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늦게 오는 날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29
아네스 라코르 지음, 이정주 옮김, 최정인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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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없는 빈집에 들어가는 일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울하고 위축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엄마가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은 더 힘든 일이지요.
바깥에서 친구들과 좋지 못한 일이 있었던 날은 더 외로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해는 뚝 떨어지고 날이 어둑어둑 해지면 마음도 덩달아 까만 크레파스가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깜깜한 숲 속을 혼자 걷는 것처럼 무서웠던 경험.
아마 어린 시절 그런 기억이 있는 엄마라면 더 더욱 아이를 혼자 있게 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우리 마음 먹은 것처럼 쉽지 않지요.
그 일이 단순히 밥 먹고 살아가기 위한 생활의 방편이든, 건강한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한 실현의 일환이든 혼자 남겨진 아이에게는 분명 힘든 상황일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로 아이와의 약속을 잠깐 잊을수도 있고, 늦게까지 일에 시달리다보면 집에 가서는 그야말로 손도 꼼짝하기 싫은 상태라 하루 종일 온전히 내 편인 엄마, 아빠만 기다렸을 아이에게 마음과는 달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목걸이 열쇠> (황선미 글 / 신은재 그림. 시공주니어. 2000)는 출판된지 10년이나 지났음에도 현 시점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과 스트레스로 마음이 아픈 향기가 주인공입니다.
엄마는 향기가 10살 때부터 학원강사로 직업 전선에 뛰어듭니다. 그때부터 향기의 목에는 아파트 열쇠가 걸립니다.
5학년이 된 지금은 엄마, 아빠의 반찬거리 시장까지 보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른스럽고 쾌활한 향기지만 언제나 엄마의 손길이 그립지요.
아빠 친구 아들인 동수와의 태권도 대련 시합에서 발차기로 앞 가슴을 강타 당한 날은 내내 서럽기까지 합니다. 몸에 찾아 온 사춘기로 가슴에 생긴 멍울. 일 때문에 바쁜 엄마는 향기의 그런 신체적 변화도 눈치 채지 못하고 향기는 붕대로 가슴을 동여 매고 다닙니다.
이런 외로운 향기에게 위로가 되는 건 학교 앞에서 사 온 병아리 삼삼이 뿐입니다. 수탉으로 커 가는 삼삼이는 혼자인 향기에게 말 벗도 되어주고 때로는 동생도 되어줍니다.
삼삼이에 대한 향기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아기가 자라듯이 삼삼이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말이다. 그래서 특별하다는 걸 엄마
아빠는 몰랐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밥을 나누어 먹고 장난
치는 사이였다는 걸 알 턱이 없었다. 친구나 엄마한테 못하
는 말을 다들어 준 삼삼이가 이제는 동생처럼 여겨지는데.... (p. 73)
향기는 계속되는 무관심에 지쳐 친구 진주와 콘서트 장에 가는 것으로 가출 연습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늦은 시간 엄마 아빠가 걱정하겠지란 기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집에는 아무도 없이 컴컴하기만 합니다. 현관문 닫히는 쿵 소리가 향기의 마음이 내려앉는 소리같이 느껴집니다.
엄마의 부재, 아빠의 사업 실패로 작은 집에 더부살이 하는 친구 진주와 마음의 이야기도 나누고 진주를 통해 다른 이웃의 아픔을 알아가는 향기. 하지만 키우던 삼삼이가 어느 새 훌쩍 자라 '꼬끼오~'하고 울어대며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제 잡아 먹을 때가 되었다는 아빠. 아빠는 향기에게 삼삼이가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삼삼이와 향기는 어떤 운명을 맞을까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때문에 외톨이라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마음의 위로와 성장을, 부모님께는 아이의 힘들고 외로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가 늦게 오는 날> (아네스 라코르 글 / 최정인 그림. 어린이작가정신. 2012)
학교에서 돌아오는 줄리앙은 추운 복도에서 문을 여느라 낑낑 대지 않도록 현관문 열쇠가 변덕을 부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얼음장처럼 추운 집에 들어오면 외투를 벗지도 못하고 부엌으로 가서 식빵 두 쪽과 초콜릿 두 조각을 먹습니다. 그걸 먹고 나면 이번 달 엄마가 월급을 받기 전까진 간식이 없지요.
