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홈즈의 마지막 사랑 ㅣ 카페 홈즈
김탁환 외 지음 / 손안의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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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홈즈를 배경으로 이런 작가님들의 작품이라니 엄청 기대되네요. 지난번 책보다 표지도 깔끔하고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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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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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편함을 넘어 현실로 다가온 대재앙 : 지구온난화


미국 부통령 앨 고어의 다큐멘터리 환경 리포트 "불편한 진실"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은 지도 벌써 10년 이상이 흘렀군요. 그 영상 속 그래프에서 본 수치들은 매우 극적이어서 마음이 심히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가 했던 행동이라는 것이 이 영상의 내용을 반박하는 측의 주장들을 찾아보며 '그래, 지구 환경이 그렇게 갑자기 나빠질 리가 없지. 우리 자식이나 손자뻘 때쯤 가면 좀 나빠질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시점에 지구온난화라는 대재앙의 실체에 대해 자세히 풀어낸 책 [2050 거주불능 지구]를 읽고 보니 저만 외면했을 뿐 지구는 꾸준히 온도 상승을 성실히, 극적으로 해 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들의 무지한 행위에 대한 결과로 말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액션이 있으면 리액션이 있기 마련입니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뉴욕 매거진>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가 2017년 자사 매거진에 기고했던 환경 리포트 [거주불능 지구]를 더욱 상세히 풀어내 출간한 책입니다. 이 책은 "상세히"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구체적인 데이터와 이론과 예시 등이 빡빡하게 가득 실린 책입니다.


지구온난화는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왔습니다. 누구도 모른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이나 미세 플라스틱 문제 등은 국가적 차원에서 신경을 쓰는데 비해 기후변화 부분만큼은 개인은 물론 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숨이 턱 막힐 만큼 긴박하고 심각하고 총체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차지하더라도 일단은 무엇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책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지구온난화 현상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이며 기후재난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 꼼꼼하게 정리해 알려주고 있는 책입니다. 하아...



2. 지구온난화 현상이 초래할 전방위적 변화들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거치며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자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우리 인류가 겪어야 할 변화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합니다. 너무 빨리 더워져 폭염으로 고통받을 것이고, 빈곤과 굶주림이 닥칠 것이며, 빙하가 녹아내려 많은 도시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불쯤은 '불장난'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로 산불이 심해질 것이고, 각종 대형 재난이 일상화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가뭄으로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바다의 순환 시스템이 붕괴되어 대멸종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도저히 마실 수 없을 만큼 공기가 오염되고 더 강하고 빠른 독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들이 나타날 것이며 이런 각종 재난들로 인해 경제는 무너지고 국가 간 개인 간의 자원전쟁이 발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문제들이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미리 써버린 현 인류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온난화의 결과이며 그로 인해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느끼는 진정한 문제는 저자의 대재앙 스토리가 과거처럼 그저 회피해버리거나 과대망상에서 나온 헛소리라고 치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이미 현실에 다가오는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면서 급격한 변화의 변곡점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합리적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급격한 기후변화의 시대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날카롭습니다.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을 비난하는 것으로 충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을 비난해서 끝나는 문제도 아닙니다. 개인의 행동으로 해결될 만큼 개인 차원의 문제일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옴짝달싹하기 힘든 심각한 지경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현세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제도가 흔들릴 만큼 치명적이며 마치 판타지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구원자로 등장했던 기술은 비용과 효용성의 한계에 막혀 실용성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불편한 상황과 모순을 겪어도 '역사는 큰 흐름으로 보면 항상 진보한다'라는 믿음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자는 해결이 요원한 거대한 문제 앞에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한 종말론적 사고와 태도, 회피와 금욕주의는 물론 여기에 한 술 더 떠 기왕 망친 거 될 대로 되라며 아예 '체념'해 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지구온난화라는 실체적 화두 앞에 일어날 다양한 변화들을 빠짐없이 꼼꼼히 짚어보고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한 내용들을 접하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써 내가 하는 일련의 에너지 최소화, 자연보호 행동 등이 크게 영향도 줄 수 없으면서 책임 회피에 불과할 수 있고, 자기만족적 행위를 넘어서기 힘들다는 지적까지 받아버리니 그야말로 넉다운, 아노미 상태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챕터 한 챕터 넘길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뒷골이 땡기면서 잠이 쏟아지는 자기보호회로가 작동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무서운 책인 것입니다.


