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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철학, 감정으로 이성을 말하다 ㅣ 중국철학총서 3
몽배원 지음, 주광호.임병식.홍린 옮김 / 예문서원 / 2020년 1월
평점 :
- 철학계에서 이성에 비하여 거의 방치되어있던 감정이 유학 이론의 핵심적 주제였다는 주장을, 주로 송명대 유학자들의 주장을 빌어 전개하며, 감정과 이성 및 성리, 욕망, 의지, 지식 등의 관계와 통합성을 분석하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시도가 재미있고 참신하다. 그런데 방대한 분량속에 유사한 주장들이 반복되는 까닭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주로 사변적 개념인 성, 정, 리만을 주된 핵심어로하고, 구체적 논거로는 자연계의 생의지(생생지리) 하나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변주하며 이용하기 때문에, 논리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느낌도 든다.
- p. 42, 위 열한째 줄부터 p. 43 위 열한째 줄까지의(2절) ”인문주의 ~볼 수 있다“는 문장은, p.45 아래 아홉째 줄부터 p. 46 아래 아홉째 줄까지의 문장(3절)과 완전히 중복된다. 거의 한 쪽에 가까운 동일한 문장이, 연속되는 것도 아니고 상이한 절에 수록되어 있는건, 5년간의 번역작업이라는 언급을 무색하게 하는 실수다. 문맥상으로는 아마 2절보다는 3절에 있어야 할 문장이다.
- p. 118, 아래의 하이데거 인용문 중의 첫 단어 ‘양지’는, 하이데거가 ‘전습록’을 읽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이 책에서 ‘양지’라는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부적절한 용어다. 양지는 매우 복잡한 개념이기에, 그에 해당하는 독일어가 있을 리가 없다. 저자가 참고한 중국어 번역본에 양지라고 되어있었다 해도, 저자는 독일어 원어를 언급하고 양지를 그대로 인용해야만 할 이유를 설명했어야 타당하다. 같은 쪽 아래 ‘주’에 ‘존재와 시간’이라고 제목만 나와 있고, 해당 쪽수가 없는 점도 아쉽다.
- p. 138, 위 아홉째 줄, ”~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그들이 공부를 ~~ “: 주희와 왕수인의 논쟁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언급하는 문장인데, ‘시작할 것인가’까지는 차이점이고 그 다음 부터는 유사점 이기에, ‘시작할 것인가’ 바로 다음에 ‘만이 차이점이고’라는 문장이 추가되어야 맥락이 통한다.
- p. 140 위 둘째 줄: ”원시유학“ 보다는 ”선진유학“이 적절하다. 저자도 p. 176에서 ”선진유가“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 p. 171, 아래 문단; ”만일 ‘발’을 드러남이나 현현으로 이해 한다면(A), ‘미발’은 일종의 잠재적 존재 상태이고, 이것이 일단 한 번 발하면 희노애락의 감정 활동이 된다(B). 그러므로 드러남과 발동은 모순이 되지 않는다“: 명제 A는 같은 쪽 위의 문단 중 모종삼의 입장이며, 이때 당연히 ‘미발’과 ‘이발’은 본체와 현상의 관계이고, 이는 저자도 같은 문단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동일한 명제를 전제 하면서도 반대 결론을 내리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명제 B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명제 B는 ‘발’을 드러남이나 현현으로 이해하지 않고 ‘발동’으로 이해할 때에만 유도될 수 있는 명제다. A명제를 취한다면 B명제는 ‘이것이 일단 한번 발하면 희노애락의 감정이 (새롭게) 발생한다” 정도가 되어야 한다. 미발 이발을 모두 다 감정상태로 해석하고자 하는 의욕이 너무 앞서고, 논리도 미흡하기 때문에 생긴 전형적인 오류이며, 이하 계속되는 주장들은 따라서 의미가 없다. 저자가 헛갈리고 있기 떄문에, p.173의 위 문단에서도 계속 유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주희도 모종삼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걸 알 수 있다.
- p.173 위 셋째 줄의 ’아직 발하지 않음‘과 넷째 줄의 ’미발‘은 각각 ’아직 발동하지 않음‘과 ’미발현‘쯤으로 바뀌어야 맥락이 매끄럽다. ’발하지 않음‘은 ’미발‘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미발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도로 ’미발‘을 사용하면 독자도 헷갈린다.
- p. 173, 위 열한 번째 줄; ”그러나 중용의 원래적 의미에서 보면(A) ‘중’은 “발하되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한다”(B)에서처럼 모두 희노애락의 감정을 의미한다(C). ‘중’이란 바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음이란 의미이다(D). ~~ 미발 시에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으며, 또한 저절로 자연스러워 지극히 적당하고 알맞은 것(E), 이것이 바로 중이다“:
명제 C는 명제 A(희노애락지미발)에 대해 모종삼이나 주희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할 때만 유도될 수 있다. 또한, 명제 D는 저자가 무리하게 주장한 결과인데, 모든 문제를 야기한 원래 인용문인 중용 1장을 보면(p. 170) ‘절도에 맞는’이라고 번역된 원문은 ‘중절(中節)’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가 명제 D에서 언급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음‘은 바로 ‘중절(中節)에서 얻어낸 구절인데, ’중‘은 미발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고, ’중절‘은 이발상태의 찰식과 관련된 것으로,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문장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모든게 명백한데 무리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명제 E 역시 ’발‘을 ’발동‘으로 해석할 때에만 유효하다. ’발‘을 ’현현‘으로 해석하면, 과하거나 부족할게 아예 없어 의미 없는 문장이 된다.
