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1. 어디선가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 잘 섞여 있는 묘한 매력의 이야기

   소설에 대한 저의 짧은 식견과 경험에 '이사카 코타로'라는 이름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사신의 7일]이 출간되면서 아내가 관심을 보이는 바람애 덩달아 기존작 [사신치바]를 비롯 [골든 슬럼버]까지 책만 모아놓고 '읽어봐야겠다'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와중에 뜻하지 않게 [밤의 나라 쿠파]를 통해 이 작가를 먼저 접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아는바는 없지만 '캐릭터 묘사가 뛰어나다!', '독특한 세계를 이야기하고 뜨거운 반응을 받아왔다' 뭐 이정도로 대충 알고 있었습니다.

   [밤의 나라 쿠파]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독특하다'였습니다. 그러면서 묘하게도 '이거 이거 독자라면 누구라도 금새 눈치챌 만큼 익숙한 이야기들을 차용해 그야말로 능청스럽게 접붙여 놓았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막연하게는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우화스럽습니다. 아니 뭐 우화라고 해야될 것 같습니다. 고양이 세계가 나오고, 쥐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다 나무가 돌아댕기는 설정까지 있으니 '우화'가 아니라면 이상할 지경이죠. 거기다 아무렇지도 않게 걸리버 여행기도 슬쩍 끼어들었습니다.

   이런 식의 대담한 구성이 위화감이 전혀 없이 읽힌다는 것에서 작가가 얼마나 능청스러운지, 창조적 능력 혹은 작가적 역량이랄까? 그 탁월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밤의 나라 쿠파] 한 권으로도 충분히 맞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의 스토리가 어색하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다니 감탄할 수 밖에요. 심지어 저는 이런 류의 이야기가 취향에 그다지 맞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거참, 묘한 매력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2. 지배 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그 해결되지 않는 부조리를 말하다.

   한 편의 이야기 속에 인간사의 변하지 않는, 바꾸기 어려운 부조리에 대해 은유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지배 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간의 원초적인 속성, 인식조차 못하고 저지르는 부당함에 대해 무척이나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지만 재미있게도 정작 권력을 손에 넣은 입장이 되면 태초에 태어나면서부터 '내츄럴 본 권력자' 인냥 당연히 여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발상은 나의 권력 발현으로 인해 받게 되는 타인의 크나큰 피해에 대해서도 역시 당연시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됩니다. 더우기 안타깝게도 당하는 피권력자 입장도 마치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부당함을 느끼는 방향보다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수긍하는 방향으로 적응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도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겠죠.

   이 이야기의 주 무대인 "밤의 나라"의 주민들도 그들을 점령한 소수의 "철의 나라" 병사들 앞에 쉽사리 맞서지 못합니다. 가능한 내 문제가 아니라면 침묵하려 합니다. 이 와중에 이상적인 지도자처럼 추앙받고 신뢰받던 그들의 리더이자 권력자 칸토는 사실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온 국민을 희생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도 그저 아닌 듯이 잘 포장하고 있는 보잘것 없는 자질의 권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는 '밤의 나라'의 사정일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한편 늘 고양이에게 희생 당하는 존재인 쥐들은 우연한 계기, 즉 '멀리서 온 쥐'의 등장과 조언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고 급기야 고양이에게 당연시하던 가학적 태도를 바뀌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언듯 보면 새롭고도 의식있는 행동으로 보여집니다만 고양이 톰이 그것은 본능이고 약속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입장을 밝히자 그렇다면 쥐들 중 일부를 내어줄테니 마음대로 하고 나머지(리더 쥐를 포함한)는 건들지 말아달라고 재차 협상합니다.

   저자는 이 우화같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나 쥐나(개나 소나 말이나 닭이나 어느놈 할 것 없이) 타자를 희생시켜 나의 안위를 확보하겠다는 이기적인 입장은 똑같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은유를 통한 사회고발이랄까? 뭐 그런 느낌으로 말이죠.

