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만리장성 - 그림자 금융, 유령 도시, 대규모 부채 그리고 중국 경제 기적의 종말
디니 맥마흔 지음, 유강은 옮김 / 미지북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의 40대 이상이라면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암울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는 말그대로 대한민국은 완전히 끝장났다는 것이었다. 주식은 하루아침에 1/4 토막이 났고 수많은 기업들의 도산과 정리 해고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가정의 붕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 얘기에, 우리가 중진국의 문턱에서 걸려 넘어졌다는 둥, 아시아 네 마리 용 중에서 유일하게 추락한 나라라는 둥 온갖 어두운 얘기 뿐이었다.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겨우 3, 4년 후 분위기는 전혀 달라졌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의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IMF에서 빌린 외채를 조기 상환했을 만큼 여유도 되찾았다. 주가는 2000선에 도달했으며 부동산 또한 폭등하였다. 그 시절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후 상황은 쏙 빼놓고 단편적인 수치만 내세워 마치 노무현 정권이 부동산을 폭등시킨 장본인이라고 함부로 얘기하지만 엄밀히 말하여 MB정권 시절처럼 경기를 부양하겠답시고 정부가 나서서 국민들더러 집을 사라고 부추겼기 때문이 아니라 IMF 때 반토막이 되었던 부동산이 경제가 회복되면서 돈이 몰린 덕분이었다.

그 시절에는 부동산만 오른 것이 아니라 주가도 올랐고 소득도 올랐다. DJ-노무현 시절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5%에 달하였다. 연평균 10%에 육박하던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고도 성장기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IMF 때만 해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금수저도 아니고 어지간한 서민 중산층이 3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세탁기와 대형 냉장고, 거실에 대형 판넬 TV를 달아놓고 집집마다 차 두대를 굴리고 외식과 휴가를 즐긴다는 것은 1990년대나 그 이전같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970년대에 고도 성장을 이룩했던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국가들이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서 수십년 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나았던 타이완, 홍콩이 완전히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을 치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안착하여 이제는 3만 달러를 넘보고 있다.

우리가 IMF를 조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때 마침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운 좋게 편승한 덕분이었다. 물론 1978년 덩샤오핑이 처음으로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후 중국 경제는 1980~90년대 내내 꾸준히 성장했지만 전체적인 경제 규모는 대수롭지 않았다. 마오 시절이 남긴 상처가 워낙 컸기에 중국 경제는 파산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었고 개방 또한 중국 전체가 아니라 몇몇 특구에 국한되어 경제적인 파급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1989년 톈안먼 사건은 서방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차관과 투자가 끊겼고 중국 경제는 한동안 얼어붙었다.

1990년대 중반에 와서 장쩌민 정권은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선언한다. 2001년에는 WTO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었다. 특히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외치던 부시 행정부는 높은 인건비에 허덕이던 미국내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 단가를 낮추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명목으로 국내 공장들을 대거 중국으로 이전케 하였다. 미국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뻘짓이지만 중국에게는 기적이었다. 중국은 부시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당시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IMF의 직격탄을 맞은 동남 아시아나 구 소련 붕괴 후 극심한 경제 침체에 직면하였던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처럼 중국 또한 같은 길을 가리라 예측했지만 그 예측이 빗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이 흔히 "우리가 세계 경기를 떠받힌다."라고 막연하게 자부심을 가지는 중국인들의 생각만큼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중국 경제는 여전히 매우 폐쇄적이고 외부의 접근이 어려우며 자유 무역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중국이 수출하는 것에 비하여 수입 규모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국은 그냥 남의 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물론이고 심지어 홍콩, 타이완조차 중국발 경제 성장에 편승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예외가 있다면 바로 우리이다. 1991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의 무역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일본 경기가 침체일로였던 2000년대 초반 이 두 나라에 빌붙어 먹고 살았던 우리가 IMF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 덕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전체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로 미국, 일본을 합한 것보다 많으며 무역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매년 거액의 적자가 나는 대미, 대일 무역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이 덕분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중국에서 돈을 벌어서 미국, 일본에게 갖다 바침으로서 경제를 꾸려 나가는 셈이지만 바꾸어 말하면 우리 경제가 전적으로 중국 경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2010년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점점 낮아지고 불황의 늪에서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년 전 너도나도 중국 펀드를 사겠다고 줄을 설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구도 중국 펀드를 거론하지 않는다. 겨우 2, 3년 전만 해도 많은 글로벌 연구 기관들이 중국이 2020년대 중반이 되면 미국을 제치고 G1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더 이상 그런 얘기는 없다. 요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느낌이다. 장미빛 기대는 사라지고 오히려 중국발 위기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판이다.

아직은 중국의 성장 동력이 남아 있다는 지금도 경제 성장률이 3%를 넘지 못하여 자영업자들은 죽을 지경이라느니, 청년 실업률이 더 악화되었느니 온갖 앓는 소리를 늘어놓는만약 중국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진다면 그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대중 무역으로 IMF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그 타성에 젖은 나머지, 좋았던 시절에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앞날을 대비하지 않은 대가이다. 대중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무역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야 십수년 전부터 나왔던 얘기이지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우리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게 하루 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 지난 10년을 어영부영하는 사이 이미 버스는 떠나버린 느낌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위기감은 없고 서로 니탓을 하면서 정쟁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과연 중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 앞날은 또 어떨 것인가.

