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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의 허기
레온 드 빈터 지음, 유혜자 옮김 / 디자인하우스 / 1996년 3월
평점 :
절판
이것도 잘 나가다가 막판에 이야기가 힘이 없다. 지쳐서 그냥 대충 마무리진 것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스피노자를 너무 많이 팔았다. 스피노자가 양념 수준을 넘어 주재료다. 읽다보니 스피노자에 대한 심한 허기를 느끼기는 한다. 속편이 허기진다.
그는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그것이 뭘까? 그는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자신을 허기지게 하는 이유라는 것을 그는 참담하지만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17쪽
그는 불행했고, 그러한 감정은 희망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꽉찬 포만감의 상태를 갈구하는 끊임없는 욕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애를 자아냈다. 23쪽
그는 약한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는 뇌의 노예였다. 29쪽
언제나 그는 스스로 파악할 수 없는 규칙으로 움직이는 유희를 어깨너머로만 보는 사람으로 남았다. 44쪽
쓸데없이 자신의 무력함을 자꾸만 다시 실험대에 올려 놓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차라리 추리소설이나 스파이-공포 소설물들을 읽는 것을 선호했다. 45쪽
"나 같은 사람이 여기에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27쪽
호프만은 자기 역시 끊임없는 도태의 큰 위험 속에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모든 접촉이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렸다.89쪽
다만 아름다운 경관을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96쪽
"일단 이곳에 들어오셨으니 선생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253쪽
그는 자신에게 남겨져 있는 마지막 순간을 스피노자에게 바치고 싶었다. 명확한 학식을 갖춘 그 철학자가 딸에게로 가는 길을 그에게 가르쳐 줄 것만 같았다. 혹시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였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295
'첫 번째 과정. 주어진 진정한 관념의 형식을 위하여!' 도무지 그 속뜻을 헤아릴 수 없는 제목이었다. 183쪽 호프만은 그런 식으로 철학적 사색을 하는 것이 일종의 예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 188쪽
'진실'에는 자연에 대한 자각이 있다.297쪽 스피노자는 인간적인 완벽함이 자연에 대한 포괄적이고, 완전한 자각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성을 개선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189쪽
스피노자는 행복을 찾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가르쳐 준 길은 곧바로 천국이나 열반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지성으로 연결되었다. 지성이 청결해지면 본질을 점검할 수 있게 된다고 했었다. 고상한 원칙으로 자연의 외형적 모양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통찰로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법칙으로 정리될 수 있는 상호간의 연결 고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거기에서 스피노자는 신의 손길을 느꼇다. 스피노자의 신을 그렇게 손과 숨결로 상징화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호프만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연 자체가 신의 손이고, 시선은 신의 정신이라는 의미였다. 허연 태양이 어둑어둑한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본 아침에 스피노자의 학문적 방법이 갑자기 예배 의식의 형태로 이해되었다. 408쪽
'우연이란 없다.' 유희를 정확히 고찰해 보고 규칙을 알아내면 그것이 신에게로 인도해준다. 413쪽
모든 의혹을 불식시킨 단 하나의 관념, 단 하나의 진정한 사고만이 필요했다. 439쪽
그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주의 무심한 질서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190쪽
'오직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 대한 사랑만이 영혼을 살찌운다. 그런 글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오직 그것만이 시간을 초월하여 불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며, 간절히 소망해야 하고 온 힘을 다해 추구해야 할 대상이다.' 자신에게 영원하고 무한한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71쪽
그의 독특한 허기는 수천 년 전 허기와 두려움이 아직 한 단어로 묶여 있었던 첫 인류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배가 불룩해지면 그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처음 두 발로 일어섰지만 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좌절했던 최초의 인간이 머릿속에 연상되었다. 90쪽
"자네는 좀 너무.... 우리 같은 일을 하기에는 너무 예술적이야. 53쪽
* 쌍둥이 두 딸을 먼저 떠나보낸 호프만의 절망을 그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