3.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이 어려운 두 가지 핵심 요소와 남겨진 과제


이 책에서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난제이며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소에 대해 나열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일반 독자가 꼼꼼히 따지며 읽기에 지나치게 심각하고 복잡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훨씬 간단하고도 쉽게 설명한 내용이 기억납니다.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라는 책은 외계지성체라는 단어 때문에 외계인에 대해 쓴 터무니없는 책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질 수 있는 책이지만 후반부에서는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매우 거시적이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애초에 환경 문제가 대두되게 된 데에는,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에는 세 개의 낯익은 주범이 있습니다. 하나는 경제적 요인으로, 과생산•과소비를 지향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현재의 시장자본주의입니다. 둘째는 정치적 요인으로서, 민주주의 체제입니다. 정부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꿔버리는 체제지요. 셋째는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 간 경쟁 체제 속에서 범국제적 기후협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민족국가 체제입니다. p220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최준식, 지영해. 김영사. 2015


지영해 교수는 환경 문제가 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정치적 요인으로 민주주의 체제,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민족국가 체제가 서로 맞물리면서 해결을 막고 있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요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거대한 문제는 개개인이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해 절대적으로 무지하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을 만큼 사안이 크다 보니 눈을 닫고 이를 외면하는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입니다. 보다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 적극적인 환경운동가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거짓과 선동으로 치부하며 적극 거부하는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가장 큰 불안 요인은 인간 자체입니다. 인간의 판단과 행동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다양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입니다.


거대한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는 책일수록 사안이 지닌 문제점과 모순에 대한 화려하고 자세한 설명에 비해 대안과 해결책 제시가 허술하거나 하나 마나 한 일반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 역시 이런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는 대안과 해결책 제시보다는 기후재난이 가진 심각성과 긴박함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고 보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쉽게도 저자는 스스로 제기한 환경재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이 문제가 가진 구조적인 난점에 대해 국가를 초월하는 전 지구적 체제가 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이고 막연한 전망을 내놓습니다. 게다가 인류 원리 개념을 끌어와 지구상의 온 인류가 '한 사람'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언 듯 생각해도 일어날 수 없는 방식의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 이상의 답이 없는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온 인류가 '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애초에 지구상에 환경재난 문제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아무쪼록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종말적인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해결책에 대한 공통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제 아이들이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지구에서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비록 답답하고 답이 없는 것 같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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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사회 1 - 존재의 방식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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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방면으로 미래를 조망하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수작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격파하며 인공지능의 위력을 뽐낸 것이 불과 3년 전의 일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덤덤하던 일반 대중들도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도래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이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대중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고 일부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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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우 작가는 전작 "스파링"과 "저스티스맨"으로 "정의"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당시 시대정신으로 대두되던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독자들과 평단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영민함이 돋보였습니다. 그랬던 작가가 2년 만에 디스토피아 SF 소설을 신작으로 들고 나온 점은 다소 의아했습니다만 이번 선택으로 인해 시의적절한 문제를 꺼내드는 것이 작가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대형 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한 신인소설가가 SF라는 장르소설을 선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SF 소설에 대한 한국 독자층을 고려하면 참으로 대담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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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사회"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배경으로 현시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미래 기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 전체를 제어하는 강 인공지능은 물론, 자율 주행 수준을 넘어서는 자율비행 호버카, 가상현실 기술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활용한 초확장 현실, 공각기동대를 떠올리게 하는 디지털 두뇌 기억 업로딩 기술, 이 모든 기술을 현실화할 수 있는 핵심인 나노 테크놀로지뿐 아니라 우주개척 SF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테라포밍 기술까지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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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SF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는 특정 기술에 한정되기 마련입니다. 이는 작가가 구현한 세계 내에서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해와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구현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설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는 소설의 완성도와 직결됨은 물론 상업적 성공과도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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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미래 기술들과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대담함을 넘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작가는 아마도 가까운 근 미래에 펼쳐질 모습을 조감함에 있어 특정 기술에만 국한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큰 틀에서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미래에 구현될 법한 기술들 중, 우리 사회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요소들을 빠짐없이 조사하고 적용한 것 같습니다. 이런 기술들을 총망라함으로써 작가와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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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미래 사회를 모색하는 과정은 "모조 사회"와 "복지 자본 공동체"를 대비해 배치함으로써 더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독재와 통제의 중앙집권형 도시 국가 "모조 사회"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구성원 간의 평등과 조화를 중시하는 "복지 자본 공동체"라는 두 극단적 체제를 비교, 대비함으로써 독자에게 다양한 사고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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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소개되는 각각의 모습과 기술은 필연적으로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보암직한 기시감을 일으킵니다. 중요한 부분은 독자가 식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얼마나 설득력 있게 묘사되는가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해 집요하게 느껴질 만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도선우 작가의 장점이 다시 한번 확인됩니다. 전작 '스파링'의 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하나의 개념이 작동하는 원리를 차근차근 단계를 거치며 설명하는 그의 능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는 작가가 가진 최고의 특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끈덕지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하나하나 풀어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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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으로 설득력을 부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설명이 길어지고 자칫 독자들의 흥미를 잃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평소 SF를 즐겨 읽거나 미래기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장점을 한껏 느끼며 감탄을 하게 되는 반면, 가뜩이나 어려운 SF가 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스토리가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무슨 기술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는 '그렇다 치고 읽는' 신공을 펼치는 독자들이 다수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작가는 근 미래에 특이점이 도래했을 때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각종 기술들에 대해 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갖춘 대단한 미래 SF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 같은 인간으로 하여금 경외의 감정을 품게 만드는 것입니다. SF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을지라도 무척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 이 정도로 스케일 크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완성도 높은 SF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 SF 소설의 역할에 충실한 사회파 SF 소설의 본보기