미지북스의 신작 도서인 <빚의 만리장성>은 우리가 막연히 여기는 것보다 중국의 실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고하는 책이다.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널리스트로 중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 전문가이기도 하다.

"베이징 당국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책임을 다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베이징 당국은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기꺼이 동원하기 때문에 중국이 금융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예상은 공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이 안도하는 사이 금융시스템은 점점 몸집을 커지고 복잡해지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베이징 당국이 때때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2014년 석탄 부문을 감독하는 한 관리는 집에 현금 3,300만 달러를 쌓아두고 있다가 발각되었다. 지폐를 세기 위한 계수기 중에서 네 대가 과열로 고장이 났을 정도였다. 한 육군 병참부 장성의 집에는 엄청난 현금 다발을 찾아내었다. 말그대로 1톤 무게가 나가는 돈을 세는데 1주일이 걸렸다. 다른 관리들도 많은 돈을 숨겨두고 있다가 잡혔는데 바닥에 깔려 있는 돈은 이미 썩어가는 중이었다."

"부패한 지원들을 해고하면 타락한 행태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빈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이 기꺼이 자기 조직의 특권을 해체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의미있는 개혁을 하려면 변화를 방해하는 면에서 정말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과 대결해야 한다."

"중국 소비자들은 국내에서 구입하는 농산물이 제대로 관리되거나 가짜가 아니거나 절차를 무시한 누군가가 내용물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식료품에 관한한 많은 중국인들은 외국 상표가 붙은 것만 산다. 국산보다 더 품질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제품의 품질과 출처를 보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외국인들이 쇼핑하는 해외에서 구매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이른바 G2라고 불리는 중국의 화려한 신기루 뒤에 숨겨진 민낯을 거침없이 벗겨낸다. 중국 관료들의 부패와 권력 남용,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식의 비뚤어진 금전만능주의, 조작과 날조로 가득 찬 좀비 기업들, 기업의 뒷배를 봐주는 지역 공무원들과 그들의 횡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농민들. 이 책에서 거론되는 중국의 문제점은 총체적이지만 그렇다고 충격적이라기에는 새삼스럽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중국의 민낯은 또 한번 강렬한 충격과 함께 경각심을 준다. 상하이 푸둥의 화려한 번화가, 중국 곳곳에 건설 중인 현대화된 도시들,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한 조선소와 중화학 설비, 세계 관광지를 휩쓰는 중국인 관광객들, 미 해군의 아성에 도전하는 중국 해군의 위용 등. 이 모든 것은 사실은 허상일 뿐이며 언제 허물어 질 지 모르는 모래성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여지껏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고 만약 그 폭탄이 터졌을 때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은 매년 7~8%의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정도가 무려 6%이다. 이것은 연평균 1~2%에 머물러 있는 서구의 기준에서 본다면 여전히 대단한 수준이다. 중국 경제는 여지껏 단 한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이 없지만 정작 주식 시장은 반토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GDP  성장분만큼 반드시 주식도 정비례하여 오르는 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올라야 정상이 아닌가. 도대체 성장한 부분은 죄다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중국 기업들은 성장률 5%를 유지한다면 겨우 본전치기이고 그 이하가 되면 도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중국의 성장은 뻥튀기되었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그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외부인들의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중국 총리 리커창이 직접 인정했던 말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아무리 중앙 정부가 통계를 조작하지 말라고 호령을 해도 지방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중국 특유의 관료주의는 수천년에 걸쳐서 형성된 봉건적인 중국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어떠한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공산당 지배 체제가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차라리 왕조 시절의 사대부들은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서 청빈한 삶을 추구했으며 권력의 절제가 있었고 언론과 비판도 허용하였다. 지금의 공산당 관료들은 최소한의 양심조차 찾아볼 수 없고 함부로 권력을 남용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철저하게 막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관료들의 부패 고리나 치부를 드러내는 사소한 시도라도 한다면 엄중한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법도 소용없다. 애초에 중국은 서구와 같은 법치 국가가 아니라 당의 지시, 그리고 그 지시를 실제로 내리는 관료들의 입이 법이다.

그나마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이다. 실제로 시진핑은 집권 이후 최우선 과제로서 부패한 관료들을 때려 잡는 일에 나섰다. 소위 '大虎'라고 불리는 가장 부패한 고위 관료 수십여명이 붙잡혔고 50만명이 넘는 '파리'들(중하위 관료)이 처벌받거나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 숫자는 서구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엄청난 것이지만 중국에는 무려 4천만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있고 여기에 비하면 한줌도 되지 않는다. 시진핑이 거창하게 떠드는 소위 '반부패 운동'이란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마오 시절 이래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온 일에 불과하다. 수십만명의 관료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부패가 조금도 해소되지 못하는 것은 재수 없는 몇 놈만 때려잡았을 뿐,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방식은 그저 관료들을 잠깐 겁주고 그들이 좀 더 양심있게 행동하라고 주의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산당의 독재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시진핑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애초에 시진핑 자신도 수조원의 재산을 쌓아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자신이 자신을 구속할 수 있겠는가.

