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yranny of Merit :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Paperback)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원서
Penguin Books Ltd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신간을 읽으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고여 있던 내 생각에 큰 파문을 일으킨 책이다. 재미있게 읽던 중 이 책을 주말에 직장에 두고 오면서, 중간에 다른 책이 끼어 들어 그걸 끝내고 다시 이 책을 읽느라, 오랫동안 읽었으나 그 만큼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물론 오래 읽어서 중간에 흐름이 끊겨서 리뷰를 쓰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ㅜ.ㅜ

The Tyranny of Merit(업적주의의 독재/능력주의의 독재)라는 제목도 도발적이다. 능력위주, 업적주의라는 표현에는 연공서열이나 인종 차별 등이 배제된다는 공정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능력위주의 정치가 폭군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Yuval Noah Harari 책을 읽을 때 만큼 너무나 뛰어난 필력에 감동하며 읽었고, 이와 같은 진정한 지식인의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만함(hubris, conceit), 당연히 자격이 되는(deserve, entitled)이란 단어에, 경종을 빈번하게 울리며 민주주의와 겸손(democracy and humility)으로 책이 끝이 난다. 나도 즐겨 쓰던 속담 ‘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란 표현이, 노력하지 못하여, 노력을 덜하여 승자가 되지 못한 자들과는 신이 함께 하지못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해석될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패자의 입장에선 그 속담이 신의 응징으로 들릴 것 아닌가?

시장 주도형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수입과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되었다. 이 불평등을 없애는 마법의 주문으로 ‘노력하면 된다(You can make it if you try)’라는 표현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노력하여 승자가 된 자들은 자신의 성공을 노력한 자신이 당연히 받을만한 것이다로 해석한다.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무능함만을 탓하게 되며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내가 존경했던 오바마 대통령까지 노력하면 그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능력/업적 위주의 정치와 기술주의 정치(meritocracy and technocracy)의 칼날을 서슴없이 휘두르며, 세계화의 물결에 발맞추어 가지 못한 약자들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고 불평등을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하니 혼란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을 예시로 들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다. 그 만큼 그 역시 교육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대학이 불평등 해소의 열쇠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상류계층 자녀들이 입학했던 하버드 대학의 입학 전형을 SAT도입, 소수 인종, 여성, 유대인등 다양하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역시나 헬리콥터 부모, 개인과외, 입시 컨설팅 등의 과열로 IVY 리그의 대학이나 국립대학들은 여전히 부유층 자녀들이 주로 입학하는 것이 통계로 드러났고 가난한 자들의 수직 상승은 교육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부유층 자녀들 역시 어린 나이부터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낮은 자존감과 독립심이 약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업적주의/ 능력주의로 인해 계층간에 깊어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숙고해야할 문제점으로 교육 외에 ‘노동의 존엄성(dignity of work)’을 들고 있다.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대학 교육을 강조했고, 자격증이 또 하나의 무기이고 편견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대학 자격증이 없는 고졸 계층의 백인들은, 세계화의 물결과 AI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더욱 잃으며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정체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적 박탈감을 떠나, 일을 함으로써 공공 선에 기여함으로써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의 존엄성을 인정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좌절감과 분노로 가득찼던 백인 노동 계층은 업적주의와 능력주의를 부르짖는 오만한 앨리트 계층인 Hilary Clinton에게 등을 돌리고 Trump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Michael Young은 2034년에 하류계층의 반란이 일어날걸 예상했는데, 2016년에 Brexit, Trump의 당선이 일어났으니 18년이나 일찍 반란이 도착했다고 작가는 지적하고 있었다.

구약시대의 선민사상처럼 승자들이 자신의 결과를 재능과 노력의 당연과 결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 책 전반에서 반복하고 있다. talent라는 재능은 신의 선물이나 행운으로 받은 것이기에 당연하게 받거나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 생각하면 아니되고 effort라는 것도 혼자하는 노력이 없고 과정에서 좋은 부모, 공동체 등의 도움으로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즉, 채무감을 가져야지 당연하게 받는 오만함은 오히려 불평등을 가속화시키고, 약자나 패배자들의 분노와 좌절을 아우르지 못하기에 사회는 양극화의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스스로 혼자 자수성가 한것이 아니기에 겸손함을 갖고, 성공의 새로운 윤리학을 정립하고 능력주의의 독재를 넘어 공공 선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를 촉구한다. 재능이라는 것도 절대적 평등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도 혼자하는 것이 아니기에, 뒤에 남겨져 뒤처진 이들을 향해 오만한 시선이나 비하의 눈초리가 아닌 그들을 향한 의무감과 채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옳은 것과 선한 것(between the right and the good)사이에서 또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노력하지 않은 자는 적게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시시비비도 누구의 입장에서 가려지는냐에 따라 오만과 겸손의 다른 색깔로 드러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또 다시 배우며, 공공 선에 기여하는 삶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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