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6 : 무협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6
좌백.진산 지음 / 북바이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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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무협의 세계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위해 준비작업 같은 마음으로 "대도오"를 읽었더랬는데 그 작품이 의외로 너무나 재미져서 얼릉 구매했습니다. 역시 제 예상대로 얇군요. 후훗... 얇은 책을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읽을 여유가 좀 없다 보니 가벼운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북바이북에서 출간된 책이라 내용이 부실할 거란 걱정은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내용면에서는 믿을 수 있는 출판사니까요.


   어찌하여 웹 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라는 시리즈가 기획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웹 소설 전성시대인 것만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웬만한 웹 소설 사이트에서 월 천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작가가 수두룩하다는 소문은 이미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작 유명한 작가 소설도 출간되면 몇천 부 이상 팔리는 건 거의 기적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이거 참 새삼 상전벽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뽕나무로 만든 책밭이 웹 소설 바다가 되어버렸나 봅니다. 억지로 끼워 붙여보려니 억수로 어색하네.. 참말로..


   여튼 그중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무협"부분이야말로 호기심이 가장 크게 이는 분야가 아닐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책부터 읽어보았습니다. 요런 책은 사실 가만 보면 정작 웹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려는 분들은 잘 안 읽죠. 저처럼 하지도 않을 거면서 그냥 호기심만 있는 사람이 주로 읽는 책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어깨너머로 기웃기웃 거리면서 웹 소설 이야기라도 나오면 쉐리 아는 척을 작렬하려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무협이라니 덕후가 아닌 이상 얼마나 이색적이고 생소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입니까?



#2. 장르 가이드로서 이 책은..


   읽은 계기나 의도가 뭔들 이 책이 읽으면 재미지냐 아니냐가 핵심인데, 재미가 5할에 유익함이 3할, 생소함 1할에 지겨움 1할 정도 다양하게 섞인 책입니다. 나름 장르 가이드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서문, 정의와 구성, 하위 장르 분류, 무협소설의 역사, 무협소설의 현재, 작법 한 작은 술 정도에 몇 작품 소개하는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항상 정보나 이론을 담고 있는 책은 서론을 무척 신경 써서 읽는 편인데, 전체 내용의 요약이 담겨있기도 하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쓰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읽을 때 시간이 없으면 서문만 읽어도 반은 이해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역시나 이 책도 서론에 웹 소설의 정의부터 흐름과 현주소, 그리고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 등을 짧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유익했던 부분은 "1장 무협소설이란 무엇인가?" 파트였습니다. 무협소설이 무, 협, 중원, 과장의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명은 무척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웠습니다. 그중 항상 의아했던 게 바로 "중원"의 문제였는데, 중국 무협은 그렇다 치고 한국 무협은 왜 한국이 배경이 아니라 중국의 중원이란 말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원"이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어느 곳인가를 지칭하기는 하나 사실은 상상의 공간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왜 중원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현대에 와서 중원이 왜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는 우리나라는 몰라도 중국은 워낙 넓고 외진 곳도 많으니까 거기 어디매에는 엄청 수련을 해서 거의 날다시피 해서 돌아댕기는 영감들이 분명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그 내용을 써버리면 이 책을 사서 읽을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요 정도만...


   그리고 덕후들이 무협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많은 독자들이 외면하는 이유인 과장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는데 무협소설에서 과장, 즉 구라가 빠지면 재미가 없겠죠. 일단 막 날아다니고 물 위도 지나가고 막 바위도 날려버릴 만큼 강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과장법은 무협소설의 핵심 요소입니다. 중원이라는 배경과 같은 맥락에서 과장은 드넓은 중국 어딘가엔 이런 일이 가능한 고수가 숨어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막연한 가능성을 생각하고 받아들일 부분이 있어서 설득력이 있기도 했지요. 한나절이면 중국 어디든 날아가는 현대에는 물론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래서 코웃음을 당할 가능성이 있고 외면받을 수 있죠. 하지만 판타지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지 않습니까? 후훗...


   내용과 상관없이 이 책은 문장도 매끄럽고 이해하기 좋은 쉬운 용어로 설명하고 있어 편안히 읽을 수 있습니다. 후반부엔 웹 소설 작가를 지망하는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글이 실려있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다, 결국은 니가 알아서 해야 한다,라는 이야기 이기는 하지만 오랜 경력의 작가가 보내는 따뜻한 격려 같은 글이 좋았습니다.




