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 평점 ★★★★☆
- 읽고 있으면 감동과 함께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힐링 소설. 전형적인 힐링 소설이지만 속도감 있고 유쾌한 전개로 지루하지 않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몰입도와 재미가 아쉽다.
◇ 비슷한 추천작
- 공중그네(오쿠다 히데오)
'쓰가루 백년 식당', '당신에게' 등의 작품이 영화화 된 유명 작가이지만 처음 접해보는 모리사와 아키오(森沢明夫)의 책. 무지개 곶의 찻집(虹の岬の喫茶店)은 힐링 소설을 연상하게 만드는 따뜻한 표지와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던 책이다.
치바 현 한적한 시골 마을 구석. 해안 절벽 끝. 찾기 힘든 작은 찻집. 그곳에는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며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커피를 끓이고 손님에게 꼭 맞는 음악을 선사하는 초로의 찻집 주인 에쓰코가 있다. 화가였던 남편을 잃고 홀로 찻집을 꾸려가는 그녀는 이따금 창문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애잔히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삶의 고통이나 문제에 고민하던 사람들은 그 찻집을 찾아가게 된다.
이야기의 구성이 대단히 뻔하다. 스토리 자체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민과 고통을 끌어안고 있던 사람들은 우연히 찾게 된 작은 찻집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놀라울 정도로 맛있는 커피와 음악, 부드러운 미소를 가진 찻집 주인 에쓰코를 만나게 되며 자신의 고민을 점점 치유해 나간다. 전형적인 힐링 소설의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은 초반부와 주인인 에쓰코가 찻집을 연 사정과 '무지개 곶의 찻집'의 큰 결말을 담은 이야기를 후반부에 담은 책이다. 하지만 뻔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쾌하기도 한 전개로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읽어나가게 된다.
미지근한 물방울이 내 양쪽 볼을 주르르 타고 내려와 낡은 시트를 적셨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난 그저 입술을 꼭 다문 채 자칫하다간 목구멍에서 새어나올 것 같은 오열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사에코를 잃은 후 허락된 첫 눈물은 나조차 기묘하게 느낄 정도로 끝없이 흘러내렸다.
- 봄. 어메이징 그레이스 11p
제1장인 '봄.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서는 아내를 잃은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모리사와 아키오(森沢明夫) 아침에 일어나 영정사진을 보고 가혹한 현실을 깨닫는 딸. 노조미의 모습, 정신없이 장례식을 끝내고 사십구재까지 쉴 틈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서술한다. 몇일 째 우울했던 날씨가 맑게 개고, 즉흥적으로 딸과 함게 무지개를 쫓아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작은 찻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고 있는 초로의 찻집 주인. 가시와기 에쓰코를 만난다.
아마, 그게 진리일 것이다. 하양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똑같은 커피잔도 범고래로 보이기도 하고, 판다로 보이기도 하니까...... 틀림없이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물체의 존재 의의까지 간단히 바꿔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미와 내가 이제부터 걸어갈 미래도 마음가짐 하나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 봄. 어메이징 그레이스 36p
찻집을 찾아가는 즉흥적인 모험 안에서 작가는 '나'의 생각을 빌려 주제를 내비친다. 슬픔에 젖어있던 '나'와 딸은 찻집에서 맛있는 커피와 함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곡을 듣고 그렇게나 찾던 무지개를 벽에 걸려있는 그림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슬프지만 희망찬 미래를 본다. 아내를 잃은 슬픈 감정을 무덤덤하게, 그러면서도 감정적이게 묘사하며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펼쳐내 감동적이고 재미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마음에 거짓 하나 없는 상태로, 그저 쭉 뻗은 외길을 돌진하는 이 쾌적한 기분...... 이젠 옆길로 새고 싶지 않았다.
늘 도망갈 길을 찾던 나날은 이제 그만 끝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순간 드디어, 희미하긴 하지만. 내 속의 진심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 여름. 걸즈 온 더 비치 93p
제2장인 '여름. 걸즈 온 더 비치'는 취업이 되지 않아 불안한 미래와 자신의 정해지지 않은 장래에 대해 고민하는 취업준비생인 '나'. 이마이즈미 겐이 기름이 다 단 오토바이를 끌고가다 우연히 찻집에 들리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1장과 링크(Link)되는 소재가 있어서 더욱 재미있고 이번에도 역시 '걸즈 온 더 비치'라는 노래가 소재로 등장한다.
"꿈을 좇으려면 용기가 많이 필요하겠지요?"
고지 씨가 깊은 미소를 짓는다.
믿음직한 형님 같은 눈으로, 싱긋.
그리고 천천히 단어를 선택하듯 이렇게 말한다.
"내 경험으로는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는 데에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 여름. 걸즈 온 더 비치 113p
1장이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묘사되었다면 이 2장은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유쾌한 한편의 청춘극을 보는 듯 하다. 정해지지 않은 불안한 장래에 갈팡질팡하는 취업준비생의 모습이 한창 대학생인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많은 공감이 된다. 그리고 그는 찻집에서 그 고민을 해결한다. 미대생인 미도리와의 만남도 재미있게 읽게된다.
하지만 나는 곧 자숙했다. 이제 내 집은 없다. 아내도, 딸도..... 모두 잃지 않았는가? 그렇다. 이 지긋지긋한 '불황'이 내 인생에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런 일에 칼을 이용하여 한다......
- 가을. 더 프레이어 131p
제3장은 '가을. 더 프레이어'이다. 과거 프로 칼갈이 일을 하던 '나'. 할머니가 운영하며 앞다리를 저는 개가 지키고 있는 찻집을 타겟으로 첫 도둑질을 저지르려고 하지만 긴장되는 마음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 도둑은 주인인 에쓰코에게 범행을 발각당하고, 에쓰코는 그에게 차와 노래를 선물한다. 그는 조용히 칼을 내려놓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하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기도를 멈추면 안 돼요."
"꿈도 희망도 없다는 걸 아는데, 그래도 기도해요?"
"그래요."
- 가을. 더 프레이어. 147p
상상 이상으로 뻔한, 전형적인 힐링 에피소드지만,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에쓰코로 인하여 다시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 그림은 내 인생의 쇠사슬이자, 위안이었다.
- 여름. 곶의 바람과 파도 소리 285p
제4장. '겨울. 러브 미 텐더', 제5장. '봄. 땡큐 포 더 뮤직', 제6장. '여름. 곶의 바람과 파도 소리'는 사실상 찻집의 주인인 에쓰코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겨울. 러브 미 텐더'에서는 에쓰코를 15년동안 마음에 품고있던 남자가 떠나며 그녀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봄. 땡큐 포 더 뮤직'에서는 계속해서 등장하던 조카인 고지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갈등을 해결하며 찻집의 풍경을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여름. 곶의 바람과 파도 소리'에서는 에쓰코가 찻집 벽에 항상 걸어놓고 있던 무지개 그림에 대한 비밀이 풀리며 희망적인 마무리를 맞는다.
힐링 에피소드가 모여있는 책이지만 큰 흐름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찻집 주인인 '에쓰코'의 이야기는 아쉽게도 기대했던만큼 재미있거나 감동적이지는 못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흐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에쓰코의 이야기가 담긴 후반부는 전반부만큼의 재미를 뽑아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인상적인 것은 작가의 고향인 치바 현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지개 케이프 다방'을 취재해 쓴 소설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찻집이 실제 존재하는 다방을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다고 생각하니 한층 감동이 크게 다가온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