옆집 세바스티앙 형이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줄리앙의 숙제도 도와주고 함께 놀이도 하지만 형이 떠나고 나면 창밖으로 보이는 캄캄한 밤이 싫어, 얼른 커튼을 칩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져 갈 가방을 챙기고, 침대에서 만화책을 읽어도 시간은 참 굼뜨게 갑니다. 온종일 일해 녹초가 되어 놀아올 엄마를 위해 접시 두 개, 포크 두 개, 나이프 두 개, 유리잔 두 개를 집어 식탁에놓습니다.
점점 커져 가는 초조함과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다시 책을 들고 침대에 누워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늦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겁이 덜컥 난 줄리앙.
만약에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엄마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긴게 아닐까? 혹시 죽었나?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온갖 질문이 줄리앙의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컴컴한 밤, 엄마를 찾아 지하철 역으로 달려가게 된 줄리앙의 떨리는 마음이 읽는 사람에게도 전해옵니다.
엄마의 퇴근 시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리가 시간에 따라 너무나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엄마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에 슬며시 눈물이 나오기도 하지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다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따뜻하게 보내주시는 엄마의 미소가, 엄마가 차려내오는 정성으로 가득한
밥상이 세상 그 어떤 레스토랑의 산해진미와 비교 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하루 바깥에서 있었던 수많은 고단함을 쓸어주던 어머니의 손길을 가진. 아이에게, 때로는 이웃에게 언제나 마음의 위로가 되는 넉넉한 품을 가진 그런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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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딱지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2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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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하지요. 어제 저녁 같이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이 사랑하는 부친을 떠나보내셨습니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지만 늘 이런 일을 겪을 때면 황망함이 앞섭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행복한 결혼식장에 갈 일보다는 장례식장을 찾는 발걸음이 더 잦아지고 돌아오는 길에는 자연스레 저의 부모님과 시댁
어른들을 떠올립니다.
나이든 어른조차도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많이 위축되고 불안합니다. 아직 삶과 죽음의 이치를 이해하는 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닥친 죽음은 어른보다 훨씬 더 혼란스럽고 충격적이리라 생각됩니다.

<사진 속 울 엄마> (이브 나동 지음 / 마농 고티에 그림 / 이정주 옮김. 개암나무. 2009)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일곱 살 막심의 이야기입니다.
3월의 어느 날 밤, 너무 많이 아프고 힘들어서 떠난 엄마, 이제 막심에게 남은 것은 엄마랑 휴가지에서 재미난 표정으로 찍었던 즉석사진 뿐.
막심은 작지만 소중한 사진들을 자주 꺼내 봅니다. 마치, 엄마와 함께 있는 것처럼.
눈을 들면 엄마가 보이고, 눈을 감으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고, 솔솔 바람이 코끝을 스치면 엄마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잠에서 깰 때면 엄마의 웃음소리가,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의 자장가 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요.
엄마의 빈자리가 막심에겐 너무 크지만 사랑하는 아빠, 오렐리 아줌마, 할머니, 고양이 키위곁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리라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에게 울 엄마 얘기를 해 주기로 말이에요.

