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정동과 건강 - 감정의 자유를 통해 건강한 삶을 만들다
이상범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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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문장:

p. 54, 아래 여섯째 줄: “여기서 만약 힘이 근육량에 비례하는 것이라면, 힘의 증가를 대변하는 근육량~~ 의지를 자극하는 요소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문장은 상단 인용문 중의 근육의 느낌에 대한 저자의 소견인데, 근육량이 정동처럼 수시로 변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약간 코믹한(너무 나간; 근육에서 근육량으로) 문장으로 느껴진다.

p. 55, 위 열둘째 줄: “이렇듯 니체의 비철학적 해석은 생명체로서의 인간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인 것이다”; 이 문장이 1880년대에 작성된 거라면 긍정할 수도 있겠으나, 몸철학이나 현상학 및 현상학에 대한 비판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는 21세기의 담론으로는 지나치게 단정적인 문장이다.

p. 56 아래 첫째 줄부터: “의지는 무언가를 의욕하기 위한 작용일 뿐, 의지 자체에 대한 자극, 즉 명령일 수 없다”; 이 문장에서 수식어를 생략하고 간략히 하면, “의지(A)의지 자체에 대한 자극(B)일 수 없다는 명제가 되는데, BA와 같은 유개념이 아닌 게 너무나 명확하므로, AB가 다르다는 문장은 무의미하다.

p. 78, 인용문 아래 첫째 줄: ” ~~ 니체는 정동으로 대변되는 원한의 인간의 반동적 감정이 ~~“; 이 문장은 두 가지 정동 유형 중 특히 반동적 정동형 인간에 대한 언급이기에, ’정동으로앞에 반동적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어야 적합하다.

p. 79, 아래 셋째 줄: ”~~ 보편적 삶의 진리(A) 아래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양식을 창조할(B) 수 없는 자 ~~“; 니체에 의하면 AB는 한 개인에게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 창조적 삶의 진리 아래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양식을 창조할 수 없는 자 ~~“ 쯤으로 바뀌어야 문맥이 분명하고 매끄러워진다.

- 그 밖에도 이런 부류의 어색한 문장이 1부에서만도 다수 보인다.

 

오류:

p. 57, 위 다섯째 줄: “ ~~, 정동을 만족시키는 누군가에 대한 ~~”; 니체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이 문장 속 단어 정동을 전제해서 이하 정동에 관한 담론이 계속되는데, 저자가 인용한 번역문(니체 전집 12)에는 분명히 정동이 아니라 격정이라고 되어있다(대부분의 인용문이 전집 번역문과 차이가 없기에, 번역문에 실수가 있어서 저자가 원문을 새로 번역하였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요 개념으로 다루려 하는게 바로 정동이고 저자도 언급하듯이 정동과 격정은 완전한 동의어가 아니므로, 니체의 원문 인용에 실수가 있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또한, 이 책의 모든 내용들이 기존에 학회 논문집에 발표하였던 글이기에, 관련 학회의 논문 심사 체계 신뢰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 니체는 한 인간의 내부에서 명령하는 자복종하는 자의 역동적 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능동적 삶을 위버멘쉬의 삶으로 상정한다. 하지만 명령하는 자의 전형적 삶을 사는 대표적 존재로 니체가 예를 든 사자는(짜라투스트라를 통해) 그 내부에서 명령하는자복종하는 자로 분열되지 않는다(사자의 마음을 인간이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어디까지나 추론이지만). 지구상의 유기체들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신경증을 겪는 원인이 바로 내면의 분열 때문이라는 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이다. 바로 이 점이 니체를 마지막까지 괴롭힌 병마와 신경증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르며, 다양한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가 모색하는 정동에 의한 창조적 건강은 니체식의 분열된 자아틀에 의해서는 실현되기 어렵지 않을까 염려된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 했지만, 신이 오히려 니체는 죽었다고 선언했다는 소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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