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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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피카레스크식 피카레스크 소설


   말장난 같지만 피카레스크식 피카레스크 소설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피카레스크(picaresque)라는 것은 원래가 악한(악당)이 주인공이 소설을 의미합니다. 경찰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인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작 [그림자 밟기]는 주인공이 "도둑"입니다. 악당과 도둑은 약간 뉘앙스가 다르지만 나쁜이가 주인공이라는 의미에서는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동일한 주인공에 동일한 주변인물, 그리고 배경과 공간까지 동일한데 패턴화된 사건이 반복되는 연작소설 형식입니다. 그러니 원래 피카레스크라는 의미를 넘어 연작소설을 의미하는 피카레스크식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이 등장하는 연작소설" 즉, 피카레스크식 피카레스크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게 뭐 중요해?"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네요. 그냥 말장난을 좀 해보았습니다. 여튼 이작품은 도둑이 주인공인데다가 연작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집은 좋아하지만 연작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아주 잘 읽고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64"를 읽으며 느꼈던 감탄까지는 없었던거 같습니다.



#2. 인간을 그리는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 그러나..


   요코야마 히데오 작품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간에 대한 묘사가 매우 진중하고 정밀하다는 점입니다. 그가 경찰소설로 명성을 날리기는 했지만(그리고 무척 탁월하지만) 사건을 추적하고 해결하는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주는 능력이 있었기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도 작가로서는 자신이 그려내는 이야기의 외연을 더욱 확장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경찰이라는 직업군에 한정되어 있던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깨는 동시에 신선한 작품을 써보고 싶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에 녹아있는 여러가지 관계와 환경,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군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는 정해진 한계는 없죠. 이번 작품에서 히데오님은 "도둑"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도둑" 주인공에게 독특한 성격과 이력과 사연을 부여했습니다. 그 바운더리 내에서 주인공은 행동하고 갈등하고 선택합니다. 이 흐름을 지켜보는 독자는 묘한 동질감과 공감을 얻기도 하고, 이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바로 이지점이 이번 작품 [그림자 밝기] 평가에 대한 개인취향차가 명확하게 갈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저같은 경우는 읽는동안 재미는 있었지만 주인공의 형편과 과거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공감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도둑이 너무 도둑으로써의 덕목에 어긋나기도 하고 현실감이 약간 떨어지는 느낌으로다가 너무 선하달까... 생각하기 나름인데 저는 약간 작위적인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동생의 사념이 귀에 들리고 대화를 나누는 설정 자체도 계속 불편하기만 합니다.



#3. 누구나 겪는 인생의 굴곡, 그림자를 만드는 것은 빛을 밝히는 방향과 거리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큰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을 대하며 겪는 아픔과 좌절, 그리고 이에 대한 리액션으로써의 선택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관찰합니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고민하게 합니다. '이 친구는 왜 이러는거야? 쿨한거야, 멍청한거야?' 이런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나가는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인생의 측면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두움 또는 외부환경에 의해 겪는 어두움 속에서 내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와중에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생성되는 나의 그림자. 이런 나의 그림자를 숨기는 방법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숨겨도 내가 모습을 드러나면 반드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나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주인공 "미카베"는 한 여인을 놓고 쌍둥이 동생과 경쟁하던 때, 동생이 죽은 사실을 애도하기 보다 경쟁자가 사라진 것을 더 마음쓰던 자신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가지게 된 듯 합니다. 또한, 똑똑하고 성실하던 자신보다 사고만 치던 동생을 더 끔찍히 아끼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감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건전하지 못한 마음이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던 여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동생의 사념을 품고 이중 인격자처럼 대화를 하는 이상행동을 지속하고, 스스로 도둑이 되어 남이 물건을 훔치러 다니는 사회의 쓰레기같은 밑바닥 인생이 됩니다. 일종의 자학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완전 자포자기 한 것은 또 아니어서 그 와중에 계속 다른 사람들을 돕는 오지랖을 펼칩니다. 자신이 위험에 처하는 부담을 안아가면서 과하게 돕는 태도를 계속 취합니다. 정신줄을 완전히 놓지 않았고, 언제든 극복할 준비를 해가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드라마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예상가능하듯이 주인공은 이야기의 말미에 과거와 어느정도 화해하고 극복하는 모습으로 해피엔딩에 가깝게 마무리됩니다.


