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 인간이 바꾼 전쟁, 전쟁이 바꾼 역사
마거릿 맥밀런 지음, 천태화 옮김 / 공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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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이른바 이대남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 일각에서 병역의 남녀 형평성과 저출산 시대 자원 확보를 명목으로 여성 징병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이 가장 부담스러운 쪽은 이대녀들이 아니라 그녀들을 받아들여야 할 군 간부들이 아닐까 싶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2000년에만 해도 불과 0.3%였던 대한민국 여군의 비율은 이제는 9% 가까이 늘어났으며 2027년에는 15%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금녀의 벽이 만만치 않은 것이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이다. 하긴 군대만이 아니다. 여성들의 영역에 남자가 들어오고 남성들의 영역에 여자가 들어오면 환영보다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 취급이다. 나만 해도 동네 의원에서 남자가 간호사를 하고 있다거나 우연히 택시를 탔는데 운전 기사가 여자라면 위화감부터 앞선다. "우리 때에는 말이야, 당연히 남자 의사, 여자 간호사였다고." 그것이 잘못된 편견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해도 우리 머리 속에 단단히 박힌 고정 관념을 깨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크라이나의 여군들. 전장에서 여성들이 직접 전사가 되어 싸운 것은 역사가 오래된 일이다. 문제는 남자들 스스로 여자들을 자신들과 동등한 전우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독소전쟁에서 스탈린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징집하면서도 그녀들의 처지나 권리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필요가 없어지자 내버렸다. 남녀가 함께 복무하기로 유명한 이스라엘만 해도 여군의 비중은 30%가 넘지만 남성중심 분위기 속에서 온갖 차별과 인권침해를 감수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다.


학계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는 역사학과마다 여학생은 그렇게 많은데 다들 졸업 후에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남아서 역사 연구에 일생을 바치거나 그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는 여성 교수는 흔치 않다. 다들 점수 맞춰 가기 때문인가. JTBC의 <벌거벗은 세계사>만 해도 주제마다 강사가 달라지지만 여자는 거의 보지 못한 듯. (게스트 빼고) 하물며 시중의 전쟁사와 군사 서적에서 국내 저자가 여성인 경우가 있었던가. 적어도 내가 기억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금녀의 벽이 높아선지, 여자들 스스로 전쟁사와 인연이 없다고 여기는 탓인지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울 와이프부터 전쟁사는 덮어놓고 여자가 가까이 할 것이 못된다고 지레 결론을 내릴 정도이니. 우리보다 앞서가는 서구 역시 전쟁사는 남자들의 영역이다. 하지만 때때로 여성 저자가 눈에 띌 때가 없지는 않다. 거의 희귀종이지만. 얼마 전에 서평한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8월의 포성>만 해도 저자가 바바라 터크먼 여사이고 열린 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에서도 여러 저자들 중에서 여성이 몇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 될지도. 유튜브에서 보니까 20대 여성 BJ가 <콜 오브 듀티>를 하고 있더라. 여자가 뭔 총 싸움 게임을 하겠냐는 나부터 꼰대 마인드를 버려야.



공존 출판사 신작 도서인 <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는 흔히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전쟁을 여성의 시각에서 쓴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 마거릿 맥밀런 교수는 캐나다 출신 베스트셀러작가이자 역사 학자로 옥스퍼드 대학 명예 역사 교수라고 한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 전시 총리로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것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후손이라고. 외할머니가 조지의 딸이라고 하니 외증조할배인가. 금수저일세.


이 할머니. 1943년생이니 올해로 80세인데 정정하신 듯. 사람은 역시 많이 배워야 한다는. 조카도 BBC의 유명한 역사 강사라고.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소위 성선설, 성악설과 더불어 인간 본성의 가장 근원적인 궁금증 중 하나이자 수천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수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여전히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주제이다. 인간은 전쟁이 초래하는 파괴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 전쟁에 매료되는 것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기도 하다. 전쟁 영화와 전쟁사 서적은 시대와 세대, 국적을 불문하고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들은 가상 세계에서 군인이 되어 적군을 사살하는 게임을 하면서 희열감과 대리만족을 느낀다.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은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수십만명을 희생시킨 학살자가 아니라 희대의 군사적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누군가는 총을 살인 무기로 여기고 AK 소총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를 살인마라며 비난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칼을 사무라이의 영혼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어차피 내가 진짜 전쟁을 겪을 일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만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전쟁의 폭력을 막연히 동경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성으로 누를 뿐.


