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슈퍼히어로
김보영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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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취향저격 단편집을 만나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부터 '아, 이거 나랑 잘 맞게 생겨 먹었다....'하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역시나 기대대로 느낌적인 느낌에 잘 맞게 이거 완전 제 취향입니다. 오랜만에 책읽는 기쁨을 한껏 맛 본 책을 만났습니다. 오랜시간 아껴가며 꼼꼼하게 읽었네요. '아, 역시 나는 마이너 뽕필이 제격이구나' 싶었습니다. 히어로물을 그냥저냥 남들 좋아하는 만큼 좋아는 하지만 생겨먹기를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지라 한가지에 미친듯이 빠져들었던 적이 없어 히어로물을 들입다 읽고 보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히어로물의 전형성에 대해 그다지 큰 선입관 없는 채로 [이웃집 슈퍼 히어로]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제각각 성격도, 스토리도 다양하고 각자 고유의 특색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특유의 사회전반에 히어로들이 얼마나 녹아들 수 있는지,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는지, 반대로 사회는 이런 비현실적인 히어로들을 어떤 식으로 수용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이 꽤나 현실적입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담긴 작품들의 모듬이 바로 이 책의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피식 웃으면서 '웃기고 있네!'라고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한숨쉬며, 욕지거리를 하며 세상 탓을 해가면서 이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야 했던 것입니다.




#2. 피곤한 사회, 답 없는 한국사회에 관여하는 히어로들, 그들의 삶도 피곤하고 고달프다.


   이 작품집에 포함된 국내산 히어로들은 마블의 히어로들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아이언맨처럼 산업전반을 휘어잡고 미디어를 농락할 만한 스케일도 없습니다. 심지어 사회와 미디어의 영향으로 이리저리 궁지에 몰리기도 합니다. 바보 열명속에 천재 한명이 끼면 천재가 바보 취급 당하는 것과 유사한 이유로 우리의 히어로들은 평범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하고, 위험한 그 무엇으로 구분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배트맨에서 보던 돈지랄 풍년인 고퀄 장비를 장착한데다 부모에 대한 복수심까지 불타는 갑부 히어로도 볼수가 없고, 전 우주적으로 놀면서 지구를 빙빙돌아 시간을 되돌려버리는 슈퍼맨 같은 스케일 다른 능력자도 볼 수가 없습니다. 우주로 날아다니는 토르 같은 영웅들은 지구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 따위는 관심사도 아닙니다만 [이웃집 슈퍼 히어로]에 등장하는 히어로와 이 히어로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복잡 다난한 사회에 속한 소수자들의 삶과 고민, 고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웅인데 뭐가 이리 짠하나 싶습니다.



#3. 비주류도 머리수가 많으면 문화가 된다. 덕후들이여 힘을내라.


   [이웃집 슈퍼 히어로]에 수록된 작품들이 대체로 주류 문학작품에서는 무한히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주류도 맥없이 무너져가는 판에 주류, 비주류 따질 형국도 아닌지라, 이런 흥미롭고 특색있는 작품들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다만, 이 작품들이 저의 취향에만 좋았던 것인지, 다른은 분들은 콧방귀를 뀔 내용들인지는 가늠이 안되는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솔직히 제 속에도 이 작품들을 처음 대할 때 '엉뚱한 양반들이 뭐 대단한 글을 썼겠어? 피식 웃을 만한 가벼운 글들이겠지...'라는 생각을 일말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의외로 수준높은 작품들을 대하면서 꽤나 놀랐습니다. '뭐지? 이 퀄리티는?' 뭐 이런 느낌? 게다가 대체로 제가 좋아하는 사회파같은 느낌이 강했으니까요.


