다른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이유 모를 욕구에 굴복하여 인간을 습격하고, 인간의 뇌를 먹는다. 인간의 뇌는 좀비에게 30초 정도의 짧은 기억과 삶을 전해주고 좀비는 그것을 통하여 잠깐이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좀비는 '살기 위해' 인간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인간의 뇌를 먹는다. 그것이 묘하게 슬프게 느껴진다. 그런데 또한 독특한 것은, R이 그런 자신의 일상, 그리고 좀비의 일상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홀의 끝에서 어슴푸레한 햇빛 속으로 아이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본다. 깊은 내면, 어둡고 거미줄 친 방에서 무엇인가가 경련하는 것을 느낀다.


 이 철학적인 좀비를 보고있자면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지면서도 굉장히 유쾌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도시를 습격하여 10대 소년 소녀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페리'라는 10대 소년의 뇌를 먹고 평소와는 다르게 강렬한, 마치 직접 체험하는 듯한 페리의 기억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그의 연인이자 사랑이던 '줄리'라는 소녀의 몸에 좀비의 피를 칠해 동료들이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 그곳에서 구출해낸다.


 나는 내 입을 가리킨다. 내 배를 움켜쥔다. 그녀의 입을 가리킨다. 그녀의 배를 건드린다. 그리고 나는 창문 밖을, 무자비한 별들이 떠 있는 구름 한 점 없는 검은 하늘을 가리킨다. 이것은 살인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약한 변명이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고, 그 건조한 쓰라림을 덜어 보려고 애쓴다.


 그는 줄리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 기억의 강렬함을 잊지 못해 '페리'의 뇌를 수시로 꺼내 한 입씩 베어먹는다. 그 기억 속에서 R은 감정과 삶을 배우며 점점 다른 좀비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페리의 기억 속에서 그는 '탄생'과 '죽음'을 보기도 하고, 페리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점점 감정을 얻어가며 줄리와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본다. 아내가 멀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손을 가슴에 얹어 본다. "죽었어." 아내 쪽으로 손을 들어 가리킨다. "죽었어."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보다가 초점을 잃어 멍해진다. "상처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 느껴져."


 그런데 웜 바디스는 단순히 사랑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R과 줄리, 로미오와 줄리엣 이 두 사람은 좀비들의 거주지에서 벗어나 인간들이 모여있는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디스토피아 소설로서의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좀비가 우글거리고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디스토피아를 개혁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좀비와 인간의 사랑을 증명하는 존재 그 자체인 R과 줄리는 대적하는 좀비와 인간들의 사이에 서서 싸워나간다. 그리고 그 목적을 알고있는 좀비의 우두머리. '보니'들은 그들을 죽이려고 한다.


 "아니야, 너희들 때문만은 아니야. 내 말은, 그래, 너희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었다는 거야. 정말 예전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전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붕괴 현상은? 세계적인 대홍수는? 전쟁과 폭동과 끊임없이 터지는 폭탄들도? 이 세상은 너희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어. 너희들은 그저 마지막 심판이었을 뿐이야."


 좀비에게 희생당한 피해자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줄리의 입을 통하여 작가는 좀비가 사람을 살육하는 이 디스토피아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좀비들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세상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사회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을 고치고자 행동한다.  '좀비'라는 소재를 통하여 과격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려내고 그곳에 전쟁과 정치적 책략이 판치는 현대 사회를 투영하여 비판하는 부분이 감탄스럽다.


 독특한 소재를 통하여 로맨스 소설로서도, 디스토피아 소설로서도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하지만 철학적인 좀비 주인공을 통하여 높은 흡입력과 재미를 그려낸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그렇듯이 유치함이 느껴지면서도 허술한 이야기 전개에 아쉬움을 느끼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블랙 로맨스 클럽에서 출판된 리사 프라이스 작가의 스타터스(Starters)도 그러하듯, 탄탄한 구성을 통하여 세계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걸음이 따라가는 대로, 우연히 세계가 바뀌는 과정을 허술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결말 역시 무언가 부족하다.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나타나는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미숙하고 아쉽게 느껴졌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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