"우리는 이러고 논다." 덕후 중의 진정한 덕후는 역시 양덕이라던가. 군복부터 총에 이르기까지 죄다 핸드 메이드로 만들어 주말에는 모여서 라인배틀로 여가를 보내는 양반들. 만만찮은 비용은 물론이고 집에 계신 마눌님들이 남편 취미활동을 내버려 둔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는. 포기했나.


이 책은 저자인 맥밀런 여사가 2017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년 퇴임 후 영국 BBC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리스 강연(The Reith Lectures)에 출연하여 5회에 걸쳐서 전쟁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전쟁에 대한 다양하면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짐과 함께 자신만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함으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다른 전쟁 연구가들과의 첨예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언제부터 전쟁을 시작했고 무엇 때문에 싸우며 그것이 과연 인간의 진정한 본성인가. 전쟁은 파괴만을 낳는가, 반대로 전쟁 덕분에 인간은 발전하여 오늘날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던가. 현대에 와서 전쟁은 줄어들고 있는가. 앞으로 인류가 더욱 이성적이고 문명화된다면 언젠가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인가. 역덕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하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란 평화라는 일상이 붕괴되면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보편적인 일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전쟁의 일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


전쟁은 가급적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인 잠깐의 일탈이 아니다. 전쟁은 단순히 평화의 부재가 아니다. 사실은 평화의 부재가 정상 상태이다. 전쟁과 인간 사회가 서로 얼마나 깊이 얽히고 설켜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다. 우리 세계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원한다면 전쟁이 인간 사회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서 안 된다. - p.8

우수한 육군과 해군을 양성하려면 더 나은 교육과 영양 공급도 필요했다. 영국 정부와 국민들은 1899 ~ 1902년에 벌어진 보어전쟁에 지원한 사람 중 1/3이 신체 부적격 판단을 받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불우 아동에 대한 학교 무상 급식 제공 같은 개혁과 공중 보건 향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 p.64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전쟁은 대개 극도로 잔혹하다. 천국이나 지상낙원이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걸림돌이 되는 인간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릇된 이념이나 신념을 고수하는 자들은 마치 병마가 퇴치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여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 p.92

기원전 6세기 중국의 손무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상대를 정복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상대의 군대를 보전하는 것이 최선이고, 파괴하는 것은 차선이다." 그래서 손무 이후의 왕조들은 북방 기마 민족을 장벽과 회유로 막았고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19세기 영국은 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나서야 그와 비슷한 전략이 아프가니스탄에 적합함을 깨달았다. - p.121

로마의 도로 체계가 상당 부분 붕괴되어 물류가 원활하지 않고 무장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기병의 규모는 비교적 작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 한명을 무장하고 유지하는데 1.2~1.8㎢에 달하는 비옥한 농장이 필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사와 말에 착용하는 갑옷이 더 화려하고 무거워지면서 기동력이 떨어졌고 보병들의 새로운 무기와 전술에 매우 취약해졌다. - p.137

히틀러의 여러 착오 중 하나는 독일이 한때 세계를 주도했던 분야인 과학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나치는 기초 과학을 등한시했다. 우수한 과학자들이 징집되어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전장에서 희생되는 경우도 많았다. 나치는 또한 유태인 과학자들을 추방했다. 망명 과학자들은 독일의 적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제공했다. 이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연합국이 그렇게 빨리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름 끼치는 가정이지만 히틀러가 인종 정책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원폭을 먼저 수중에 넣었을지도 모른다. - p.183

프랑스에서는 출산율 저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의 어느 유명한 지식인이 프랑스 기자에게 눈치없이 말했다. "남자는 군인이 되기 싫어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민족은 활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런 민족은 더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민족에게 지배당할 운명입니다." - p.209

대체로 남자가 싸움을 하고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전쟁의 기원 만큼이나 커다란 논쟁거리이며 생물학적 이유부터 문화적 이유까지 설명의 범주 또한 다양하다. 평균적인 성적 차이로 본다면 남자가 체력과 체격에서 우월하고 더 공격적일 수 있지만 남자에 버금가거나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크고 강한 여자들도 많다. 남자가 여자보다 테스토스테론을 더 많이 분비한다는 사실로 남자의 공격적 성향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천성이 온화하여 싸움을 싫어하는 남자도 많다. 싸우기로 결심하거나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경우 여자도 남자만큼 사나워질 수 있다. - p.229