1) 존재의 비용 : 진산

   - 히어로를 만드는 데는 그만한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 라는 컨셉 자체가 훌륭했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도 결말도 좋았던 작품입니다. 너무 짧아서 내용이 단편적이었던 것이 아쉽습니다.(단편인데 단편적이라고 아쉬워 하는게 맞는건가 모르겠다. )


2) 월간영웅 홍양전 : dcdc

   - 이 작품이 사실 가장 엉뚱했습니다. 여자 영웅 홍양이 등장하는데 초인적인 능력의 원천이 한달에 한번하는 생리스트레스라는 말인지 빵구인지 알수 없는 설정... 그런데 읽다보면 그럴듯해... 심지어 갈수록 로맨스로 넘어가... 이거.. 읽고보니 연애소설이라... 하아... 부끄부끄...


3) 편복협대 옥나찰 : 좌백

    - 작가의 필명은 물론 작품명에서도 느낌이 팍 오듯이 이 작품은 굳이 나누자면 "무협 SF 패스티시" 정도가 되겠습니다. 내용적으로는 거의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배경과 이름만 바꿔 놓은 패스티시 소설 같은 느낌입니다. 배트맨과 악당과의 대결 장면등은 무협소설의 대결장면에 등장하는 기술들을 가져다 쓰고 말입니다. 배트맨 시리즈에 정통한 저자가 자신의 특기를 잘 접목시켜 흥미로운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배트맨의 등장인물과 매치시켜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결론까지 확실히 지어주지 않고 얼렁뚱땅 쓰다만 듯한 느낌의 마무리가 아쉬웠습니다.


4) 소녀는 영웅을 선호한다. : 김수륜

    - 어린 시절 만났던 영웅을 동경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 좀 흔하기는 한데, 그 주인공이 흔히 빌런이라고 표현하는 악당이고 여린 여자라면 어떨까요? 액스밴드를 얼굴에 착용한 신체능력 뛰어난 젊은 히어로, 그리고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부와 그를 돕는 어시스턴트들, 이런저런 이유로 이야기가 꽤나 다양하게 확장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런 이유에선지 이 작품은 장편으로 만나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베스트는 아니었지만요.


5) 초인은 지금 : 김이환

   - 이 작품은 초인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와 관찰의 결과가 재미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사회성 짙은 작품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히어로, 초인이 정말 등장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진심으로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던 주인공,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초인의 존재 등이 극적으로 잘 버무려진 작품이었습니다.


6) 선과 선 : 이수현

   - 이 작품은 흔히 히어로를 연상시킬때 함께 떠오르는 고민들에 대해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저는 보통 "악"과 "차악"의 대결이 이 사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히어로가 끼어든 히어로 사회에서는 선과 선의 대결이 상징인가 봅니다.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입장과 판단으로 나쁜일을 막는 히어로와 사회적 규칙과 법적 위치를 인정받은 경찰의 입장이 대립하는 상황이 흥미롭습니다. 경찰같은 경우는 '범인을 잡는다', '범죄를 해결한다'는 단순한 상징적 결과물을 위해 치뤄야할 절차들이 만만치 않고, 그 이후 후속조치로 정리해야할 서류작성 절차 등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니까 절차를 중시하는 조직에 속해있는 경찰의 입장에서 히어로의 행동은 편법일 뿐입니다. 감사를 받으면 서류관리 소홀로도 징계를 받는 공조직이니 히어로가 벌인 일은 이거뭐 서류정리 자체가 곤란합니다. 그 뿐입니까? 조직의 위상이나 평가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런저런 문제로 분명 지향하는 방향은 같은 듯 하나 서로 공존하기 힘든 존재들일 뿐입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잡아낸 수작입니다.