#3. 생소함과 지겨움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협이 무엇인지도 간단히 정리하고, 중국부터 시작한 무협의 역사와 주요한 작가,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얻게 되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살짝 우려했던 데로 별 다섯을 줄만큼 재미있다고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장르적 생소함이 그 이유죠. 아마도 궁금해서 이 책을 접하는 대다수의 독자가 비슷하게 겪게 될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생소해요. 용어 중에는 한자어도 많고, 사자성어 같은 느낌의 단어도 많이 등장합니다. 이게 어쩔 수 없이 그들만의 용어를 쓰는 거거든요. 이를테면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갔는데 첨 보는 사람들이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샬롬~~ 하고 다가오면 바로 불편해지게 되죠. 이 책의 소개를 접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좀 있었습니다. '이건 맥락상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뭔 이런 용어를 쓰지?' 요런 생각이 사알짝 아주 사알짝 듭니다. 공력으로 치면 그저 일할 정도랄까?


   그리고 역사 부분은 좀 지겨워요. 아는 건 김룡뿐인데 중국의 구무협부터 신무협, 각종 장르에 속하는 대표 작가와 작품을 반복적으로 읽다 보니 어디 써먹을 때도 없는 정보구만.. 하는 생각도 들도 지겨움이 조금 있었습니다. 역사 부분은 가볍게 그런갑다 하고 읽으면 될 듯 합니다. 이런 부분만 아니었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8할은 아주 좋고 2할 정도 어색함과 지겨움이 있는 고런 책입니다. 그래도 읽고 나니 가장 유익한 점은 이제 "무협이 뭐예요?" 내지는 "무협소설을 왜 읽어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공기반, 구라고 반 섞어서 설명해 줄 정도는 될 거 같아 좋군요. 그리고 "무협소설 하나 추천해주세요"하면 추천해 만한 소설이 몇 개 된다는 점도 아주 좋았던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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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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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트라 권위로 무장한 소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맨부커상을 받지 않았다면 '독하고, 특이하고, 매력 있으나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되었을 작품입니다. 수많은 국내 작가의 창의적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부동의 판매 1위를 차지할 작품인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이렇게 많이 팔리고 있으니 할 말 없지만요. 마치 영화 "곡성"의 기현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지도 모를 맨 그룹과 부커님께서 한강 작가에게는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을, 독자에게는 그녀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볼 기회를 주었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권위에 약합니다. 사실 이 정도 표현은 부족합니다. 권위에 매우 취약합니다. 나라밖에서 주어진 권위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취약하죠. 저도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 관심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다들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왜 맨부커상이 이 작품에 주목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읽어보니 보편적인 문제를 한국적 정서와 환경에 맞게 잘 풀어낸 느낌입니다.


   "채식주의자"는 연작소설입니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이라는 세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편들은 여주인공 "영혜"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사실상 소설의 메시지를 이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 연작들은 "연작소설"이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잘 짜여 있습니다. 한편 한편 읽을수록 무릎을 탁... 치지는 않지만 '그렇구나...' 하고 놀라는 지점이 있어요.


  

#2.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이 어려운 트라우마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나름 평범하게 살던 "영혜"가 어느 순간 육식을 거부하고 급기야 모든 식사를 거부하고 나무가 되고 싶어 합니다. 굉장히 이상한 행동이고 극단적인 선택이라 주변 누구도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선택을 받아들 일 수 없습니다. 그녀를 이해 못 하는 문제도 있지만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지 못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소설은 그녀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을 어렴풋이 알려줍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반복적으로 받은 폭력입니다. 이는 직접적인 폭력을 당한 피해자로써 생긴 트라우마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 그녀를 물었던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아 죽이고 그 고기로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와 주변인들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이런 자극적이고 난폭한 기억은 무척 위험한 폭탄처럼 가슴에 깊이 남기 마련입니다.


   한편, 가정폭력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피해자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기댈 곳이 부재하다는데 있습니다.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마치 자라면서부터 허리가 꺾여 옆으로 자라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다가 뿌리째 뽑혀 넘어가게 되는 그런 나무 말이죠.