중국인들은 외부의 비판을 진솔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특유의 자존심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 일쑤이다. "너희 방법이 최선이라고 여기지 말라.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있다."라는 식이다. 심지어 중국에 빠져 있는 일부 서구 학자들조차 여기에 편승하기도 한다. 자칭 "유교 좌파"라고 하는 캐나다 출신의 정치 학자 대니얼 A. 벨 교수의 <차이나모델 :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라는 책이 있다. 그는 "왜 서구식 민주주의가 가장 나은 정치 모델이라고 단언하는가."라면서 서구 특유의 오만함이라고 비난한다. 중국에서는 미국처럼 선거를 통하여 정치인을 뽑지 않지만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하여 가장 능력이 우수하고 올바른 품성을 갖춘 지도자를 선발한다는 것이다. 벨 교수는 소위 "현능주의(賢能主義, meritocracy)"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당 독재의 중국이 수준 낮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인도보다 낫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도를 사례로 독재주의와 민주주의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어폐가 있지만, 인도가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해서 누가 무슨 기준으로 중국보다 더 못하다고 단언한다는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벨 교수의 눈에는 중국 지도자들이 마치 무릉도원의 신선들처럼 보이는지 몰라도 세상에는 만고 불변의 법칙이 있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사실이다. 온갖 부패와 불법을 저지르고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보시라이가 한때 가장 유력한 중국 최고 지도자 후보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진핑이나 리커창이 보시라이보다 더 훌륭한 품성을 가졌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중국 경제의 현실은 실로 총체적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중국은 자본주의를 흉내내지만 사실은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전체 기업의 80%는 관료들의 통제를 받는 국영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민간인이 창업을 할 수는 있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조차 관료들과의 연줄, 즉 꽌시가 있어야 한다. 어렵사리 투자자들을 모아서 사업을 꾸려 나가도 부패한 지방 공무원들의 끝없는 괴롭힘이 시작된다. 이들의 요구를 영원히 들어주거나 아니면 항복하는 것이외에 방법이 없다. 관료들 입장에서 사기업들은 뇌물을 뜯어내기 만만한 '호구'이면서 또한 자신들의 쏠쏠한 돈줄인 국영기업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영 기업들은 관료들의 연줄을 이용하여 정부 은행에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다. 담보도 필요 없다. 상한선도 없다. 그 돈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돈이 떨어지면 또 빌리면 그만이다. 경제성, 효율성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 과잉 투자를 해도 언젠가는 쓰이겠지 하는 식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돈이 아무렇게나 허공에 낭비되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누구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구조이다. 만약 누가 그 사실을 들추어내려는 시도를 한다면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의 방식이 멕시코를 지배하는 마피아 카르텔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중국 국민들이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왜 침묵을 지키는가. 저자는 중국에서 아직까지 공산당에게 저항하거나 중동의 자스민 혁명처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대다수 국민들 또한 자신들이 언젠가 부자가 될 지 모른다는 환상에 갖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혁 개방 이후 수많은 서민 출신의 억만장자가 등장하였고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 사다리'라는 것이다. 만약 중국 경제의 성장이 멈추고 더 이상 계층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들의 불만 또한 폭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의 사고 방식이다. 중국 국민들이 공산당의 횡포에 인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에서 부패와 수탈이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일이다. 중동 여성들이 쉽게 히잡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관습에 길들여진 사람들로서는 그것을 깨뜨리고 바로 잡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두려운 일이다. 나름 민주화되었다는 우리 사회조차 여전히 나랏님이 하는 일에 민초들이 나서는 것은 반역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원래 사람이란 쉽게 바뀌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시위가 있고 때로는 분노한 농민들의 폭동도 일어나지만 당장의 부당함을 잠시 호소하는 것일 뿐, 정작 근본적인 모순에 도전하는 움직임은 없다.

지금의 중국은 너무나 타성에 젖은 나머지 썩은 서까래나 다름없게 되어서 마치 백년 전의 청나라나 임진왜란 시절의 조선을 보는 느낌이다. 여기를 손대려면 저쪽이 무너지고 저쪽을 손대려면 이쪽이 내려앉는, 위기감은 있지만 막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게 중국이다. 아무리 잘 길들여진 중국 국민들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보장은 없으리라. 중국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지 아닐 지 누가 알겠는가. 또는 청 말의 입헌 운동처럼 공산당 스스로 자기 개혁에 나서고 권력을 내려놓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시진핑은 과감한 개혁보다는 오히려 더욱 보수 반동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꽉 쥐려는 쪽을 선택한 듯 하다. 그는 덩샤오핑보다는 위안스카이에 더 가까우리라.

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중국이 지금 이대로 간다면 그들의 화려했던 잔치는 곧 끝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어느 정도일까. 사드 이후 우리 사회의 반중 감정은 하늘을 찌르지만 우리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 정도를 생각한다면 중국의 몰락은 우리가 결코 기뻐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장 10년 후 우리 미래가 어떨런지 암담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