최근 몇 십년 간 대부분의 서구 군대들은 여성을 정규군에 서서히 편입시켜 왔다. 하지만 케케묵은 사고방식은 변하기 어려운 법이다. 1990년대 러시아 해군의 한 장교는 해군사관학교 입학 허가를 받은 첫 여성 사관생도에게 이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여자애 하나 있다고 해군이 망할 리 있나." 모든 군대 중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에 들어간 미국 여성들은 적대와 여성 혐오, 심지어 성적 학대까지 당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사회 전반에서 강한 반감을 보였다. 모순되게도 군복 입은 여성은 성적 매력이 없거나 아니면 철철 넘쳐 보였다. 2차 세계대전 때 미 여군은 매춘부나 다름없다는 중상모략이 나돌았다. - p.235

전방과 후방 사이의 간극을 벌이는 또 다른 차이는 대개 민간들이 전쟁터의 군인들보다 더 적을 증오한다는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일의 공습을 받지 않은 시골 사람들이 실제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도시 사람들보다 더 독일 도시들에 대한 보복 폭격을 원했다. 미군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아직 전쟁터로 떠나지 않은 군인들이 태평양에 배치된 군인들보다 일본군을 '전멸'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더 많이 동의했다. - p.289

양차 세계대전 중에 여성 근로자들, 특히 전통적으로 남자의 자리로 여겨진 직종에 있었던 여성들은 작업장에서 남성 동료들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남성들은 고용주가 임금 낮은 여성들을 빌미로 자신들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할까 우려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버밍엄의 군수 공장에서는 이전 근무조의 남성들이 다음 근무조 여성들의 작업 속도를 떨어뜨릴 요량으로 선반의 너트를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너무 꽉 끼는 스웨터를 입었다는 이유로 53명의 여성을 해고하자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사측은 꽉 끼는 스웨터는 기계에 걸려 안전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핑계를 늘어놓았다. - p.348

2차 세계대전 후의 여성 운동가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핵무장 해제운동에 참여했다. 1980년대에는 영국 버크셔주 그리넘코먼 공군 기지에 미군의 핵탄두 순항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에 항의하는 여성들만의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쟁을 부추기는 치어리더 노릇을 한 여성들도 있었다는 사실 또한 항상 기억해야 한다. - p.398

전쟁에 대한 과거의 예측을 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많이 틀렸는지 알 수 있다. 군사 전략가들은 1차 세계대전이 공격적인 기동전이 될 것으로, 2차 세계대전은 방어형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해군 전문가들은 강력한 해군 전력끼리 맞붙어 전쟁의 승패가 갈릴 것으로 내다봤고 잠수함이나 어뢰, 소형 기뢰는 과소평가했다. 미국 육군전쟁대학원장을 지낸 로버트 밥 스케일스 장군은 최근 미래 전쟁의 본질과 특성을 규정하려는 시도에 대해 "워싱턴 D.C의 가장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같은 시도는 멈추지 않으며 멈추어서도 안 된다. - p.468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자 '바다를 향한 셔먼의 대행진(Sherman's March to the Sea)'으로 남부를 초토화시킨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테쿰세 셔먼 장군은 말년에 미시간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생도들을 향해 "전쟁은 지옥이다"라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강조했다. 반대로 조지 패튼 장군은 아마도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았던 인물이다. 그는 평화로운 시절에 잉여 인간 취급을 받으면서 방황했고 전쟁이 터지자 제일 먼저 전장으로 향했다. 그에게는 죽음이 난무하는 그곳이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남과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참호에서 보낸 1460일>라는 책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지옥같은 참호전에서 시달렸던 한 대령이 휴가를 나와서 가족들과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귀대하는 날 자살했다는 대목이 있다. 누군가는 전장터에서 PTSD를 얻어 평생 끔찍한 악몽에 고통받는다면,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전장터에서 안도감을 찾기도 한다. 하물며 전쟁의 공포가 지속될 때에는 평화를 외치다가도 평화가 오면 다시 전쟁을 거론하면서 미지의 공포를 만들어내어 전쟁 준비에 혈안이 되는 것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양면성이다. 과연 어느 쪽이 인간의 진짜 모습인지는 영원한 의문이 아닐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이라크에서 250여명을 사살한 네이비 씰의 전설적인 스나이퍼였던 크리스 카일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지만 할리우드 액션과 로맨스 밖에 없는 <에너미 앳더 게이트>와는 달리 전장 PTSD에 시달리면서도 가족과 헤어져 전장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인간적인 고뇌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번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은 그것을 쉽게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전쟁이란 인간과 뗄 수 없으며 전쟁을 통해서 인류 사회를 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류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전쟁은 계속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충분히 논란이 있을 만한 발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은 적어도 이전보다는 더 평화로워진 것은 분명하다. 평화주의자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것은 수백년 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이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파괴적이고 대량 살육이 벌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화력이 그만큼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단 한 발의 원폭으로 도시가 지워졌고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부었다.