   모든 행동의 원인을 트라우마로 설명하는 변태 프로이트 형님이나 트라우마는 없고 핑계며, 오히려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하는 야들야들한 아들러 형님도 결국 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개별적 주체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 합니다. 적극적으로 치료받고 어린 시절의 쓴 뿌리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례도 종종 있겠습니다만, 대부분 그 문제를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주인공 영혜는 이 트라우마를 외면하고 피하는 선택을 합니다. 가만히 내면으로,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려 하는 것이죠. 어떤 관점에서 보면 무척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적극적인 행동이죠. 그러나 그 결말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들의 삶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심연으로 숨어드는 행동에 더 가깝습니다.

   뇌리에 깊이 박힌 개고기의 영향인지 육식을 거부하는데 건강을 위한 선택이 아닌 정신적 문제다보니 지나치게 철저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아예 식물이 되어 버리고 싶어 합니다. 나무가 되어 땅속에 머리를 묻고 홀로되려 합니다. 일상적인 "나"의 존재로는 이 트라우마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3. 정상과 이상 사이 선택하는 인간.


   주인공 영혜만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소설의 핵심이 되는 장면인 가족이 모두 모이는 자리에서 매우 정상적으로 보이던 영혜의 언니, 그리고 형부는 모두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몽고반점에서 나타나는 "그"의 예술적 열망은 지극히 비정상적입니다. 이 열망을 어떻게 해갈하느냐의 문제는 자못 심각합니다. 그냥 두 자니 삶이 무기력하고 깊은 우울로 빠져듭니다. 해결을 하자니 일반적인 사회의 도덕규범의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납니다. "그"는 결국 예술적 열망을 실현하고 그 결과로 정상적인 삶에서 내쳐집니다.


   영혜의 남편도, 언니도 모양새는 모두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가정은 허울로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 속에서 인정받고 안정된 위치에 오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영혜의 남편도, 예술가 남편을 이해하려 애쓰며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영혜의 언니도 상처와 결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얼마나 건강하게 품고 가느냐, 어떤 형태로든 외부로 털어내느냐의 문제가 핵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혜나 영혜 주변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가족과 친구와 주변 사람들로 인해 때로는 보듬고 때로는 잊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일탈하고 삶을 포기하는 "영혜"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신은 그런 식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오롯이 자신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몇 할 정도는 타인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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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 2016-06-0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제 견해와 비슷하군요! 잘 읽었습니다.

돈다돌아 2016-06-05 07: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부족한 글에 댓글 감사드립니다. 팡팡님~~

데카당스 2016-07-1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식주의자는 과거에 한번, 그리고 맨부커상 수상 이후 재구매하여 한번 더 읽었습니다.

영혜의 아픔과 공유되는 바가 있어서, 제게 감정적인 큰 파장을 몰고 온 작품이기도 하고요.

돈다돌아님의 후기를 보며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돈다돌아 2016-09-15 10:52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사실 소양이 많이 부족한데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대도오 - 드래곤북스 명작 컬렉션 1
좌백 지음 / 시공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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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대도오"는 뭐고, 왜 무협소설을 읽게 되었나?


   그러니까... 에..또.. 왜 뜬금없이 무협소설을 읽었느냐 하면 말입니다. 최근에  ​북바이북에서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6 무협"이라는 흥미로운 책을 보게 되었거든요. 제가 웹소설을 쓰고 싶어서는 아니고 무협소설의 역사나 트렌드 같은 것이 궁금해서요. 이런 책을 읽어보면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니까 어떤 가이드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를 보니 "좌백"과 "진산" 공저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심지어 두 사람이 부부라고.. 허얼.. 부부였어..



 

   좌백과 진산은 얼마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황금가지 출판사의 "이웃집 슈퍼히어로"에 작품을 수록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친근했습니다. 사실 좌백의 경우는 당시 배트맨 오마주 같은 무협을 선보였었는데, 개인적으론 별로였습니다. 본인은 재미 삼아, 실험적인 작품을 쓰셨던 거 같습니다만,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한편, 진산 작가님의 경우는 "이웃집 슈퍼히어로"에 걸출한 '존재의 비용'이라는 단편을 수록하셨습니다. 존재의 비용은 상당한 수작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인연으로 저자 두 분이 눈에 들어와서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 무협"을 읽을까 하다가, 그것보다 우선 두 작가의 대표작 만이라도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예의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20년 전에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를 읽은 이후로 한 번도 안 읽던 무협소설을 찾아보게 되었죠. 좌백님의 작품을 검색해보니 이 작품을 추천해주는 분들이 많더군요. 거의 대표작 같은 느낌이라 일단 읽어봤습니다.