독자가 SF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킬링 타임 용일 수도 있고, 막연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장면들을 즐기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진지하고 적극적인 이유를 따져 본다면 미래를 그리고 있는 SF 소설을 읽음으로써 향후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변해 갈 것이며 그곳에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삶은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향후 사회 변화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그 속에서 세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고찰해 보는 사고실험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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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단순히 미래를 조망하는 것만으로는 SF 소설의 역할이 완성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미래향 가운데서도 갈등하고 고뇌하며 선택하는 '인간'이 그려져야 합니다. 이런 인간들의 속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이 좋은 SF 소설의 미덕이며 이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더욱 의미 있는 소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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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모조 사회"는 훌륭한 사회파 SF 소설이라고 할 조건들을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근 미래의 사회 속에서도 역사 속에 빠짐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 군상들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정인이 좌우하는 독재 통제 사회뿐만 아니라 조화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복지 자본 공동체조차 서로의 이해가 대립되는 순간이 오면 여지없이 이기주의가 등장하고 갈등과 반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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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등장인물의 능력이나 우연의 순간이 겹쳐 벌어지는 해피 엔딩 따위의 안일한 결론을 내지 않는 것도 눈여져 볼 만한 장점입니다. 특이점이 도래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의 핫한 이슈를 처리하는 작가의 선택은 세계적인 역사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주목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 예측되는 방향을 상정하고 비교적 냉정한 태도로 쓰인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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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자칫 독자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할 만큼 냉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나타나는 문제보다 훨씬 추악한 모습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며 때로는 과연 인류에게 밝은 미래가 있기나 한 것인가 회의를 가지게 될 지경인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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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런 인식은 소설 속 "모조 사회"의 모듈에서 연출되는 가상현실의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로 설정되어 있고, 가장 희망이 없어 부작용과 오류가 적기 때문이라는 블랙 유머 같은 설정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제법 쓴웃음을 짓게 되면서도 반박하기 힘든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소설은 사회파 SF 소설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3. 대중성과 작품성의 조화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SF 소설은 본질적으로 아이디어 기반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소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과학적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고, 나름의 논리적 개연성이 확보되기만 하면 이른바 유사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허용이 되는 것이 장르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과학적인 하드 SF가 있기는 하지만 논리적 비약이나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이 검증 없이 포함되는 것은 소설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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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다수의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기반을 제거하더라도 무리 없이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각 등장인물의 개성과 매력이 더해지고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됩니다. 폭발적인 전개와 뒤통수를 탁 때리는 반전까지 더해지면 독자들의 환호성이 터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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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의 대중성을 확보하기에 소설 "모조 사회"는 과학적 검증에 할애한 분량이 다소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장황한 설명만 들어내면 더 스피디하고 흥미로운 소설이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그런 선택을 하였다면 저로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작품이 되었을 뻔했습니다. 과학적인 치밀함 없이 전개되는 SF 소설이란 작품성의 관점에서는 크게 아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재미있게 읽었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와 같은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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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사회"는 스케일 큰 이야기의 줄기가 흘러감에도 각각의 사소한 디테일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국 SF 소설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현실 속에 등장하게 된다면 마치 성지순례처럼 이 책이 회자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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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확보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한 소설이었음에도 국내 SF 소설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안타깝지만 당장 이 소설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상황이 오기는 어려우리라는 슬픈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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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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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쓸데없이 집착하는 것의 미학...


