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인간이 모인 곳이라면 절대불변인 소수권력의 착취구조...

 

   왜 제 기억속에 이 책이 너무 재미있었던 책으로 각인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읽었던 동물농장은 뭔지 몰라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돼지가 두발로 서 있는 삽화가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니 말입니다. 이런 형국이다보니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면서 그저 조지 오웰과 그의 작품 [동물농장]을 좋아한다고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야 워낙 오래된 책이니 제 특기 "신간사서 구간만들기 신공"이 전혀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사놓은지 참으로 오래 되었는데, 이제서야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제 기억과는 꽤나 다를지언정 너무 훌륭한 책인 것 만은 틀림없네요. 정말 대단한 통찰이 녹아있는 소설입니다.  

 

   [동물농장]을 읽다보니 개미를 예로 설명하는 파레토(Pareto) 법칙을 떠올랐습니다. 어느 그룹, 어떤 구성원이건 80:20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 내용인데, 이를테면 개미를 100마리 놓아두면 그중 80마리는 적당히 일하거나 놀고 20마리만 열심히 일하더란 것이죠. 그런데 그 열심히 하는 20마리만 따로 모아두면 우습게도 그중 80%에 해당하는 16마리는 또 다시 어영부영 놀고 20%인 4마리만 열심히 일하더라 뭐 그런 법칙입니다. 비단 개미뿐 아니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 퍼센트가 80:20이냐 90:10이냐, 99:1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인간들은 그들 중 일부가 절대 권력층이 되어 대다수를 장악하고 통제해 왔습니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대다수는 그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권리와 인권이 제한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권력층을 옹호하는 아이러니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계층적 착취구조는 너무도 폭넓게 퍼져있고, 너무나 당연시 되어왔고, 철저히 교육되어 왔기 때문에 이 구조는 어떤식으로든 쉽사리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묘사에 따르면, 동물들 만의 독립된 공간에서조차 이 법칙이 철저하게 지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동물들이 인간을 몰아내고 쟁취한 존귀한 자유는 곧 상대적으로 똑똑한 특정 무리에 의해서 서서히 독점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우유는 죄다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얼마 안 가서 밝혀지게 되었다. 우유는 매일 돼지들이 먹는 사료에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과수원에서는 이른 사과가 익기 시작했고 바람에 떨어진 사과알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동물들은 그 떨어진 사과알들이 물론 평등하게 분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날 그 사과알들은 모두 모아다 마구실의 돼지들에게 갖다줘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p35

 

   이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동물들의 유토피아는 서서히 불평등과 착취의 장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착취의 대상인 대다수의 동물들은 착취계급의 철저한 선전과 왜곡된 정보전달에 의해 뭐가 뭔지도 모른채 혼미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이런 흐름속에 급기야 애초에 세운 기본적인 합의사항을 어기고 동물들이 처형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서서히 그곳은 이미 그들이 원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되어있음을 실감합니다.

 

"그것은 굶주림과 회초리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사회, 모든 동물이 평등하고 모두가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는 사회,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그날 밤 그녀가 오리새끼들을 보호해 주었듯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그러나 그 사회 대신 찾아온 것은, 아무도 자기 생각을 감히 꺼내놓지 못하고 사나운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돌아다니고 동물들이 무서운 죄를 자백한 다음 갈가리 찢겨죽는 꼴을 보아야하는 사회였다." p78

 

   더 안타까운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 처절한 상황에서조차 "왜 그렇게 된 건지 그녀로선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소수에 재화가 집중되고 의사결정권이 독점되어 가는데 그 구성원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란 말이지요.

 

 

#2. 정치적 배경하에 쓰여진 풍자인지 일반론적인 알레고리인지가 무어가 중요하리...

 

    이 작품을 놓고 정치 풍자인지, 일반 우화인지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과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작품 해설을 읽다가 짜증이 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해설만큼은 초반에 조금 의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보니 참으로 적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풍자이자 우화라는 해석이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현세를 사는 우리에게 스탈린 당시의 러시아 정치에 대한 풍자가 뭐 그리 의미가 있을까 싶은 의문은 듭니다.  

 

   지금 시대의 [동물농장]은 마르크스 주의를 전혀 몰라도, 러시아 역사를 깡으로 몰라도 전혀 상관없을 만큼 우리 현실과 너무도 놀라우리만치 맞닿아 있습니다. '아, 이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세상의 한계와 구조적 모순과 그속의 아픔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들었습니다.  