#2. 읽는 재미는 완벽히 보장하는 무협소설


   다른 작품을 접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대도오" 한편 만으로도 이 분의 내공이 뼈속 깊이 느껴졌습니다. '짙은 살의로 한기가 느껴졌다.'랄까.. 가독성과 읽는 재미만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장르를 생각해봐도 이번에 읽은 '대도오'는 집중력을 짱짱 키워주는 훌륭한 작품이었네요.


   저 같은 경우는 책을 읽는데 이유가 명확합니다. 여러 가지 부수적인 장, 단점이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결국은 재미있어서 읽는 거 아니겠습니까? 책을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목적을 두기엔 저는 이미 너무 훌륭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핵심은 재미예요. 정말 좋은 책인데 읽으려면 계속 하품 나오고 막 괴로워.. 이러면 안 읽습니다. '먹고살기도 드럽게 힘든데 취미생활까지 괴로워하면서 해야 해?' 이런 생각으로다가.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그동안 읽은 생각도 안 했던 무협소설도 매우 훌륭한 장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 정말 재미지게 읽었어요. 감탄을 했다니까요. 늘 말씀드리지만 딱히 무릎을 탁 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3. 한국산 신무협?


   일단 김용 소설 말고는 접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무협이 어떻다는 평을 하기가 어렵군요. 그런데 이 '대도오'라는 작품 만으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무협에 대한 선입관이 적잖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너무나 착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갖은 고생 끝에 기연을 만나 내공이 60갑자로 뛰어오르고 평생의 원수를 갚는다던가, 무림을 통일한다던가 하는 뭐 이런 전통적인 스토리가 있는데, 당연히 이런 구닥다리 스토리로 전개되지 않더군요.


   주인공부터 주변 인물 캐릭터가 무척 다채롭고 흥미로운 게 일단은 아주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무적이 아니라 맨날 다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도 긴장감을 고조시켜 좋았습니다. 니편 내편이 오락가락하며 맞물리는 구성도 무척 좋고, 끝까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시나리오 전개도 좋았어요.


   제가 너무 무식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무협이라 하면 다 중국의 무당파니 소림사니 이런 곳이 배경이어야 하는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한국형 신무협이면 형식이나 전개가 새로운 건 좋은데, 배경도 한국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라고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음... 너무 좁은가... 생각해보니 무협을 사랑하는 덕후들 입장에서는 좀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겠군요.


   최근엔 신무협이라고 가벼운 표지와 삽화에 전통 파괴 작품들도 종종 있는 모양이던데, 아마도 어린 독자들을 겨냥한 작품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래저래 책도 읽고 약간의 검색도 해보니 무협 장르도 확실한 시장과 매니아들을 보유한 나름의 확고한 장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진산 작가님의 작품도 접해봐야겠습니다. 무협소설에 대한 저의 편견이 다른 많은 분들의 편견과 비슷하다고 보면 기회되시면 한 번쯤 이 작품을 접해 보시면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싫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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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비상사태 : 홍종학의 필리버스터 - 경제비상사태의 실상과 테러방지법의 숨은 의도
들메나무 편집부 엮음 / 들메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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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졸잼, 꿈잼 이거슨 소설보다 영화보다 재미나다..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가면 이거 완전 졸잼, 꿀잼 입니다. 게다가 공부도 되고 우리나라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도 생기고 여러 가지로 필독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와중에 까먹을지도 모르니 하나만 디스하고 지나가자면 이거 참 표지 좀 보세요. 이 표지가 과연 밀레니엄도 훌쩍 뛰어넘은 2016년에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이란 말입니까? 국가비상사태 이전에 경제비상사태 이전에 표지비상사태입니다. 이러니 드럽게 안 팔렸을 거야. 대한민국 책팔이에 표지와 내지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데 말입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올 초에 있었던 필리버스터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종학 의원의 무제한 토론 연설 내용이 바탕입니다. 홍종학 의원도 듣보잡입니다만 이제사 알고 보니 경제학자인 홍종학 의원이 얼마나 시의 적절하고 마땅히 동의할 수밖에 없는 좋은 내용의 연설을 했던지 이걸 보던 출판사에서 돈이 딱히 안 될걸 뻔히 알면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출간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까칠한 비토옹께서 이 책을 읽으셨고, 그 덕에 저 같은 사람까지도 이 책을 읽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튼 그러거나 말거나 드럽게 재미진 책입니다. 이보다 더 재미질 수가 없어요.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정확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는 출판사의 의지인지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그냥 녹취록이에요. 홍종학 의원의 말버릇까지 고스란히 담겨있고 비문도 그냥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몇몇 의원이 의사발언권을 얻는 절차적 동의도 없이 막 끼어들어서 한마디씩 해요. 그런데 웃기게 이걸 또 친절한 홍종학 의원이 일일이 다 받아주고 대답해주고 설명해주고 이럽니다. 그 상황 자체도 코미디예요. 이 양반들이 국회의원인지 유치원생인지 유치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그러면 안 된다고 수차례 타이르는데 무시하고 지하고 싶은 데로 막 끼어듭니다.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라고 앉아있으니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한만 누리려고 하는 건 당연지사. 이런 사람들을 뽑은 국민들도 딱히 할말은 없어... 이게 총체적인 코미디란 말입니다. 이 와중에 논리적인 데다가 적절한 배경 자료까지 갖춘 홍종학 의원이 얼마나 돋보이느냐 말입니다. 아 참. 이걸 잘 설명할 방법이 없네. 이 재미지고 유익한데다 표지까지 엉망인 이 책을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나.. 커허...