7) 아퀼라의 그림자 : 듀나

   - 듀나님은 명성에 걸맞게 히어로물도 상당히 묵직하고 깊이있는 세계관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점은 작가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히어로들을 양산해내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걸그룹, 보이그룹 같은 히어로 팀을 꾸리고 이들의 스토리를 써나가고 각본대로 끼워 맞추는 영웅시대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 히어로 사업의 명암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얽힌 부작용, 개인의 원한과 이들 히어로팀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을 통칭하는 그림자와의 관계, 그리고 결정적으로 히어로를 존재하게 하는 탑힐(악당)의 존재와 이미지 메이킹 등 다양한 이면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한 장르에 정통한 사람, 특히 SF쪽은 늘 그런 문제가 보이는데 지나치게 전문적인 설정이자 생소한 표현들을 마치 '다들 알지 않아? 이걸 모를수가 있어?'싶은 태도로 늘어놓습니다. 그리하야 SF 초보자들, 히어로물의 입문자들은 몸서리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을 굳이 알려주려 하는 듯하다고나 할까요? 수준높은 작품인 만큼 읽기 불편한 부분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서 뭔소리인가 할 수있는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애초에 등장하는 아퀼라가 뭔지 한참을 읽다보면 '아, 그얘긴가보..'하고 스스로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친절함이 작품 전반에 깔려있고, SF 책이 끽해야 2~300백부 팔리는 한국시장에 적절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8)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 이보영

   - 이 단편집에서 베스트를 든다면 바로 이 작품이 단연 탑이 아닐까 합니다. 이보영 작가님은 이 단편집 전체를 기획하신 분이기도 한데 필력이 상당하고 설정과 세계관도 탄탄하다는 느낌입니다. 히어로와 빌런, 그러니까 영웅과 악당은 종이한장 차이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을 몽땅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으니까요. 누가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착안해 남다른 능력을 가진 히어로의 고민과 갈등, 고독, 애로사항 등이 정말 실감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영웅들을 대하는 보통 인간들의 자세가 참으로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이거 뭐 애둘러 풍자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문제를 상당히 심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형 사고는 누구하나의 잘못이 아니라 잘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발생한다는 일침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시간을 거의 멈추게 하는 능력자와 중력을 다루는 능력자의 설정 및 설명도 그럴듯하고 좋았습니다. 이분 작품은 찾아 읽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듭니다.


9) 노병들 : 이서영

   - 도데체 어디서 뭐하던 작가님입니까? 이 작품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았습니다만, 소재나 설정을 풀어내는 능력을 생각하면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기는 합니다. 분량이 많아서 더 좋게 느껴졌을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좀더 깊이있는 표현이 가능하니까요. 아무나 되는건 아니지만...

   "노병들"은 한창 경제개발시기에 법도 규칙도 없이 욕망만 넘치던 그때 이념대립에 희생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지금에 와서는 어버이 연합 같은 극우 성향을 띄게 되는데 이게 미디어의 영향이기도 하고 한국 사회의 특수성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국가 공권력과 자본가에 대항하던 노동가의 대치상황에 능력자 히어로들을 투입시켜 그들이 싸움을 주도해왔다는 발상이 신선했습니다. 이 이야기속에 자연히 드러나는 세대갈등, 이념갈등 등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훌륭하다 느껴졌고 마음을 뒤흔들었던 결말도 무척 좋았습니다. 그 와중에 캐릭터들의 감정변화를 세심하게 표현해낸 능력이 탁월하다 느껴졌습니다. 굿입니다...


10) 문자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영웅들 & 슈퍼히어로 팬들이 쓰는 슈퍼히어로 이야기

    - 이 단편집의 진정한 백미는 미국의 SF와 히어로물의 발전사를 소개해주는 잠본이 님의 글과 히어로물 팬들이 일궈낸 히어로물의 역사에 대해 정리한 이규원님의 글이었습니다. 마지막 두작품을 제외하면 본문 단편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가치있는 글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 내용들로 SF와 히어로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SF에 대한 사랑과 엄청난 히어로물의 대유행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게되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는 참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웃집 슈퍼 히어로]는 지극히 한국적인 영웅들이 등장하는 국내산 슈퍼 히어로물입니다. 국내산인 만큼 한국적 정서와 접근이 눈에 띄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무척 다채롭게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고고한 고전과 순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좋아하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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