   변한 것은 없는데 차츰차츰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또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바뀝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미 도둑이라는 위치를 바꾸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남아있겠습니다만, 정말 동생의 목소리던 자신의 상상이건 동생의 목소리로 손을 씻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처럼 스스로 새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남자의 모습은 멋있습니다. 그림자의 방향은 빛이 비췰 때 내가 어디에 서고,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주인공의 행보는 우리에게 약간의 위로를 안겨주는 것도 같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연작 하나하나 마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 주인공의 능력이 지나치게 대단한 것도 볼거리입니다. 그냥 척 둘러보면 사건의 내막과 범인을 금새 알아채버립니다. 너무 과하게 똑똑이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짧은 분량안에 이렇게 많은 사건을 풀어내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읽는 중에는 상당히 흥미롭고 긴장감 있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저에게는 기대치보다는 조금 심심하고 약간은 불편함도 남았던 작품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님의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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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첫 문장
하성란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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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어느 대목에서든 그들의 첫 문장을 읽듯 설레었다.


   저는 하성란 작가님을 잘 모릅니다. 사실 국내작가님들 책을 거의 읽어본게 없어서 잘 모르는 작가님이 많아요. 하성란 작가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사실 내지 디자인이 예쁘고 제목이 와닿아서 샀습니다. 별로 계획적이지 않는 저는 신중하게 책을 고르지 않아요. 딱히 안목이 없어서 신중하게 고르지 않아야 뜻하지 않게 좋은 책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도 바로 그런 책입니다. 저희 취향이라면 절대 살 책은 아니니까요.


   딱 책을 많이 읽고 쓰시는 분이라는 느낌이 서문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옵니다. 그리고, 위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차분한 글이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작가님이 밤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나와 책을 읽고 글을 쓰시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글은(특히 소설이 아닌 에세이의 경우) 그사람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경우가 많으니 원래 차분하신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과 이야기를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받아서 무척 좋았습니다. 저와는 완전 결이 다르긴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분은 왠지 모르게 정이가고 소중한 분이라는 선입관과 편견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편견을 그냥 계속 편견으로 가지고 있고 싶은 편견이 있으니까요. 어느 대목에서든 그들의 첫 문장을 읽듯 설레었던 저자의 감상을 읽으며 저도 살짝 설레었습니다. 너무 살짝이긴 하지만요.




#2. 서평집이냐... 감상문이냐.. 일상 에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책은 장르가 참 애매합니다. 형식으로만 따지면 서평집에도 가깝고 감상문에도 가까운 것이 여튼 북에세이라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건 50명이나 되는 작가의 작품이나 산문을 발췌하고 그 발췌글에 대한 작가의 감상을 적은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좀 따지고 들자면 좀 헤깔리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여러 작가님들의 글을 일부 발췌해 놓기는 했으나, 그 작품에 대한 감상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관련이 딱히 없는 글들이 붙어있는 경우가 꽤 있어요. 발췌글 중 단어 하나에 꽂혀 옛 추억을 적어두기도 하고 말이죠. 오히려 짧은 글을 남기기 위해 무언가 관련있는 글을 발췌해서 덧붙인 듯한 느낌을 갖을 수도 있는 글이 아닐까 해서요.


   그래서 저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다양한 작가의 글을 발췌함으로써 충분히 표현을 했다.' 정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덧붙은 50개의 산문은 일상 에세이다'라고 생각하면 딱 적당한 것 같습니다.


   좀 덧붙이자면 이 책 "당신의 첫문장"은 제가 잘 모르던 다양한 작가님들과 그분들 글의 특징들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부대효과가 있어요. 마치 베스킨 라빈스에 가서 숫가락으로 종류별로 맛보기 찬스를 쓴 것만 같은 느낌이죠. 거참, 저같은 사람은 다 사먹어보고 말지 맛보기 찬스 이런건 못쓰겠더군요. 꼭 나쁜소리라도 쓸까봐 주기는 하는데 밉살쓰러워 보이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제가 판매원이면 표정관리 힘들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는 건 누구 눈치 볼일은 없느니 좋지요.