 

   인간을 몰아내고 자유의 세계를 구축한 동물들이 그들중 좀더 똑똑한 돼지들에게 지배권을 맡긴 것이 실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은 대안은 생각해 낼 수 없었겠지요. 그리하여 어느순간 재화와 권한이 특정 동물에게 집중되기 시작하고 평화와 균형은 깨지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시작은 지배욕과 권력욕으로 집중되는 지배계층 개개의 욕망으로 부터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통했고, 점점 정교화되고 노골적으로 제도화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정 동물의 희생이 강요됩니다.  

 

   "어느날 농장의 필요에 의해 암탉의 계란을 주당 4백개나 외부로 팔기로 명령이 내려오고 이에 불복한 암탉들은 단체 행동에 들어갑니다. 인간세상에서는 '파업', 또는 '데모'라를 용어로 대표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수뇌부인 돼지들은 음식공급을 차단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옥수수 한알도 주지 말라고 명령하는 실력행사에 들어갑니다. 결국 상황에 항복한 암탉들은 명령을 받아들이는데 이 사건으로 암탉 여러마리가 죽고 이는 공식적으로 "콕시디아"라는 질명으로 죽은 것으로 발표됩니다."

   

  이거 뭐 상당히 익숙한 느낌의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 당시 묘사한 이 상황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흡사하게 반복되고 있는 일입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가치판단이나 정치적 입장을 밝히자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한치의 발전이나 개선이나 변화없이 그때 당시의 [동물농장]이 현실세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훌륭한 명작으로 평가받게 해 주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정치 풍자면 어떻고 일반적인 알레고리이면 어떻습니까? 읽는 독자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뒤통수가 얼얼한 충격을 받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치에 대한 통찰을 얻으며, 생각지 못했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부조리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역할을 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3. 소수가 좌지우지 하는 판을 넘어서는 힘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 입니다. 구조적인 모순은 어떤 특정한 해결책으로 해소되기에는 너무나 뿌리가 깊습니다. 또한 각 계층의 이해득실이 뒤엉켜있어  풀리는 듯하다가도 다시 복잡해지는 실타레와도 같습니다.

 

 

   이 소설이 훌륭한 점중 한가지는 이런 사회구조적 문제를 짚어내기만 하고 어쩔수 없다고 체념하고 고발하는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묘사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권력의 타락을 막는 단초는 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동물들이 실제로 무슨일이 일어나고있는지 지켜보는것에서 출발합니다. 이로부터 인간과 돼지의 연합을 목도하고 심지어 얼마나 그들의 유대가 심각하던지 두부류가 명확하게 구분조차 안되는 상황임을 알게되는데 이르릅니다. 이를 통해 착취계급의 성실하고도 집요한 선전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그 다음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인데 사실 저는 어떤 행동이 온전히 옳은지에 대해 아직 의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이 인간들이 발버둥쳐온 결과물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은 듯 합니다. 저는 그 역사 속에서 뚜렸한 답을 얻지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아우~~ 어제 오프라인에서 작품집을 구매했는데 할인쿠폰이라니.. 아우 아쉽습니다. 기 출간집이라도 구매해야겠습니다. 다양한 이벤트 좋네요^^ 편혜영작가님 214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우수상 등 수상하신 작가님들에게도 축하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국내 작가님들이 더 선전해주셔서 한국문학이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blog.naver.com/bestkkim/110183846913 열심히 응원합니다^^ 이런 이벤트 좋습니다!! 저도 사실은 SF잘 모르는데 열심히 읽어보도록 노력해볼께요 화이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ㅣ 하트우드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 비룡소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조금은 담담한 성장동화

 

   며 칠전 저녁이었습니다. 거실에 비스듬히 누워 팔로 턱을 받친 상태로 멍하니 TV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새 첫째가 제 앞으로 다가와 저의 자세를 그대로 흉내내며 드러누웠습니다. 잠시 그러고 있던 아이는 뒤를 돌아 저를 쳐다보며 늘 그렇듯 한없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빠, 하은이가 아빠를 그대로 따라한다. 우하하~~" 어이가 없어 피식 웃던 저는 그 순간 아이의 헤맑은 표정을 보며 '아, 이 아이가 부모인 나를 따라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인식이 실체로 다가왔습니다. 저를 보고 흉내내며 자라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끊임없는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합니다. 감정의 교감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평가하고 정의합니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전인격적 성장을 위해서는 두가지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타인의 공감과 진솔한 반응입니다. 이 반응이 반드시 긍정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반응을 통해서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성찰도 필수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스스로의 자세입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바람직한 반응을 통해 자극을 주더라도 그것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성장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이 두가지 중 특히 스스로의 자세에 대한 성찰이 녹아있는 성장동화입니다. 이름도 어려운 에드워드 툴레인이라는 도자기 토끼인형은 이미 충분히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는 주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이 특별하다고, 하지만 자신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버려지고 깨지고 망가지면서 겸손을 배웁니다. 관계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경험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 갑니다.