#2. 대관절 필리버스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필리버스터는 대관절 무엇이란 말입니까? 올 초를 뜨겁게 달궜던 "필리버스터"는 아마도 공기업 입사시험 준비 같은 걸 해보신 분이라면 일반상식 책에서 접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체로 들을 일이 없는 단어죠.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버스터 콜보다도 인지도가 떨어지던 필리버스터가 올 초 테러방지법 거부를 위해 야당 의원들이 일을 벌이는 바람에  단번에 온 국민이 아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신설되는 법안에 반대하는 반대파가 주로 벌이는 방해 행위를 말합니다. 이번 사례처럼 무한 토론을 하는 방법 외에도 규칙발언 연발, 의사진행 또는 신상발언 남발, 요식 및 형식적 절차의 철저한 이행, 각종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출석 거부, 총퇴장 등의 방법1으로 한마디로 갠세이(gainsay), 또는 개비기, 버티기 등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원래 그닥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만 다수당의 횡포에 맞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서 의미는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필리버스터를 했다는 것도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워낙 편향된 언론환경과 비대칭적 정보제공의 문제로 인해 국민들이 제대로 된 알 권리를 얻지 못하고 있었던 형편이었는데 필리버스터가 주목받으면서 개중 좋은 생각으로 준비된 의원들이 자신의 주장과 고민을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와 채널을 얻었다는데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옥같은 발표를 한 홍종학 의원의 필리버스터 기록이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죠.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대형 출판사는 돈 냄새가 안 나니 주목을 안 했다는 점은 그동안 행보를 생각하면 역시나 납득할 만 합니다. 창비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부시맨 상을 받았다고 저렇게 환영하며 환호하는 이유가 뭡니까? 머니머니 해도 머니가 될 것만 같은 강력한 기시감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 때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지요.아.. 뭔가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다...



#3. 홍종학 의원이 주장하는 경제비상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홍종학 의원이 주장하는 바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가장 핵심인 테러방지법에 대해서 "국가비상사태라고 우기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은 모호하고 원래 의도와도 맞지 않는 법안을 테러방지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테러 방지를 위한 해외정보수집 같이 중요한 부분은 외면하고 갖은 불법을 저질러온 국정원에게 더욱 초인적인 권한을 주려 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라며 우려합니다.


   한편, 국가비상사태라고 주장하며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지만 사실은 대한민국이 거의 망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만큼 작금은 경제비상사태라는 것을 타당한 사례와 데이터들을 제시하며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리기 위해 엄한 것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주장합니다.


   역시나 대한민국 망국병인 재벌 우선주의와 재벌과 권력에 줄 서는 언론의 문제도 줄줄이 비엔나로 엮어 버립니다. 아무래도 그 밥에 그 나물이니 따로 구분할 수가 없죠. 다 엮어서 시대를 역행하고 있고 기껏 한다고 하는 정책이라는 것이 과거 미국의 대공황을 야기했던 딱 그 실패한 방법과 너무나도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미국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재벌을 해체하고 서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서 초강대국으로 변모했으나 작금의 한국은 망국의 지름길인 재벌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재벌이 돈을 벌면 국민이 잘 산다는 개풀 뜯어먹는 환타지를 아직도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 그 자체 퓨리오사보다 더욱 퓨리티한 분들입니다. 홍종학 의원은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며 재벌들이 돈을 벌어들이면 시중에 풀어서 경제가 살아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 많은 비율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사내유보금으로 보유하면서 기껏 건물을 짓거나 쓸데없이 땅을 사거나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세금은 조금밖에 안 내니 나라 살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재벌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데 그 돈을 꽁꽁 싸매고 세금 안 내고 불법 증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이런 거죠.