 "바로 그거야. 누구든 자기보다 작은 존재에 관해서는 의식이 흐려지기 마련인지도 몰라. 배짱을 부리자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도 너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고 있는거 아닐까."p217~8 

   이 짧은 상황속에서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약자가 한편으로는 또 강자가 되는 갈등의 역학에 대해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쥐들이 고양이들의 부당한 공격에 의한 동족 쥐들의 죽음을 막고자, 고양이와 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덫을 만드는 식물을 뽑는 과정에서 벌레의 집을 부서뜨리고 그로 인해 원래 쉬어야만 하는 잠복기에 벌레들이 이례적으로 나돌아 다니게 됩니다. 벌레 입장에서는 바로 그 쥐들이 쥐들에게는 고양이가, 고양이들 입장에서는 인간이, 인간 입장에서는 큰 나무 쿠파가 그들을 위협하는 강자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인간들의 위협인 큰 나무 쿠파는 심지어 인간들의 지도자가 만들어낸 지배장치에 지나지 않기까지 하죠. 흥미로운 이야기속에 실로 무서운 이야기들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3. 현실은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아, 그래도 우리가 딛고 살아야만 하는 곳이지...

   믿고 있던 부인에게 팽당한 주인공은 그야말로 평범한 공무원입니다. 저도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기는 하다보니 제 입으로 할 말인가 싶기는 하지만, 과연 오늘날 평범한 공무원이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평범을 넘어 부러운 존재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주인공 설정이라면 일용직이거나 계약직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뭐 이런 저런 좀더 어려운 환경의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나.. 그래야 작금의 현실사회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공의 직업이 뭔가가 중요한 설정은 아니므로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인간'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자면 뜬금없이 배를 타고 현실인지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묘한 나라에서 휘말리는 이야기는 마치 현실속의 강한 충격과 좌절을 맛 본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취할 수 있는 현실도피적 태도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좀더 실용적으로 보면, 게임이나 영상 등의 가상세계에 빠져있는 태도나 더 나아가 책 읽기에 집착하는 것도 큰틀에서는 현실도피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는 현실이 행복한 쪽에 훨씬 가깝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만, 대체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행이도 현대는 우리가 현실을 회피하기에 좋은 다양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을 직면하기를 피하고 있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을 왔다갔다 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것도 같습니다만 이 작품의 말미에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은 조금 위험합니다.

"나는 밤이 되면 혼자 위를 향하고 누워서 드넓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빛을 만끽했다." p518

"구멍을 파든, 물건을 들어 올리든 "대단해. 대단해." 하고 감격하고 감사하고 의지하는 바람에 나도 썩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중략) 아이들로부터 듣는 칭찬이 기쁘기도 했다." p519

"갑자기 톰이 "이걸 타면 돌아갈 수 있지 않아?"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라는 선택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구나. 돌아가는 길도 있구나."하고 중얼거렸다.(중략) 나는 돌아갈 나의 집을 떠올려 봤다. 가족에 관한 생각은 한동안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중략) 정신을 놓지 않도록 뇌가 잊으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p525

   아무리 여행이 즐겁고 여행지가 아름다워 만족스러워도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떠나 있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렵고 집에서의 일상생활은 더욱 힘겨워 질 수 있습니다. 적당히 나갔다가 적당히 돌아오는 것.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내 삶의 터전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참, 재미없기도 합니다. 바람핀 아내에게 돌아가는 주인공에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신기한 경험을 통해 내면의 변화가 약간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있으나 없으나 신비로운 모험을 떠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바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일단 1분짜리 아래 동영상을 감상합니다. 

 

 

 

#2. 진정한 뉴스란 무엇인가?
 
 
1) 위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자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이 책 "뉴스의 시대"를 읽어봐야 합니다.
 
 
 
2) 위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자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이 책 "뉴스의 시대"를 읽어봐야 합니다. 
 