   시대가 참 많이 변했습니다. 획일화, 산업화의 시대를 저만치 떠나보내고 나니 더 이상 규격에 맞추는 일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손가락질 받고 터부시되던 쓸데없는 짓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문화와 예술은 쓸데없는 짓에서 출발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참 쓸데없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나 하고 있네"라는 한숨 섞인 욕을 먹던 일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지요.


   이런 변화의 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더 독특하고 특별하고 유니크한 것에 대해 사랑과 인정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이 사랑과 관심과 인정에는 나름의 정밀하고도 까다로운 조건이 있는데, 너무 불편할 정도로 생소하면 안 되고, 모두에게 나름 익숙한데도 불구하고 한두 걸음쯤 더 나아가 있는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억지로 연출한 것에는 불편함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익숙하지만 한두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집착"해야 합니다. 특별한 재능이나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집착을 메이저리그라고 한다면, 별것 아닌 쓸데없는 것에 남들보다 조금 더 "집착"해서 유니크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집착을 마이너리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며 보이는 마이너 뽕필의 행위에 반응합니다. 부담 없고 재미있고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바로, 일상 덕후의 탄생입니다.


   언젠가부터 독점보다는 공유가 화두가 되면서 출판계에도 새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일반인들이 1인 미디어나 SNS를 기반으로 선보인 일상 글을 책으로 출간하는 "에세이"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나름의 독특함이 있고, 센스와 글솜씨만 있다면 자신의 일상 철학을 표현하고 공감 받아 책 출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대형서점 에세이 매대에는 누군지 모를 일반인들의 "에세이"가 넘쳐납니다. 세상에 이렇게 책을 내는 사람이 많은가 놀라울 지경입니다. 좋은 에세이를 골라 읽는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면 에세이의 대홍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조영주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


   일상 에세이의 전성시대가 되고 보니 나에게 맞는 좋은 책을 선택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반대급부가 생깁니다. 정말 좋은 작가가 쓴 훌륭한 에세이를 읽고 싶다는 욕구 같은 것이지요. 그러던 차에 조영주 작가의 에세이 출간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양반 평소에 정말 덕후스럽기도 하고 뭔가 예사롭지 않음이 늘 탑재되어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필력이야 이미 잘 알고 있으니 이야기만 재미있다면 정말 좋은 에세이가 탄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진지한 작법이나 소설가의 삶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면 내용은 좋으나 대중성은 떨어질 텐데, 다행히 처음부터 끝까지 덕후 덕후한 내용이었습니다. 일상 덕후는 늘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소설가야. 글도 잘 써. 그러면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평소 유난히 독특한 덕력을 자랑하던 그이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비단에 꽃을 더하는 느낌보다는... (이하 생략, 비단결 같은 생머리에 꽃을 꽂은 단아한 미친년 같은...)


