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저학년을 위한 꼬마도서관 3
코르넬리아 프란츠 지음, 이주실.조주현 옮김, 슈테파니 샤른베르크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맞벌이 가정이라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외할아버지의 자상한 보살핌으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아버지는 장녀인 저를 포함하여 딸 셋과 아들 하나. 넷을 키우실 때 단 한번 당신의 자식을 안아주시지 않으셨다 합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집안의 여타 사정으로 손주 녀석을 3개월 때부터 손수 기저귀 갈며 키우셨으니 온돌처럼 뜨뜻한 사랑의 진심이 아니고서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저녁에 퇴근해 돌아가면 달력 뒷면을 잘게 A6 정도로 잘라 한 달 단위 묶음으로 만든 전용 다이어리에 아들의 하루 배변 활동과 우유 섭취량, 그날의 특이사항, 정치적인 이슈를 빼곡히 적어두셨습니다. 남편과 저는 그 달력 일기를 읽는 것으로 아들의 육아를 대신했지요.
아들은 할아버지와 관계가 대단했습니다. 서너 살 무렵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을 때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할아버지가 계신 테이블마다 찾아가 한 분 한 분을 위해 정성껏 일명 좋은 날을 부어드리는 서비스를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대신 할머니들이 고놈 예쁘다며 손이라도 잡을라치면 남자친구에게 삐친 여인이 '흥'하며 새침하게 토라지듯 과감한 손사래로 할머니들을 당황케 했었습니다.
다섯 살 무렵, 어느 날 퇴근하니 아들이 자신의 바지춤을 과감하게 쑥 내리며 중요 부위(?)를 아낌없이 드러내어 보란 듯이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너무 놀라 아들의 바지를 급히 올리며 엄마의 급한 행동을 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교육적 말들을 쏟아낸 기억이 있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연로하신 어른들만 사는 시골이라 아들 녀석을 두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고놈, 고추 있나 없나 한번 보자." 시면, 아들은 늘 자신을 보살펴주고 사랑으로 만져주는 할아버지의 손길에 익숙하다 보니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어 동네 할아버지들께 만족감을 드렸고, 그 할아버지들의 만족한 웃음 소리를 기억한 아들은 다시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아무런 의심도 제지도 없이 노출을 감행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들의 행동이나 동네 어르신들의 행위에 도덕적인 의심을 받아야 할 뭔가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런 행위가 일부 다른 의도를 가진 어른들을 만났을 때 제대로 된 판단 능력이 발휘 될 수 있을까가 문제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기편인 할아버지와 동일시 된 동네 할아버지들에게 인정받는 것의 만족감이 무엇인지를 느낀 순간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판단 능력을 상실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코르넬리아 프란츠 글 / 슈테파니 샤른베르크 그림 / 주니어김영사)
어린 파울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혼자 자기를 키우는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엄마 대신 자신을 돌봐주는 옆집 할아버지가 만지고 뽀뽀하는 것이 싫고 기분 나쁘지만 내색하지 못합니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더 힘들어 하고 걱정할까 싶어 제대로 된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한 파울라의 마음이 느껴져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결국은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파울라를 걱정하고 안아주는 엄마의 품에서 파울라는 그간의 고통을 쓸어내리게 되지요. 본능적으로 드러내기 힘든 일, 감추고 싶은 일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늘 아이에게 열린 마음으로 진심과 사랑을 전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섀논 리그스 글 / 제이미 졸라스 그림 / 고래이야기)는 실제로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지은이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글 머리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놀라울 만큼 흔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꺼리고 있지만 어린이 성폭력을 방지하려면 우리 모두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실질적인 대응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작가의 진심을 이입한 글이기에 위기감이나 두려움이 앞서게 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정이입과 잔잔한 감동을 통해 성폭력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라 시카고 공공도서관의 '2007년 최고 중의 초고의 책'에 선정되었고 '2007년 오레곤 아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레지나는 옆집 아저씨가 자기에게 한 일 때문에 혼자 집에서 인형놀이하고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엄마는 그런 레지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관심을 보이지요.
혼자 무거운 비밀을 간직하던 레지나는 선생님의 바른 생활 교육과 낯선 사람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일러주는 이야기에 마음을 열게 됩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거나 또는 알면서도 쉬쉬하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상상하기도 싫지만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너무나 믿고 의지하는 가족이나 친척 또는 가까운 이웃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기분 나쁨을 감지할 수 있는 것,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실감을 심어주는 것, '안돼요'라고 강격한 제지와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것, 타인의 신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깊은 관심과 배려를 가지는 것, 이런 것을 제대로 풀어내고 적극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최전선은 가정에서의 부모님의 적극적인 관심과 교육이겠지요.
수원 사건 이후 여성들의 호신술 학습과 호신용 기기의 매출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매번 이런 반복적 상황을 되풀이하는 사회에서 여자 아이를 둔 부모님의 가슴 떨림을 깊이 공감합니다. 저 또한 여자이기 때문이겠지요.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남자 아이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 어른이 되어 올바른 성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이터에 혼자 아이를 내놓아도 안심되고, 컴컴한 밤길을 가슴 조이며 걷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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