 
 
#덧 : 저 여자가 말미에 하는 멘트는 마치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에서 스타인벡 형님이 결론에서 날리는
        손발 오그라드는 미국이 희망이다 멘트와 별차이가 없네요.. 어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 - 세계 최정상 디자이너들이 해답을 찾는 창조적 프로세스
낸시 스콜로스.토마스 웨델 지음, 장동련.이연준 옮김 / 시드포스트(SEEDPOST)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1.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 디자인을 프로세스하라???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저같은 문외한이 읽기에 좀 힘든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것은 잘은 몰라도 앞으로 그래픽 디자인이나 미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얼렁뚱땅 아는척 하기에 아주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요런류는 주요한 내용과 몇몇 용어만 잘 외워두면 있어보이기에 딱입니다. 혹시나 더 자세히 따지고 들면 겸손해서 그런 것으로 가장하고 딴소리, 말돌리기를 하면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예상했던 내용은 '미적 디자인을 통해 완성된 작품을 창조해 내는 일련의 과정, 즉 창작 프로세스도 이제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니 전혀 다른 접근이더군요. 책 제목대로 디자인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잘게 나누고 각 프로세스 단계들을 디자인하는 개별적이고 특징적인 작품과 디자인 팩토리, 그리고 작가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일관된 프로세스를 그래픽 디자인으로 시각화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요소별 별개의 디자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죠.
 
   준비단계에 해당하는 [리서치], [영감] 파트부터 [드로잉], [너러티브], [추상], [개발] 프로세스를 거쳐 최종단계인 [콜라보레이션]까지 각 단계별로 해당 단계에 뚜렷하게 눈에 띄는 작품이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각 단계별로 소개된 과정과 결과물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2. 프로세스 단계별 디자인? 책을 제작하는 과정과도 유사한 매력...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요소를 소개하는 일련의 과정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쉽게 예를 들자면, 책을 만드는 과정으로 비유해 볼 수 있겠습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적으로 생각해볼 때 편집자가 초기단계에 책을 구상하는 과정을 디자인 프로세스의 [리서치]나 [영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를 선정하고 초고를 받아 교정을 하고, 출간회의를 거치고, 마케팅 방법을 정하고 출간후 저자와의 만남이나 독자들에게 책을 알릴 방법을 고민하는 등의 여러가지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데 이 일련의 과정을 그래픽 디자인의 각 단계와 유사하게 매칭할 수 있습니다.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의 내용전개방식은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책을 제작하는 이런 각 과정에서 리서치를 특출나게 잘하는 A 출판사의 편집자와 그 방법을 소개한 다음 연이어 출간회의를 독특하게 해서 좋은 책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잘 갖춘 B 출판사를 소개합니다. 다음 장에는 독자와의 소통으로 독특한 마케팅 방식을 선보이고 있는 C출판사의 마케팅 방식을 소개하는 방식이죠. 마지막으로 인쇄소와 서점, 그리고 언론과 우호적이고 신뢰 있는 관계를 잘 맺어온 D 출판사의 예와 성공사례를 통해 그 과정과 절차와 마인드를 소개합니다. 어떻게 보면 프로세스의 각 단계들이 유기적이진 않고 각 단계별로 매력있는 예를 들어 전체를 조감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책 제작 과정이 얼마나 효과적이냐, 독창적이냐에 따라 결과물인 책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읽히고 좋은 평가를 받느냐가 결정이 되듯이, 프로세스도 얼마나 다양한 고민을 거친 디자인이 결과물로 나오냐에 따라 성과나 나타나는 것입니다. 출판업계와 비교하자면 이런 일반적인 예상과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현실세계에서는 그 모든 각각의 과정에 개성넘치는 많은 수많은 출판사를 뒤로하고 북페어에 페어하지 못한 돈놓고 돈먹기로 자리차지하고 장사를 하는 몇개 메이저 출판사가 많은 부분 독식을 하게 됩니다. 모르긴 해도 이런 점을 보면 디자인계가 오히려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라]의 각 과정별로 소개하고 있는 작품과 워크 그룹들은 하나같이 세심한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프로페셔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약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이해하고 이 차이를 메꾸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런 태도야말로 이 책에서 비전공 일반독자가 유추해낼 수 있는 큰 교훈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3. 흥미로운 챕터 : 심볼, 북디자인, 타이틀 시퀀스
 
   이 책에서는 다양한 흥미로운 결과물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저의 관심사와 부합하는 몇가지 챕터에 더 관심이 가게 되었는데 이중 네러티부 쪽에서는 로레인 와일드의 "북디자인", 추상쪽에 국내작가 안상수 선생님의 "심볼", 그리고 가장 흥미로웠던 드라마의 "타이틀 시퀀스"가 있습니다.
 
