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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 신석정 유고시집
신석정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평점 :
신석정의 시에는 어려운 말이 없어 좋다.
읽으면 읽는 대로 그 장면이 머리 속에, 마음 속에 그려져서 참 좋다.
이건 대체 뭔 말이지? 하고 두세 번 읽어야 하는 시에서는 난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더라.
<산산산>이 너무 좋아서 이 책에는 없지만 그 시도 여기에 적어둔다.
- 산산산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산
산
산
- 입추
억질 쓰고 서 있는
여름의 따가운 등 뒤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가을은
사뭇 얼굴이 사끌하다.
-여름이여! 저 얼굴이 안쓰럽지 않니?
잔인하도록 뜨거운 애무에
인젠 치가 떨리는 수련도
찢긴 손을 자꾸만 흔들어
가을을 부르기에 목이 쉬었다.
-여름이여! 저 손이 안쓰럽지 않니?
오늘은 석죽꽃 빨간 입술에도
엷게 묻어오는 가을 입김인데
구만리 장천엔
제비만 드높이 나는고나!
-여름이여! 네 뒤에 서 있는 가을을 봐라
-모란
모란이 웃는
눈언저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모란이 웃는
입언저리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모란이 웃는
흐드러진 웃음소릴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모린이 웃는
참한 얼굴 속에
아무리 찾아도 난 없었다.
-꽃사태
진달래
꽃사태에
온통 묻힌 산일레.
응달에도
양지에도
온통 진달래 꽃사탤레.
멧새
하이얀 볼에도
흐드러진 진달래 꽃물이 들어,
어둡고
미운 것
영영 꽃사태에 묻혔나베.
꽃사태 등진
착한 사람의 어둔 얼굴도
씻은 듯 영영 잊어버리고,
골 누벼
흐르는 물소리에 잊었나베.
어디서
후련한
육자배기나 한 가락 들려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