<무릎딱지>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이경혜 옮김. 2010. 한울림어린이)
<사진 속 울 엄마>가 '엄마의 죽음'이라는 아이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지만 약간은 가벼운 분위기로 죽음에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면 <무릎딱지>는 한층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전체적으로 빨간색 배경, 빨간색 소파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의 무릎에 난 새빨간 상처가 그려져 있는 표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시작.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어느 날 갑자기 잃은 아이가 겪는 공포와 아픔이 절절하게 표현된 책이라 그림책이지만 읽어내기가 많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부정이 반복되다 그것이 엄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집착으로 바뀌면서 그 속에서 아파하는 아이는 너무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집 창문을 열면 엄마의 냄새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창문도 열지 못할 정도로 아픈 아이의 마음. 그런 아이를 지켜보는 어른들도 참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혹여 내가 떠나고 없는 순간이 오면 내 아이가 느낄 아픔이 이러할까 싶어 괜히 훌쩍이기도 하고, 내 아이에게는 이런 아픔을 주고 싶지 않으니 건강하게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시작해 볼까 하는 당찬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아이에게 엄마는 움푹 들어간 여기. 가슴 안에 늘 있다고, 그 가슴속에서 영원히 아이와 함께 살거라고 위로합니다. 너무 절절한 아픔이 녹아있는 책이라 아이들보다는 부모님에게 적당한 책입니다.


<아빠 보내기> (박미라 글 / 최정인 그림. 시공주니어. 2004)는 간암으로 아빠를 떠나보낸 민서의 이야기입니다.

엄마와 슬픈 나날을 보냈지만 민서는 차츰 슬픔에서 벗어나게 되지요. 하지만 엄마의 슬픔은 나아지지가 않았습니다.
새벽에 놀이터에 우두커니 나가 앉아있는 엄마를 보게 되면서 민서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집니다. 혹여 아빠처럼 엄마도 민서 곁을 떠날까봐.

다행히 마음 따뜻한 7층 할머니를 만나면서 민서는 엄마 마음에 있는 상처를 다독여 줄 방법을 찾게 되지요.
'밤마다 엄마에게 동요 불러주기' 를 선택한 민서는 친구 미정이의 반주로 열심히 연습을 하게 됩니다. '섬집 아기', '클레멘타인'.. 그 노래들을 부르니까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민서.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엄마를 위한 동요 부르기였지만, 결국 민서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7층 할머니와 산책도 하고 아파트 버려진 땅에 텃밭 가꾸기를 시작하면서 점점 슬픔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웁니다. 버려진 땅이지만 사람이 만지면 예쁜 땅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 할머니의 말씀처럼 지금은 온 아파트 사람들이 저마다 쪼그만 밭에 네모난 울타리를 만들어 부지런히 심고 거두는 멋진 땅이 되었지요.
자신이 지나온 힘든 경험에서 얻은 갚진 깨달음을 아빠를,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아파하는 엄마와 민서에게 나눠줄 수 있었던 할머니의 넉넉함.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운가 봅니다.
'민서야,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잖니.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떠나고. 어딘가 에서는 행복하게 웃고 어떤 이는 슬퍼서 울겠지. 이 모두를 겪으며 속이 꽉 찬 나무처럼 자라는 거야. 겁낼 것 없어. 창문을 열어 봐. 밖엔 자연스럽게 오고 가는 모든 게 있으니까.'
이렇게 쓴 작가의 말을 장례식장에서 슬픔에 겨워하고 있을 선생님께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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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3
코르넬리아 프란츠 지음, 이주실.조주현 옮김, 슈테파니 샤른베르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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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가정이라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외할아버지의 자상한 보살핌으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는 장녀인 저를 포함하여 딸 셋과 아들 하나. 넷을 키우실 때 단 한번 당신의 자식을 안아주시지 않으셨다 합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집안의 여타 사정으로 손주 녀석을 3개월 때부터 손수 기저귀 갈며 키우셨으니 온돌처럼 뜨뜻한 사랑의 진심이 아니고서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저녁에 퇴근해 돌아가면 달력 뒷면을 잘게 A6 정도로 잘라 한 달 단위 묶음으로 만든 전용 다이어리에 아들의 하루 배변 활동과 우유 섭취량, 그날의 특이사항, 정치적인 이슈를 빼곡히 적어두셨습니다. 남편과 저는 그 달력 일기를 읽는 것으로 아들의 육아를 대신했지요.
아들은 할아버지와 관계가 대단했습니다. 서너 살 무렵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을 때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할아버지가 계신 테이블마다 찾아가 한 분 한 분을 위해 정성껏 일명 좋은 날을 부어드리는 서비스를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대신 할머니들이 고놈 예쁘다며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남자친구에게 삐친 여인이 '흥'하며 새침하게 토라지듯 과감한 손사래로 할머니들을 당황케 했었습니다.