   먼저 북디자인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무척 기대를 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결과물이 솔직히 무척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오래 고민한 아이디어는 설명을 들으니 인정하겠지만 어차피 북디자인이라는게 누군가가 딱 봤을 때 '와~~'해야 잘된거 아닐까 싶고, 외국인들의 기준은 또 다른건가 싶기도 했네요.
 

 (북 디자인 소개 결과물 중 일부)

 
 
   반면에 심볼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든 안상수 선생님의 작품에는 무척이나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작과정도 과정이지만 결과물인 최종심볼에서 느껴지는 창의적 아이디어는 정말 감탄할만 했습니다. 결과물을 바로 보고 '아, 이런 심볼이군..' 하는 것은 별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무에서 아이디어 도출 과정을 거쳐 이런 직관적이면서도 의도하는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는 심볼을 창조해내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 심볼에 대해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읽어보면 충분히 공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안상수의 최종 심벌은 모든 생명체를 연결한다. 각각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두 원은 태양과 달을 나타낸다.
아래의 중앙 원형주위로는 물과 산에서는 동물들(오른쪽), 인간(아래쪽), 물에 사는모든 생명체와 하늘을 나는 동물들
(왼쪽) 그리고 지상에서 사는 나무, 풀 등 식물들(위쪽)의 아이콘을 회전하며 배치했다.p119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 드라마 타이틀 시퀀스 부분은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영상화 작업이다보니 더욱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제작자 톰 행크스도 익숙해서 더 그런 걸지도요. 여튼 유명한 드라마 "더 퍼시픽"의 테마이자 오프닝 부분을 장식했던 이 타이틀 시퀀스는 영상으로 찾아보니 목탄의 느낌과 타이포 그래피, 애니메이션 기법등이 무척이나 멋들어지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거기다 책에서는 몰랐던 테마음향까지 더해지니 한층 멋지군요. 그 유명한 한스짐머가 맡은 사운드는 이 드라마를 무척이나 보고싶어지게 만듭니다. 전쟁관련 드라마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궁금해져서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래 테마 영상을 링크합니다.
 
  
 
    제가 평가하기는 좀 어렵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이 책은 무지한 디자인 분야에 대한 아는척꺼리를 던져준 좋은 책이었습니다. 공부하듯이 열심히 외울 필요없이 그냥저냥 흥미롭게 읽으니 남는건 없지만 뭔가 뿌듯하고 상식도 생긴 듯 해서 지적 허영심을 조금 채워주었네요. 이 책에 등장하는 디자이너명이나 디자인 팩토리, 작품, 용어등을 좀 외워 두었다가 아는척하기 신공을 시전해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다의 별 1 유다의 별 1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반갑습니다. 도진기 작가님, 한국형 미스터리라 쏙쏙 와닿아요~~~
 
   도진기 작가님의 [유다의 별1,2]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도진기 작가님은 이름도 특이하지만 이력이 워낙 독특해서 책을 몇권 사뒀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엘리트 출신에다 현재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시라니 저도 모르게 '추리소설 쓰는거 뭐 취미로 쓰시것지, 저자가 탁월하고 유명하니 어느정도 팔리겠지...' 하는 선입관이 생겨버렸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막상 작품을 대하고 보니 그 탁월함은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되. 말할 것도 없이 너무 훌륭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훌륭한 작품을 만나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봅니다. 스믈스믈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오늘 안사면 품절이 될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결재합니다. 집에 도착합니다. 잘 보관합니다. 먼지가 앉습니다.... 이 패턴이 도진기 작가님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듯 합니다. 전에 몇권 사둬서 "읽지는 않았지만 이분 작품이 집에 다 있다."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사실은 훨씬 많이 쓰셨더군요. 이거참 의문입니다. 판사가 엄청 바쁜 직업 아니었나요? 이렇게 추리소설을 많이 쓰실 여유가 있으신가? 직업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왕성하게 작품을 쓰시는 것을 보니 얼마나 노력을 하시는 분인지, 얼마나 추리소설에 애착이 많으신 분인지 상상이 됩니다.
 