#3. 저자의 정서가 담북 담긴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성란 작가님의 글은 상당히 차분하고 교양있습니다. 헤벌레 하는 저같은 사람이 읽으면 약간 힘들수도 있지만 의외로 또 잘 녹아나요.  마치 제가 차분하고 교양미 넘치는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살짝 빠지는 긍정적 효과도 있습니다. 이분의 글을 읽다보니 제가 잘 아는 이웃님 중에 "자목련"님이 자연히 떠오르더군요. 사실 "자목련"님은 차분차분 열매 대 능력자세요. 저와 거의 극단에 서 계신 분이기도하고 말이죠. 저자는 그런면에선 "자목련"님보다는 살짝 유머가 미세량 함유되어 있는 분입니다. 한 큰술 정도 더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자목련님 블로그:  http://littlegirl73.blog.me/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은 자목련님의 "치유하는 책읽기"와 비교해서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엄청 닮은 듯 다르거든요. 묘하게 유사한 패턴이 있으나 감성도 조금 다르고 형식도 조금 다른데 두 책 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기도 하고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이나 작가들에 관심도 같고 견문도 넓히고 "아는척 하는 능력치"가 5정도 상승하는 효과를 맛볼 수 있습니다.


 

   조용하고 따스한 밤, 홀로 조용히 다양한 작가들의 글도 접하고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담이며, 생각이며, 관심사들을 함께 나누며 위로받고 용기내고 싶다면 한번 쯤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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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우주 출판사의 책은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피니스아프리카에, 불새 출판사는 제가 격하게 애정하는 출판사입니다. 한결같이 큰 돈 안되도 꾸준히 좋은 책 출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니스아프리카에 87분서 시리즈는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중 하나입니다. 57권모두 완간해주세요~~~ 그리고 POD방식으로 알라딘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중 한정판 SF출판사 불새는 무조건 믿고 사는 책들입니다.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지만 언젠가는 미스터리, SF 독자층이 주류가 되는 그날까지 힘내시기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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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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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해변의 카프카는 제목부터 내용까지 하루키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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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슈퍼히어로
김보영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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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취향저격 단편집을 만나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부터 '아, 이거 나랑 잘 맞게 생겨 먹었다....'하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역시나 기대대로 느낌적인 느낌에 잘 맞게 이거 완전 제 취향입니다. 오랜만에 책읽는 기쁨을 한껏 맛 본 책을 만났습니다. 오랜시간 아껴가며 꼼꼼하게 읽었네요. '아, 역시 나는 마이너 뽕필이 제격이구나' 싶었습니다. 히어로물을 그냥저냥 남들 좋아하는 만큼 좋아는 하지만 생겨먹기를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지라 한가지에 미친듯이 빠져들었던 적이 없어 히어로물을 들입다 읽고 보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히어로물의 전형성에 대해 그다지 큰 선입관 없는 채로 [이웃집 슈퍼 히어로]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제각각 성격도, 스토리도 다양하고 각자 고유의 특색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특유의 사회전반에 히어로들이 얼마나 녹아들 수 있는지,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는지, 반대로 사회는 이런 비현실적인 히어로들을 어떤 식으로 수용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이 꽤나 현실적입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담긴 작품들의 모듬이 바로 이 책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피식 웃으면서 '웃기고 있네!'라고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한숨쉬며, 욕지거리를 하며 세상 탓을 해가면서 이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2. 피곤한 사회, 답 없는 한국사회에 관여하는 히어로들, 그들의 삶도 피곤하고 고달프다.


   이 작품집에 포함된 국내산 히어로들은 마블의 히어로들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아이언맨처럼 산업전반을 휘어잡고 미디어를 농락할 만한 스케일도 없습니다. 심지어 사회와 미디어의 영향으로 이리저리 궁지에 몰리기도 합니다. 바보 열명속에 천재 한명이 끼면 천재가 바보 취급 당하는 것과 유사한 이유로 우리의 히어로들은 평범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하고, 위험한 그 무엇으로 구분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배트맨에서 보던 돈지랄 풍년인 고퀄 장비를 장착한데다 부모에 대한 복수심까지 불타는 갑부 히어로도 볼수가 없고, 전 우주적으로 놀면서 지구를 빙빙돌아 시간을 되돌려버리는 슈퍼맨 같은 스케일 다른 능력자도 볼 수가 없습니다. 우주로 날아다니는 토르 같은 영웅들은 지구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 따위는 관심사도 아닙니다만 [이웃집 슈퍼 히어로]에 등장하는 히어로와 이 히어로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복잡 다난한 사회에 속한 소수자들의 삶과 고민, 고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웅인데 뭐가 이리 짠하나 싶습니다.



#3. 비주류도 머리수가 많으면 문화가 된다. 덕후들이여 힘을내라.