   그 와중에 정보기관은 정보수집은 안 하고 말 안 듣는 사람들 뒷조사나 하고 댓글 부대가 돼서 초딩들 같은 댓글놀이나 하고 있으니 이게 답이 나오는 집구석입니까? 얼마나 웃기고 황당한 집구석인지 돌아가는 꼴이 얼마나 심각한지 상세한 자료와 함께 알고 싶으시면 꼭 일독해주세요.


   참, 중간중간에 UN 리포트도 등장하고,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조사한 리포트도 등장합니다. 이 발췌한 내용들이 또 가관입니다. 전문가의 세미나 발췌한 내용도 무척 유익합니다. 책의 말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무려 1971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맞선 대통령 후보일 때 연설한 연설문이 등장하는데 명문장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당시 언급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들이 무려 45년이 지난 지금에도 무슨 평행이론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에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분명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짧은 시간에 45년치를 퇴보한 것인지 어떤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치는 정반합으로 점진적으로 나아진다고 보고 조금 더 기다리고 노력하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다 망하고 죽어나가기 전에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내 주머니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근시안적인 시각밖에 없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고 대책 없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입니다. 많이 안팔릴 책입니다. 그러나 꼭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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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합본] 크루즈 살인사건 (전3권/완결) 크루즈 살인사건
권영인 지음 / 라떼북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1.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완성도


   사실 저는 이런 식의 대놓고 "~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은 잘 안 읽습니다. 어차피 "누군가에 의해 살인이 일어났고 또 다른 누군가가 해결한다. 알고 보니 누가 범인이고 이런 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더라 신기방기하지?" 이런 형식이지 않습니까? 저는 어떤 사건을 얼마나 정교하게 안 들키게 저질렀는지 뭐 그런 것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편이라 대놓고 살인사건이라는 추리 미스터리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 작품은 사실 블로그 이웃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읽을 생각을 전혀 안 했을 겁니다. 일단 추천을 받았으니 예의상 읽어보기 시작한 작품인데 이거 의외로 대박입니다. 이북이라 정확한 분량은 모르겠으나 읽은 시간으로 생각하면 어지간히 두꺼운 추리소설보단 더 많은 분량인 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넘치고 읽는 내내 매력이 있었어요. 제목에 비해 훨씬, 엄청 괜찮은 작품이었단 말이죠. 그리고 이 작품 하나로 권영인이라는 국내 작가의 역량과 작가적 특성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약간이 아쉬움도 있어서 흥분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별을 반개는 뺐습니다. 마냥 좋다고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2. 살인사건인 듯, 미스터리 인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


   제목은 대놓고 살인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내용은 좀 다른 쪽으로 주력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크루즈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전체 이야기를 이어가는 뼈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스토리에는 오히려 다른 곳을 향하고 있어요. 실제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인간의 근본적인 악함, 빈부격차와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의 문제, 사회 전반적인 제도적인 문제와 약자, 소수자의 인권보호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어주고 있습니다. 작가가 무척이나 세심하게 이 포괄적인 문제들을 하나의 틀안에 잘 정돈해서 표현하고 있어요. 사회파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광범위한 문제들이기는 합니다만 작가의 의식이 상당히 잘 드러나면서도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역량은 훌륭합니다.


   이렇다 보니 사건의 진행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요. 마치 "왕좌의 게임"에서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각 인물들이 챕터를 이루어 갑니다. 챕터마다 각 인물들의 입장과 시각에서 하나의 사건을 점층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죠. 이런 방식은 초반에 다소 산만할 수도 있고, 독자가 의아해할 소지가 있지만 전반적인 작품의 외연이 넓어지고 입체적인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결말 부분까지 다 읽고 보니 작가적 특성 때문에 이런 방식의 전개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훌륭하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이런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빨려 들어 집중력을 잃지 않을 만큼 가독성도 훌륭하고 호기심을 끝까지 자극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형편상 앉은 자리에서 연속적으로 오래 독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계속 끊어 읽었는데도 이야기가 잘 이어지고 계속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어요.


