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하트우드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 비룡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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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조금은 담담한 성장동화

 

   며 칠전 저녁이었습니다. 거실에 비스듬히 누워 팔로 턱을 받친 상태로 멍하니 TV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새 첫째가 제 앞으로 다가와 저의 자세를 그대로 흉내내며 드러누웠습니다. 잠시 그러고 있던 아이는 뒤를 돌아 저를 쳐다보며 늘 그렇듯 한없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빠, 하은이가 아빠를 그대로 따라한다. 우하하~~" 어이가 없어 피식 웃던 저는 그 순간 아이의 헤맑은 표정을 보며 '아, 이 아이가 부모인 나를 따라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인식이 실체로 다가왔습니다. 저를 보고 흉내내며 자라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끊임없는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합니다. 감정의 교감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평가하고 정의합니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전인격적 성장을 위해서는 두가지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타인의 공감과 진솔한 반응입니다. 이 반응이 반드시 긍정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반응을 통해서 자신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성찰도 필수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스스로의 자세입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바람직한 반응을 통해 자극을 주더라도 그것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정상적인 성장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이 두가지 중 특히 스스로의 자세에 대한 성찰이 녹아있는 성장동화입니다. 이름도 어려운 에드워드 툴레인이라는 도자기 토끼인형은 이미 충분히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는 주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이 특별하다고, 하지만 자신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는 버려지고 깨지고 망가지면서 겸손을 배웁니다. 관계의 소중함을 알아가고 경험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 갑니다.

 

   이러한 깨달음의 필수요소는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극복입니다. 이 책의 말미까지도 에드워드는 상처를 극복하기 보다는 체념합니다. 이 책 전반에 상처와 체념의 정서가 지배적으로 뭍어나는데 성장동화답게 말미에는 이 체념이 희망으로 바뀌면서 기적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됩니다.

 

 

#2. 겸손하라. 사랑하라. 희망을 잃지마라... 알겠다... 오버!

 

   우리의 삶이 이 동화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현실세계는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상처만 안은채로 삶을 마감하는 인생도 차고 넘칩니다. 그런가 하면 부적절한 주변환경 때문에 정상적인 정서적 성장이 멈춘 인생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성장동화지만 우리의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 없는 잔혹동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교훈에 귀를 귀울이는 것은 유익합니다. 주변에 사랑이 넘칠 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때 겸손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드워드 처럼 주위 사람을 실망시키고 맙니다. 쓰레기 통에 버려지거나 깊은 바다 밑바닥에 쳐박히고 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오픈하고 주위 사람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한번, 두번 상처받을 때마다 마음을 닫고 세상과 단절된다면 두번다시 살며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더 적절한, 더 귀한 사랑이 찾아올거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교훈합니다.

 

   좋은 말이고 꼭 필요한 교훈이니 놓치면 손해입니다. 교훈은 접수하도록 합니다.

 

 

#3. 미디어의 위력과 폐해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짧은 시간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좋은 내용이고 교훈이 담겨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는 했지만 과연 이 책 내용 자체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훌륭하고 대중적인 책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 책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에는 너무 잔잔하고 담담합니다. 재미와 흥미면에서 오락적요소가 너무 떨어지는 한편  자기계발서처럼 대놓고 변화를 촉구하는 적극성도 없습니다. 대중과 편히 교감하기에는 지나치게 고상하고 시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드라마에 소개되었다는 이유로 반응이 뜨겁고 많은 사람들이 이책을 찾아 읽습니다. 이런 현상을 대할때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비룡소 관계자분들은 뜻하지 않은 호재에 기뻐하시겠지만 매번 영화나 드라마 등의 기타 매체, 미디어의 위력에 좌지우지되는 책의 낮은 위상을 절감하며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듭니다.

 

   드라마에 언급되어 인용되었던 시적인 문구들은 그 나름으로 드라마에 녹아들어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지구에 홀로 몇백년간 살아남은 외계인이 자기 잘난맛에 살며 수명이 짧은 인간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관계를 맺지 않다가 한 여성으로 인해 사랑을 알아가고 관계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과정은 이 책의 주제와도 잘 매치가 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 드라마에서 인용하고 싶었던 것은 이 책 전체가 아니라 시적인 분위기로 주인공들의 관계의 진전을 표현할 수 있는 특정 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드라마가 있어 보이는데 한몫 하는 장치로 사용되었을 뿐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책 자체도 훌륭하고 좋은 성장동화지만 드라마 때문에 관심받고 뜬 책입니다. 유행에 민감한 분, 감수성이 예민하여 동화에 감흥이 크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세상 풍파에 닳고 닳은 분도 정화를 위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타 해당사항이 없는 분들... 내용이 길지 않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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