   [이웃집 슈퍼 히어로]에 수록된 작품들이 대체로 주류 문학작품에서는 무한히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주류도 맥없이 무너져가는 판에 주류, 비주류 따질 형국도 아닌지라, 이런 흥미롭고 특색있는 작품들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다만, 이 작품들이 저의 취향에만 좋았던 것인지, 다른은 분들은 콧방귀를 뀔 내용들인지는 가늠이 안되는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솔직히 제 속에도 이 작품들을 처음 대할 때 '엉뚱한 양반들이 뭐 대단한 글을 썼겠어? 피식 웃을 만한 가벼운 글들이겠지...'라는 생각을 일말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의외로 수준높은 작품들을 대하면서 꽤나 놀랐습니다. '뭐지? 이 퀄리티는?' 뭐 이런 느낌? 게다가 대체로 제가 좋아하는 사회파같은 느낌이 강했으니까요.


1) 존재의 비용 : 진산

   - 히어로를 만드는 데는 그만한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 라는 컨셉 자체가 훌륭했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도 결말도 좋았던 작품입니다. 너무 짧아서 내용이 단편적이었던 것이 아쉽습니다.(단편인데 단편적이라고 아쉬워 하는게 맞는건가 모르겠다. )


2) 월간영웅 홍양전 : dcdc

   - 이 작품이 사실 가장 엉뚱했습니다. 여자 영웅 홍양이 등장하는데 초인적인 능력의 원천이 한달에 한번하는 생리스트레스라는 말인지 빵구인지 알수 없는 설정... 그런데 읽다보면 그럴듯해... 심지어 갈수록 로맨스로 넘어가... 이거.. 읽고보니 연애소설이라... 하아... 부끄부끄...


3) 편복협대 옥나찰 : 좌백

    - 작가의 필명은 물론 작품명에서도 느낌이 팍 오듯이 이 작품은 굳이 나누자면 "무협 SF 패스티시" 정도가 되겠습니다. 내용적으로는 거의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배경과 이름만 바꿔 놓은 패스티시 소설 같은 느낌입니다. 배트맨과 악당과의 대결 장면등은 무협소설의 대결장면에 등장하는 기술들을 가져다 쓰고 말입니다. 배트맨 시리즈에 정통한 저자가 자신의 특기를 잘 접목시켜 흥미로운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배트맨의 등장인물과 매치시켜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결론까지 확실히 지어주지 않고 얼렁뚱땅 쓰다만 듯한 느낌의 마무리가 아쉬웠습니다.


4) 소녀는 영웅을 선호한다. : 김수륜

    - 어린 시절 만났던 영웅을 동경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 좀 흔하기는 한데, 그 주인공이 흔히 빌런이라고 표현하는 악당이고 여린 여자라면 어떨까요? 액스밴드를 얼굴에 착용한 신체능력 뛰어난 젊은 히어로, 그리고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부와 그를 돕는 어시스턴트들, 이런저런 이유로 이야기가 꽤나 다양하게 확장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런 이유에선지 이 작품은 장편으로 만나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베스트는 아니었지만요.


5) 초인은 지금 : 김이환

   - 이 작품은 초인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와 관찰의 결과가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사회성 짙은 작품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히어로, 초인이 정말 등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진심으로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던 주인공,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초인의 존재 등이 극적으로 잘 버무려진 작품이었습니다.


6) 선과 선 : 이수현

   - 이 작품은 흔히 히어로를 연상시킬때 함께 떠오르는 고민들에 대해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저는 보통 "악"과 "차악"의 대결이 이 사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히어로가 끼어든 히어로 사회에서는 선과 선의 대결이 상징인가 봅니다.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입장과 판단으로 나쁜일을 막는 히어로와 사회적 규칙과 법적 위치를 인정받은 경찰의 입장이 대립하는 상황이 흥미롭습니다. 경찰같은 경우는 '범인을 잡는다', '범죄를 해결한다'는 단순한 상징적 결과물을 위해 치뤄야할 절차들이 만만치 않고, 그 이후 후속조치로 정리해야할 서류작성 절차 등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니까 절차를 중시하는 조직에 속해있는 경찰의 입장에서 히어로의 행동은 편법일 뿐입니다. 감사를 받으면 서류관리 소홀로도 징계를 받는 공조직이니 히어로가 벌인 일은 이거뭐 서류정리 자체가 곤란합니다. 그 뿐입니까? 조직의 위상이나 평가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런저런 문제로 분명 지향하는 방향은 같은 듯 하나 서로 공존하기 힘든 존재들일 뿐입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잡아낸 수작입니다.