- p. 180, 아래 문단: ‘성자명출의 관점은 후대 유학 특히 송명 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은, 곽점초간이 발굴된게 1990년대 일이고 송명대 유학자들에게 곽점초간의 존재는 알려져있지 않았을 것이기에 무리한 주장이다. 거의 천 년 전의 선진 시대 사유를 다시 발견한 송명대 학자들의 학문자세를 높이 평가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기록물 없이도 중국 사상계에 유사한 사유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 p. 195에 있는 인용문 전체 중에 여섯 번 언급되는 ”마음“이라는 단어 중에, 열네 번째 줄 과 열다섯 번째 줄에 있는 ”마음을 쓰기“는 ”지혜를 쓰기“라고 바꾸어야 한다. 원문에 분명히 용지(用智)라고 되어있고, 역자도 용지를 ”지혜를 쓰는“이라고 번역하고 있다(p. 202, 위 넷째 줄). 또한, 열아홉 번째 줄의 ”마음이“는 아예 생략되어야 한다. 원문에도 ‘심’이라는 단어가 없을 뿐 아니라, 없어도 문맥에 아무 문제가 없다. 마음(심)은 성정리와 함께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허투루 쓰면 글의 의미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전체 주장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대중을 상대로 한 저널리스트의 글과 달리 학인의 글은 엄밀함이 생명이다.
- p. 196 위 넷째 줄: ” ~~ 있는데, 이는 수행과 실천, 즉 ‘정’을 본체라고 본 것이다“: ‘정혜쌍수’에 관한 부분인데, ‘수행’은 ‘정’이고 ‘실천’은 ‘혜’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는 수행과 실천‘이 아예 생략되거나 아니면 ’이는’ 다음에 ‘수행과 실천 중 수행을 체로’라는 문장이 추가되어야 적절하다. 정혜쌍수를 언급한 무학의 혜능이 수 백년 후의 송대 최고 유학자들의 사유를 이미 선취했던게 아닌가 여겨진다. 이점 역시 유불을 불문하고 중국 사상계에 고유한 사유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중국불교의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선불교의 토양이 선진유학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p. 242; 불가의 화두 ‘부모미생전본래면목’과 관련하여 주희가 언급한 ‘감정도 없고 천리도 끊어버렸음’과 저자가 언급한 ‘불교의 허무맹랑한 말’이나 ‘부모의 생명에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으며’ 등의 담론은 기막히게 코믹하고, 주희는 한때 불학에 심취한 적도 있었기에 의아하기도 하다. 이 화두는 분절적 관계 속에 제한된 정체성을 탈피하여 무애한 정체성을 탐구하게 하기 위한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무엇’인가“로, 다시 “’이것‘은 ’무엇‘인가(이뭐꼬?)”로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진행될수록, 사회관계망 속에서의 자기가 자연계 속에서의 유기체로 확대된다. 그로 인하여 자기와 타자에 대한 시각이 유연해지고, 고정되고 분절된 자기가 아니라 현상으로서의 자기, 생성으로서의 자기를 찾게 하기 위한 질문이지, 인정이나 혈육 관계 등에 관한 담론과는 전연 관련이 없다. 굳이 생로병사까지를 언급할 거 없이 인간들의 고민은 대부분 고정된 자기 정체성(타자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에 기인한 인지오류의 결과이며, 그에 따라 타인과 세상에 대한 인식도 제한적이고 오류인 경우가 많다. 학벌과 직업, 혈연과 지연, 인종과 종교, 정치적 이념과 경제 상황 등 거의 모든게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관계망(인드라망)을 구성하는 요소들이고, 이것들에 의해 우리의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태도가 분절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많은 심적 물리적 갈등이 발생하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주희는 할 수 없고, 저자라도 저 화두를 잡아보기를 권한다.
- 이밖에도 논리가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매우 아쉽다.
- 15장 ‘감정 철학의 현대적 발전’은 20세기 중반까지의 중국 철학사만을 주로 다루고 있어, 20세기 후반부터 쏟아져 나오는 감정에 관한 철학이나 인지심리 및 인지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들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은 점은, 저자가 아직 생존해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특히 감정이 인지에 의해 구성된다는 감정 구성주의와, 저자의 전공분야인 중용 2장과 4장에 나오는 시중(時中)과 지미(知味)는 맥락의로서의 장이론과 게슈탈트 및 요즘 핫한 ‘알아차림’과 관련된 개념이어서 감정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