 

   이러한 깨달음의 필수요소는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극복입니다. 이 책의 말미까지도 에드워드는 상처를 극복하기 보다는 체념합니다. 이 책 전반에 상처와 체념의 정서가 지배적으로 뭍어나는데 성장동화답게 말미에는 이 체념이 희망으로 바뀌면서 기적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됩니다.

 

 

#2. 겸손하라. 사랑하라. 희망을 잃지마라... 알겠다... 오버!

 

   우리의 삶이 이 동화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현실세계는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상처만 안은채로 삶을 마감하는 인생도 차고 넘칩니다. 그런가 하면 부적절한 주변환경 때문에 정상적인 정서적 성장이 멈춘 인생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성장동화지만 우리의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 없는 잔혹동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교훈에 귀를 귀울이는 것은 유익합니다. 주변에 사랑이 넘칠 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때 겸손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드워드 처럼 주위 사람을 실망시키고 맙니다. 쓰레기 통에 버려지거나 깊은 바다 밑바닥에 쳐박히고 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오픈하고 주위 사람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한번, 두번 상처받을 때마다 마음을 닫고 세상과 단절된다면 두번다시 살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더 적절한, 더 귀한 사랑이 찾아올거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교훈합니다.

 

   좋은 말이고 꼭 필요한 교훈이니 놓치면 손해입니다. 교훈은 접수하도록 합니다.

 

 

#3. 미디어의 위력과 폐해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짧은 시간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좋은 내용이고 교훈이 담겨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는 했지만 과연 이 책 내용 자체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훌륭하고 대중적인 책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 책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너무 잔잔하고 담담합니다. 재미와 흥미면에서 오락적요소가 너무 떨어지는 한편  자기계발서처럼 대놓고 변화를 촉구하는 적극성도 없습니다. 대중과 편히 교감하기에는 지나치게 고상하고 시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드라마에 소개되었다는 이유로 반응이 뜨겁고 많은 사람들이 이책을 찾아 읽습니다. 이런 현상을 대할때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비룡소 관계자분들은 뜻하지 않은 호재에 기뻐하시겠지만 매번 영화나 드라마 등의 기타 매체, 미디어의 위력에 좌지우지되는 책의 낮은 위상을 절감하며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듭니다.

 

   드라마에 언급되어 인용되었던 시적인 문구들은 그 나름으로 드라마에 녹아들어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지구에 홀로 몇백년간 살아남은 외계인이 자기 잘난맛에 살며 수명이 짧은 인간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관계를 맺지 않다가 한 여성으로 인해 사랑을 알아가고 관계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과정은 이 책의 주제와도 잘 매치가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 드라마에서 인용하고 싶었던 것은 이 책 전체가 아니라 시적인 분위기로 주인공들의 관계의 진전을 표현할 수 있는 특정 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드라마가 있어 보이는데 한몫 하는 장치로 사용되었을 뿐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책 자체도 훌륭하고 좋은 성장동화지만 드라마 때문에 관심받고 뜬 책입니다. 유행에 민감한 분, 감수성이 예민하여 동화에 감흥이 크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세상 풍파에 닳고 닳은 분도 정화를 위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타 해당사항이 없는 분들... 내용이 길지 않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 가독성의 마술, 소설의 미덕은 킬링타임이던가? 인공미가 느껴지는 철저히 공식화된 계산식으로 엮인 상업적 플롯.
 
   귀요미 뮈소 형님의 책은 처음입니다. 신작 [내일]을 읽으면서 계속 감탄한 것은 '이 양반이 정말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능력이 발군이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내일]은 가독성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리더빌리티(readability)"가 좋다는 의미입니다. 아주 잘 읽힙니다. 이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원인 중에 술술 읽어지는 가독성이 8할은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처럼 피곤한 시기에도 출퇴근 길은 물론 자기전에도 이 책을 읽고 싶고 놓기 싫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작가의 능력이 새삼 대단함을 느낍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중요한 점이 바로 이 가독성일텐데, 저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가독성이 작가에게 상당히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이 작품의 가독성은 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가독성이 너무 좋은데 전혀 몰입해서 읽지는 못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 궁금하고 가슴조리는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특히 가장 중요한 주인공과의 정서적 공명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그 작품속의 주인공을 보면서 '아, 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는 그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끝까지 제 3자의 입장에서 남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만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작품에 몰입한다는 건 작품속의 캐릭터에 공감하고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빠져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끝까지 읽고 싶었던 이유는 내용이나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아니라 이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작가의 작가적 능력과 스타일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아, 이런 식으로 구도를 짜고 일을 벌여놨으니 어떻게 수습하고 정리하는지 지켜볼까?' 뭐 이런 마음이었다는 것이죠.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이야기의 전개와 변곡점, 독자들이 반전이라고 놀랄만한 지점을 애초에 설정해 놓고 탁월한 유연함으로 자연스럽게 잘 끼워 맞춰서 연결을 매끄럽게 해 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이 작가의 최고의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습니다.
 