다섯 살 무렵, 어느 날 퇴근하니 아들이 자신의 바지춤을 과감하게 쑥 내리며 중요 부위(?)를 아낌없이 드러내어 보란 듯이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너무 놀라 아들의 바지를 급히 올리며 엄마의 급한 행동을 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교육적 말들을 쏟아낸 기억이 있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연로하신 어른들만 사는 시골이라 아들 녀석을 두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고놈, 고추 있나 없나 한번 보자." 시면, 아들은 늘 자신을 보살펴주고 사랑으로 만져주는 할아버지의 손길에 익숙하다 보니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동네 할아버지들께 만족감을 드렸고, 그 할아버지들의 만족한 웃음 소리를 기억한 아들은 다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아무런 의심도 제지도 없이 노출을 감행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들의 행동이나 동네 어르신들의 행위에 도덕적인 의심을 받아야 할 뭔가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런 행위가 일부 다른 의도를 가진 어른들을 만났을 때 제대로 된 판단 능력이 발휘 될 수 있을까가 문제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기편인 할아버지와 동일시 된 동네 할아버지들에게 인정받는 것의 만족감이 무엇인지를 느낀 순간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판단 능력을 상실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코르넬리아 프란츠 글 / 슈테파니 샤른베르크 그림 / 주니어김영사)
어린 파울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혼자 자기를 키우는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엄마 대신 자신을 돌봐주는 옆집 할아버지가 만지고 뽀뽀하는 것이 싫고 기분 나쁘지만 내색하지 못합니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더 힘들어 하고 걱정할까 싶어 제대로 된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한 파울라의 마음이 느껴져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결국은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파울라를 걱정하고 안아주는 엄마의 품에서 파울라는 그간의 고통을 쓸어내리게 되지요. 본능적으로 드러내기 힘든 일, 감추고 싶은 일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늘 아이에게 열린 마음으로 진심과 사랑을 전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섀논 리그스 글 / 제이미 졸라스 그림 / 고래이야기)는 실제로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지은이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글 머리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놀라울 만큼 흔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꺼리고 있지만 어린이 성폭력을 방지하려면 우리 모두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실질적인 대응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작가의 진심을 이입한 글이기에 위기감이나 두려움이 앞서게 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이입과 잔잔한 감동을 통해 성폭력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라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2007년 최고 중의 초고의 책'에 선정되었고 '2007년 오레곤 아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레지나는 옆집 아저씨가 자기에게 한 일 때문에 혼자 집에서 인형놀이하고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엄마는 그런 레지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관심을 보이지요.
혼자 무거운 비밀을 간직하던 레지나는 선생님의 바른 생활 교육과 낯선 사람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일러주는 이야기에 마음을 열게 됩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거나 또는 알면서도 쉬쉬하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상상하기도 싫지만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너무나 믿고 의지하는 가족이나 친척 또는 가까운 이웃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기분 나쁨을 감지할 수 있는 것,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실감을 심어주는 것, '안돼요'라고 강격한 제지와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것, 타인의 신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깊은 관심과 배려를 가지는 것, 이런 것을 제대로 풀어내고 적극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전선은 가정에서의 부모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교육이겠지요.
수원 사건 이후 여성들의 호신술 학습과 호신용 기기의 매출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매번 이런 반복적 상황을 되풀이하는 사회에서 여자 아이를 둔 부모님의 가슴 떨림을 깊이 공감합니다. 저 또한 여자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남자 아이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 어른이 되어 올바른 성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이터에 혼자 아이를 내놓아도 안심되고, 컴컴한 밤길을 가슴 조이며 걷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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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혜 창비아동문고 233
김소연 지음, 장호 그림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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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들이 흔히 '요즘 아이들은 말이야....'로 말씀을 시작할라치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없이 온몸으로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멀리 갈 것없이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저부터도 어르신들이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살짝 긴장되고 걱정되기까지 합니다.
