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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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휘몰아치는 격랑속에서 잃지 않은 휴머니즘을 간직한 한 남자의 일생

 

   우리는 필연적으로 역사의 한 장면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내가 살아온 시대의 역사의 흐름과 사회상은 내 삶의 태도와 가치와 지향하는 바에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지금 우리시대에 보편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생각해보면 얼마되지 않은 최근에서야 획득하게 된 가치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너무나 당연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언제나 인간은 지금의 나처럼 살아왔고 앞으로도 유사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쉽사리 생각해 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편이 매우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형화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역사 다큐멘터리등의 시청을 통해서도 가능할 듯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통해 다양한 사고를 하기에 세상은 더 자극적이고 달콤한 볼꺼리, 즐길꺼리가 너무나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나와 다른 시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좋은 매개가 있다면 역시나 책일 것입니다. 책 속에서는 복잡다난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른 다양한 이데올리기와 사상을 공부하기에 관련 책을 접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피상적이고 막연한 경우가 많습니다. 재미도 드럽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배려한 실제적인 책이 있다면 바로 이책이 아닐까 합니다 

 

  1910년부터 2001년까지 스페인의 군사독재, 공화정,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프랑코 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낸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린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종교도, 조국도, 돈도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주인공의 신념과 저항을 처절한 삶의 여정으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평탄치 않았던 주인공은 혼란했던 세상속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확립하고 자유롭게 날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결국 날아오릅니다.  

 

 

 

#2. 소설? 만화? 형식의 파괴인가? 신선함인가?

 

  이 책은 2010 스페인 최고의 만화라 불려진 모양입니다.  대한민국을 세계에 세계를 대한민국에 소개한다는 [해바라기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 책은 형식상으로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어려운 내용을 만화로 풀어낸 표현방식 자체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익숙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우영 선생님의 [삼국지]같은 만화나, 이원복 선생님의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만화를 보면 이 책과 유사하게 텍스트가 빼곡이 들어가 있는 텍스트 비중이 높은 만화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듯 만화책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작은 텍스트가 빼곡이 들어찬 형식 때문만은 아닙니다. 통상적인 텍스트 위주의 만화는 설명을 위주로 하는 반면 이 책은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한 인간의 인생을 담담히 그려냅니다. 순수한 열망으로 체제와 싸우고 자유를 향해 몸부림치는 장면들에서 큰 공감과 유대 의식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공감을 바탕으로 먼 한국땅에서도 비슷한 시기와 상황을 살아간 우리 어른들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텍스트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자 저자는 킴이라는 만화가와 함께 작업을 합니다. 킴 역시 독재정권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전력이 있어 더욱 잘 표현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형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소설과 그림의 상호보완을 통해 최고의 효과를 얻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정적으로 본다면 만화의 최대 미덕인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점이 이책을 즐기는 독자층을 제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늘 안타까운 현실은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잘 읽어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사람이 사람위에 군림하지 않고 가진것을 나누는 인간다운 삶을 꿈꾼 이상주의자

 

  "아나키스트"는 "아나키즘(Anarchism)"을 추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무정부주의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의 관심은 단순히 정부에 그치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은 물론이고 종교나 자본 등 모든 지배적인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개인적으론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에 추종자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필연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정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우리나라의 현실도 마찬가지겠습니다. 서로 공격하고 첨예하게 대립해서 남는 건 상처뿐이지요. 우리 앞세대들이 치열한 투쟁속에 지금의 자유과 인권과 권리가 얻어진 것임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는 세상이 온다면 그것이 최상의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적극적인 아나키스트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세월이 그러한데 자신이 보기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느꼈기에 거부했을 뿐이지요. 함께 바람직한 세상를 꿈꾸었던 동지가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아 어려운 이들을 착복하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보고도 주인공은 그 모습을 답습하지 않습니다. 물질에 양심을 팔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가치를 지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마지막까지 생활고에 쪼들립니다. 나의 가치를 숭고하게 지킨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거나 적절한 결과물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나에게 적절한 삶의 태도는 어떤 것인지 한번쯤 고민해 본다면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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