   너무 잘 읽었고 잘 쓰여진 이야기인데 끝맛이 못내 심하게 아쉬운 것은 이런 계산된 철저한 상업적 플롯과 그것을 풀어내어 "먹히는, 팔리는" 스토리를 뽑아 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킬링타임용 작품에 그친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2. 기술점수 100점, 예술점수 0점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를 보다보면 재미있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아주 기교좋게 멋지게 잘 부른 참가자에게 심사위원 박진영씨가 굳은 표정으로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술점수 100점, 예술점수 0점" 그리고는 부가적으로 "노래는 기술적으로 나무랄데가 없고 너무 잘 불렀는데, 너의 이야기가 아니야. 그러니까 잘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동이 없는거지"라고 설명해줍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딱 그런 형국입니다. 앞뒤로 너무나 딱딱 들어맞도록 멋지게 계산된 짜임새 있는 구조와 그 속에 녹아나는 자연스럽고 간결한 문체가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요소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싶을 정도로 치밀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또 잘 읽히고 납득할 만 합니다. 그런데 감동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느낀 이 작품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읽을 때, 그리고 책을 덮은 후에 묵직한 여운이 남는 소설, 뭔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소설, 그리고 뭔가 감정의 정화를 느끼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내일]은 아쉽게도 저에게 남는 여운, 생각꺼리, 감정의 정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잘 읽을 만한 코드를 기술적으로 잘 설계 해 두었다는 생각만 듭니다. 읽는 내내 그랬습니다. '아, 이런 식으로 풀어내셨구만?' 하는 생각은 작가는 한없이 뒤로 두고 작품만 생각하는데 상당한 방해를 했습니다.
 
 
#3. '타임슬립'이라는 식상한 소재, 설정의 한계... 
 
    이 작품이 정말 살아나느냐 아니냐의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애초에 등장하는 식상한 '타임슬립'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것인가?' 였습니다. 타임슬립은 영화는 물론 소설에서도 오랫동안 지난하게도 다루어 왔던 이 설정이 시작부터 저에게 신선했을리 만무합니다. 백투더 퓨처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시간여행이나 시공간이 틀어진 상황 설정은 익숙하기도 하면서 그만큼 신선하게 다가오기는 힘든 소재임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설정이었다면 참신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모습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아예 기존의 타임슬립과는 차별화되는 설정을 하던지요.
 
   이 작품에서의 타임슬립 설정은 조금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최근에 방영중인 "별에서 온 그대" 같은 경우처럼 주인공이 외계인이다보니 무슨 설정이 나오든, 어떤 짓을 하던 다 용납됩니다. 왜냐면 "외계인"이니까. 이런거죠. 타임슬립이 되니까 실제로 안되는 상황들이 다 용납되고 연애소설 같던 이야기가 스릴러 비스무리하게 흘러가게도 되는 것이지요.
 
 
#4. 스릴러 작가들이 울고 갈 만큼 탁월한 스릴러인건가?
 
   이 작품을 끝까지 읽고서 든 또 하나의 의문은 과연 이 작품이 훌륭한 스릴러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꾸 삐딱선을 타서 미안하지만 이게 시작을 타임슬립으로 하고 심심하고 밋밋한 전개에서 반전과 변화를 고민하다보니 나온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딱히 스릴러나 장르소설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게 왠지 본격 스릴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생각할 때 훌륭한 스릴러라거나 연애소설과 스릴러의 절묘한 조합이라거나 이런 표현들이 상당히 불편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그저 무늬만 스릴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분명 잘 읽었습니다. 무난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거참 재미있게 읽고 쓰는 내용이 족족 나쁜 말이기는 한것 같아 어차피 뭐라고 하든 알지도 못할 뮈소 형님에게 미안하기만 하지만 앞으로 특별히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지 않은 이상 이분 책을 골라서 집어 들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