이런 세대간의 갈등은 우리 당대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로마 공화정시대의 키케로조차 "젊은이들은 경솔하기 마련이고, 분별력은 늙어가며 생긴다"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키케로는 젊음과 체력이 필요한 활동은 못하겠지만 정신력으로 필요한 활동은 충분하게 해 낼수 있으며 큰 일은 민첩함이나 신체의 기민함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 및 판단력에 의해 이루어지곤 한다고 하며 이런 자질들은 노년이 되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늘어난다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키케로처럼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명망있는 지식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편협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젊은이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이런 명망과 판단력이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많이 힘든 삶을 살았을 어르신들. 거침없는 젊은이에 대한 비판과 비교로 가르치기보다 힘든 세월을 이겨낸 당신의 투박한 손으로 젊은이의 손을 마주 잡아주는 것이 백마디 말보다 훨씬 큰 감동으로 다가가리가 생각됩니다.
<명혜>
(김소연 글 / 창비)에는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배움에 대한 열정과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찬 아이 '명혜'가 등장합니다.
계급사회가 유효했던 식민지 조선에서 그래도 별 어려움없이 자랐지만
자신의 이름을 갖고 싶고, 공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던 명혜.
구세대의 인습에 맞서면서 성차별을 극복하고 당당히 의사의 꿈을 펼쳐
나가는 명혜의 모습에서 온갖 어려움에 맞섰을 그 시대의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역사의 아픈 수레바퀴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명혜와 수많은 민초들.
우리 시대에도 곳곳에서 더 나은 미래 세상을 위해 자신의 희생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희망의 씨앗들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가 봅니다.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글 / 문학동네) 이 책은 조선시대 천주교 탄압을 배경으로 한 역사동화입니다. 기존 역사물이 가졌던 교훈주의를 뛰어넘는 수작이란 평을 받으며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의 영광을 누렸던 책입니다.

주인공 장이의 아버지는 필사쟁이였지만 천주학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천주학쟁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게 됩니다.
아버지를 잃고 책방에서 책심부름꾼 일을 하면서 홍교리라는 인자한 학자를 알게되면서 장이는 천주학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 장이는 아버지가 살아계실적 꿈이기도 했던 자신만의 책방을 내게됩니다. <서유당:책과 노니는 집>.
사실 이 책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 살짝 저만의 이름으로 도용(?)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힘들지만 성실하게 자신의 꿈을 꾸는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고 책 읽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면 이 책을 꼭 권해드립니다.

누군가 먼저 어려움을 헤치며 걸어간 길을 우리는 고통없이 걸어갑니다.
키케로의 노년 예찬과 말러의 "젊으니까, 자네가 옳다"라는 젊은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 과연 이 두 명언의 접점은 어디쯤일까요.

삶을 대하는 유연함이 온몸에 스며있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젊은이들 세상의 힘이 되고 등불이 되는 노년, 그 노년을 꿈꿉니다.
오늘따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식의 행복을 위해 당신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 감수하셨을 내 할아버지, 내 할머니, 내 어머니, 내 아버지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고단한 부모님의 삶이 생각나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TV CF처럼 오늘은 부모님께 전화 한통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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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화났어! 내인생의책 그림책 9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유문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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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공공도서관 사서 몇 분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상황별 독서치료 목록 발간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개발한 치유서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 끝에 독서교실에 참가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 33명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고민을 담은 질문지를 배포하고 자신의 문제 상황에 해당되는 곳에 표시하도록 해 아이의 상황에 맞는 책을 읽게 하는 선행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20개의 질문 문항 중 참가 어린이의 70% 정도가 '요즘 자주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생겨요'라고 응답해 몇 권 안 되는 책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배분할지를 두고 난감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인지하기에는 역부족인 부분이 분명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70%라는 수치가 저에게 주는 압박감은 굉장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를 다닌 지 두 달 정도 지난 아들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학교에서 알림장을 빼먹고 옵니다. 안가지고 올 때마다 제가 아이한테 알게 모르게 압박감을 주었던지 어제는 학교 끝나고 저에게 전화를 해서는 대뜸
"어머니, 화 내지 말고 들으세요. 아무리 찾아도 알림장이 없어서 그냥 왔어요. 그런데 알림장에 쓴 것은 다 기억하고 있어요. 첫째..."