   사실 작가의 에세이는 통상 차분하고 정제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에세이를 써도 작가스러움을 유지해줘야 하는 무거운 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조영주 작가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냥 원래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 쏟아내었다가 지웠다가 하는 특이한 행위예술을 자주 하기는 합니다. 네네. 온라인상에서 일상 글을 쓰는 것을 보면 평범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주류 무대에 입성한 작가라던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정통 작가 등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 작가들의 에세이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가 책이나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일부러 에세이집을 기획하고 쓴 글들이 아닙니다. 그저 일상 속에서 워낙 덕후스러움을 뽐내면서 자연스럽게 쓴 글들인데, 그 이야기들이 차가운 이성을 장착한 출판사 편집자와 만나 분류되고 정리되어 책으로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일상적이면서도 오지는 덕력을 뿜어내는 에세이로 탄생한 것입니다.


   사실 평소에 이 양반의 글을 자주 접하던 저로서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내용들이 될까 걱정이 좀 되었는데 주제별로 정리 정돈되어 책으로 나온 글들을 보니 특유의 필력이 돋보이는 신선한 에세이가 되어 놀랐습니다. 예상보다 에세이가 더 잘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히 생각이 담긴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와 성장기에 겪은 경험들,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들, 자연스럽게 소설가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들이 솔직하게 잘 드러나있어 좋았습니다. 나름 인간 조영주에 대해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가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작가의 문화생활 파트에 들어서는 솔로로 살아가며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작가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바꿀 거냐고 한다면 선 듯 오케이 하기 힘들겠지만, 뭐 하나 마음대로 즐길 여유가 없는 저로서는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설 쓰는 일에 관련된 이야기들로 채워진 창작 생활 파트에서는 역시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분야에 일정한 수준 이상 올라간 분들 중에 대충 얼렁뚱땅했는데 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의 고충도 여러모로 느낄 수 있고,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블로거로 만나 헛소리 댓글 배틀을 일삼던 그때 그 조영주로 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더욱 소설가로 리스펙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진 출처 : 채널 예스




3. 우리는 모두 덕질을 해야 한다. "덕업 권장","불로 성덕"


    인생은 비가역적인 것이라 한 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그걸 누가 몰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라는 것이 생계에 찌들고 가족과 일가친척, 관계로 얽힌 여러 가지 제약들이 나를 일하는 기계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야야, 기계들이 몰려온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계발하고 미래를 준비해라. 놀 시간이 어디 있냐?라고 등을 팍팍 떠미는 것 같은 필링? 아따 가슴 답답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형편과 환경을 핑계로 하기 싶은 일을 미루기 시작하면 남는 건 후회와 아쉬움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덕질을 해야 합니다. 무엇에 덕질을 할지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이게 참 웃긴 게 일부러 덕질을 하려고 정한다는 것 자체가 덕스럽지 않습니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좋아할 것을 찾아야겠지요. 그리고는 들입다 덕질을 합시다. 드럽게 덕질을 하면 좋습니다. 몰입의 힘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요.


   잘 모르겠으면 조영주 작가의 글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작가는 덕질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온몸과 마음과 생활로 보여줍니다. 나름의 패턴도 있고, 덕질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도 다양한 예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환경에 맞는 덕질을 실천하면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장강명 작가의 "열정 금지 에바 로드"에 잘 

나와있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덕질은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요.


   덕질이 발전하여 직업이 되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덕질을 하면서 돈도 버니까요. 이게 성공한 덕후의 일반 사례입니다. 그리하여 덕질이 직업이 되는 덕업이 최고입니다. 바로 "덕업 권장"이지요. 덕업 권장은 길게 오래 편안히 생계 걱정 없이 덕후로 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속 가능한 덕질의 방법입니다. 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길게 오래 덕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덕력이 농후하게 쌓이다 보면 죽을 때까지 덕후로 남는 것입니다. 죽고 나서도 덕후의 발자취를 후손들에게까지 남길 수 있게 되겠지요. 조영주 작가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런 상태를 우리는 늙지도 않고 성공한 덕후가 되는 "불노 성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덕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부터 더 덕질을 하기에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름다운 덕후 생활을 위한 힌트를 얻고 싶다면 우리의 모범 조교 조영주 작가의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성덕하시길 기원합니다.