7) 아퀼라의 그림자 : 듀나

   - 듀나님은 명성에 걸맞게 히어로물도 상당히 묵직하고 깊이있는 세계관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점은 작가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히어로들을 양산해내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걸그룹, 보이그룹 같은 히어로 팀을 꾸리고 이들의 스토리를 써나가고 각본대로 끼워 맞추는 영웅시대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 히어로 사업의 명암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얽힌 부작용, 개인의 원한과 이들 히어로팀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을 통칭하는 그림자와의 관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히어로를 존재하게 하는 탑힐(악당)의 존재와 이미지 메이킹 등 다양한 이면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한 장르에 정통한 사람, 특히 SF쪽은 늘 그런 문제가 보이는데 지나치게 전문적인 설정이자 생소한 표현들을 마치 '다들 알지 않아? 이걸 모를수가 있어?'싶은 태도로 늘어놓습니다. 그리하야 SF 초보자들, 히어로물의 입문자들은 몸서리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을 굳이 알려주려 하는 듯하다고나 할까요? 수준높은 작품인 만큼 읽기 불편한 부분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서 뭔소리인가 할 수있는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등장하는 아퀼라가 뭔지 한참을 읽다보면 '아, 그얘긴가보..'하고 스스로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친절함이 작품 전반에 깔려있고, SF 책이 끽해야 2~300백부 팔리는 한국시장에 적절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8)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 이보영

   - 이 단편집에서 베스트를 든다면 바로 이 작품이 단연 탑이 아닐까 합니다. 이보영 작가님은 이 단편집 전체를 기획하신 분이기도 한데 필력이 상당하고 설정과 세계관도 탄탄하다는 느낌입니다. 히어로와 빌런, 그러니까 영웅과 악당은 종이한장 차이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을 몽땅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으니까요. 누가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착안해 남다른 능력을 가진 히어로의 고민과 갈등, 고독, 애로사항 등이 정말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영웅들을 대하는 보통 인간들의 자세가 참으로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이거 뭐 애둘러 풍자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문제를 상당히 심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형 사고는 누구하나의 잘못이 아니라 잘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발생한다는 일침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시간을 거의 멈추게 하는 능력자와 중력을 다루는 능력자의 설정 및 설명도 그럴듯하고 좋았습니다. 이분 작품은 찾아 읽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듭니다.


9) 노병들 : 이서영

   - 도데체 어디서 뭐하던 작가님입니까? 이 작품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았습니다만, 소재나 설정을 풀어내는 능력을 생각하면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기는 합니다. 분량이 많아서 더 좋게 느껴졌을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좀더 깊이있는 표현이 가능하니까요. 아무나 되는건 아니지만...

   "노병들"은 한창 경제개발시기에 법도 규칙도 없이 욕망만 넘치던 그때 이념대립에 희생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지금에 와서는 어버이 연합 같은 극우 성향을 띄게 되는데 이게 미디어의 영향이기도 하고 한국 사회의 특수성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국가 공권력과 자본가에 대항하던 노동가의 대치상황에 능력자 히어로들을 투입시켜 그들이 싸움을 주도해왔다는 발상이 신선했습니다. 이 이야기속에 자연히 드러나는 세대갈등, 이념갈등 등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훌륭하다 느껴졌고 마음을 뒤흔들었던 결말도 무척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캐릭터들의 감정변화를 세심하게 표현해낸 능력이 탁월하다 느껴졌습니다. 굿입니다...


10) 문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영웅들 & 슈퍼히어로 팬들이 쓰는 슈퍼히어로 이야기

    - 이 단편집의 진정한 백미는 미국의 SF와 히어로물의 발전사를 소개해주는 잠본이 님의 글과 히어로물 팬들이 일궈낸 히어로물의 역사에 대해 정리한 이규원님의 글이었습니다. 마지막 두작품을 제외하면 본문 단편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가치있는 글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 내용들로 SF와 히어로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SF에 대한 사랑과 엄청난 히어로물의 대유행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게되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는 참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웃집 슈퍼 히어로]는 지극히 한국적인 영웅들이 등장하는 국내산 슈퍼 히어로물입니다. 국내산인 만큼 한국적 정서와 접근이 눈에 띄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무척 다채롭게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고고한 고전과 순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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