   장점일지 단점일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추리 미스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스피디한 전개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사건의 전개가 무척이나 더디게 진행됩니다. 그 대신 각 등장인물 개개의 스토리와 인격, 특징 등을 섬세하게 배열하고 있어요. 자칫 지루해질 위험이 있는 이런 구성이 이 작품 속에서는 무척이나 유의미하게 작용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지루하지 않았고 계속 흥미를 끌 수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완급조절도 좋았네요. 한 예로 살인사건인데 갑자기 중반 즈음에 로맨스 소설 같은 느낌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이건 뭔가? 너무 나간 거 같은데?'라고 생각할 무렵 갑자기 반전이 생기면서 상황이 급변하는 국면 전환이 딱 이루어지더란 말입니다. '중간쯤 지루해졌다'라는 결론을 내리기 직전에 딱 생긴 변화라 적당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특색이라면 추리 미스터리 장르임에도 각 인물들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사랑에 대한 입장과 감정을 진중하게 접근하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이 작품을 즐겁게 읽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작가의 특징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아마도 다른 작품을 읽어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게 느꼈습니다만 추리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는다면 이 부분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3. 이거슨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에게 저자는 애정을 과하게 보이는 모습이 느껴져요. 단역 한 명까지도 과거와 인격을 부여하고 정성껏 설명하거든요. '대사 없이 슥 지나가는 엑스트라로 쓰기 싫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모두에게 친절과 배려가 돋아요. 이런 형국이다 보니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졸 길어집니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독자가 좀 지칠 우려가 있어요. 한 명 한 명 다 챙기려다 보니 이야기가 끝날 듯 끝날 듯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죠. 이게 조금 과하다 싶습니다.


   캐릭터를 최대한 살릴 인물과 과감히 생략할 인물을 잘 선택하고 집중하는 편이 조금 더 대중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 중요하단 말은 누구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비슷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도 스피디한 시대에 이런 식의 전개를 너그럽게 허락할 독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들었습니다. 꼰대 같은 저는 겨우겨우 참을 만 했습니다. 그 정도로 전반적으로는 재미졌으니까 말입니다.


   또 하나는 개념 찬 저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작품에 담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약간 계몽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어요. 이야기 전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의식이 드러나야 하는데 저자가 설명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과하게 드러납니다. 꼭 전하고 싶은 거죠. 이게 조금이라도 과하면 독자는 부담스럽기 마련입니다. 주제 전달은 사건을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문학의 미가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장르소설에 걸맞게 너무 무겁지 않게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제목입니다. 저자의 작품 스타일과 내용을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무지 제목이란 말입니다. 아직까지 지명도가 없고, 출판사도 이북쪽에서는 방귀 꽤나끼는 전문출판사인 듯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북으로 출간만 하고 홍보고 마케팅이고 완전 저자에게 떠맡기는 듯한 느낌의 출판사네요. 이렇다 보니 제목을 쉽고 직관적이고 자극적으로 뽑기 마련입니다. 누가 지나가다가 슬쩍 봐도 추리소설이니 추리소설 좋아하는 독자는 읽겠지.. 하는 식의 제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은 현실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사실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인 건 맞기 때문에 "크루즈 살인사건"이라는 제목도 잘 못 뽑은 제목은 아니라고 할 수는 있는데, 이런 제목은 거의 애거서 크리스티 시대 때 통하던 스타일 아닙니까? 좀 더 함축적이고 작가의 스타일에 맞는 매력적인 제목을 뽑았어야 더 좋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은 여하튼 무척 재미있고 특색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합본을 구매했는데 3권 합본 값이 심지어 정가 4천원입니다. 더욱이 별도 구매하면 1권은 무료예요. 의심이 많으신 분들은 1권을 무료로 읽어보시고 괜찮으시면 2,3권을 구매해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여하튼 몇 가지 호불호를 만들만한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선 지명도 있고 마케팅 능력이 있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조금 늘어지는 부분을 스피디하고 심플하게 줄이고, 과감히 버릴 건 버리는 방식으로 편집을 하고 제목도 멋지게 뽑아서 종이책으로 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냥 이북으로 읽히고 잊히기엔 상당히 아까운 작품이자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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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12-2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이북 절찬되었던데 이유가 있나요? 문제가 있으니 절판돠엇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