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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 ... 널 이별해
김현희 지음 / PageOne(페이지원)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배우 한효주가 내레이션을 했었다. 그 촉촉하고 고요했던 그녀의 목소리. 손에 쥐고 있던 풍선을 하늘로 띄우며 올려보내듯 스르륵 바람결 같았던 '바람이 불어, 널... 이별해' 하며 눈물 한 방울이 툭. 했던 그 영상과 목소리가 겹쳐져 아.. 이 책은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다. 했었는데..
가을이 되니, 이런 장르에 손이 간다. 아무래도 '이별'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리라. 헤어짐의 통보를 받고 나서 치유 되기 까지의 상황과 심리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감성적인 사진과 그 상황에 어우러질 법한 BGM과 책의 구절들을 함께 수록해두었다. 예전에는 CD로 함께 판매했던 모양인데,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 상황에 더욱 빠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쉽게 접할수 있는 BGM도 많았고, 알고 있는 노래도 꽤 있어서 -슬픈 음악을 즐겨 듣는 나의 취향 때문이다- 읽는 동안 그 슬픔과 아픔을 배로 더 느꼈었던 것 같다.
늘 우리집 앞까지 바래다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었어.
사랑하는 나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도 생각했거든.
나를 바래다주고 가는 길, 외롭고 긴 길을 혼자서 돌아갔던거니?
이제는 날 혼자 두었다는 미움보다는 미안하고 뭉클한 마음이
그 리 움 으 로 돌 아 온 다 . - Page. 129
나는 타인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고, 정작 내 마음은 어떻게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나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었다. 내가 꼭 피해자인 것 처럼. '누구나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이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말을 하게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지 않았다면, 나도 그렇다는 것을 한참 뒤에나 알았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모르는 체 살아가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에야 세상이 흉흉해서, 여자를 혼자 들여보내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나도 연애초기에는 저런 일로 싸운 적이 있다. 난 여자니까, 하는 생각. 그 사람이 그 길을 혼자 걸어갈 그 외로움은 생각 못 했었다. 전화로나마 그 길을 함께 걷는 것 같은 느낌은 줄 수 있지만, 그래도 뭔가 외로웠을텐데. 하고 생각하니 마음 한 쪽 구석이 시큰해진다.
왜 내게서 단지 너를 뺐을 뿐인데 네가 있던 자리만큼이 아니라
전부 다시 만들어야 하는 거냐고.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Page 194
이별, 다른 말로는 '버려짐에 대한 고찰.' - Page.232
이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 사람이 그립고, 애잔하고, 보고 싶고, 내가 잘못된 것들만 생각나고, 다시 만나면 더 잘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 대해서, 나의 아픈 마음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내가 뭐가 못나서, 세상엔 그 사람 말고도 얼마든지 있어. 하고 말이다.
그 사람 하나 나에게 없을 뿐인데 전부를 잃은 것 같은 아픔을 주는 이별. '버려짐에 대한 고찰'이라는 말이 정말 딱 맞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헤어짐을 일컬어 분수[分手]라고 한단다. 손을 나누다. 즉, 잡았던 손이 떨어져 갈라지는 것이다. 손을 잡았던 설레임보다, 손을 떼어낼 때의 아픔이 더 오래가는 것은 함께했던 추억을 더이상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이별은 도망치는 자와 남겨진 자의 갈림길. 추억을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어야 하는 쓰림. 다시 꺼내어 볼 때, 부디 괜찮기를 다짐하며..
삼십년 남짓 다르게 살아온 남녀가 온전하게 같은 생각을 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니까. 어떤 경우의 수를 넣더라도 외로움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
- Page. 220
사랑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같은 부분을 만들어 가는게 아닐까? 너무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연애가 그다지 오래 가지 않듯, 그 다른 매력에 끌려 사랑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게다가 남자와 여자. 태어날 때 부터 다른 성향을 지녔으니, 내 마음이 이 사람 마음과 같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힘든 일 일지도 모른다.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거기에 따른 대처 방식이 달랐듯, 모든 공백을 그 사람 하나로 채울 수 있을리는 만무하다. 그게 만약 가능하다면, 이 세상에서 헤어지는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테니.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저자가 물음을 던졌다. 나는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헤어진 연인과 다시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 콩깍지와는 다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이별'이라는 녀석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녀석안에, 분명 '이별'이라는 녀석도 함께 내포되어 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별의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책의 글귀를 보면서, 읽었던 책은 내가 느꼈던 느낌과 사뭇 다른 느낌을. 못 읽어보왔던 책은 좋은 느낌을 담아두고, 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 코 끝이 시릴 정도는 아니지만, 현재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이 책을 가슴에 품고 있는 지금. 마음 한 켠에는 지금 함께 하고 있는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다른 한 켠에는 그와의 예전. 아팠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새로운 추억을 다짐한다. 지금 이 순간, 순간은 늘 행복하기를. 늘 후회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