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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정원
가쿠타 미츠요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1.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를 모토로 각자의 은밀한 비밀을 품은 가족들의 이야기
우선 이책을 무지하게 힘들게 읽었음을 고백합니다. '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을 좋아한다'라는 저의 설정을 깨고 싶지 않아 중간에 몇번이고 끊겼던 책읽기를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읽었습니다. 왜 이 작품을 읽다가 집어 던졌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읽기 싫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책 공중정원은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비밀없이 지낸다는 모토를 가진 한 가족을 중심으로 각자의 속내를 통해 가족이라는 제도의 위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모토를 주창한 엄마 에리코가 애초부터 거짓을 숨긴채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 자체가 불완전함의 시작입니다. 코가 끼듯이 결혼한 남편 다카시의 끊임없는 불륜행각과 무책임한 삶의 태도가 불완전함을 가중시킵니다. 에리코의 엄마 기노사키의 태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다카시의 불륜 상대인 미나도 불완전한 가정에서 받은 왜곡된 시각으로 가정따위는 이루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이 가정의 아들과 딸인 고우와 마나도 동상이몽에 부족함없이 각각 한 몫을 담당해줍니다.
딸로부터 시작해서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의 불륜애인, 아들의 시선으로 총 여섯명의 내면을 통해 숨김이 없는 솔직한 가족의 모습을 연기하는 구성원과 주변인물들의 적나라한 내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극도의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족이란 제도의 한계와 불완정함으로 드러내 보여줍니다.
#2. 솔직하게 비밀을 털어내버리는 무책임함
결국 어떤 제도, 모임이 되었건 구성원들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성실한 태도와 관계의 책임감입니다. 이 책에서 가족에 대해 극도의 결벽을 가지게 된 주인공 '에리코'의 불편한 모습은 결국 그녀의 어머니 '기노사키'와 남편 '다카시'의 무책임함에서 기인합니다.
" 제발 그 자리에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머니에게 혐오감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때 어머니는 자기가 편해지기 위해 울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울면서 용서를 구하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당신 탓이 아니라'라고 말해줄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 자신은 마음이 편해지겠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가 울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죄가 되어버린다.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가 아니라 보상할 길이 없는 죄가 되는 것이다." p144
에리코를 돌보지 않은 어머니 때문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녀의 문제로 방문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며 미안해하는 어머니를 방문자들이 위로하는 상황을 보며 내뱉는 에리코의 독백을 통해 어머니의 무책임이 에리코의 내면을 얼마나 왜곡시켰는지를 보여줍니다.
" 남편은 고통스러운 표정까지 지으면서 털어놓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속이 편해지니까. 그렇게 털어놓으면 죄도, 괴로움도, 고민도, 부끄러움도, 후회도 전부 나한테 떠넘길 수가 있다. (중략) "이기적인 짓 하지 말란 말이야!" 나는 소리질렀다. "아무 생각 없이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마구 쏟아 부어놓고 혼자만 속 편해지면 다인 줄 알아?" (중략) 이 남자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비밀을 만들지 않는다는 우리 집의 가훈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p161
남편도 엄마도 자신의 숨겨야할 비밀을 토해내어버림으로써 그 비밀로 인한 부담감을 상대방에게 전가시켜버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합니다. 가족을 포함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관계의 무책임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가능한 내가 짊어져야할 고통과 짐을 상대방에게 내던지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보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 더 앞서는 것은 어쩌면 에리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3. 불륜과 비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불편함
일본 여류작가들의 책을 읽으면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일상적으로 우리가 당연히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들에 대한 부정(否定)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에쿠니 가오리를 예를 들면 갈수록 불륜을 일상적인 것으로 그리며 자연스럽게 만드는데 능숙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작풍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가쿠타 미쓰요의 이 작품 역시 끈끈한 가족애와 가족간의 신뢰 관계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란 것을 내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우연에 의한 산물로 묘사하며 그 불편한 진실을 밝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이란게 바로 이런 것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마치 전철에 함께 탄 사람들 같은 관계. 내 쪽에는 선택할 권리가 없는 우연으로 함께 살게 되어. 숨막히는 공기 속에서 짜증을 내고, 진절머리를 내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래도 일정한 기간 동안 그곳에 계속 있어야만 하는 관계. 따라서 믿는다거나 의심한다거나 착하다거나 악하다거나, 그런 개인적인 성품은 전혀 관계가 없다." p219
"그러니까 지금 식탁을 둘러싼 이곳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다. 튼튼한 자물쇠가 달린 똑같이 생긴 방문들. 다섯 개의 문 안쪽에는 각각 징그럽고 보기 싫고, 하지만 남들이 보면 치사하기 짝이 없는 비밀들이 왕창 우글거리고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번식하며 살아 있을 것이다." p268
이 이야기속의 화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나름의 설득력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느끼는 우리 가족에 대한 시선과 태도가 이 이야기속의 등장인물들과 어느정도 일치가 되고 공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지기에는 지나친 괴리가 느껴집니다. 혹시나 자신의 가족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래, 바로 우리가족의 이야기야. 내가 찾던 이야기가 여기 있었어!' 하며 공감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가족관계의 따뜻함에 대한 철저한 부정(否定)을 담은 이야기 '공중정원'. 당신의 가족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