*사진 출처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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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의 재구성 ㅣ 매드 픽션 클럽
리즈 뉴전트 지음, 김혜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1. 다양한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풀어가는 숨겨진 이야기의 진실

   구성이나 형식만으로 보면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이 절로 떠오르는 책입니다. 물론 "미소 짓는 사람"처럼 르포르타주를 표방하는 형식은 아니지만,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본인과 주변 인물들 각자의 시각에서 진술한 내용들을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서서히 파헤치는 형식이거든요.

   이런 방식의 전개는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무척 지루하거나 산만해서 독자가 짜증 나기 십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상당히 좋은 능력을 갖췄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자가 드라마, TV, 라디오 등의 작가를 했던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지 구성력이 상당히 좋다는 느낌입니다. 전체적인 골격에 비해서 스토리가 긴 편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이야기가 뼈대처럼 이어지지만, 화자를 계속 바꿔가면서 주인공의 감춰진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해주면서 마치 독자와 조각 맞추기를 해나가는 듯한 이야기 구조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각자 화자들 역시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고, 문제와 갈등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과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 기본 스토리의 단조로움을 크게 보완하고 있습니다.


#2. 이미지 만으로는 잘 모르는 "타인"

   기본적으로 저자가 가장 크게 부각하려고 했던 주제는 아무래도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입니다. 이런 주제를 잘 살리기 위해 주인공 "올리버"를 잘 생기고 매너 좋은 훈남으로 묘사합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 겉보기에 문제없이 결혼생활도 잘 이어갑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아내를 심각하게 폭행하고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단순히 아내를 때린 수준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유명 작가니 매스컴도 주목하고 언론의 매장시키기도 진행됩니다.

   저자는 이야기의 끝자락에 주인공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명확한 이유를 알려줍니다. 아내 폭행과 그 일을 촉발시킨 원인에 얽힌 이야기 자체가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이 책이 마지막 즈음에 '아~~ 그랬었군~~'하는 재미를 주는 주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도 잘 쓰인 소설이에요.

   이런 스토리를 생각하면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등의 명제는 이 책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불우하고 힘들었던 환경 탓에 비틀어진 인식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고, 인격 형성에도 장애가 많았음을 세세히 알려주거든요. 그래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아내를 폭행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주변인들이 생각한 올리버와 작가로써 알려진 이미지와 올리버의 실체 사이에 간극에 더욱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화가 잘 된 인간이라면 철저히 스스로를 숨기고 시대가 원하는 인간상으로 잘 포장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인공 올리버는 성장환경부터 적절한 보호와 보상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날 만큼 왜곡된 모습과 인격적 결함을 부분적으로 내보이게 됩니다. 그 조각조각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이 소설이에요. 저도 그렇게 사회화가 잘 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분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은 있었습니다.

#3. 환경과 문화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 인간의 속성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인간"에 대한 묘사는 흥미는 있었지만 사실 저의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 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계속 주목한 부분은 주인공의 모습을 조각조각 입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 주변 인물들의 진술이었어요. 총 7명인가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개인사가 있고, 어려움과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가 싫어하고 터부시할만한 단점들이 하나씩은 있는 그런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진술을 통해 7, 80년대 아일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 문제가 보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는 익숙하지 않을 만한 문제지만, 가톨릭 사제들의 부패 문제와 그들의 죄를 조직적으로 덮어주고 옹호하는 심각한 문제라든가, 동성애자 문제, 인종차별과 계급 차별 등의 문제가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아일랜드 사회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가보지 않은 나라의 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우리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당시의 사회 환경과 문화에 강하게 지배를 받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고 고리타분하면서 비 인격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해봅니다.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꼰대인 저는 어떤 환경과 문화 속에서 도대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도 해괴망측한 판단 근거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얼마나 그것이 진리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누군가 먼 훗날 나의 일생을 보면서 '기이하고 우매하며 비합리적인 괴물 같은 삶이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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