   한국형 미스터리의 최전방에 계신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생소한 지명과 인명, 문화차이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 받으며 읽는 외국 소설에 비해서는 정말 쏙쏙 잘 이해되고 와닿는 것이 한국 미스터리의 최대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2. 시기적절한 소재의 사용, 그리고 잘 표현된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돌이켜보면 언제나 늘 살기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 '참 살기좋은 세상이야! 세상은 아름다워~~' 라고 생각한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네요. 규모가 엄청 크던 이전 직장에서 늘 '창사 최대의 위기다. 마른수건 쥐어짜기 경영이 필요하다'며 죽는 소리를 하는게 희한했었는데 원래 인간사가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유다의 별]은 현실이 팍팍할 때 유행하는 사교(邪敎)를 소재로 한 점이  참 시기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최근에 읽은 [통곡]에서도 사이비 종교에 서서히 빠져들어 파멸로 빠져드는 남자의 이야기를 대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악성 종교의 폐해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해서 선량한 도의에서 서서히 종교지도자에 대한 맹목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종교성을 자각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 소설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너무나 일상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생각 할수록 종교적 맹신은 무서운 파괴력을 갖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사이비 종교의 특징을 소재로 잘 활용했고, 작품속에 너무나 적나라하게 녹여내었습니다. 정말 과한 스토리이고 사람이 막 죽어 나가는데도 그 인물들의 상태를 고려하면 '그럴만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게다가 과거에 실존했던 "백백교"를 가져다 쓰므로써 더욱 실감나는 효과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주요 인물들이 생동감이 넘치는 장점도 있습니다. 저는 특히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변호사 "도진" 캐릭터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사회 엘리트 계층이라고 분류할 수 있는 변호사 신분인데도 행동이나 사고에 전혀 막힘이 없습니다. 더우기 범죄와 범죄자의 심리와 상당부분 동조하는 듯한 설정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중에 지나치게 추리력이 뛰어난 부분의 어색함을 어느정도 커버해줍니다. 사실 뭐 셜록홈즈도 아니고 어떻게 저렇게 지식도 뛰어나고 지능도 뛰어나고 감도 뛰어난건가? 하는 생각을 좀 할 정도로 우수한 DNA를 타고난 인물입니다. 가족도 딱히 없다보니 행동에 제약도 별로 없습니다. 이거야 말로 미스터리 소설에 가장 좋은 캐릭터 아니겠습니까? 사회성도 부족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배려도 딱히 없고, 정서적으로 도덕적인 제약에 묶여있는 스타일도 아니다보니 약간은 셜록홈즈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어 전작 "어둠의 변호사"시리즈(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자살)를 꼭 찾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고진과 파트너인 이유현은 고진과 상당히 상반된 인물입니다. 약간은 과묵하고 고지식하며, 실리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인물입니다. 고진보다는 상대적으로 추리능력도 떨어지고 특별히 신체적으로 탁월하지도 않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신뢰가 가는 인물이라 작품의 중심을 잡기에 반드시 필요한 설정의 캐릭터입니다. 고진과 푸닥거리면서 좌충우돌 문제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믿음직스럽습니다. 두 주인공의 캐미가 볼만 합니다.
 
 
 
#3. 과유불급은 추리소설에도 유효하다...
 
