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Paperback)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영문판
Kundera, Milan / faber and faber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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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책이 내가 되고 내가 책이 되는 몰입과 내재화가 있어야 진정으로 책을 읽었다 할 수 있다고 어디선가 읽었다.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어려운 연애소설이란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그 때 내가 어떤 나의 심정과 결부시켰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이번에는 원서로 읽었다는 것도 큰 차이이다.

책 속에서 사랑의 범주를 넘어 철학, 정치, 역사도 보였다면 무겁게 읽은 것인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라 철학 소설이라 부르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귀하고 어려우며 매력적인 것 같다. 다 이해되지 않았으나 철학이 삶으로 들어온 것 같아 가벼운 사랑에도 깊이를 더해주는 듯하다. 난 예전부터 이 책 제목을 매우 좋아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얼마나 매력적인 제목인가? 곧 나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책 전반에 가벼움(lightness)과 무거움(heaviness)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가 있다. 일반적으로 무거움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지 않을까? 웬지 가벼움은 경박하게 느껴지고 경시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필요성, 무게, 가치는 불가피하게 서로 묶여 있으며, 필요성만이 무게가 있고, 무거운 것만이 가치가 있다(p. 31)라는 표현이 있다. 그렇다면 무거움과 가벼움의 경계가 뚜렷한 것인가?

음악애호가였던 작가는 베토벤의 악장을 인용한다. Es Muss Sein이란 독일어를 difficult resolution(어려운 결정)으로 번역을 했다. 그럴 수 밖에 없고 꼭 그렇게 해야하는 결정이 있다. 이걸 우린 운명이라 부를 것이다. 자유연애와 에로틱한 우정을 부르짖던 Tomas가 Tereza와의 6번의 우연으로 인해 사랑에 빠졌다. 우연의 반복적인 날개짓이 운명처럼 느껴졌고, 운명처럼 끌리는 연민에 의해 결혼을 한다. 소련에 의한 체코의 점령이 있고 지식인의 탄압이 있자 해외 이주가 많아진다. 스위스의 안정적 병원를 그만두고 다시 Tereza를 찾아 체코 프라하로 갈 때 그가 했던 말이 Es Muss Sein이다.

Tomas는 자유연애를 표방하는 외과의사로서 모든 것이 그에게 흥미가 있기에 그 어느것도 그를 실망시키지 않는 가벼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내적 명령과도 같은 Es Muss Sein의 소리를 따라 안정을 버리고 소련에 점령당한 체코로 Tereza를 찾아 오는 무거운 결정을 하고, 신문에 반공산주의 Oedipus article을 써서 결국 의사직을 박탈당하고 시골에 가서 살게 된다.

두 명의 다른 주인공 Sabina와 Franz를 통해서도 가벼움과 무거움의 주제는 계속 전개된다. 캄보디아에서 이루어진 지식인 대 학살에 반대하는 베트남 국경 근처 대규모 시위 행진(grand March)의 무거움 속에서 가벼운 지식인의 허영(vanity)이 Franz의 눈으로 보여진다. 나라 잃은 화가의 입장이 너무 싫어 미국으로 이주한 Sabina의 그림은 가벼운 삶을 추구했던 그녀의 의도와 달리 무거운 것으로 칭송된다.

역사도 참을 수 없을만큼 가볍다고 표현되어 있다. 가벼움이 곧 무거움이 되고 무거움이 곧 가벼움이 될 수 있다. 가벼운 삶을 희망한 사람도 순간 무거운 결정을 해야할 때가 오고 그랬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거움이 어느 새 짐이 되어 다시 가벼움을 쫒고 있고, 가벼운 길을 가다가도 무거운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작가는 소설가로서 역사의 하수인이 됨을 싫어했다지만 이 책이 인간 실존을 무겁고 의미있게 담아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소련에 의한 체코의 점령이라는 아픈 역사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무겁고 근엄하게 서려있기 때문이리라.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밀란 쿤데라 덕분에 행복했다. 피곤한 저녁 책을 읽다가 불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어도 그의 수려한 문장은 더 없이 나를 기쁘게 했다. Tomas와 Tereza가 마침내 행복을 느낄 때 ‘슬픔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슬픔 덕분에 행복하다(happy not in spite of their sadness but thanks to it: p. 285)’라고 했다. 몇 년째 ‘불구하고가 아니라 때문에’라는 문장이 나를 따라 다닌다. 나 역시 ‘COVID-19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CVID-19 때문에’ 책을 더 가까이 하며 행복해지고 싶다. 곧 이 작가의 책을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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