전쟁은 인간에게 필요악인가. 소말리아에서 수십년 째 이어지고 있는 내전은 온 나라를 폐허로 만들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터전은 물론이고 희망을 빼앗았다. 언제나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쪽은 약자들의 몫이다. 가족을 잃고 팔다리가 날아간 사람들에게 인간의 본성이 어쩌구 진화가 어쩌구 하는 말은 책상물림 교수의 개 풀 뜯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푸틴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 덕분에 자신들이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2014년 크름 반도를 빼앗길 때만 해도 한없이 무기력했던 그들은 처음으로 싸우기 위해서 스스로 무기를 들었고 러시아군의 전진을 막음으로서 비로소 패배주의를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 전쟁이 푸틴의 야심이 아닌 서방의 음모라고 믿는 국내외 친러 좌파들은 서방과 결탁한 젤렌스키의 아집 탓에 무고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당장 저항을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남베트남과 다른 점은 미국의 용병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러시아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이다.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푸틴으로서는 우크라이나를 손쉽게 지배하리라는 욕심은 버려야 할 것이다.

전쟁이 고통스럽다면 패전의 대가는 훨씬 고통스러우며 평화가 인간을 나태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또한 고려 시대에는 거란과 몽골에 침략에 용맹스레 맞섰던 민족이 조선 시대에 와서는 오랜 평화로 타성에 젖어 임진왜란과 두번의 호란에서 한없이 무기력했고 결국 변변히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때로는 전쟁도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물론 전쟁 장사꾼은 경계해야 하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매끄럽다고 생각하지만 중간중간에 오역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부분이 눈에 띄더라.

프랑스 혁명가들이 국민은 국가와 민족에 대해 의무를 진다는 '국민개병' 제도로 세운 기본 전제가 1945년 독일에서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나치 고위 지도부는 독일 국민의 생명을 구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국제 적십자위원회가 베를린 시민들이 임박한 전투를 피해 모일 수 있는 피란처를 마련하자고 제안했을 때 독일군 참모총장은 코웃음 치며 거절했다. 그에게 그 제안은 독일 국민의 저항 의지를 시험하려는 수작이었을 뿐이었다. "그 제안에 동의했다가는 이내 사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 베를린 전투 직전의 독일 육군참모총장이라면 우리가 잘 아는 구데리안(1945년 3월 27일에 해임되었다.)이거나 아니면 후임자인 한스 크렙스 장군인데 이들은 전형적인 프로이센 군인으로서 나치가 아니었으며 크렙스는 오히려 히틀러의 자멸 작전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원문을 보지 않고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참모총장(Chief of the General Staff)이 아니라 히틀러의 딸랑이었던 국방군 최고사령관(Chief of the Wehrmacht High Command) 빌헬름 카이텔 원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보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히틀러 자신이거나 베를린 방위 총감이었던 괴벨스 같은데. 저자가 착각했을지도.

p.358 북부군 원수였던 헨리 할렉 → 북부군의 소장이었던 헨리 할렉

※ 남북전쟁 당시 미 연방군(북군)의 최고 계급은 중장이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 총사령관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가 대장으로 승진했다. 미군 역사에서 원수 계급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와서 제정되었다.

전쟁의 근원을 짚어본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수준 높은 책이다.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국내에서도 이런 강의를 들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대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양 수준의 역사 강의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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