   [유다의 별]은 소재도 좋고 캐릭터도 뛰어난데다가 이야기 전개도 무척 탄탄합니다. 전통적인 트릭도 등장해서 '저자가 고민을 많이 하셨구만"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제가 워낙 본격? 트릭을 활용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그 트릭들이 기발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딱딱 들어맞아 기묘하지만 만약 현실세계에서 저런 트릭을 실수없이 실행 하는게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기발한 트릭의 연속은 확률적으로도 좀 짜고치는 고스톱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는데 말이죠.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유다의 별2]의 후반부 1/3정도는 삭제하고 결말을 좀더 단순하게 하는 것이 긴장감도 더 있고 쫀득하게 탄력있는 스토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반전을 그리 선호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알고 보니 이거였다!"하고 일단락이 되었는데, 또 '아차, 다시 생각해보니 이걸 놓쳤다. 놀라운 일이다!'하고 하더니 '아차차, 번득 생각해보니 그걸 놓쳤네?' 이러면서 끝날 듯 끝날 듯 이어지는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단원은 깔끔하게 한번에 마무리 해주셨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을 너무 많이 하셨구나, 너무 가셨어, 너무 가셨어, 욕심을 많이 내셨어.'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전반적으로 과유불급이라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너무 훌륭하고 재미있고 빠져드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사족처럼 이야기 끝에 뭔가가 더 붙어 있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하고도 "과유불급"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훌륭한 한국 미스터리를 만나 기뻤습니다. 앞으로 작가님 책을 기회 될 때마다 읽어봐야겠습니다.
 
   참, 이분 책속에 캐릭터 스포를 자꾸 흘리시던데 그것은 이미 다음 이야기의 구상이 되어있으니 기대하라는 의미인지 그냥 습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전래동화처럼 "고진은 이런 저런 거시기 때문에 훗날 거시기한 일을 당하게 된다"이런 표현이 나오더라구요. 작품 내에서 다뤄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셀프 스포는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작품을 사서 확인하라는 뽐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셀프 캐릭터 스포는 무슨 의도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기도 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1. 주인공의 압박감과 상실감, 무너지는 내면을 치밀하게 표현한 인간에 대한 빛나는 묘사

 

   [통곡]이라는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기 앞서 먼저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미야자키 츠토무"라는 인물이 정말 어이없는 희대의 또라이인 것이 그의 성장과정이 어떻든 밝혀진 행보가 완전 엽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가지 혐오스러운 방법으로 유아를 납치해서 해치고 성폭행을 저지릅니다. 소아성애자 같은 짓으로 가족들의 속을 뒤집기도 하고, 언론에다가 자기를 잡아보라고 도전장을 보내지를 않나, 시신을 부모들에게 보내면서 수사에 혼란을 주려고 진범이 따로 있는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 다중인격이면 처벌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감정 때 꿈 속에서 한 일 같다는 둥, 쥐인간이 나왔다는 둥 개소리를 했었나 봅니다. 재판이 진행되던 중 죄의식을 못 이긴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죄를 대신한다며 투신자살을 했을 때 미야자키는 이 소식을 전해듣고는 "아버지가 그렇게 되어 속이 시원합니다."라는 웃지못할 개드립을 치기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이 희대의 사건으로 일본 경찰을 프로파일링 수사기법까지 동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데뷔작 [통곡]은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을 모티브로 쓰여진 소설입니다. 그래서 작품속에 이 사건에서 나타났던 에피소드나 설정이 유사하게 사용됩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장점 중 하나인 절제된 묘사가 빛을 발하다보니 아주 끔찍하고 감정적으로 격정적이 되기 쉬운 이야기인데 상당히 차분하게 전개되면서도 점층적으로 고조되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상승곡선이 잘 유지가 됩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에 완전 몰입되도록 해주는 가장 큰 장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의 내면에 대한 저자의 깊이있는 묘사입니다. 이런 작가의 능력은 '신월담'같은 작품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마치 여성작가가 쓴 것 같은 여주인공의 치밀한 내면묘사를 만날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통곡]에서 주인공의 내면 표현은 데뷔작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 뭐랄까,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은 대목입니다. 누구나 습작을 여러번 쓰면서 오랫동안 노력을 하면 좋은 작품을 쓸 수는 있겠지만 재능을 타고난 사람의 센스는 어쩔수 없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읽으면서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놀라운 글솜씨 말입니다.