전화기로 타고 오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깐 반성의 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엄마의 분노성향에 대처하느라 힘들었을 아들의 마음이 헤아려지더라구요.
<오늘도 화났어>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 내인생의책) 이 책은 책 표지부터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아이의 팔자 눈썹과 상기된 양볼이 억누를 수 없이 화가 많이 난 상태라는 걸 미리 알려줍니다.
월요일은 아침에 늦잠을 자서 엄마가 화났고, 화요일은 피망을 남겨서, 수요일은 화분을 깨서 아빠가 화났다고 합니다. 자신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화가 난 모습을 세세하게 일러줍니다. 급기야 아이는 왜 나는 사람들을 화나게 할까? 하면서 화내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떠나가기로 합니다.
나중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 인해 화가 나는 상황을 겪으면서 사람마다 화를 내는 상황과 감정표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화났던 마음을 되돌아보고 어떻게하면 화를 덜 낼까 스스로 생각합니다.
아주 짧은 그림책이지만 감정조절이 서툰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읽으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들이 내보이는 화의 감정, 이를테면 부모님께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거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꿋꿋하게 낸다든지, 바닥에 드러누워 한껏 몸 운동을 한다든지, 물건을 내던지는 모습들을 그냥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이 성숙하지 못한 방법으로 드러내는, 그리고 조금만 그대로 두면 자연히 수그러들 잠깐 동안의 폭발적 감정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에 비해 어른들이 일상에서 표출하는 화는 아이들의 그것과는 달리 훨씬 더 관대한 눈과 마음으로 일종의 동조의식을 작용시키며 두둔했었던 것 같습니다.
왜일까를 곰곰 생각해보니 제 안에도 조금만 누가 건드려주면 터질 것 같 화의 분화구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체험형 독서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좋은 책 몇 권을 만났는데 그 중 하나의 책이 비벌리 엔젤이 쓴 <화의 심리학>이라는 책이었습니다.
<화의 심리학>
(비벌리 엔젤 / 용오름) 25년동안 화와 학대, 여성, 인간관계 문제에서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아온 심리치료사인 비벌리 엔젤이 쓴 책으로 분노성향이 바뀌면 인생도 바뀐다, 당신의 분노성향을 바꿔라, 화의 극복과 승화라는 총3부의 구성으로 되어있으며, 대부분 공격적, 수동적, 수동 공격적, 투영 공격적 등 네 가지로 분류된 사람들의 그릇되고 부정적인 분노성향을 긍정적인 분노성향으로 바꾸는 과정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잘못된 방법으로 화를 표출하고 있었으며, 잘못된 분노성향으로 내 아이의 마음까지 상하게 하는 심락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일상적인 상황에서 불쑥 불쑥 욱~하는 감정이 새어나와 크게 질러놓고는 아, 왜 그랬을까. 조금만 참을 걸 하는 후회와 반성의 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옆에서
"읽는 다고 다 되는 건 아닌가보네."하며 책으로만 깨우친 저에게 훈수를 둡니다.
그러면 저는
"읽어서 이 정돕니다."라고 응수했었습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남편과의 관계에서, 때로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회적인 관계맺기에서 나의 상세하고도 세밀한 감정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감정노동으로 느껴져 혼자 뒤돌아 큰 호흡을 하기도 하고 상대를 피해 슬쩍 옆으로 비켜서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화의 불길이 휩싸인 곳에 대책없이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뛰쳐나오기도 합니다.

책의 에필로그 부분에 무엇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상대를 비난하는 대신 자신의 화와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상대의 말에 넘어가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며, 상대로 인해 삶을 망치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써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부분 연습이 필요하지만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남한테 휘둘려 이리저리 나뒹구는 나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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