 

 

#2. 훌륭한 이야기 전개법, 시차 적용 교차진행법

 

   이 작품은 교차 진행법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수면에 떠 있는 주인공 "사에키"를 중심으로한 경찰소설과 수면 아래 숨어있는 범인의 수기와 같은 진술이 번갈아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수면 위와 아래를 동시에 오르내리며 진행되는 구조인 것이죠. 이런 전개속에 수면위 경찰소설에서는 64로 대표되는 '요코야마 히데오'류의 경찰소설과 유사한 느낌이 납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도 범죄의 해결 자체에도 관심이 가 있지만 수사하는 "사에키"의 내면 심리와 주변의 사회적 풍토, 조직내의 갈등 등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 이야기만 보면 훌륭한 사회파 경찰소설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또 하나의 축인 수면아래 범죄자의 수기와도 같은 진술을 읽다보면, 범인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엽기적인 사건을 벌이게 되었는지를 대변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앞서 언급한 경찰소설 이야기와의 사이의 갭이 엄청나게 느껴집니다. 표면적으로 또 하나의 축인 이 이야기는 어느날 갑자기 범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또는 '그럴만 하지 않았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하나의 사회고발 르포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누쿠이 도쿠로가 르포르타주에 상당히 관심이 많고 작품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르포르타주를 쓰는 작가의 성향 한 가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원래 작가의 초기작에서 그 작가의 원류를 느끼기 마련인데 이 작품도 그런면에서 딱 누쿠이 도쿠로 스타일의 원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교차진행 전개는 두개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말에 가서는 놀랍게도 수면의 위아래가 헤쳐모이면서 시간차 때문에 결국은 수면위를 위태롭게 떠다니며 진행되다가 아래로 쑥 숨어들어가는 것이 원래 구조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범인이 누구냐?' 자체가 이 소설의 대 반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서술 구조의 이 재결합 과정이 가장 큰 반전입니다. 이 구조적 반전을 깨달았을 때의 쾌감이 무척 대단합니다. 

 

 

#3. 한번더 비틀어 주는 뒤틀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원래 비판은 현상을 정확히 인식하고 판단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냥 맘에 안든다고 비판하거나 나에게 피해가 오니 비판하는 식의 깊이 없는 비판은 무책임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게이고의 "몽유화"같은 작품이 딱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데로 흘러가다가 이야기와 딱히 연관이 안되는 주인공의 직업, 전공이 원자력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비판을 끼워넣습니다. 이런 방식의 비판은 딱 무책임하게 보입니다. 그냥 요즘 이슈를 슬쩍 끼워넣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죠.

 

   [통곡]속에 나타나는 저자의 비판의식은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탁월합니다. 치밀하게 구성된 주인공의 여러 형편과 성격, 성향 등이 조화롭게 조화가 될 때, 한 사람의 배경만을 보고 판단하는 주위 사람들의 가벼움과 무책임함과 무자비함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장치적 설정이 잘 되어 있습니다. 또한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의 진행은 긴 스토리를 가지고 차츰 빠져들게 되는 설정과 묘사의 공으로 인해 점점 설득력을 가지게 됩니다. 자식잃은 부모의 애절한 감정과 그에 따른 판단력 상실과 파멸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잘 그려줍니다. 이 과정에서 이런 결핍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무책임한 자들의 등장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사이비교도 들로 설정되어 있지만 겉보기에 멀쩡한 사람들이나 조직도 사실 하는 짓들을 따져보면 오십보백보이긴 매한가지 입니다.

 

   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읽어보지 않고선 이 작품의 탁월함을 논할 길이 없습니다. 어느분이 쓰신 '내가 읽은 미스터리류 중 단연 최고는 통곡이다'라는 글을 보고 '물론 통곡이 대단히 잘 쓰여진 글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듣기는 했지만 세상에 잘 쓴 미스터리가 얼마나 많고 넘쳐나는데 지나친 칭찬이 아닌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관점과 취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기 마련인 미스터리이고 이 책은 구성이나 풀이가 다소 무거운 면도 있어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작품성은 높게 쳐줄만 하다라고 생각됩니다.

 

   충격적인 결말 때문에 유명한 이 소설은 사실은 충격적인 결말이 가능하도록 작가가 배치한 소설의 장치적 특징이 더 대단했던 작품으로 오래 기억이 남을 듯 합니다. 누쿠이 도쿠로는 역시 애정하는 작가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출간되는 작품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